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의 하나님 .24
렘 33:6-9
지난 시간에는 성취의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드렸고 오늘은 치료의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하는 가운데 은혜 받고자 합니다. 하나님에 관해서 바로 알면 알수록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잘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배우는 것을 가르쳐 “신학”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점에 있어서 신학이 신앙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성경 학교와 선교 학교를 통해서 성경을 공부하는데 그 중요한 목적은 하나님을 바로 배우고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에 속한 성도들은 성경 학교에 출석하여 성경을 배우고 올바른 신앙생활에 힘써 하나님 앞에 귀히 쓰임을 받으며 이 사회의 빛과 소금의 사명을 다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배우고 체험하는데 있어서 유일한 법칙과 지침서는 바로 성경입니다.
이 시간에도 우리는 성경이 보여주고 있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인간은 모두 병들어 죽어 가고 있습니다.
롬6:23에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말씀을 불순종하여 범죄하므로 죄가 세상에 들어오게 되었고 그 죄로 인하여 사람의 영과 육이 병들어 죽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고 죄를 조금도 용납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죄를 범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얼굴을 가리우신다고 하였습니다.
5절에 보면“.... 그들의 모든 악을 인하여 나의 얼굴을 가리워 이 성을 돌아보지 아니하였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만족을 돌아보지 아니하시고 얼굴을 돌리신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배반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해야 할 그들이 하나님을 외면하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제멋대로 살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낯을 피하고 얼굴을 돌린 결과가 되었습니다.
북극지방의 겨울밤은 길고 춥습니다. 밤이 20시간씩 계속될 때에는 해 구경하기가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해가 빛을 가리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얼굴을 가리우시고 돌아서면 내 영혼은 밤이 되는 것입니다. 그 심령은 냉랭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아야 할 영혼들이 죄로 어두워지면 냉랭하여 결국은 얼어죽게 되는 것입니다. 태양과 같이 생명의 빛을 발하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날마다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민6:25에 보면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로 나를 비취실 때 내게 은혜가 넘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은혜가 떨어지고 내 마음이 냉랭해지는 것은 바로 나의 죄 때문입니다. 다른데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에게 문제가 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나와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나의 죄를 제거하지 아니하면 안됩니다.
나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속량 해주신 예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회개할 때에, 먹구름보다 더 어두운 흑암이 사라지게 됩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막힌 것이 없어집니다. 주의 얼굴빛이 우리의 마음속 깊이 비치어 집니다. 그래서 내 심령이 뜨거워집니다. 냉랭하다 답답하던 마음이 사라지고 평안과 기쁨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력이 넘칩니다.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시야 안에서 살아야지, 시야 밖으로 벗어나면 안됩니다.
민6:26을 보면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얼굴로 나를 바라보실 때에는 내게 평강이 넘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고 하루하루를 살아갈 때에 내 영혼과 삶속에 평강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본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본다든지, 대면한다고 하는 것은 상징적 표현이지 실제적 사건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사람처럼 똑같은 얼굴을 가지고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내 영혼이 하나님을 우러러 앙망하며, 사랑하며, 경배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영적 교통을 말합니다.
출33:11절을 보면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그 수종자 눈의 아들 청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친구처럼 하나님과 대면하여 대화를 나눈 사람입니다. 모세의 얼굴에는 신령한 광채가 빛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충만히 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범죄한 인간들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얼굴빛을 가리웠고 그 심령은 추운 겨울처럼 얼어죽어 버린 상태입니다. 송장과 같은 인생들입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남은 것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형벌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따사로운 은혜와 긍휼이 필요한 것입니다.
2.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6절에 보면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을 치료하며 고쳐 났게 하고 평강과 성실함에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바벨론의 침략으로 참담하게 된 예루살렘을 고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치료하십니다.
우리 인생들은 사탄의 침략과 죄의 오염으로 만신창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원자폭탄으로 폐허가 된 히로시마 도성과 같이 우리의 심령은 완전히 파괴되고 오염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인간의 심령은 병들었고 자연도 오염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를 고쳐 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말4:2절에 보면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라고 하였습니다.
출15:26절 하반절 에 보면 “.....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출23:25절에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 병을 제하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치료는 광범위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1). 자연을 치료하십니다.
출15:25절을 보면 이스라엘 마라에서 물을 발견하였지만 물이 써서 먹을 수 없을 때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고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사건 속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모세가 물을 치료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사실과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나무를 물에 던졌을 때 물이 치료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무엇을 의미합니까? 치료의 방법이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과 이를 믿고 순종하는 자를 통해서 역사 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왕하2:19-22절에 보면 “그 성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우리 주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터는 아름다우나 물이 좋지 못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 엘리사가 가로되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내게로 가져오라 하매 곧 가져올지라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 던지며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 쫓아 다시는 죽음이나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짐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하니 그 물이 엘리사의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날에 이르렀더라”고 하였습니다.
