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심장병

-E. A. 존슨 -

  

누구든지 처음 사랑을 버린 자에게 화가 있의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있고 잃어버린 양떼들을 위하여 애타던 왕년의 불 같은 열성이

지금은 한낱 잿더미로 화하고,

시간 가는줄 모르고 침식까지 잊던 그 옛날의 뜨거움의 기도는 간곳 없고

지금은 얼마가지 못하여 가깝증부터 나지 않는가?

달고 오묘하던 어제의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은 내 마음 속에  모래와 같이 무감각하지 않은가?

누구든지 \"처음 사랑\"을 버린 자는 화가 있으리라.

  

 

사람의 표준과 척도로 생각할 때,

아직 그래도 그리스도인이라 자처하고 주님을 사랑하노라고 자부할 수 있다.

교회 직분을 맡아 이것 저것에 분주할 수 있다.

그러나 원래 배교라는 것은 급작스레 오는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과거에 말할 수 없는 축복과 기름 부음을 받은 이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사단은 교활한 자이다.

그는 결코 시초부터 중죄로써 그리스도인을 시험하지 않는다.

그는 드러나지 않게, 은밀하게, 조급하지 않게, 신령한 그리스도인을 속이기 시작하여

그 마음속에 차지도 덥지도 않는 미지근함과 나태함을 넣어줌으로써 그제부터 본격적인 파괴 사업을 감행하는 것이다.

점진적으로 속도에 박차를 가하여 피해자로써는 전연 의식치 못하는 사이에,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는 무서운 \"숨은 죄\"를 조성하는 것이다.

  

내가 아직도 성경을 계속해 잃고 있으나,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인이라는 구속에서 의무적일 뿐이요,

그 속에 참 생명과 희열과 약동이 없으며,

내가 아직도 기도한다 하지만 엄밀히 따져 형식에 그칠 뿐이요,

결국 하루 세끼 \"밥상 기도\"로써 요약되어 이 모양으로 날과 달을 보낸다.

진정한 감사와 감격에 젖어 내 최중심부에서 터져 나오던 찬미는 지금은 다만 입언저리에서 서성거릴 뿐이다.

나는 과거 얼마나 주 안에서 기뻐했으며,

세속적인 일보다 주님의 일을 더 사랑하고 말하기를 좋아했던가!

오직 주님을 내 생활에 첫째로 삼아 아무리 귀한 것이라도 내 마음을 주님의 사랑에서 빼앗지 못했다.

세상의 모든것, 자연스러운 모든 쾌락도 결코 내 마음을 범할 수 없었다.

마치 하나님과 동행하듯 하였고 영원히 변치 않을 것 같던 주님과의 복된 사귐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지금은 분명히 그렇지 않다.

주 안에서의 희열이란 지금은 한낱 강 건너 불과 같이 생소할 따름이다.

자연히 하나님과 대면하기를 무의식간에 꺼려하고,

그 면전에서 될수록 멀리 피하려고 드는 불가사의한 현재의 심정이다.

깨끗한 샘물같이 솟아 오르던 티 없는 희열은 이미 마음에서 사라져 버리고,

하나님 전에 이글이글 타오르던 내 영혼의 제단의 언저리에는 이미 냉기가 감돈다.

정녕코 무슨 일이 일어났음이 분명하다.

  

사단이 빛의 처사로 가장하여 하나님의 택한 자라도 미혹한다 함이 과연 옳은 말이다.

또는 우리의 감시의 경계가 소홀한 때를 틈타서 불의의 시각을 이용하여 몰래 도적과 같이 스며들어 오기도 한다.

원수가 와서 밭에 가라지를 뿌리고 갔을 때는 정히 한밤 중이었다.

그 시간은 모두 잠이 들어 아무도 원수의 이 같은 무서운 일을 깨닫지 못하던 때였다.<마 13:25>

 

 우리가 이렇듯 자주 패배를 맛보게 되는 이유는

가끔 우리의 마음에 파동을 일으키는 생각,

암시들이 곧장 우리의 원수 사단으로부터 오는 것인 줄 깨닫지 못하는데서 기인 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 성경을 편의에 따라 좀 적게 보자는 등,

기도 시간을 간략히 하면 좋겠다는 따위의 일견,

아무렇지도 않지만 간교하기 짝이 없는 충동에 우리가 이끌리어 그대로 따라 행하게 될 때,

사단은 이미 우리를 쓰려뜨리고 우리의 목덜미 위에 그 발을 올려 놓는 단계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개인 개인 특수한 사정과 약점에 따라 적합한 요리로 사단이 우리를 유혹함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 <약 1:12>

유혹에 끌리는 대신 마귀를 이기신 주의 십자가의 피로 유혹에 대항하여 이기는 자에게 진실로 복이 있도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 생활에 기갈을 느끼지 못하는 마음은 한마디로 말해서 영혼의 기아 상태다.

