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설교-스트레스를 해결 할수 있는 믿음-(17)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믿음 .17

시편 130:1-8

 

우리들은 스트레스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스트레스라는 말은 원래 긴장이라는 말이지만 이 말이 단순한 긴장을 말하는 말이 아니라, 현대를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격고 있는 어려운 고통과 괴로움을 말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스트레스는 우리들의 정신과 생활과 건강에도 막대한 영향을 주는 큰 위협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스트레스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들을 쓰고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술을 마신다든지, 아니면 어떤 스포츠를 한다든지, 또는 오락이나, 음악 감상 그리고 전쟁 놀이까지 하는 모양입니다. 휴일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시외로 나가는데, 그 이유 중에 하나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심한 경쟁의 틈 바구니에서 넘어지느냐, 일어서느냐, 살아 남느냐, 죽느냐, 이기느냐, 지느냐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부부간에, 자식들의 문제로 우리는 많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어른 뿐 아니라 아이들도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각종 직업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물른 나도 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이 스트레스로 인한 충격은 우리들에게 많은 질병을 줍니다. 의학적인 통계에 의하면 60세 이전에 심방마비로 사망하는 사람의 90%는 이 스트레스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고합니다. 고형압, 당뇨, 불면증, 위장병, 암 같은 질병도 이 스트레스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뉴욕의 리차드 호프만이라는 사람은 \"현대인을 죽이는 병은 심방마비나 암이나 사고가 아니라, 세가지 다른 요인이 있다. 그 첫째는 카렌다고, 둘째는 전화,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시계 소리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두가지는 시간이라는 스트레스요, 한가지는 인간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말합니다.

 

우리는 끝임없이 이 스트레스의 억압 속에 살고 있습니다. 본문 시 130:1에 보면“내가 깊은 곳에서 부르짓나이다. 내 간구하는 소리에 귀를 귀우리소서”라고 합니다. 이 말씀이 요셋 말로 하면 다윗이 비 정상적이고 감정적인 큰 스트레스 즉, 억압을 받고 있을 때 하나님을 찾아 기도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이 스트레스를 안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당하는 이 스트레스를 경험하면서 어떻게 이것을 해결하여 스트레스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은혜를 받을 수 있는가를 배워야 합니다.

 

①. 일시적인 스트레스를 영구적인 것으로 받아 들이지 마십시오.

스트레스는 일시적인 것이지 영구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때때로 닥치는 스트레스를 일시적인 것으로 소화해야 합니다.

 

프렉드릭 레스코라는 사람이 쓴 \'그림자 넘어\'라는 작품에 어떤 사람이 어린 시절 어머니 옆에서 놀고 있는데 부모님이 지나는 말로 \"저 아이는 딸로 태여 나기를 바랐는데\"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이후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교수가 되었는데도 그 자신이 세상에 잘못 태여 났다는 억압된 잠재 의식을 늘 가지고 있어서,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인생 동안 받았다는 것입니다. 지나가는 한마디의 말이 일생 동안 그 사람의 머리를 떠나지 않고 괴롭힌 것입니다.

 

사람의 감정은 기후와 같아서 비가 올 때가 있는가 하면 맑고 밝은 날도 있는 것입니다. 인생살이도 즐거운 날이 있는가 하면 슬픈 날도 있는 것입니다. 늘 슬픔 날만 있는 것이 아니고, 괴로운 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듯 변화가 많은 우리들의 인생살이와 감정을 한가지 나쁜 일만 생각하여 그것에 매여 몰두해 산다면 그것은 지혜롭지 못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인생은 계절과 같아서 신념이 탄생하는 봄도 있고, 신념이 성숙하는 여름도 있고, 추수하고 열매 맞는 가을도 있으며,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겨울도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사계절이 있습니다. 겨울에 잎이 다 떨어져 죽은 것 같은 나무지만, 그 나무를 죽었다고 찍어 버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새 봄에 싹이 나고 잎이 무성해져 가을에는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영구한 스트레스는 없습니다. 스럼프에 빠져 낙심된 자기를 포기하는 것은 겨울 나무를 죽었다고 찍어 버리는 어리석은 사람과 같습니다.

 

더욱이 우리 신자들은 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 잘 믿어야 합니다.

벧전 1:24에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위 말씀은 세세토록 있더다”라고 하셨습니다.