소금을 뿌린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나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바로 우리의 믿음과 순종입니다. 그래서 이론에 맞지 않는 엉뚱한 명령을 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엘리사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믿고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여리고 성의 수질과 토질을 고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자연을 창조하셨습니다. 자연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연도 고치시는 것입니다.
(2). 인간을 고치십니다.
우리 인간은 성경이 말한 대로 영혼과 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건강하다고 하는 것은 영혼과 몸이 함께 건강한 것을 말합니다. 인간도 하나님이 창조하셨기 때문에 치료 역시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 의술이나 의약은 하나님께서 주신 치료의 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인간이 만든 절대적인 방법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술이나 의약을 사용할 때에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의사는 어디까지나 치료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치료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뿐입니다. 무슨 병이던지 근본 치료는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치료해 주시지 아니하시면 백약이 무효입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를 치료하실 때 보면 그저 말씀으로 하신 때도 있고 침으로 진흙을 이겨 눈에 발라 고쳐 주신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 치료해 주셨고 그냥 일어나라고 말씀하심으로 고쳐 주신 적도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귀신들린 사람도 고쳐 주셨고,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도 걷게 하셨고 눈먼자도 뜨게 하셨고, 문둥병 자도 어린아이 살과 같이 깨끗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심지어는 죽은 나사로도 말씀 한마디로 살려 주셨습니다.
구약에 보면 무화과 나뭇잎을 이겨 종처에 부처 치료한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병이던지 다 고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도, 정신도, 육체도, 마음도 모두 한결같이 치료하십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이 먼저 고침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요삼2절에서 말씀하기를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 하노라”라고 하였습니다. 영혼이 잘될 때에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것은 영혼의 치료는 세상의 어떤 방법으로도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할 수 있습니다.
히4:12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죄로 병든 부분을 수술하여 치료받을 수 있고 깨끗하게 씻음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빈(R.B Robins)박사는 “절망적 사회나 인간을 치료하는데 정신과 의사의 역할이 교회를 대신할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교회는 인간의 절망과 좌절을 치료하는 영적 병원입니다. 그리고 원장님은 바로 만병의 의원 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3). 나라와 역사를 치료하십니다.
본문에서 성을 치료하신다는 것은 바로 이스라엘 나라와 그 역사를 치료하신다는 것입니다. 역사를 통하여 볼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나라는 모두가 선진국 대열에 끼어 있습니다.
우리 나라가 오늘 이만큼 발전하게 된 것도 약100년전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오면서 부터 시작된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학교가 세워졌고, 병원이 세워졌고, 각종 문화 복지 시설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문맹 퇴치, 우상 타파, 남녀 평등, 인권 존중..,등등의 운동으로 이 나라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미개한 민족이 문화 민족이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올바로 섬겼을 때에는 그 역사가 빛났고 나라가 발전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외면하고 거역했을 때에는 외세의 침략으로 국가가 시련을 겪었고 역사가 불행해 젓습니다.
국가나 정치 지도자들이 우상 숭배를 저질렀을 때, 가령 돼지 대가리 올려놓고 절을 한다든지, 점쟁이 말에 귀를 기울였을 때, 그리고 공공 기관이나 언론 기관들이 미신을 조장하거나 무당춤 따위를 보도했을 때, 그리고 부도덕한 일을 저질렀을 때, 그때마다 정변이 일어났거나, 사회 혼란이 일어났거나, 재난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국가도 역사도 그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언제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치료하실 뿐 아니라 모든 것을 회복하십니다.
본문7절에 보면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원수의 압박으로부터 뽑아 내어 자유와 축복을 누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민족의 해방과 통일도 하나님의 장중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민족이 하나님의 치료를 받을 때 이 민족의 통일도 가능한 것입니다.
스콧트랜드가 나은 유명한 희극배우인 해리 로우더(Harry Lauder)가 아들 잃고 비탄에 빠져 있을 때 주님을 영접하고 새로운 용기와 힘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훗날 시카고에서 음악회를 열었을 때 수많은 관중들이 운집했습니다. 계속 앙코르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는 열광하는 청중들을 조용하게 한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에게 감사하지 마십시오. 그분에게 감사하십시오..그분은 내 마음속에 짙은 슬픔과 한숨을 거두시고 노래를 심어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Praise the Lord)”라고 말했습니다.
