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의의

십자가의 의의

 

(엡 2:11)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만찬을 잡수신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찬미하시면서 기드론 시내를 건너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8제자를 아래에 두고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시고 깊이 들어가셔서 기도하시다가 유대 병정들에게 잡히시어 그날 밤새도록 심문 당하시고 마지막으로 빌라도에게 사형 선고를 받은 후에 통나무로된 십자가 형틀을 지시고 골고다로 가셔서 두 강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그 후 주님이 지시고 돌아가신 그 십자가가 기독교의 상징이되었으며 오늘날 많은 생명을 살리는 병원의 표식이 되기도 하였으니 이 십자가의 의의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바울사도는 에베소 교회성도들로 향하여 너희가 이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요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하여 십자가의 의의를 찾아 은혜받고자 합니다.

I. 새 사람 되게 하는 십자가입니다.

본문 15절에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사람을 지어\'라고 했습니다.

고후 5:17에는 \'그런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여기 이전 것은 옛 사람이요, 혈과 육신에 속한 사람입니다. 불신앙적인 사람이요. 정욕적이고 마귀적인 사람이니 곧 바로 죄악의 사람입니다. 이러한 죄악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새 것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6:6에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한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은 바로 우리 옛 사람이 못박힌 것이요. 죄가, 못박힌 것이요. 육신의 사람, 불신앙의 사람, 정욕과 더러운 욕망의 사람, 내 죄악이 십자가에 못박힌 것입니다. 바로 내 마귀적이고 사단적인 내 자아가 못박힌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십자가는 나의 옛 자아가 죽어버린 십자가입니다. 바로 갈5:24에 바울이 말하기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하였으니 나의 죄악의 요소 곧 사망의 요소를 다 죽여 없애버린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는 먼저 내가 죽은 십자가요, 내 사망의 요소인 죄가 죽은 십자가인 동시에 또한 내 새 생명의 십자가입니다. 로마서 6:6에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예수 십자가가 내 죄를 십자가에 못박아 없애 버렸으니 그 죄가 나를 종으로 삼지 못한다는 말이니 이는 곧 내가 그 죄에서 벗어났다는 말이요. 죽음에서 벗어났다는 말이요. 죽음에서 벗어났다는 말이요 또 옛 사람에서 벗어난 새 사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로마서 7:2에 남편있는 여인이 남편 있을 때는 그 남편에게 매였으나 남편이 죽으면 그에게서 벗어난다고 하였으니 죄가 있을 동안에는 죄의 종이다가 죄가 죽고 없으니 거기서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죄와 사망의 법이 나를 주장하다가 예수 십자가로 죄와 사망이 죽었으니 거기서 벗어나 생명을 얻는 새 사람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붉은 피를 흘리시고 돌아가신 그것은 바로 내 죄악의 사람이 죽음이요 그 죽으심 때문에 죄가 나를 떠나고 나는 죄에서 해방받아 정결한 새 사람으로 영생을 얻은 자가 되었으니 바로 십자가의 본질은 새 사람되게 하는 십자가입니다.

II. 화목의 십자가입니다.

본문 16절에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여기 \'십자가로\'란 말이 두 번 나오는데 먼저 것은 십자가를 통하여라고 번역할 수 있고, 후에 것은 십자가 안에서 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다시 살펴보면 십자가를 통하여 이 둘이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또 십자가 안에서 원수된 것이 소멸된다는 말입니다. 즉 십자가를 통해서 화목되는데 그것은 십자가가 원수된 것을 소멸해 버렸기 때문이란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아 하나님과 하나이었으나 범죄함으로 하나님과 인간이 멀어지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죄인된 인간은 하나님과 사귈 수 없게 되고 하나님의 진노를 당할 수밖에 없는 원수된 자입니다. 즉 롬1:21에 이른 바와 같이 인간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져서 하나님의 영광을 온갖 죄악으로 바꾸어 버렸기 때문에 마침내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여 모든 추악, 불의, 탐욕, 악의 등 모든 죄악으로 가득하게 되어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멀어질 뿐만 아니라 죄악으로 높은 담을 쌓게 되고 완전한 단절되고 말았습니다(사 59:1).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이 원수된 것이 소멸되어버리고 화목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원수되는 요소인 죄악을 소멸해 버렸으니 원수된 것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원인 무효가 되어버렸습니다. 예수 십자가는 죄를 없애버리는 것이니 원수될 죄가 없으며 또 그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목이 될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골1:20에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엡2:13에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다\'하였고, 14절에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라고 하였고 \'원수된 것을 육체로 폐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확실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 죄를 없이 하였으니 어찌 하나님과 더 원수가 될 수 있습니까? 그러니 바로 하나님과 우리는 화목할 수밖에 없으니 이 십자가의 본질은 화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십자가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화목만이 아니라 이것은 예수 안에 있는 모든 자의 화목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있을 수 없으며 우리 모두의 화목일 수밖에 없습니다. 고후5:18에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십자가 안에 있는 모든 자는 다 하나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운명하실 때 성전 휘장이 찢어진 것은 우리의 화목을 나타내심이니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의는 확실히 화목입니다.