 

②. 스트레스를 받을 때 다른 사람에게 문제를 다 털어 놓기 바랍니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그 문제를 차곡 차곡 쌓아 놓고 고민하는 사람이 있고, 그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 해서 폭팔시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는 그것이 심하면 심령이 상해 병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으나, 후자의 경우는 내적인 상처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처럼 스트레스를 받을 때 다른 사람에게 모든 일을 다 털어 놓고 문제를 해결하시고 스트레스를 푸시기 바랍니다.

재일 좋은 것은 부부간에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스트레스에 쌓여 있으면 부인이 말을 걸어서 스트레스를 풀도록 도와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진지한 자세로 말을 들어 주어야 합니다. 아내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방법은 정서적으로 성숙한 사람, 존경 받을 만한 상담자를 찾아 자기 속 사정을 다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야기 하는 것으로만도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 해결될 것입니다. 이런 감정을 심리학적으로 카타르시스라고 합니다. 서로 대화라는 산파를 통해서 마음 속에 쌓여 있는 것을 해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대화의 혈액 순환으로 우리 정신에 신성한 산소를 공급하여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그리고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과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에게 우리들의 억울한 일들을 다 털어 놓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이야기 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 또 다른 스트레스를 가져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것은 전혀 부담이 없는 대화입니다.

 

혼자서 고민하지 마십시오. 새벽에 나와 기도를 하십시오. 나와서 털어 놓으십시오. 낮에도 산에 가서 기도를 하십시오.“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가 너희 안에 있으면 무엇이던지 원하는데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모든 문제를 놓고 기도할 때 우리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풀어질 것입니다.

 

③. 스트레스를 줄이도록 노력하십시오.

스트레스가 쌓인다고 해서 자기 학대를 한다던지 억압된 감정을 가지고 침통해 있으면 더 많은 스트레스가 쌓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일, 저런 일이 있어도 우리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은혜를 주셔서 모든 일이 다 합력하여 선이 된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억지로라도 찬송을 부르십시오. 죽음이 앞에 있어도 용기를 얻을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것도 낫설은 이국 땅 빌립보에서 전도를 하다 감옥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그런 그들은 기도하고 찬송을 했습니다. 그랫더니 감옥 문이 열리고 옥사장이 이 일로 회개하여 예수님을 믿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릴렉스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들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우리 마음에 들어 온 스트레스를 밖으로 몰아 내는 것을 말합니다. 명상을 통해 모든 것을 풀고, 기분 전환을 하는 것입니다.

 

잠언에 말씀하시기를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것보다 낳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내 마음을 우리들의 생각 속에서 다스리고 지배하라는 말씀입니다.

 

④. 적극적인 신앙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극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스트레스나 받아 인생을 망치자고 하신 것은 아닙니다. 우리도 신앙과 의지를 가지고 이 감정을 얻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이렇 때 우리는 모든 억압된 감정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진리를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 우리가 참 자유를 얻게 될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심리학자 월리엄 제임슨는 젊었을 때 건강을 잃고 패인이 되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28세 때 완전히 건강을 잃고 인생을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적극적으로 믿고 다시 건강을 되찾아 나중에 \'다양한 종교 체험\'이라는 유명한 책을 내기도했습니다.

우리도 적국적인 신앙으로 감정을 극복하여 믿음으로 스트레스를 이기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바람이 불어 싫은 사람이 있지만 연은 바람이 불어야만 더 높이 나를 수 있습니다. 우리도 스트레스를 받을 때 서로 힘을 합하여 적극적인 말씀과 높은 신앙으로, 더 높은 신앙의 길로 인도되시기 바랍니다.

⑤. 합리적이고 창조적인 일을 계획하십시오.

대게 스트레스가 찾아 올 때는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할 때도 있습니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이 나의 좋은 믿음과 사랑을 억누르고 있을 때 스트레스의 제물이 됩니다. 이 부정적인 생각의 껍질을 과감히 깨뜨려 버려야 합니다.

 

미국 켈리포니아 앞 바다에 멕시코로 가는 한 때의 거대한 고래 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고래들은 큰 바위에 스스로 부딛쳐 몸에 상처가 나고 피를 흘리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 근처를 지나던 목사님이 이 광경을 보고 이상히 여겨 자세히 살펴 보니 그 고래들은 자기 몸에 붙어 있는 소라 껍질 같은 조갑지 껍질이 잔듯 붙어 있어서 이것을 떼어 내기 위해 자신의 몸을 바위에 부딛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자기를 극복하는 자기 노력과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을 억압하는 부정적인 껍질을 버릴 때 우리들에게 있는 무한한 잠제력이 힘있게 폭팔할 것입니다.