내 영혼의 깊은 고독과 상처를 고치시는 하나님, 내 정신의 공허를 풍요로 채우시는 하나님, 내 육체의 질병을 치료하시는 하나님, 우리네 병든 역사를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3. 죄악을 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8절에 보면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의 내게 범하여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죄로 오염된 우리를 정하게 하십니다. 깨끗케 하십니다. 눈보다도, 양털보다도 희게 하여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더러운 그릇과 같이 쓸모 없는 우리를 깨끗케 하여 귀한 그릇으로 쓸모 있는 존재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깡패가 변하여 전도자가 되고, 도둑놈이 변하여 봉사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는 용서받지 못할 죄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예수님이 내 모든 죄를 위하여 피 흘려주신 공로를 믿고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회개하기만 하면 정케하고 깨끗케 하여 주십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그 모든 죄를 기억조차도 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치료받고 사함 받고 난 후의 삶이 어떤 것인가를 9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내게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나의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나의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강을 인하여 두려워하며 떨리라”라고 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큰 축복이요 멋진 삶인가를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성의 이름만 들어도 기쁨이 넘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주변 국가들이 두려워 떨게 됩니다. 그 이유는 성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성에는 평강이 넘치게 됩니다. 그야말로 놀라운 축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가 치료함을 받고 죄 사유함을 받아 영육이 강건하여지고 범사에 복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과 동행하므로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언제나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치유자이신 그리스도 .25
약 5:13-16
어떠한 질병이든 그것을 고치려면 몇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먼저, 의사의 진단을 받아야 합니다. 의사는 병의 원인을 가려내어야 처방을 할 수 있습니다. 가장 무섭고 가장 다루기 어려운 질병은 어디가 나쁜지 누구에게나 확실히 알기 어려운 병입니다. 진단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환자는 의사의 진단을 받아 드려야만 합니다. 아무데도 아픈 곳이 없다고 믿고 이전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한 병은 결코 났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의사 처방에 의한 처치가 따라야 하고, 환자는 그 치료법에 따라야 합니다. 환자가 그 치료법을 따르지 않는 한 병이 났을 생각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은 몸뚱이만으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도 있고 영혼도 있습니다. 마음이나 영혼의 상태가 병 치료의 방해가 되거나 그것을 완전히 무효로 만들어 버리거나 하는 일이 있습니다. 영혼이나 마음이 먼저 정상적인 상태에 있지 않고는 몸의 병도 났지를 않습니다.
완전히 났기 위해 두 가지 조처가 필요합니다..
(1) 최선의 의학적 처리 및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2) 신앙으로 들이는 열렬한 기도.
그 때 하나님의 은총이 인간의 기술과 협력합니다. 그렇지만 그 기술도 하나님 자신이 내려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경우에 특별한 방법으로 질병을 치료하십니다.
초대 교회의 한 가지 커다란 특징은 병자를 고치는 데 헌신한 치유하는 교회였다는 사실입니다. 져스틴 마르티(AD 100-163년경)는 수많은 귀신들린 자들이 백 약과 술수가 무효하게 되었을 때, 그리스도인들에 의하여 고침을 받았습니다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대 부흥 운동 기간에 웨슬리는 그의 초기 감리교 인들을 위하여 모라비아 교회의 관습을 이어 받았습니다. 즉 그들은 일주일에도 세번 모여서 \"서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병이 났도록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였다\"는 것입니다.
2. 치유라는 말의 뜻
1) 히브리어
아루카 - 치료, 건강, 회복, 복구, 복원
마르페 - 치료, 회복, 고침, 만회, 도움, 건강, 양약
가-하 - 고치다, 치료합니다., 구제합니다.
할-람 - 강해지다, 치료합니다., 회복케 합니다.
라-파 - 병을 고치다, 치료합니다., 났게 합니다.
2) 헬라어
마스티크스 - 채찍, 고치셨으므로, 병, 고통
데라퓨오오 - 봉사합니다., 고치시다, (귀신을)내어쫓다, 났음
이아마 - 병 고침
독일의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말하기를 \"의사와 목사는 하나님의 수선공들입니다\"고 했습니다. 의사는 인간의 육신을 고치는 우리 주 하나님의 수선공이며 그와 꼭 같이 우리 목사들은 악마가 끼친 손상을 고치기 위한 영혼의 수선공들입니다. 불완전한 인간들이 예수의 이름만으로도 영. 육을 치유하는데 정작 주님은 어떠 하실까....?
