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동자 같이 지키시는 하나님 .22
신 32:10-12
본문은 모세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 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한 내용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말씀을 듣고 꼭 명심하고 지켜야 할 말씀이 였습니다.
모세가 낭독한 이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들을 어떻게 지키시는 것인가를 잘 말씀하고 있는데 오늘은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을 통해서 은혜 받기 원합니다.
1. 눈동자같이 지키시는 하나님
첫째로 하나님은 눈동자같이 지키시는 하나님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32:10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통과했던 곳은 사람이 통과하기 힘든 곳이 였습니다. 일교차가 심하고 낮에는 폭염에 시달리며 밤에는 너무 추어서 견디기가 어려운 곳입니다. 마실 물이 없고 독사와 맹수가 들끓는 곳입니다. 이 지역의 독사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머리만 내 놓고 기다리다가 사람이나 짐승이 지나가면 1미터 이상 날아가서 물어 죽이는 뱀도 있다고 합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곳입니다. 이 위기를 잘 넘어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어렵습니다.
오묘한 것은 성경은 그대로의 형편을 보여줍니다. 성군 다윗의 수치, 압살롬의 범죄,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에 자식을 낳는 일 등을 그대로 기록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를 건널 때 이토록 열악한 환경. 여건 등에서 한 사람도 목말라 죽었다든지, 맹수에게, 일사병으로 죽었다는 말은 없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애굽에서 나온 1세들이 불순종 원망 불평한 것 때문에 죽었지 목말라서 죽었다든지, 맹수에게 물려 죽었다든지, 일사병으로 죽은 것이 아닙니다.
광야에서 물을 만난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광야에서 먹을 것을 만난다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40년 동안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이들이 죽는 이유는 우상 숭배, 원망하는 죄 값으로 죽은 것입니다. 그들이 죄를 지을 때마다 하나님은 피할 길을 주시고 실 길을 주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은 까닭에 죽은 것입니다.
환경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잘 섬기도록 하지만 꼭 그렇지마는 않습니다. 그러나 신실한 성도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면 신앙생활을 잘 해야 합니다.
강철 왕 카네기는 어렸을 때 살기가 너무 어려워 어머니는 하루에 16-18시간을 노동해야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열악한 환경과 여건 속에서도 신앙생활을 잘 했습니다. 그 어머니는 아들 카네기가 저녁에 돌아오면 밤에 빨래를 해서 말렸다가 아침에 그걸 다시 입혀야만 했습니다. 카네기는 어머니에게 효도하기 위해서 결혼하지 않기로 결단하고 열심히 돈을 벌었습니다. 그는 52살 때 결혼을 했습니다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다가 그는 세계적 갑부가 됩니다. 그는 3억 6천불 우리 돈으로 3천5백억원이 넘는 돈으로 헌금과 선한 일을 위해서 썼습니다.
환경이 어려워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환경이 어렵기 때문에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일이 잘 되든지 안되든지, 병들었든지 잘 살든지... 하나님을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환경을 탓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살아도 죽어도 하나님을 위해 살 것이라고 했습니다. 죽이기도 살리시기도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았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따르노라면 하나님이 우리의 환경과 위기 가운데서도 보호하십니다.
2. 신속하게 지켜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11절에 보면,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독수리가 새끼를 키우는 방법을 보면, 어릴 적에는 어미가 잘 돌봐 주고 먹여 주지만, 어느 정도 크면 둥지를 흩뜨려 뜨리고 떨어뜨립니다. 그러면 새끼는 안 떨어지려고 몸부림칩니다. 위에서는 어미가 날개를 너풀거리며 바라보다가 새끼가 떨어지면 즉시 내려가서 받아 보호합니다. 모진 훈련을 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새 중에 왕을 만들려는 것입니다.