 

⑥.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도와 주십시오.

사람의 상처 입은 마음을 치료하는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을 자기가 받을 만큼 받지 못했을 때 사람은 외롭고 고독하고 불행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요일 1:4에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 낸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현대 의학에서도 모든 명을 의학적으로만 고친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질병이 스트레스라든가 디프레스 때문에 온다고 할 때, 그 병을 의학적인 것으로만 고친다고 말하기를 어렵습니다.

 

유명한 내과 의사인 폴 토니오는 한가지 예를 들었습니다.

남편의 방탕과 무질서한 생활로 위장병, 위궤양에 걸린 부인이 아무리 좋은 약을 써도 병이 낳지 않는 것입니다. 언제나 남편에게서 오는 강한 스트레스 때문에 병이 낳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부인은 이제까지 미워만 했던 남편을 사랑하기로 결심를 하고 그런 변화를 알게 된 남편도 아내를 사랑하게 되자 위장병과 위퀘양이 씻은듯 낳았다는 것입니다.

 

위장병에 투입하는 약은 의학적인 치료 약이지만, 그 병의 원인 남편과의 불화를 치료하는 것은 “원수를 사랑하라 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결단이었습니다.

 

우리가 나의 사랑을 남에게 줄 때 우리의 상처도 치료가 되고 다른 사람의 상처도 치료할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는 일종의 사단이 우리에게 주는 시험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 따지고 보면 의에 사물이 아니라, 죄악의 산물일 경우가 많습니다. 물른 내가 죄를 지었다는 말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죄를 지어도 그런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운동이나, 오락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우리들의 인격과 정신과 영혼을 좀 먹은 이 스트레스 문제를 하나님의 은혜로 잘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약함과 강함 .18

고후 12:10

 

사도 바울은 사도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신약 성경 27권중 24권을 기록할 정도로 하나님의 계시를 많이 받은 사도였으며 지혜와 학문이 뛰어난 분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의 본문의 말씀은 바울이 받은 하나님의 계시와 환상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가를 잘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만큼 바울은 다른 사도 보다 신령한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이고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내적으로 하나의 큰 고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울은 육체의 가시, 사단의 가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쓴 성경의 문맥으로 볼 때 고칠 수 없는 질병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 병은 당시에 고칠 수 없는 병이었던 것으로 봅니다. 지금 같으면 암이나 고질성 성인병인 것같습니다. 하나님의 계시와 엄청난 은혜를 받은 그가 어떻게 그런 못쓸 병에 시달림을 당하고, 다른 사람을 고치는 그가 어떻게 자신의 병을 고칠 수 없었을까 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 분이 그 병으로 말미암아 병에게 지배를 받고 있었다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병을 고치지 못한 것과 병에게 눌려 사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본문에서 병을 고치지 못했어도 병 때문에 더욱 위대한 삶을 산 바울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수 없이 많은 문제와 괴로움을 격고 삽니다. 병, 사업상의 난관, 직장 문제, 가정 문제, 자녀들의 문제, 여하튼 조금씩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겠으나 각기 육체의 짐을 지고 힘겹게 세상을 살아 갑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말할 수 없는 고민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문제만 해결되면 날아 갈 것 같은 무겁고 수고로운 짐들이 많습니다. 다른 것은 다 좋은데 그 문제 때문에 모든 것을 다 포기해 버리고 싶은 고민거리가 있습니다. 문제를 안고 문제 해결이 안되면 인생살이가 고달퍼져서 살고 싶은 생각이 없어져 버릴 때도 있습니다.

 

바울은 자기의 문제를 해결함 받기 위해 세번이나 하나님에게 간절히 기도를 했다고 말했습다. 유대인들이 간절히 기도를 했다는 것은 한 번 정도의 기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가지 문제를 가지고 적어도 40일 이상을 열심히 기도한 것을 말합니다. 바울이 광야에서 40일을 간절히 기도했다면 아마 예수님처럼 40일 금식 기도를 했을 것으로 봅니다. 바울은 자기의 문제를 위해 연속으로 40일씩 세번이나 기도를 했습니다.

병이 있는 것보다 건강해야 하나님의 일도 잘 할 수 있고, 전도자의 고민과 괴로움도 없어질 수 있습니다. 그것도 그렇지만 괴로워 견딜 수 없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자기에게 붙은 사단의 가시를 빼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기도 했습니다. 바울이 기도한 내용을 생각해 보십시오. 몸이 건강하면 하나님의 일을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우선 아파서, 고통스러워서 견딜 수 없습니다. 다른 성도들에게 덕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내 병을 고처 주시옵소서. 아마 어떤 환자도 바울처럼 간절히 40일씩 금식을 하면서 세번 기도를 한다면 병을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그렇게 간절히 기도를 했습니다.

