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생각 에는 어떠 하냐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마21:27-31)
예루살렘에 입성 후 셋째날인 ‘대 토론의 날’에 예수님은 유대 교권자들과 충돌한다. 유대 교권자들은 예수님의 권위에 공격했고, 예수님은 두 아들포도원의 비유, 혼인잔치의 비유로 그들의 그릇된 종교성을 책망했다. 그리고 성전을 정화하시고 가르치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와서 예수님의 권세 유대 교권자들의 그릇된 종교성을 신랄하게 책망하셨다. 그때 교권자들은 무슨 권세로 누가 준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질문을 한 것이다. 이런 무리를 향해 예수님은 두 아들 비유를 한다. 너희들이 택함 받은 백성이라고 자랑은 하지만 불순종하는 맏아들과 같고, 비록 불순종한 세리와 창기들이지만 그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고 한다. 유대 교권자들의 허세와 위선을 간접적으로 비판하시고, 세리들과 창기들, 즉 버림받은 이방인들의 믿음을 인정하신 것이다.
1. 큰 아들과 작은 아들
본문의 의도는 맏아들이냐 둘째 아들이냐에 있지 않고, 아버지의 말에 누가 순종하느냐의 문제이다. 왜 맏아들은 책망을 받고, 둘째 아들은 칭찬을 받았는가?
(1) 큰 아들
두 아들 모두 포도원에 가서 일하기 싫은 것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맏아들의 문제는 ‘예’라고 대답한 순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아말렉을 쳐서 모든 것을 진멸하라고 했다. 이들은 출애굽 때에 이스라엘을 악질적으로 괴롭혔기에 그들을 원수로 여기며 천하에 이름을 도말해 버릴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사울은 아각 왕을 살렸고 좋은 수와 양과 전리품을 가져왔다. 그는 입으로는 예라고 했지만 삶으로는 아니요라고 했다. 하나님은 이런 사울을 왕 삼은 것을 후회했고 그를 버렸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을 말씀하실 때가 있다. 그럴 때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맏아들은 말만하고 그 말에 대해 실천적인 삶이 없었다. 우리가 말씀을 받을 때 가슴이 뜨겁고 예라고 대답하지만 세상에 나가서 아니오하고 살 때가 없었는가?
(2) 둘째 아들
둘째 아들은 무엇 때문에 칭찬을 받고 구원을 얻게 되었는가? 비록 죄를 짓고 아버지의 품을 떠났지만 뉘우치고 돌아와서 순종하였다는 것이다. 천국의 삶에 중요한 것은 회개다. 그렇다면 회개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에 두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말씀에 싫다고 했지만 곧 진지하게 생각했고 포도원으로 돌아갔다. 처음에는 자기 생각 고집이 앞섰지만 뉘우치고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나를 복종시킨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에 두고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회개의 출발이다. 죄 때문에 지옥 가는 것이 아니라 죄를 회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말씀하신 후에 사람들에게 물으셨다. 그 둘 중에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뇨?
두 부류의 사람들은 모두 다 부족하고 허물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느니라(31절)고 선포하신다. H W. Beecher는 사람의 타락을 ‘구제 가능성의 타락과 구제 불능성의 타락’으로 구분했다. 율법주의자들은 구제 불능의 타락자이고 세리와 창기와 같은 타락자들은 구제 가능한 타락자들인 것이다.
맺는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어떻게 응답하고 반응하느냐에 습관이 형성되고, 그것이 가치관이 되고 성품이 된다. \"아니오\"라고 말하고는 \"예\"의 삶을 살아가는 것도 좋겠지만, \"예\"라고 말하고, 가서도 \"예\"의 삶을 살아가야겠다. 나는 “예, 가겠습니다.” 대답은 하고 결국은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큰 아들인가? “아니요.”했는데 나중에 아버지의 마음이 생각나서 가서 일하는 작은 아들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