3. 병자를 위한 기도(14절)
야고보는 질병과 건강은 모두 하나님께 딸린 것이기에 병든 자는 기도
해야 하며, 건강한 자는 찬송을 해야 합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병든 자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좀더 가까이 느낄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그는 돌보는 공동체(교회)의 상징인 장로들을 초대하게 되는데, 장로들은 그 병자의 집에서 두 가지 일, 즉 병자를 위해 기도하며, 주의 이름으로 병자에게 기름을 바르는 일을 합니다.
중보 기도는 인간 생활의 협동적인 성격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로 어느 누가 아프면 우리 모두가 아픔을 느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기름을 바르는 것은 구별, 헌신, 의학적인 치료, 치유, 따뜻한 관심과 사랑 등의 상징적인 깊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믿음의 기도\"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 이와 같이 야고보가 사용하고 있는 단어들을 통하여 우리는 병 고침은 기름 -기름을 약이라고 해석할 때- 에 의한 것이 아니라 주님에 의한 것이며, 교회의 치유 사역은 예수님의 사역의 계속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4. 죄사함(15절)
성경은 모든 질병의 경우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질병과 죄와의 긴밀한 관계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질병은 병자 자신의 죄나 혹은 다른 사람의 죄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데 죄 속에는 제거되어야 할 두 가지 장벽이 있습니다.
즉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세워 놓은 장벽과, 우리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 세워 놓은 장벽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장벽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이러한 행동은 올바른 관계를 회복시켜 주며,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까지 건강하게 합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는 인간의 삶과 생존의 건강을 위해 꼭 필요합니다..
5. 의인의 중보 기도(16절)
기도하는 사람은 의인이어야 합니다. 의는 하나님 자신의 속성입니다. 이것은 공의나 정직 이상의 것입니다. 즉 의는 무력한 자의 한을 풀어 주고, 고아를 도와주며((시10:14) 주께서는 보셨나이다 잔해와 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시오니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주는 벌써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자니이다), 궁핍한 자가 부르짖을 때에 건지며, 도움이 없는 가난한 자도 건지는((시72:12) 저는 궁핍한 자의 부르짖을 때에 건지며 도움이 없는 가난한 자도 건지며) 것 등을 포함합니다. 그리고 의인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며, 무력한 자들과 인간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관심과 동정을 함께 나누는 사람입니다.
만약 엘리야의 기도가 하나님의 은혜를 보류할 수도 있었고, 불러들일 수도 있었다면, 오늘날 교회의 의롭고 거룩한 신자들 또한 그 기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치유의 능력을 간구 하여 병자를 고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6. 치유의 능력
하나님께로서 나옴 - (창20:17)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 아내와 여종을 치료 하사 생산케 하셨으니 (창20:18) 여호와께서 이왕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연고로 아비멜렉의 집 모든 태를 닫히셨음이더라
사마리아의 선지자 - (왕하5:3) 그 주모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
예수께서 소유하심 - (마8:2) 한 문둥병자가 났아 와 절하고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마8: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 대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진지라 (마8:4)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의 명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하시니라 (마8:5)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났아 와 간구 하여 (마8:6) 가로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마8:7) 가라사대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사도들도 받음 - (마10:1)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마10:2)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마10:3)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마10:4) 가나안인 시몬과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마10:5)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마10:6)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잊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마10:7)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웠다 하고 (마10:8)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은사 중의 하나 - (고전12:9)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고전12: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7. 치유의 방법
기도와 금식 - (막9: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믿음 - (민2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민21:9) 모세가 놋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요4:47)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에 오심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저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요4:48)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요4:49) 신하가 가로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요4:50)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하신 대 그 사람이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요4:51)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았다 하거늘 (요4:52)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제 칠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요4:53) 아비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았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이 다 믿으니라 (요4:54)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약 처방 - (왕하20:7) 이사야가 가로되 무화과 반죽을 가져오라 하매 무리가 가져다가 그 종처에 놓으니 나으니라 (딤전5:23)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비위와 자주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하나님의 말씀 - (시107:20)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 사 위경에서 건지시는 도다
주의 명령 - (마12:13)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저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마12:15) 예수께서 아시고 거기를 떠나가시니 사람이 많이 쫓는지라 예수께서 저희 병을 다 고치시고
친구의 믿음 - (막2:3) 사람들이 한 중풍 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막2:4) 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 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막2:5)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의원 - (골4:14) 사랑을 받는 의원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라
하나님의 긍휼 -(빌2:27) 저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저를 긍휼히 여기셨고 저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의 징계를 달게 받음 - (히12:13)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8. 치유되지 않은 예
엘리사의 병 - (왕하13:14)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매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저에게로 내려가서 그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가로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매
바울의 눈 - (고후12: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디모데 - (딤전5:23)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비위와 자주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드로비모 - (딤후4:20) 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렀고 드로비모는 병듦으로 밀레도에 두었노니
* 예수님은 어떤 의사이신가? *
1. 병든 자라면 누구나 환영하신 위대하신 의사 - 마9:10-13
2. 육신의 치료뿐 아니라, 약한 자도 강하게 하시는 위대한 의사- 막14:72,
요21:15-19, 행2:37-41
3. 죽은 자도 살리신 위대한 의사- 요11:17-44, 막5:41,42, 눅7:14,15
치유자이신 그리스도 .26
눅 5:17-26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에수와 함께 하더라\"(17절)는 말씀은 우리에게큰 힘과 소망을 주고 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병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점점 하나의 입원실과 같이 되어가고 있다. 이 집단적인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은 의학이나 과학이 아니라 주님뿐이다.
