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로 들어가라

- 워치만 니의 <영적 전쟁> - 

    

 우리는 은혜 시대의 끝 무렵에 있다.

시계 바늘은 이미 열 두 시를 가리키고 있다. 지금은 바로 깊은 밤이며 어둠의 시간이다.

이 극한 어려움이 지나면 날은 곧 밝아진다.

교회는 점점 더 배도의 상태로 떨어져 가고 있고 갈수록 하나님과 멀어지고 있다.

전쟁은 세상을 분란하게 했고 교회를 마비시켰다.

흑암의 권세가 이미 만연해져서 교회가 세상과 다를 바 없이 그 악영향을 받고 있다.

유럽의 전쟁은 교회가 해결해야 할 많은 과제들을 남겨 주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현재 흑암 가운데 큰 빛을 발하고 있다.

죄는 우리로 길을 잃게 하기 때문에 우리는 죄에 대한 새로운 계시를 가져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구속되고 하나님께 드려졌다.

 

베드로전서 3장 18절을 보자.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속죄와 대신 죽으심의 참된 진리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죄에 대한 풍부한 지각을 상실했다.

오직 십자가로 가는 사람만이 죄악의 깊음과 고통을 깨닫는다.

골고다는 사람이 하나님의 권위에 싫증이 났음을 말해 준다.

이 싫증은 아주 어두운 죄악에 물든 행실 가운데 나타나 있다.

사람들은 십자가를 ‘믿음의 표준’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참으로 복된 사실이다!

그러나 또한 이것은 사람의 참된 본성을 드러내므로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는 표준이기도 하다. 교회가 죄의 사악함을 보지 못하는 것은 십자가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이미 죄악을 볼 수 있는 하나님의 빛에서 이탈되었다.

교회는 “내가 내 주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라고 외치는 사람들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최근 사람들을 가장 놀라게 한 것은 바로 교회의 죄이다.

그리스도인이 죄를 범하고도 그것을 제하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은 정말 사악한 것이다!

비록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마음속에서 범한 죄이든, 생각 속에서 범한 죄이든,

연단에서 범한 죄이든, 예배당에 앉아서 범한 죄이든―를 범할지라도 그들에게는 골고다가 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여, 골고다로 돌아가 죄인의 위치에 서라.

십자가 앞에서 죄를 회개하며 애통의 눈물을 흘리고 당신의 강퍅한 마음을 녹여라!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장소 

 

 죄의 결과는 분리이다.

이것은 우리가 마땅히 알아야 하는 하나님의 법칙이다.

이것을 진리적으로 알아야 할 뿐 아니라 체험적으로 알아야 한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이 공과를 온전히 배우게 하는 유일한 장소이다.

그리스도께서 골고다의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말씀을 들어보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막 15:34).

이것은 그분께서 당한 육신의 고통에 대한 표현이 아니라 그분의 영성이 하나님과 분리될 때 나온 부르짖음이다.

죄 없으신 그리스도는 그분의 아버지와 분리된 적이 없으셨다.

셀 수 없는 영원의 시대를 거치고도 그들은 하나이셨다.

이 복된 하나는 이 세상에 계실 때 그분의 생명에서 볼 수 있었다.

이것은 그분에게 그분에 대한 죄인들의 대항을 넉넉히 견디시게 하였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그리스도는 우리와 하나님의 화목을 위해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분리 곧 사악한 흑암에 들어가셨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영의 분리를 견디시고 화목의 참 의의를 이루셨으며 그분의 죽음을 놀라운 것으로 만드셨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흑암에 버려지셨다.

하나님의 백성들이여! 이것을 잊어버린다면 당신은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 십자가의 영을 상실하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영이 우리를 적시고 바로 그 골고다의 법칙이 우리 생명 안에 세워지기까지, 주 예수님의 죽음의 이 방면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죄 가운데 있을 때 화목을 위해 십자가로 나가야 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도 하나님과 분리되지 않기 위해 주 예수님의 속죄하는 죽음이 필요하다.

우리는 자주 신학적 용어로 냉담하게 ‘은혜’를 논하지만,

주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개인적인 교통에 들어갈 때 비로소 은혜는 우리에게 사랑스러운 것으로 변하여 우리가 그리스도를 뜨겁게 사랑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