사는 일이 힘들어 지고 고생이 가증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잃어 버리셨는가 라고 낙심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럴 때도 하나님은 나를 훈련시키고 연단 시키는구나 하고 용기를 가져야 하고 믿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때로는 둥지에서 떨어뜨리는 것과 같은 아픔과 놀램과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휘관이 훌륭한 군사로 만들기 위해서는 엄하게 훈련시키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우리를 둥지에서 떨어뜨리고 연단 시키십니다. 그러나 그것이 결단코 파멸이나 종점은 아닙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되 신속하게 지켜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럴 때 바로 이 상황이 가장 어려운 길임을 알고 말과 행실을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시며 신속하게 보호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거기에서 합격하기만 하면, 새 중에 왕으로 만드는 독수리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굳게 지키실 것입니다.
3. 사랑하시고 지켜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일방적으로 사랑하시고 지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신32:10절에 눈동자같이 지켜 주신다고 했는데, 눈동자를 보면 전자동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눈에 무엇이 들어오려고 하면 어느새 감아서 그것을 막는다. 눈에는 30만개의 회로가 있고 1억만 개의 신경세포가 있어서 무엇이 들어오려고 하면 눈이 자동으로 감기고 보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눈동자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을 지켜 주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것은 일방적인 사랑입니다. 수없이 거역, 배반, 부족한 일 많이 했으나 일방적인 사랑으로 용서하시고 용납하시고 받아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게 된 것은 전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일방적인 은혜입니다.
스피노자는 말하기를 “사랑하기만 하면 허물은 보이지 않고 모든 것이 다 좋게만 보인다”고 했습니다
사랑의 유형 중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는, 사랑을 받고 나서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피곤한 사람입니다.
둘째는, 받으려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동기가 잘못 되어 있어서 상대가 잘 못하면 원망과 불평이 생깁니다.
셋째는, 사랑하기 위해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랑이야말로 참 사랑입니다. 결과를 바라는 사랑도 아니오 동기가 그러해서 사랑하는 것도 아닌 아무런 결과나 동기가 없이 그저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인하여 그 사랑의 힘으로 하는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어렵긴 하나 이것이 기독교적 사랑입니다. 사람에게 사랑의 마음이 없으면 우울증이 생깁니다.
우리 나라 인구의 6%가 우울증 환자라고 합니다. 미워하는 마음이 계속 있게 되면 마음에 평화 기쁨은 사라지고 우울증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리학자들은 말하기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할 대상이 없으면 강아지라도 데리고 와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강아지를 데려다 놓고 애정을 주고 사랑하다 보면 마음에 기쁨이 오고 평안히 온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심령에 미움이 있고 적개심이 있다면 사랑이 그 속에 자리 잡아야 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치유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왕이 나이 많아 왕위를 물려주려고 합니다. 3형제가 있어서 여러 가지 고심하다가 시험을 합니다. 3개월 동안 다니며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오라 했습니다. 큰아들은 길을 지나다니는데 어떤 사람이 황금 덩어리가 들어 있는 보따리를 황급히 마끼고 갔습니다. 알고 보니 자기 집에 불이 나서 불을 끄는 것이 였습니다.. 그 사람은 불을 다 끈 후에 그 보따리를 어떤 사람에게 맡겼는지 몰라서 찾아 다녔습니다. 첫째는 그 사람에게 그 값진 황금 보따리를 되돌려 주고 돌아 왔다고 했습니다.
둘째는 연못에 빠진 어린아이를 구해 주고 돌아 왔습니다.
셋째는 자꾸 물으니 “저를 평생 동안 괴롭히는 원수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낭떠러지 끝에 술에 만취되어 있었는데 한바퀴만 돌면 스스로 죽게 되었으나 그를 깨워 정신을 차려 살게 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왕은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어려운 것이라면서 왕위를 물려주었습니다.
일방적인 사랑이라는 것은 상대의 어떠함에 상관이 없이 사랑을 베푸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세상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열악한 환경과 위기 가운데서도 항상 지키십니다.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이요 하나님의 자녀요 아들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사랑하는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하나님은 신속하게 독수리가 새끼를 지키듯 눈동자처럼 보호하십니다.
