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의 실패와 회복

 
베드로의 실패?회복(마26:69-75)
수제자 베드로 그는 왜 베드로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실패하고 말았는가?
(1)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부인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주님의 부름에 그물과 가족을 뒤로하고 예수님을 따른 자기를 부인한 사람이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도 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을 로마에서 해방시키고 왕이 되실 때에 그 우편의 자리에 앉아 있기를 원해서 야고보 요한과 싸움도 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것과 부활을 말했을 때에 그런 죽음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큰 소리를 쳤다. 우리는 예수를 쫒는다 하지만 내 꿈을 위해 예수를 쫒고 있지는 않은가?  
(2) 자기 자신을 과신하는 교만 때문이었다.
베드로는 자기 스스로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마26:33에 “다 주를 버릴 찌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35절은 “주와 함께 죽을 찌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라고 큰 소리쳤다. 그러나 그는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고, 맹세하고, 저주까지 하면서 철저하게 예수님을 배신했다(70,72,74).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항상 넘어질까 조심해야 한다. 내가 약한 존재인지 잊지 말아야한다.
(3)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땅 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세 차례 기도하는 동안  제자들과 베드로는 잠을 자고 말았다. 그때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주님께서 간곡히 부탁했음에도 그는 실패하고 말았다. 예수께서 잡히실 때에 말고의 귀를 베는 용기가 있었고, 제자들이 다 도망했지만 주님의 뒤를 따랐던 사랑도 있었지만, 기도없는 용기와와 사랑은 헛것이 되었다.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기도하는 일이다.
(4)  예수님과 멀어졌기 때문이다.
58절에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좇아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그 결국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속들과 함께 앉았더라”고 한다. 시편1:1절은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고 했지만 베드로는 악인에 길에 들어 선 것이다. 그런데 타락하는 순서가 처음은 따라가는 것이고 그 다음은 같이 어울리는 것이고, 그 다음은 같이 주저앉아 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타락의 과정이다. 예수를 믿어도 봉사를 해도 적당한 거리를 두고 멀찍이 하는 사람이 있다. 예수님과 간격이 멀어지면 신앙의 위기가 찾아온다. 베드로는 멀찍이 주를 좇아갔기 때문에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는 영적 위기에 빠진 것이다.
벵겔은 \'예수를 멀찍이 좇아간 것은 용기와 공포의 중간\'이라고 지적했다. 예수님 곁으로 갈 수도 있는 거리요 도망칠 수도 있는 지점, 거기에 베드로는 있었던 것이다.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자리는 어디인가?  

이런 실패자 베드로가 어떻게 수제자로 회복될 수 있었는가?
첫째, 베드로는 닭의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였기 때문이다.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는 말씀이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둘째, 닭 우는 소리 가운데서 베드로가 연약한 자기 자신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75절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는 말씀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 심히 통곡하였다고 한다. 자신이 연약하고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인간임을 발견했다. 반면 가룟유다는 후회는 했지만 이것을 깨닫지 못했다. 실패는 누구나 언제나 할 수 있다. 실패는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만드는 과정이다. 실패보다 중요한 것은 연약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것이 축복의 전환점이 된다.
셋째, 베드로가 닭 우는 소리를 듣고 철저하게 회개하였기 때문에 영광스러운 자리를 회복할 수 있었다.  
본문 75절에 베드로가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밖에 나가 심히 통곡하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이 베드로의 위대한 점이다. 전설에 의하면 베드로는 닭이 울 때마다 무릎을 꿇고 울었다고 한다. 지금도 예루살렘에 가면 베드로가 통곡하며 회개한 장소를 기념하여 \"베드로의 통곡교회\"가 세워져 있다. 베드로의 위대한 점은 회개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늘도 닭이 우는 소리는 우리를 향하여 들려온다. 말씀을 통해서, 환경을 통하여 들려오고 있다. 베드로의 심금을 울렸던 닭의 울음소리가 분명히 들려지기 바란다. 고난 주간에 새벽에 통곡하며 회개하자!

맺는 말
베드로의 연약하고 실수가 많은 이 모습이야말로 바로 내 자신의 모습이다. 예수님을 부인하는 베드로의 모습 속에서 나 자신을 보아야 한다. 자신을 부인치 못하고 자신을 과신하며 기도하지 않고 주님을 멀리하는 것이 우리 모습이다. 통곡하고 회개하고 용서 받음으로 회복되기를 축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