1. 인간은 신체적인 병으로 고통당하고 있다.
오늘날 자유주의자들이나 현대주의자들은 신앙치료를 미신이니 광신이니 샤마니즘이라고 한다. 그러나 2,000년 전의 병이나 오늘의 병은 다 같은 병이며, 그 병으로 고통을 당하는 인간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그때의 병을 고치신 주님이 지금도 살아계시는 같은 주님이시다. 인간은 영적이든 육신적이든 하나의 인간이며 영적인 병도 인간에게 고통을 주지만 육신적인 병도 마찬가지로 고통을 준다. 또 하나님은 우리 영혼의 아버지시지만 동시에 우리육신의 아버지시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도 하나님은 우리 신체의 모든 병을 치료하실 수 있다. 여러분의 몸에 병이 있는가? 그 병을 주님께 그대로 가지고 나와서 간구하라. 병을 고치는 능력이 주님께 있다.
2. 마음의 병도 있다.
의사로서 목사가 된 프러스터 목사는 \"모든 병의 대부분이 마음의 병이다\"라고 말했다. 긴장이 쌓이거나 인간 관계에 풀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을 때그것이 갖가지 마음의 병을 일으킨다. 마음의 병은 성품을 나쁘게 하고 안정감을 빼앗으며, 이유없는 초조와 불안을 갖게 한다.
그러나 주님의 능력으로 마음의 병이 치료되면 모든 일에 자신감이 생기고학생은 머리가 맑아지고, 주부는 명랑해져서 가정이 행복하게 되고, 사업가는 용기와 인내심을 가지고 사업을 성공할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도 신앙의성장이 크게 벌전하게 된다.
3. 무의식적인 병도 있다.
심층의 병이다. 사람의 의식과 무의식 사이는 빙산의 나타난 부분과 숨은 부분과 같이 큰 차이가 있다. 어릴 때 받은 자극이 나이가 많아지면서 밖으로 나타나서 정신질환을 일으킨다.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너무나 깊은 곳에 숨은 병이기 때문이다. 오직 인간의 가장 깊은 곳까지 임재하셔서 자유케 하시는 주님만이 인간의 심층에 도사리고 있는 병을 치료할수 있다.
4. 인간에게는 영적인 병도 있다.
불신자들에게는 접신, 강신, 무당, 술수와 같은 추악한 병들이 있지만 믿는 사람들에게도 이단이나 악령과 같은 병들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있어서 영적인 질병이란 양심이 화인맞아서 외식하는 신앙이다. 표면적으로는 잘 믿는 것 같지만 내적으로는 전혀 주님의 생명을 모르는 상태이다. 이런 상태에 있으면 신앙과 생활이 달라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말하기도 부끄러운 생활을 하게 되어 외식하게 된다 .
모두 몸의 병, 마음의 병, 무의식의 병, 영적인 병을 주님의 이름으로 치료받고 복된 삶을 살아야 겠다.
치유 설교에 대하여(1)
1. 낱말의 뜻
1). 구약
라파(레푸아, 리푸트, 마르페) - 건강, 치유하다, 건강하게 하다.
이 단어는 구약에서 60회 이상 나오는 순수한 히브리어 어근이다. 이 단어는 하나님이 아비멜렉을 치유해 주는 기사가 나오는 창20:17에서 최초로 나온다. 이 어근은 또한 치료하는 인간, 즉 \"의사\"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된다(창50:2). 뿐만 아니라, 열방들의 치유와 용서를 가리키는 용어로도 사용된다(사19:22,57:18).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의 용례에서는 <라파>의 함축적인 의미들인 치유와 회복이라는 주제가 결합되어 있다.
많은 경우에 치유를 해주시거나 하나님의 개입에 의하지 않고는 치유될 수 없는 질병이나 파멸을 야기시키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2). 신약
데라페이아(데라퓨오, 데라폰) - 치유, 치료하다, 봉사하다, 종.
