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여 어찌 하여
친구여 어찌하여(마22:1-14)
본문에 임금의 초청을 받은 자들이 두 번씩이나 초대를 거절을 하고 말았다.(1-4) 이것은 임금으로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오늘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에 대한 초청을 거절하는 자가 얼마나 많은가?
왜 임금님의 초대를 거절하였는가? (눅 14:18-20) 이유는 다르지만 분명한 것은 이유와 핑계를 대면서 초대를 거절을 했다는 사실이다. 밭을 샀으니 소를 샀으니 장가를 갔으니 얼마나 좋은가? 현실적인 문제와 영적인 문제가 겹칠 때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럴 때에 중요한 것 하나를 먼저 선택해야하는데, 이것을 ‘일의 우선순위’라고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초대와 우리의 현실적인 문제 중에서 어느것이 우선순위인가 ?
저들은 왕의 혼인잔치 초대보다 자기의 현실적인 일을 더 중히 여겼다. 나아가 임금의 종을 잡아 죽였다.(6) 이것은 임금에 대한 도전이다. 임금은 노하여 초청했던 자를 다 죽이고 다시 사람을 보내어 아무나 데려와 내 집을 채우라고 했다.
눅14:21절은 임금이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고 했다. 왕의 아들의 혼인잔치에 이런 자들은 품위가 떨어짐에도 청하라했다. 이 말씀에 중요한 비밀이 있다. 여기에 아무나에 해당하는 사람은 영적으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같은 바로 우리들이다.
오늘도 살아계신 하나님은 매 주일 우리를 잔칫집으로 초대하고 계신다. 예배는 천지와 만물의 주권자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초청이다. 바쁘다는 핑계와 세상적 이유로 거절하지 마라!
드디어 혼인자리에 사람들이 가득 찼고 임금은 잔치자리에 나아왔다. 그런데 예복입지 않는 자를 보게 되어 물었지만 유구무언이었다. 그는 초청받은 자가 해야 할 의무를 하지 않았다. 임금은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고 그가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원래 중동지방에서는 잔지 집에 초대한다는 증거로 오늘날 초대장과 같이 예복을 먼저 준다. 그 옷을 입고 오지 않으면 잔치 집을 모독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 복음의 초청을 받고 교회에 나오기는 하지만,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더러 있다. 그 예복을 입지 않고 온 이유가 무엇인가? 자기의 옷을 벗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옷이 더 좋고 더 깨끗한 옷이라 여기는 교만 때문이다. 우리의 옷은 아무리 깨끗한 옷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눈에 볼 때에 넝마와 같다. 많은 사람이 성인군자가 되고 깨끗하게 살고 인격적으로 성숙하고 완벽하다 자부할지 모르나 하나님의 눈에는 절대로 깨끗하지 않다.
천국 잔치에 참여할 때 입어야 하는 예복은 무엇인가?
(1)깨끗한 옷은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씻음 받은 옷 밖에 없다.
(2)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절대적인 신앙고백이다.
(3)새 사람의 옷이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4)행위의 옷이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맺는말>
말씀의 결론이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혼인 잔치에 앉아서 잔치에 참여하는 자는 많지 않다. 초청받은 사람이라고 해서 누구나 다 택함을 받은 자는 아니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초청을 거잘하지 말아야한다.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예복을 입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