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유일한 방법

 

 워치만 니의 <영적 전쟁>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우리가 부활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위해 계속 전진해 나가려 할 때, 이제 십자가를 떠나도 되는가? ”라고 물어왔다.

우리가 그들에게 우리 생명에 그리스도의 죽음이 더해져야 한다고 할 때 그들은,

“그러나 우리는 부활한 그리스도 안에 거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살아 계신 그리스도이지 죽은 그리스도가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잘못된 이해는

주로 이 복된 진리를 영적 의미보다는 문자적 의미로 이해하는 데서 비롯된다.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고후 3:6).

그리스도의 영은 골고다의 영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은 그리스도의 생명의 최고의 표시이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그분의 생명에 참여할 때,

그리스도의 못 박힌 영은 우리 생명의 근본으로 변한다.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과 더 깊이 하나가 되기를 추구할 때 십자가를 떠나지 않았다.

또한 그는 부활하신 주님과 더 깊이 하나가 되고자 할수록 주님의 죽음에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보았다(빌 3:10).

주님과 함께 부활하는 것과 그분 안에 산다는 것은 모두 당신이 주님과 함께 죽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이 승리하는 조건은 바로 주님과 하나 되는 것이다.

죄를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주 예수님과 하나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우리 주님은 요한복음 15장에서 아주 분명하게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믿는 이들이 제일 먼저 배워야 할 공과 중의 하나가 바로 범사에 온전히 주님을 의지하는 것이다.

그들은 주님이 없으면 그들에게 어떤 도움도 없는 것같이 느낀다.

주님께서 죄인에게 주신 메시지는 “내게로 오라”이고, 믿는 이들에게 주신 메시지는 “내 안에 거하라”이다.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전 6:17).

그러나 이 연합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곧 그리스도 안으로 믿는다는 뜻이다.

이 믿음은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것이며 주님 안에 닻을 내리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 믿는 이는 주님과 완전한 접촉을 갖게 된다.

주님께서 요한복음 3장에서 하신 말씀에서 우리는 거듭남 혹은 새 생명에 관한 가르침을 깨닫는다.

첫째는 거듭남의 필요성(요 3:3)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그다음은 거듭남의 본질―영적인 본질 혹은 영적인 출생(요 3:5, 6)―을 보여 준다.

마지막으로 거듭나는 길은 곧 주님을 믿는 것(요 3:16)임을 보여 준다.

사실 ‘믿는’이라는 단어 앞에는 ‘안으로’가 있어서 주님 ‘안으로 믿는’ 것이 되어야 한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요 3:14).

 

 죄인에게는 아직 구주가 없기 때문에 그에게 골고다는 필수이다.

못 박힌 이 구주는 모든 사람을 그분 자신에게로 이끄신다.

요한복음 12장 32절과 33절을 보자.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사탄의 갈망은 믿는 이가 십자가를 멀리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탄이 믿는 이들에게 십자가를 떠나 부활하신 주님과 하나 된 생명을 추구하지 못하게 했다면 그는 성공한 것이다.

사탄은 십자가를 떠나서는 결코 참된 하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믿는 이들에게 거짓된 체험을 갖게 한다.

로마서 6장에서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과 연합하고 살아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님 안에 거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마땅히 그분과 함께 죽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분명히 말해 주고 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롬 6:3).


 바울은 또한

주님과 더 깊이 하나 되기 위해서는 먼저 십자가의 더 깊은 연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빌립보서 3장 10절을 보자.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우리는 이것이 어떤 이론이나 사상이 아닌 실제적인 체험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 실제적인 체험의 결과는

능력 있는 생명 곧, 죄와 사탄과 질병과 사망과 세상을 이기는 생명이다.

그러나 이것은 반드시 십자가로 돌아가야만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주님의 피를 우리 생명에 적용할 수 없다면 이것은 그분의 죽음의 의미를 깊이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

주님께서 이미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셨으므로 우리가 언제든지 온전한 속죄를 위해 그 피를 적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주님의 죽음의 일의 전부가 아니다. 거기에 지속적인 죄의 씻음이 필요하다.


 한번은 한 성도가 다음과 같은 난처한 질문을 해왔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죄를 자백한 때가 언제입니까?”

그때 나는 그 질문에 어떻게 답변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 앞에 나가 그것에 대해 물었고,

나는 보혈이 자동적으로 내 죄를 씻는다고 잘못 믿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역시 나는 내가 범한 죄의 진상을 볼 기회를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나 또한 오늘 여러분에게 동일한 질문을 던지겠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죄를 자백한 때가 언제입니까?”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것을 저지하는 것은 바로 죄악과 혈기의 생명의 활동이다.

이것들은 끊임없이 우리가 성령을 떠나게 하고, 성령 안에서 행하지 못하게 한다.

우리의 영은 항상 이 악한 능력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비록 우리가 힘을 다해 대적한다 해도 우리는 우리의 영을 다스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고요함 속에서 행하지 못한다.

못 박히지 않은 이 악한 본성은 또한 사탄과 그의 악한 영이 일하는 데 사용되는 재료로서 불쏘시개가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흑암의 권세와 자주 싸우는 원인이다.

또한 그들은 계속하여 우리의 ‘거점’을 공격할 것이다.

비록 우리가 보혈을 적용하여 그들을 이길 수 있다고 배웠을지라도 그들에게 ‘여지’를 남겨 둔다면 그들은 언젠가 기회를 잡아 우리를 공격할 것이다.

 

십자가가 바로 구원의 치료제이다.

주님께 속한 사람은 누구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갈 5:24).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마땅히 죄와 육체의 생명을 온전히 주님의 죽음에 복종시켜야 하고,

항상 주 안에 거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럴 때 그분의 죽음의 유익을 함께 누리게 되고 그 결과로 말미암아 죄와 악한 본성의 권세에서 해방되고 새 생명의 탁월함 안에서 행하게 된다.

로마서 8장 초반부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 …”(롬 8:2)이라는 말씀이 있다.

주님과 온전히 연합하는 것 외에는 영적 생명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없다.

이 연합은 죽음과 삶의 연합이다. 영적 생명을 얻고자 하는 사람이 십자가를 멀리한다면 결과는 언제나 실패나 거짓된 것뿐이다.
성령은 바로 십자가의 영이다. 십자가는 성령의 최고의 표시이다.

‘영원한 영’으로 말미암아 주님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셨다(히 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