이 단어의 이미는 섬기다, 쓰임직하다, 병든 자를 돌보다, 취급하다, 치료하다 등으로 사용되었다. 신약에서 데라퓨오는 일상적인 의미에서의 \"섬기다\"를 뜻하지 않고 행17:25에서 단 한번 예배를 가르키는 데 사용되었다.
\"치유하다\"라는 용법이 훨씬 더 자주 사용되는데 이 치유는 단순한 의학적 처방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메시야께서 가져다 주시는 진정한 치유를 의미한다. 예수께서는 병든 자를 고치는 능력을 갖고 계시다(눅7:21). 치유는 주님의 사역에 있어서 복음 전파에 못지 않는 중요한 일부이다(막4:23). 예수께서 구원의 시대를 여시고 사람들의 병약함을 없이 하실 때 치유는 온전한 것이다(마8:17).
2. 성경에서의 건강과 치유
1). 구약에 있어서의 건강과 치유
구약의 말씀에서 건강은 하나님의 은사이며 물질적 번영과 함께 이스라엘의 충실한 신도들이 확고하게 기대했던 대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질병에 걸리면 환자는 백성의 위대한 의사인 하나님을 우러러 치유와 회복을 기대할 수 밖에 없었다. 유배기 이후의 유대교에서는 인간의 도움에 의존하려는 자세를 부정하기까지 했다. 왜냐하면 인간이 병을 고치고 건강을 회복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대권을 침해하는 행위로 보았기 때문이다. 아사와 같이 예외적인 인간만이 의사의 진찰을 받았다(대하16:12). 가끔 예언자들은 병든 자들에게 치료에 관해 충고했고, 종종 질병을 예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병은 영적 문제였으므로 종국적으로 치유는 개인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소생시키거나 다시 활력을 넣어야만 비로소 정당한 기대를 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몇 가지 민간요법을 제외하고는 구약에는 질병에 대한 의학적 치료를 다룬 대목이 없다. 고대 히브리인들 사이에는 그와 같이 체계화된 치료법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2). 예수님의 태도
예수께서 질병을 설명하려고 한 적은 없으나 개인 생활에 존재하는 병에 대한 주님의 자세는 구약의 일반적인 사상을 뛰어넘고 있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인간을 온전하게 하고 구원하려는 아버지의 목적을 굳게 믿고 있었으며(요3:16, 10:10), 하나님이 내린 형벌 보다는 인간 내부의 불균형을 자아내는 악의 결과로 보았다. 주님은 개인을 육체와 영혼의 본질적인 결합체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육체의 병든 자를 고치기 위해 정성을 쏟았으며, 동시에 고통당하는 자의 정신과 영혼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예수님의 치유 활동에는 전인격의 회복을 위한 심리적이면서 동시에 중대한 영적 배려가 깔려 있었다.
3). 사도들의 견해
마태(8:17)는 그리스도의 치유활동을 하나님께서 임명한 종의 활동에 관한 사53:4의 말씀을 성취하는 것으로 내다 보았다. 이 절의 히브리어 본문은 \'질병\'과 \'고통\'이라는 단순한 낱말을 사용하고 있어 병 고침을 바로 그 종의 역사로 돌리고 있다. 갈보리 산상의 속죄라는 각도에서 이사야의 종의 귀절을 전통적으로 해석한 내용대로라면 성육하신 주는 십자가에서 인간의 죄와 아울러 질병을 치유하신 것이다.
3. 성구
1) 하나님이 고치시는 일
①. 땅 - 대하7:14 ②. 백성 - 대하30:20 ③. 병 - 시41:3, 103:3
④. 상심한 자 - 시147:3 ⑤. 맞은 자리 - 사30:26 ⑥. 패역 - 렘3:22, 호14:4
⑦. 성 - 렘33:6 ⑧. 저는 다리 - 히12:13
2) 하나님의 고침을 받는 조건
①. 회개와 기도 - 대하7:14 ②. 기도 - 대하30:20, 시30:2, 사19:22
③.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 - 렘3:22 ④. 회개 - 렘35:15
3) 하나님이 고치시는 방법
①. 손으로 - 욥5:18 ②. 말씀으로 - 시107:20
4) 주께서 고치시는 일
①. 믿음이 상한 자 - 사61:6 ②. 모든 약한 것 - 마4:23 ③. 모든 병 - 마4:23
5) 우리가 고쳐야 할 일
①. 길과 행위 - 렘26:13, 35:15
치유 설교에 대한 강해 (2)
1. 치유 설교를 하기 위해서는
1). 제목과 본문 선택을 잘해야 한다.