 

그렇게 몸부림치면서 울면서 간절히 기도를 했는데 마지막 하나님의 응답은 9절 말씀에 네가 나에게 그톡록 간절히 기도하고 간구했으니 내가 너를 고처 주겠노라 하시지 않고 “너는 육체의 가시를 안고 살아 가지만, 그것은 내가 너에게 준 최고의 은혜다. 내가 줄 은혜가 너에게 충분히 임했다”라고 하셨습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잘 안되는 응답입니다. 병을 고쳐 주시는 것이 은혜지 어떻게 병을 지고 사는 것이 은혜일 수 있습니까?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이 은혜지 어떻게 문제를 안고 사는 것이 은혜가 될 수 있습니까?

그러나 바울에게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는 상식적인 응답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상식을 초월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깨닭음도 주시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응답을 받았을 때 조금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실망을 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이 하나님의 응답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괴 핍박과 고난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때 곧 강함이라”(10절). 이 말씀 ‘하나님! 저는 이렇게 고통스러운 병을 가지고 연약한 육체 속에 살아 가지만 감사를 드립니다. 그것은 내가 약할 때 오히려 더 강해지기 때문입니다.’라고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바울의 위대한 신앙이 있습니다. 특별히 내가 약할 때 강합니다. ‘내가 연약해서 쓸어지고 넘어질 때 저는 하나님의 강하심을 깨닭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위대한 신앙 고백을 통해 우리가 배울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인간은 살면서 약해지고, 또 너무 약해질 때가 종종있습니다.

어쩌면 강한 순간보다 오히려 더 약한 순간이 많습니다. 건강한 사람도 하루 아침에 병으로 쓸어져 버리는 수가 있고, 그렇게 모든 일에 적극적이요 자신 만만했던 사람이 너무 약해져서 조그마한 일도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등생도 낙제를 할 수 있는 것이고, 앞서 나가던 사람이 넘어져 오히려 가장 뒤어처져 버리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그럴 사람이 아닌데 좌절과 실망으로 심신이 극도로 초최해져 버린 사람도 있습니다. 정신도, 육체도 모두 약해져서 불쌍하게 되여 버린 사람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약해졌을 때 그것을 어떻게 감당하느냐 하는 것이 성공과 실패의 갈림 길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형편을 바른 자세로 극복할 줄 아는 사람이 성공을 하는 것입니다. 어떤 난관에 판판히 약해져서 넘어져 버린다면 그 사람이 어떻게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 갈 수 있겟습니까?

인생을 성공한 사람은 문제가 없어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던지, 그 문제를 잘 감당하였기 때문에 성공한 사람이라는 점을 우리가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은 문제들을 제기시켜 주십니다. 이것은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시험 문제를 내주고 풀게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반드시 학생들이 풀만한 문제를 출제하고 정답을 마련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우리들을 시험하실 때 문제의 정답을 마련하시고 출제를 하십니다. 즉 반드시 문제에는 해결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시험을 하실 때는 우수한 사람을 뽑아 시상을 하시고자 하시는 목적을 가집니다.

 

사도 바울도 그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으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7절)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은혜와 은사를 체험합니다. 그리고 더 많은 일을 합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많은 지혜와 지식을 주셔서 그리스도의 신학을 정리하게 하시고 주님을 위한 위대한 전도자로 세워서 많은 교회들을 세우게 하십니다.

이런 것들이 아무리 바울이라해도 그를 교만하게 만들 수 있는 조건들이 됩니다. 그런 우려를 미연해 방지하시기 위해 바울에게 육체의 질병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일을 잘해도 교만하면 하나님이 그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지 않습니다. 일을 많이 하고 적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위해, 주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종으로서 많은 일을 하는 그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들에게 어려운 문제가 문제가 생기는 것은 우리들이 교만하므로 우리들을 나추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산상 보훈에서“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 그 사람에게 천국이 임하는 것이다”라고 말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 자기를 나출줄 아는 사람, 남을 높일 줄 아는 사람, 하나님만을 높일 줄 아는 사람에게 천국이 임합니다.

