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절하지 맙시다. (炸?:7-11) 인간은 강한 것 같으나 참으로 약한 존재다. 바울은 자신을 질그릇같다고 고백했다. 질그릇은 약하고 잘 깨지고 값이 싸며 볼품없고 귀하지 않다. 그러나 무엇이 담겨져 있느냐에 따라 가치는 다르다. 우리가 질그릇같은 존재여도 우리 속에 예수님이 담겨져 있으면 귀한 존재가 된다. 왜 질그릇에 보배를 담았는가?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고후4:7) 질그릇과 보배 중에 귀한 것은 보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질그릇에 너무 관심을 많이 가질 때가 있다. 포장에 관심을 가지면 속는다. 선악과가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였다. 인류의 타락은 바로 이 껍데기를 보는 것에서 출발했다.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가치가 결정된다. 그런데 이 세상에 속한 모든 보배들이 일시적인 것들이고 완전한 것이 아니다.(벧전1:24) 그렇다면 어떤 보배가 영원한 것인가? 오직 예수만이 영원한 보배이다. 왜냐하면 그 분 안에는 영원한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그 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온갖 보화가 있고(골2:3) 장수가 있고 부귀와 영화가 있고(잠3:16) 기쁨이 있고 영원한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의 보배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질그릇에 보배 되신 예수를 가진 자가 받을 축복을 보자. 첫째,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한다. 우겨쌈을 당한다는 말은 원어 ‘들리보메노이’는 포도즙을 짤 때 포도를 짓누르는 것을 의미한다. 고통과 아픔으로 짓눌려져도 내가 터지지 않는 것은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이다. 바울은 사방이 벽인 빌립보 감방에 들어가서 이 고백을 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 이후 얼마지 않아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 하늘의 능력을 막을 수 없었다. 둘째,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한다. 세상에서 답답한 일을 많이 당한다. 다윗은 이스라엘 역대 왕 중에 치적이 가장 화려했고, 가장 부강했던 시대를 살았고 가장 존경받은 인물이지만 그는 평탄과 행복보다 고난과 슬픔이 많았던 사람이다.(시3:1-3) 대적이 많았고 아들과 심복에게 배신당하고 백성들의 비웃음이 되었다. 하나님께 마저도 버림을 받은 것 같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다윗은 비난의 소리를 들을지라도 낙심하지 않았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시3:3)라고 고백했다. 셋째,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한다. 이 세상은 전쟁터와 같다. 악한 영들과 싸우는 싸움터다. 불신앙과 싸워야 하고, 죄악과 싸워야하고, 염려와 근심과 싸워야 하는 전쟁터다. 그러나 승리는 이미 확정되어 있다. 우리 속에 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존재, 로마의 기독교 국교화, 한국의 기독교 핍박의 역사 속에서도 모두 승리했다. 핍박이 크면 클수록 오히려 신앙은 강해지고 더욱 주님께 헌신하게 된다. 넷째,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는다. 거꾸러뜨린다는 것은 죽인다는 것이다. 예수 믿는다고 거꾸러뜨리고 죽여도 우리는 지옥에 버림받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비참한 죽음이지만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거꾸러뜨려서 멸망시키려고 했으나, 그는 부활하셔서 사망의 권세를 깨고 만왕의 왕이 되셨고 교회의 머리가 되셨다. <맺는 말>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는 위기의 순간이 찾아온다. 위의 네가지 경험을 다 하게 되어진다. 그러나 결코 망하지 않는다. 믿었다고 해서 질그릇이 금 그릇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질그릇 같은 우리 안에 보배를 담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환경 속에 놓이게 되더라도 좌절해서는 안 된다. 능력의 심히 큰 것이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주님께 있기 때문이다. 이 보배를 절대로 뺏기지 말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