그 하나님을 항상 의지하고 신뢰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붙드셔서 좋은 세월의 주인공이 되게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하늘을 바라보는 자는 .23
시 125:1-5
세계의 불가사이 중에 하나인 이집트의『피라미드』를 보면 “어떻게 수축을 했을까?” 하는 신비감을 느낍니다. 고고학자들이 연구를 하다가 그 주변에서 무덤을 많이 발견했는데, 그곳에 있는 유골들을 살펴보니 한결같이 18세에서 40세 사이에 모두 죽었다는 것입니다. 무릎의 관절이 심히 다친 상태가 발견되고, 영양실조에 무거운 짐을 들어 혹사당한 흔적이 역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노동에 시달린 사람들이 고작 오래 살아야 40세 였다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할 때에도 아마 그런 상태였을 겁니다. 그들은 모진 고통 속에서 하나님 앞에 그 고통을 울부짖었습니다. 사람이 평안할 때에는 기도의 불이 꺼지기 쉽지만 고통스러울 때에는 하늘을 바라보게 되는 법입니다.
앞이 막히고 뒤가 막히고, 희망이 사라졌을 때.... 바로 하늘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다 같습니다. 남모르는 깊은 신앙이 있는 사람이나 신앙이 없는 사람이나 같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사정을 아뢰며 고통을 호소했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는 수난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모세를 어릴 적부터 택하셨고, 그를 훈련시키시고 예비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도했을 때 길을 열어 주셨지만, 하나님은 이미 다 아시고 예비하신 것 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을 바라보고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길을 열어 주시고 기적의 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명심할 것은 우리가 의뢰 해서는 안될 것이 있다는 것 입니다. 잠25:19절에 보면, “환난날에 진실치 못한 자를 의뢰하는 의뢰는 부러진 이와 위골된 발 같으니라”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을 보면 어려움을 만날 때 사람을 의지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 중에 진실한 사람을 만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미국의 어떤 종교 문제 연구소에서 11년 동안 여러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람들이 신뢰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하고 조사를 했는데 ①교회 ②신문 ③노동조합 ④의회 ⑤대기업체 ⑥T. V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첫째가 교회인데 바로 하나님의 말씀만은 진실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에 요동치 아니하고 견고하게 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 살게 되니 우상을 섬겼습니다. 하나님 말씀 이외의 것을 의지하면 연기처럼 사라진다고 했습니다. 시146:3절에도 보면,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도우실 분임을 알고 소망을 두는 사람은 복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우리들의 삶을 하나님이 견고하게 하실까요?
첫째로, 믿음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에게 요동치 않게 하십니다.
오늘 본문 시125:1절에 보면,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시온 산이 요동치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라고 했습니다. 외부의 적이 쳐들어 오지 못하도록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1+1=1이지만 신앙적인 계산법으로는 1+1이 10이 될 수도 있고 100이 될 수도 있으며 1,000 혹은 100,000이 될 수 도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식이 없을 때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알 같이 많은 자손을 바라 본 것은 바로 믿음이 였습니다(창22:17).
히스기야는 즉위한지 14년에 재물이 많음을 자랑하고 교만 하다가 18만 5천명의 앗수르 군이 쳐들어 와서 성을 완전히 포위 했습니다. 항복 문서를 보내어 싸인을 하라고 위협했고, 만약 그렇지 않으면 네 입에 오줌과 똥을 넣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하면서 하나님을 모독하였던 것입니다. 삼상2:10절에 보면,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 앞에 울며 기도했습니다.
왕하19:14-16절에 보면, “히스기야가 사자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 보고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서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놓고 그 앞에서 기도하여 가로되 그룹들의 위에 계신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조성하셨나이다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사신 하나님을 훼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하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아침이 되어 나아가 보니 이게 웬일입니까? 18만 5천명의 군사들이 다 죽은 것입니다. 더구나 조금 남은 군사들이 조국에 돌아가 구테타를 일으켜 아들이 자기 부왕을 죽이고 왕이 되었습니다.
히스기야가 잠시 교만하여 벌을 받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였더니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큰 위기에서 건져 주신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거짓없이 진실하게 살 때 요동치 않게 하십니다.