신앙이란 원래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과 나 사이에 다른 사람이나 사건을 개입시켜 자기를 높이고 자기를 자랑하려 듭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합당한 것이 아닙니다. 사단은 자기의 영광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감사하지 않고 스스로 높아져서 타락하여 사단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낮은 땅에 물이 고이듯, 스스로 자기를 높이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넘칩니다. 그런데 부패한 인생은 어떤 경우에도 스스로 낮아지지를 못합니다. 바울 사도 같은 사람도 그렇습니다. 하물며 보통 사람들이야 오직 하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에게 낮아질 수 있는 길, 즉 계속해서 하나님의 은혜 속에 일을 잘하고 축복을 유지하고, 더 받을 수 있는 방법으로 그에게 질병을 주어 교만해 지지 않도록 안전 장치를 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것을 바울을 깨닭은 것입니다.

여러분이나 나에게 있는 문제는 하나님이 우리들을 사랑하셔서 계속 은혜를 주시기 위한 안전 장치일 수 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모든 일에 겸손해야 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며 ‘모든 죄의 뿌리’요 ‘죄악의 어머니’입니다. 사람이 멸망을 받는 죄는 불신앙이요, 저주를 받는 죄는 교만입니다. 어느 누구도 이 교만에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이며. 어느 누구도 교만한 구석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특히 많은 은혜와 축복을 받은 사람에게 어려운 숙제를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를 녹일 줄 알고 자기를 연단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들에게 숱한 고난이 닥처 올 때마다 자기를 더 나추고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 57:15에서 “하나님은 겸손한 자와 함께 사시고, 겸손한 자의 영혼을 소생시키신다”고 하셨습니다.

 

둘째, 우리가 약할 때 그 때가 바로 참으로 강해질 때입니다.

이 역설적인 진리는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사는 사람에게 반드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약해 질 때 인생살이에 대한 생각이 깊어 진다는 말입니다. 이럴 때 인간이 무엇이며, 산다는 것이 무엇이며, 형제가 누구며, 이웃이 누구인가를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다윗은 숱한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인생은 그 날들의 풀과 같으며 영화는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면 없어지나니 그곳이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시 103:15-16)”이라고 합니다.

솔로몬도 인생을 살면서 온갖 것들을 다 가져 보고 격어 본 후에 “헛되고 헛된 것이 인생살이로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는 것만이 인생의 목적이다”라고 말합니다. “인생의 생명이 무엇이뇨.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하신 말씀도 인생을 달관한 사람들의 말입니다. 모든 것이 풍족하고 넉넉할 때, 형통할 때 교만하고 방자히 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당할 때 겸손히 인생을 깊이 생각하고 진리를 위해 사는 인생의 심오한 진리를 터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솝 우화에 나오는 남의 것으로 치장하여 새의 왕이 될려한 가마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선호하는 돈이나 명예, 가정의 배경, 학문등은 우리들이 가지고 잠시 사는 것일 뿐 근본적으로 우리들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런 것들을 가지고 인생을 평가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흔히 그런 것들이 인생의 무엇을 결정하는 것처럼 착각과 오류 속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 홀로 남아 있는 그 순간 아무도 나를 도울 수 없다고 경정되는 그 순간이 옵니다. 내게는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외롭고 고독할 때가 옵니다. 혼자 먼 길을 가야 할 때가 옵니다. 그 때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들의 관계가 어떻게 되여 있는가를 깊이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베토벤은 원래 천재적인 음악가 입니다. 그러나 그의 눈과 귀가 먼 다음에 더욱 위대한 음악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가장 좋아하는 베토벤의 곡들도 사실 그가 장애자가 된 후에 작곡한 작품들입니다. 시편 62:5-6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를 쫓아 나는도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라고 노래했습니다. 바울은 우리의 곁사람은 후패해져도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롭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약할 그 때 하나님을 더 잘 믿게 되고 하나님의 큰 은혜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세째, 우리가 약할 때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를 하는데 우리의 믿음의 그릇이 더 커집니다. 담대해 집니다.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 질 수 있습니다. 모든 하나님의 모든 축복과 은혜를 우리 곳으로 할 수 있는 지름 길입니다.