치유 설교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제목과 본문 설정을 잘해야 한다. 치유 설교는 그 색깔이 아주 뚜렷한데, 설교를 많이 해 보지 아니한 사람은 그 구별을 잘못하는 경우가 있다. 제목과 본문을 성도들이 듣고 볼 때 에메 모호하게 하지 말고 확실하게 해서 이 설교가 처음부터 치유 설교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하므로 설교를 듣는 처음부터 설교가 상한 자신의 심령을 치료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도록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처음부터 요절을 크게 말하게 한다든지 아니면 제목을 함께 외치는 것으로 설교를 진행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즉 자기 문제의 해답을 기대할 수 있도록 강력한 기대를 우발시키므로 출발을 하게 하는 것이다.
반면에 제목 설교는 설교의 호기심에 의해 경청하도록 설교의 진행을 감추며 한 가닥씩 풀어 가는 것이 좋다.
2).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계속적으로 반복 강조해야 한다.
치유 설교는 그 전제가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사랑하시고 도와주신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 복음 적인 사실을 듣는 성도들의 마음에 확실히 박혀 지도록 설교 내내 강조하는 것이 좋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그 마음에 자리를 잡게 되는 순간에 그 설교를 듣는 성도들의 마음의 상처는 이미 치료되기 시작을 하는 것이며 확신되어 뿌리를 내리면 완치될 수 있다.
3). 믿음의 설교다.
치유 설교는 하나님이 주신 사랑과 은혜를 믿도록 하는 설교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언제나 변함이 없지만 그 사랑을 받고 은혜를 받은 성도들은 시시 때때로 변화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에게 문제가 있음을 강조한다. 우리들의 믿음에 따라 아무 일도 아닌 것들이 깊은 상처가 될 수도 있으며 큰 고민들이 가벼운 깃털과 같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문제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라는 것을 강조한다.
4). 주실 은혜를 강조한다.
앞으로 하나님께서 주실 은혜를 강조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다. 이 말씀의 의미를 확실히 알고 앞으로 주신 은혜를 강력히 강조한다. 그러나 여기서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한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을 말해야 한다. 그런데 이 점을 너무 강조하면 듣는 성도들이 부담을 느끼게 되고 다른 신앙적 스트레스를 받게 되니 조심할 것이다. 그러나 이 점을 강조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몰염치한 성도들이 될 것이다.
5). 주신 은혜를 상기시킨다.
지금 받고 있는 은혜들을 상기시킨다. 자기 상처가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현재의 은혜를 까맣게 잊고 있는 경우가 많다. 우선 건강하여 교회에 와 설교를 들을 수 있다는 데서부터 시작을 하라. 받은 은혜를 강조함에 있어서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듣는 일에는 듣지 못하는 사람들의 불행을---, 병에는 고칠 수 없는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식으로 하면 좋을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금 주신 은혜를 확신시켜 자기가 병들고 상처받은 줄로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라 스스로 병들어 있음을 깨닫게 하면 치유 설교는 대 성공을 한 것이며 그 성도는 이미 그 깨달음에서 상처가 나아 버린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 성령 님의 도우심, 주님의 긍휼 하심을 강조해야 한다. 그 사랑과 긍휼 하심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에게, 내게 주신 것임을 누차에 강조하여 믿음을 유발시키라. 아멘으로 화답하게 한다든지 박수를 치게 한다든지 다 같이 합창을 하게 한다면 효과가 더 있을 것이다. 찬송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6). 우리가 할 일은 없고 모든 은혜는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강조하라.
성도들이 교회 생활과 신앙 생활에 피곤을 느끼고 권태를 느끼는 것은 힘이 들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오락을 할 때는 시간 가는 줄을 모르지만 공부를 할 때는 지겨워하는 이유와 같다. 교회 생활이나 신앙 생활을 오락하듯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성도들이 즐거움으로 이 일을 하게 하라. 그러기 위해서는 신앙 생활이나 사회 생활, 가정 생활 등을 억지로 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라. 억지로 한다는 것은 욕심이나, 불의, 자기 만족, 허영 등과 같이 바람직한 사고방식과 처신에서 생기는 것들이 아니다. 하나님의 순리를 따라 할 수 있도록 강조할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모델이 된 치유 설교 가운데 언급되어 있다.
축복과 구원의 근거가 주님이심을 강조하라. 내가 내 신앙을 지키고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고 순종하며 따라 가면 신앙 생활도 가정 생활도 아주 잘하게 될 것이다. 치유 설교는 성도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힘을 준다.
