대가 자족 하기를 배웠노라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라(빌4:10-13)


많은 사람들이 부자로 살고 싶어하고 예수를 믿는 목적도 여기에 있다. 한국 교회는 이런 기복주의 신앙을 강조해왔다. 이런 신앙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좀 더 성숙해 져야 한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한 말처럼  복을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보다는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그래서 복을 받게 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란다.

1. 부자라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다.
부자가 되려는 대다수는 돈이 많은 만큼 행복해 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성경 인물 중 최고의 부자였던 솔로몬은 <전2장>에 자기 눈이 원하는 모든 것과 자기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남김없이 해 보았다고 했다. 그런데 그의 최후에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탄식했다. 1923년 시카고 에드워드 비치호텔에서 미국 최고의 부자 7명이 모였었다. 25년 후 그들의 생애를 추적한 결과 한 사람도 그 부를 유지하거나 행복한 결과를 누리고 있는 자 없이 몰락해 있었다. 부자라고해서 더 행복하거나 다 행복한 것도 아니다.

2. 가난하다고 부끄러워 할 이유는 없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머리 둘 곳이 없이 집 한 채 없는 무주택자로 가난하게 사셨다.(눅9:58) 바울도 자족했다. 물론 게으름으로 인한 가난은 경계를 해야 한다. 그러나 열심히 사는데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 잠30:8-9은 부자가 되어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도 문제이며 너무 가난해서 범죄하는 것도 문제가 되기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도록 기도하고 있다. 부자로 사는 것도 가난하게 사는 것도 다 하나님의 섭리다. 주님은 우리를 부자로 만들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니라 영생을 주시려고 죽으셨다.
빌 4:11에 “내가 궁핍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느니라”고 한다. ‘자족’(아우타르케스)은외부에 구애됨이 없이 스스로 만족하며 참 만족과 마음의 평정을 누리는 것을 말한다. 자족하는 것은 부단히 훈련을 쌓아야 되는 것이다. 바울은 어떤 어려운 가운데서도 자족을 배웠다.

어떻게 자족할 수가 있었는가?
첫째,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자족할 수가 있었다.
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모두 부자 된다는 말씀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내가 주님 안에 있는 것이다. 어떤 형편에 있든지 주님 안에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이긴다는 말씀이다. 바울은 어떤 환경을 만나도 만족할 수 있고, 기쁘게 살 수 있는 비결을 ‘그리스도 안에’라고 했다. 항상 자족할 수 있어야 한다. 만족은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요, 욕심을 적게 내는데 있다.”

둘째, 자족하기 위해서는 작은 것에 기뻐해야 한다.
자족하는 삶은 외부에 있지 않다. 먼저 내부의 영혼의 만족이 있어야 한다. 바울 10절에 “내가 주안에서 크게 기뻐함은”이라고 한다. 감옥에서 빌립보 성도들의 지극히 작은 위로에 크게 기뻐했다.

셋째, 자족하기 위해서는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매사에 좋은 환경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비천의 환경과 궁핍한 환경을 만날 수 있다. 바울은 어려운 환경에서 불평 원망 분노하지 않았다.

넷째, 자족하기 위해서 남들과 비교하지 마라

(맺는 말) 내가 가진 것에 대해서 만족하고 있나?
삶의 질의 행복을 묻는 질문에 과연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느 정도 긍정적인 답을 갖고 있을까?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우리는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 삶에 만족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답은 만족하지 않는다. 여러분은 어떤가? 지금 나의 삶 나의 인생에 얼마나 만족하고 있나?
개인이 가정이 교회가 나라가 자족하기를 배워야한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나라  가정 교회를 만들자! 자족할 뿐만 아니라 남을 배려하며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대한민국을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