 

창 32장에 야곱은 하란 외삼촌 집에서 21년간 종 노릇을 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네사람의 아내와 12명의 아들과 딸 하나와 그리고 많은 재산을 모아 금의 향향을 합니다. 21년전 거지와 같이 하란에 왔던 야곱이 이렇게 많은 축복울 받았으니 의기 양양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호사다마인가? 형 에서가 400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자기를 마중 온다는 것입니다. 동생을 마중 나오는데 무슨 군대가 그렇게 많이 필요합니까? 이것은 마중을 나오는 것이 아니라 21년전에 장자의 축복을 사기를 당하여 빼앗긴 분풀이를 하려 나오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21년의 수고와 노력이 다 쓸대없이 되고 말 것입니다. 자기 때문에 처자식이 죽을 것이고 다른 종들도 죽을 것입니다. 야곱은 여러가지 꾀를 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런 얄팍한 꾀가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가족을 얍복 강 건너 편으로 먼저 보낸 뒤 혼자 강가에 엎드려 하나님에게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 기도는 필사적인 기도였습니다. 몸부림을 치며 부르짓는 기도었습니다. 자기도 살고 가족도 살려야 하는 기도었습니다. 그는 과거에도 기도를 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일이 있었지만 그 때의 기도와 지금의 기도는 달랐습니다. 밤을 세워 지도를 하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천사와 씨름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사실 천사와 씨름을 한 것이 아니라 천사를 붙들고 살려 달라고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나를 살려 주시옵소서. 우리 가족을 살려 주시옵소서. 죽음이 닫아 오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를 살려 주시옵소서’ 날이 밝아 오자 그 천사는 응답이 없이 하늘로 올라 가려 합니다. 야곱이 그래도 놓지를 않자 그 천사는 야곱의 환도 뼈를 쳤습니다. 야곱의 대퇴골이 부서져 위골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야곱은 살려 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드디어 천사는 ‘네 이름이 무엇이냐’라고 묻고 ‘이제부터는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라’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라는 말입니다. 즉 승리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이긴 사람, 누구를 두러워 할 것입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인 사람, 무엇을 걱정할 것입니까? 우리는 약하기 때문에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씨름은 기도를 말합니다.

야곱도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들을 다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한 것입니다.

 

여러분! 어려운 문제가 있거든 최선을 다해 그 문제를 풀어 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최선보다 하나님의 도움심은 몇 천배 더 큰 힘이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의 최선은 우리들의 경험이나, 물질, 인간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것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요셉의 일생은 기도하는 일생입니다. 그는 늘 하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애굽의 노예가 되었을 때도, 감옥에 갇혔을 때도, 억울한 누명을 썼을 때도, 왕에게 엄청난 문제를 제시 받았을 때도, 국무총리가 되었을 때도 그는 늘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책에서 우리가 존경하고 성공하고 승리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기도의 용사들입니다. 모든 것을 기도로 해결하고 해결 받은 사람들입니다. 기도없이 훌륭한 사람이 된 사람이 없습니다.

 

미국의 남북 전쟁을 이르켜 흑인을 해방시킨 경정적 동기가 된 \'엉클 톰스 케빈\'이라는 유명한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을 쓴 사람은 \'스토우\' 부인이라는 평범한 시골 여자입니다. 어느 날 사랑하는 딸이 죽었습니다. 그 부인은 그 딸의 죽음으로 깊은 슬픔에 빠졌습니다. 그는 그 슬픔과 비애를 신앙과 기도로 극복했습니다. 그 시련을 통해 슬픔이 무엇인지, 고통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보다 훨씬 더 고통을 당하고 살고 있는 흑인들을 보게 된 것입니다. 당시의 흑인의 어머니들은자식을 키우면 생 이별을 해야 한다는 것에 너무 큰 슬픔을 보았던 것입니다. \'스토우\' 부인은 그 사실들을 자기의 슬픔과 신앙으로 낱낱이 기록했습니다. 그 책이 바로 \'엉클 톰스 케빈\'이라는 책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밀턴은 소경이 되었습니다. 전혀 앞을 불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 가운데 그는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아주 위대한 영감을 주셨는데 창세기에 기록된 아담의 타락한 원인과 과정과 결과를 상세히 알려 주셨습니다. 그는 그것을 받아 기록을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실락원\'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기도합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놀라은 은혜를 체험합시다.

 

1880년 일본인으로 드물게 노벨 문학상을 받은 \'야스나리 가바다\'라는 작가는 가시관을 물고 자살을 했습니다. 그가 죽은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늙고 병들자 그는 그 몸을 자기가 원하는데로 어떻게 해 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좋은 작품을 썼으나 그 자신의 인생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만일 하나님을 믿고 살았드라면 결코 자살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의 죽음은 많은 사람을 실망시켰습니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깊이와 성공 실패가 결정됩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을 믿습니까?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어려움에서 더욱 찬란해 지도록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