III. 교회기초의 십자가입니다.

교회는 예수 십자가로 말미암아 세워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죄가 없어지고 새 사람으로 나고 하나님과 원수된 것이 소멸되어 화목하게 되었으니 이런 자는 에베소서 2장에서

첫째, 하나님과 부자의 관계가 성립되었습니다.

18절에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한 데서 바로 예수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가 그의 아들이 되게 된 것입니다.

둘째, 시민권의 회복입니다.

19절에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십자가로 시민된 것입니다.

셋째, 권속이 된 것입니다.

19절에 \'하나님의 권속\'이라고 했습니다. 십자가로 하나님의 권속이 된것입니다.

여기 이 세가지 관계는 모두 한 집안의 관계입니다. 이 집은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시는 집입니다. 바로 성전입니다. 바로 교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의 공로가 바로교회의 기초입니다. 십자가가 없으면 대속이 없고, 대속이 없으면 새 생명이 없습니다. 십자가가 없다면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십자가 없는 곳, 대속의 죽음이 없는 곳, 죄 문제의 해결이 없는 곳, 바로 사죄의 은총이 없는 곳, 하나님과 화목이 없는 곳은 교회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건물일 수 없으며 운집한 사람일 수 없습니다. 진정한 교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진정한 사명도 여기에 있습니다. 참된 교회의 사명은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입니다. 십자가로 말미암아 죄인이 구속받아 새 사람이 되고 하나님과 화목하는 데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생각하면서 예수님이 자신 십자가의 의의를 생각했습니다. 진정한 십자가의 본질은 내 죽음의 십자가입니다. 바로 나의 죽음의 표입니다. 그래서 앞서간 성도들은 예수 죽음은 내 죽음, 예수 부활은 내 부활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동시에 내 생명이요, 하나님과의 화목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기초입니다. 우리도 이 십자가 은혜에 감격하며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갑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은혜를 높이 찬송합니다. 또 크게 감사합니다.

연구1 영광의 십자가

영광의 십자가

(고전 1:18)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입니다. 유대땅 갈보리 사상에 예수 그리스도가 로마의 군인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것이 기점이 되어 발생한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기독교의 유일한 표상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학의 창시자요 기독교의 대전도자인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받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므로 자기는 십자가만 알고 자랑하고 전하기로 했다\'고 하였습니다. 과연 이 십자가는 오늘 전인류가 다같이 흠모하는 위대한 표상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십자가는 여러 가지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1853∼56년에 있었던 크리미아 전쟁 때 야전병원에서 봉사했던 나이팅게일의 공로에 의하여 시작된 적십자 운동은 가장 큰 부산물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나 적십자가 처음부터 그렇게 위대했던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본래 고대 동방 고대 여러 나라에서 죄수를 사형시키는 사형틀 중에서도 가장 흉악한 것이었던 것이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렇게 무서운 형틀로서의 십자가가 오늘에 와서 전인류가 다같이 흠모하는 위대한 표상이 된 것은 우리 기독교의 가장 큰 자랑이요 영광입니다. 또한 오늘 우리도 이 십자가의 증인이요 거기 동참하는 자로서 고난의 주님을 생각하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I. 죽음의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는 영광이기 이전에 사람을 죽이던 십자가이니다. 사람을 죽이되 가장 처참하게 죽이던 끔찍스러운 십자가입니다. 그것이 오늘에 이르러 영광과 흠모의 대상이 된 것에는 깊은 사연이 있습니다.

유대땅 베들레헴에 탄생하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그는 나사렛에서 선한 것이 날 수 없다는 선입관 때문에 처음부터 고난을 받아야 했습니다. 더우기 예수님의 사랑의 교훈은 빈부귀천에 차별이 없다는 교훈 때문인지는 몰라도 제자의 수가 더하여가고 따르는 무리가 많아지기 때문에 비로소 박해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결국은 종교적으로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다 하여 참람 죄 곧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와 국가적으로는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지 않고 비방했다는 반역의 죄로 고발을 당하여 마침내 빌라도의 재판을 받아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한 그 죽음의 십자가입니다. 그는 거기서 누명과 모욕을 당하면서 유혈이 낭자하도록 전신에 매를 맞고 발가벗긴 몸으로 오고 가는 이들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십자가에 양손과 양발에 못을 박히셨던 쓰라린 흉칙한 고통의 십자가를 지고 처절히 숨져가면서 그 흉악한 사형틀의 십자가를 졌던 것입니다. 죽음의 십자가는 곧 나의 죽음의 십자가입니다. 범죄한 자는 죽어야 합니다. 이는 죄의 삯이기 때문입니다. 그 죽음은 곧 나의 죽음입니다. 내가 죽어야 할 것을 주님이 대신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내 죄를 지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내 죄가, 그 십자가를 붉게 물들게 했습니다. 그것은 곧 내 죄 때문에 내 죽음을 대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거기 모든 인류의 죄가 모든 인류의 피가, 십자가를 붉게 물들였고 거기서 죽었기 때문에 그 십자가는 모든 인류의 십자가요 각자 개인 개인의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그 십자가는 온 인류의 십자가요 흠모의 십자가입니다.