시125:4절에 “여호와여 선인에게와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 선을 행하소서”라고 말씀했습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은 자연법칙입니다. 거짓이 없습니다. 문제는 ‘내가 어디서 누구에게 심었으며, 언제 싹이 나고, 언제 거두느냐’가 문제입니다.
오늘날 대형 사고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하늘과 땅과 바다에서 쉴 사이도 없이 사고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진짜 원인은 진실된 양심이 실종된 것이요, 진실이 실종된 까닭입니다. 어디서 양심이 사라졌습니까? 어디서 진실이 사라졌습니까?....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고 찾게 하십니다.
야곱은 복 받기를 원하는 중심은 좋으나 거짓말을 많이 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기만의 유익을 위한 거짓말도 나쁜 죄악이거니와 종교적인 거짓말은 더욱 큰 죄악”이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아버지 이삭이 축복기도를 할 때 “네가 에서냐?”하고 물으니 “네 제가 에서입니다”하고 거짓말을 했습니다(창27:19). 거짓말을 심은 것입니다. 그 결과 세월이 흘러 싹이 나고, 열매를 거두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보게 됩니다.
라헬을 사랑하여 7년을 수일같이 여기며 봉사했는데 외삼촌 라반에게 속아서 그 언니 레아와 결혼을 하게 된 것입니다. 결혼은 하나님 앞에서 서약을 한 것이므로 변개치 못하는 것이요, 돌이킬 수 없는 것입니다. 외삼촌 라반은 “형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창29:26)고 하면서 핑게를 하였지만, 실상은 야곱이 심은것을 거두는 순간이였던 것 입니다.
이 순간, 지난날의 거짓말, 믿음으로 축복의 안수를 받는 자리에서 종교적인 거짓말을 돌이켜 보면서... 하나님 앞에 회개를 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잘생겼거나 못 생겼거나 결혼하게 된 레아와 일평생을 살았더라면 나머지의 생애는 평탄하고 복된 생애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한 결과로 야곱은 계속해서 그 열매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얼굴이 예쁜 아내를 얻기 위해서 7년을 더 봉사해서 얻긴 했지만, 라헬은 우상을 섬기는 사람이 였습니다(창31:19). 계속해서 집안에 우환질고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벧엘을 떠나 세겜으로 가서 살다가 막내딸 디나가 세겜 추장에게 강간을 당하였고(창34:13), 이를 분히 여긴 아들들이 세겜 족을 죽이고 약탈을 하므로 살인죄와 도적질을 한 죄를 짖게 된 것입니다(창34:25).
라헬이 베냐민을 낳다가 죽는 고통을 당해야만 했고(창35:18), 열 한 아들들이 요셉을 종으로 팔고 죽었다고(창37:32) 속이는 등 야곱의 생애는 그가 바로 앞에서 고백한 말처럼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던 것입니다(창47:9).
하나님 앞에서 잘못한 죄가 문제가 아닙니다. 주님이 용서하신 피 값을 바라보고 용서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요동치 않게 하시고 복된 삶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을 의뢰하는 사람은 평강의 복을 주십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만나기만 하면 못 먹던 시대를 지난 까닭에 “아침 진지 드셨습니까?”하고 인사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만나기만 하면 “여호와 샬롬!”하고 인사를 합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당신과 당신의 가정에 임하시기를 기원합니다!’하는 뜻입니다. 얼마나 좋은 뜻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런 인사를 하게 된 배경이 있습니다.
애굽의 종살이에서 400년을 살았고, 광야에서 40년, 바벨론의 포로에서 70년을 살아오는 동안에 그들이 경험한 것은 ‘하나님의 평강’ 이였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식구 중의 하나가 포로로 잡혀가는가 하면, 자고 일어나면 죽어 갔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평강이 임한다는 것은 놀라운 복이 였습니다. 가난해도, 굶어도... 하나님의 평강만 임한다면... 그것은 놀라운 축복이 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귀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입니까? ①먼저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②거짓없이 진실 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③하나님을 의뢰하므로 주님의 평강 가운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앞길을 평탄케 하시고, 우리가 귀중히 여기는 것들이 흔들림이 없이 영영이 견고케 하시며, 좋은 세월의 주인공이 되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