이 세상에서 우리의 육신이 부단히 식물을 섭취해야 되는 원리대로 우리의 영혼은 오히려 그에

못지 않게 영적 식물인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섭취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영혼이 강성해지고 육성되는 오직 한 길은 기도와 하나님을 기다림을 통해서이다.

\"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마 4:4>고

하나님은 이미 선언하신 것이다.

영원성을 지닌 인간의 생명은 오직 그 생명을 영원하신 아버지로부터 취해야 되는 것이다.

우리가 얼마만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배불리느냐에 따라 우리의 영혼의 강약이 정해지는 것이다.

말씀과 기도로 배불릴 그 때에 비로소 우리의 영혼은 우는 사자가 두루 삼킬 자를 찾으며 돌아다니는 이 세상에서 헤어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영적 기갈을 잃어버릴 때 그에 반비례하여

세상의 잡것이 떼거리로 마음속으로 몰려와 웅거하게 되는 것은 너무나도 명백한 이치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 안에서의 희열에 충만하던 생활의 공백기를 채우기 위함인 것이다.

육신의 안목의 정욕으로, 추파를 던지는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고

한 사도의 요한의 경고의 의미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요일 2:15>

17절에 보면 \"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고 하였다.

그런고로 우리는 실제 말씀을 행하는 자들이 될 것이니 이것은 곧 행위로 난 믿음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를 사랑하면 그 말씀을 지킬 것이다.<요 14: 21~23>

 

말씀에 맛을 잃고 마음이 없으면,

우리의 구원을 점점 등한히 여기는 무서운 결과에 이르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구원 문제를 등한히 하고서 어떻게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겠는가? <히 2: 1~3>

\"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찌니 혹 흘려 떠내려 갈까 염려하노라 \"고

성경은 우리에게 경고하였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기를 소홀히 할 때에 필시 우리 앞에는 큰 위험이 있다.

하나님과의 사이가 어느 정도 멀리 있어도 나중에는 결국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은 실로 망상이다.

오직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아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될 때 \"에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말씀에 대한 기갈을 잃어버림으로써 \"이기는 자\"가 되지 못할 때에,

사단은 그 마음 속에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는 여러가지의 \"숨은 죄악\"들을 불가항력의 힘으로 쓸어 넣는 것이다.

예컨대 적의, 이기심, 증오, 원망, 시기, 부정한 생각, 교만, 불친절, 기타 등등이다.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는 요인이 된다고 주님은 분명히 말씀 하셨다. <마 15:18>

이것은 사람의 심령 상태를 나타낸 것이어서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다.

대개 육신의 심장병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병자의 고통은 타인의 눈으로써는 볼 수 없다. 오히려 표면으로는 건강하게 보인다.

그러나 당사자는 자기 가슴에 이미 병들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병환이 심각해져 위험한 단계에 이르게 되면,

그때에야 비로소 타인의 눈에도 환자의 병색이 완연히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식어지고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그리스도인이 꼭 그와 같다.

자신은 분명히 자기의 생활에 말씀과 기도의 제단이 허물어진 줄을 아는 것이다.

사단은 바로 이 기회를 이용하여 부지불식간에 시기, 질투, 교만, 악감정 등을 부채질하여 뿌려 놓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사람의 영적 심장병이다.

이들 숨은 죄는 비록 타인에게 드러나지 않으나 차츰차츰 뿌리를 박고 열매를 맺는 가운데

종내에는 걷잡을 수 없는 세력으로 변모하여 거치른 말, 빗나간 행동으로 나타나

이웃의 눈에까지도 드러나리만큼 슬픈 결과를 가져 오는 것이다.

 

 \"처음 사랑\"을 버린 자들의 발 앞은 심히 위태롭다.

그들은 대개 선량하고 유망한 사람들이며 방대한 선한 사업을 경영할지 모르되

주님의 축복은 이미 그들을 떠나 버린 때문이다.

\"처음 사랑\"을 버리고 어느 정도 만족한 심령 생활을 누릴 수 있고,

여전히 적극적인 교회 활동에 몸을 던질 수 있을지 모르되 실은 이 모든 것이 부평초와 같을 뿐이다.

과거의 은혜를 회상하며, 간증하고 설교할지 모르나 결코 청취자의 심금을 울릴 수 없음은

이미 그 심령에 하나님의 기름 부음이 떠났기 때문이다.

하난미은 우리의 전부를 요구를 하시지, 결코 쓰다 남은 나머지나 반분을 원하시지는 않는다.

우리의 죽음을 대신해 죽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중심ㅂ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되돌아 가 잃어버린 \"처음 사랑\" 을 다시 찾는 것만이,

이즈러진 영혼의 심장병을 고치는 유일한 길이다.

천사라도 범죄하였을 때는 가차 없이 끊어버리시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

  

-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

 

 

\"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

 

 < 행 1 : 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