2. 치유 설교가 교회에 성정에 미치는 영향.
몇 해전 \'목회와 신학\'라는 잡지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설교를 듣고 교회를 나오는 사람이 38%라는 통계가 나왔다. 이것은 사람들이 교회를 선택하는데 설교가 가장 중요한 요건이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설교가 좋은 설교며 교회를 성장시킬 수 있을 것인가?
첫째, 쉽게 해야 한다.
설교를 듣는 사람은 천태만상이다. 무식한 노인들로부터 박식한 박사들 이 있고 남녀 노소가 있으며 그들이 설교를 듣고 받고자 하는 은혜도 모두 다 다르다.
그러나 그 들이 설교에 대해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알아듣기 쉬운 설교를 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는 모든 사람들이 알아듣기 쉽게 해야 한다. 아세아 연합 신학 대학의 「김 기홍」 교수는 설교학 강의에서 목회자가 설교를 할 때 설교를 듣는 사람들의 수준을 초등 학교 3-4학년 정도로 생각하라는 말을 자주 했다. 즉 설교하는 사람이 설교를 듣는 성도 누구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쉽게 설교하라는 말이다. 심지어 김 교수는 설교를 한 후에 교회 안에 가장 무지한 할머니에게 ‘설교를 알아들었는가’를 묻고 ‘못 알아들었다’고 대답을 하면 ‘그 설교가 실패작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둘째, 각 개인의 생활에 관계 있는 설교를 해야 한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나 신학 강의를 듣기 위해 교회를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활을 돕고 힘을 줄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설교를 들으려 나온다.
셋째, 치유적인 설교를 해야 한다.
한국의 개혁과 설교 연구 지라는 무크지가 설교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조사 발표한 일이 있다. 그 발표의 제목은 「10개 교회의 최근 10년간의 성장 곡선과 설교 내용」이다.
그들은 10개의 교회를 대상으로 조사를 했는데 5개 교회는 년간 20%이상의 성장률을 보인 교회로서 3,000명 이상이 모인 교회를 대상으로 하고, 5개 교회는 1,000명 이하의 성도들이 모인 교회를 대상으로 10년간 10%의 성장률을 보인 교회를 선택했다. 각 교회는 교파를 초월하여 설교 제목, 내용, 주보, 통계, 관계 서적들을 중심해서 조사했다.
이 통계의 분석에서 대 교회며 성장이 빠른 교회일수록 치유적인 설교를 크게 강조하고 있다 는 점이다. 치유적인 설교를 하는 교회는 성장을 하고 있는 반면에 다른 내용(특히 교리적인 설교― 교리적인 설교가 한국 교회의 성장을 둔화시킨다는 사실은 우리들에게 말씀의 정도를 걷는데 이상 기류가 형성되여 있음을 감지하게 한다)을 설교하고 있는 교회는 성장 속도가 느리거나 오히려 퇴조하고 있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치유적 설교의 위험인 복음의 진수를 잃지 않는 과오를 범하지 않는다면 치유적인 설교가 복음 전도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교회는 기쁨과 평안히 있어야 한다. 처음으로 교회를 찾아오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신 기쁨과 평안히 있도록 설교를 해야 한다. 이하 생략 (본인의 목회학 박사 논문인 “교회 개척의 이론과 실제”중에서 발췌함)
3. 치유 설교의 병폐와 함정들
1). 치유 설교는 성도들을 교만하게 하고 자만하게 할 수가 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심을 강조하다 보니 사랑 받는 자의 교만이 생길 수가 있다.
2). 치유 설교는 설교자로 하여금 듣는 성도들에게 지나친(비 성서적인) 아첨을 하게 하는 유혹이 있다.
특히 예화나 설교자의 개인적인 생각이 설교에 유입되는 경우에 생기는 문제다. ‘내 생각에는’하는 식의 생각을 발언하고 강조하지 말라. 그런 일들을 하나님께 망령된 일들이다. 근거 없고 꾸며낸 터부니 없는 예화도 마찬가지다.
3). 치유 설교는 성도들을 태만하게 한다.
태만한 성도들은 자기의 신앙 생활의 태만을 변명하게 한다. 하나님께서 다 알아하실 텐데 나는 할 일이 없다라고 변명하는 것이다.
4). 치유 설교는 성도의 의무를 태만하게 할 수 있다.
몸에 병이 있는 사람이 그 병으로 인하여 마땅히 해야할 일을 태만히 할 뿐 아니라, 오히려 필요 이상으로 타인의 도움을 바라는 것과 같은 영적 현상이 생긴다.
5). 치유 설교는 성도들을 어린아이로 돌아가게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