II. 사죄의 십자가입니다.

만일 그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끝났다고 하면 그것은 오히려 절망의 십자가였을런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거기서 또 다시 다른 한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것은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그것은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운명하실 때 성소의 휘장이 찢어지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돌이 열리며 자던 성도들의 몸이 일어났던 사건때문입니다. 이로 인하여 백부장과 군인들이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고난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곧 그의 죽으심, 하나님의 아들의 죽으심은 우리에게 사죄와 용서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성전후장의 찢어짐은 대제사장만이 들어가던 지성소에 우리가 다 들어가게 되었다는 말이니 이는 우리의 모든 죄가 없어지고 이제는 겁 없이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는 모든 죄가 사하여졌고 없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거기서 흘리신 그 붉은 보혈이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씻어 주셨고 모든 죄에서 우리가 용서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십자가는 대속의 속죄표입니다. 십자가는 내 빛이요 가정과 사회와 국가의 빛이요 인류의 빛입니다. 십자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용서가 있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는 순간에 내 영혼이 속죄함을 받고 속죄의 기쁨과 영생의 즐거움을 체험하게 됩니다. 십자가는 영원한 사랑과 평화의 빛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교통을 가지게 합니다. 십자가는 인간과 인간을 화목하게 합니다. 유대인이나 헤랄인의 담이 무너집니다. 모든 세계의 동서의 교통, 남북의 교통도 십자가 외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광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 앞에서 우리의 모든 죄악을 고백합시다. 충성을 맹세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는 자는 모든 죄에서 자유를 얻기 때문입니다.

III. 승리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의 사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3일 만에 부활의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습니다. 파수꾼의 엄호에도 무덤은 비어 버렸습니다. 세마포가 정리되어 개커져 있었습니다. 예수를 친히 보았다는 숫자의 증가는 날로 더하여 갔습니다. 그 소문은 파죽지세요 흐르는 물이었습니다. 막을 길이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유다로 사마리아로 땅끝까지 이르렀습니다. 100년이 못가서 대제국 로마에 퍼졌습니다. 이에 당황한 로마제국은 십자가의 복음을 없애려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거꾸로 십자가를 지고 거기 매달려 죽었습니다. 매일 십자가에 십자가를 전하는 무리들을 매달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를 전하는 수는 날로 늘어만 가습니다. 비로소 313년 로마의 황제 콘스탄틴이 십자가 앞에 항복했습니다. 그는 십자가를 믿었습니다. 십자가 앞에 그의 삶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형벌은 영영히 사라져 버리고 십자가는 승리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지신 십자가의 승리입니다. 창세기 3:15에 \'뱀의 후손은 여인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할 것이요 여인의 후손은 뱀의 후손의 머리를 상할\'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다 이루었다고 하신 속죄사역의 완성인 동시에 완성한 승리의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염려하지 말라 나사렛 예수가 이기셨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로마의 십자가는 예수를 처형했고 예수의 십자가는 로마의 십자가를 이 세상에서 말살시켜 버렸습니다. 이제 십자가는 인류의 증오의 대상이 아니며 사랑과 행복과 생명을 약속하는 승리의 표상으로 그 이미지를 바꾸어 놓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세계의 역사가 바뀌고 말았습니다. 십자가의 도는 멸망한 도가 아니라 승리와 생명의 종교가 되었습니다. 아시스의 성자 프랜시스코는 십자가를 깨달은 뒤에 두 가지 기도를 했습니다.

첫째, 주 예수여 제가 죽기 전에 은혜 주시기 바랍니다. 내 영혼과 육체가 이 괴로움을 통해 십자가를 체험하게 하고 둘째, 우리위해 지불하신 사랑을 마음 속에 간직하게 하여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출생 6주간 만에 안질 때문에 병원에 가서 오진으로 말미암아 실명이 도어 평생을 맹인으로 산 파니 잔 크로스비 여사는 1820∼1915년 100여 년을 살면서 6천편의 찬송을 작사하고 모든 사람을 위로한 자였는데 그는 고백하기를 \"흑암은 외계의 사물에 어둠을 줄 수 있으나 하늘 나라를 향한 나의 소망의 빛을 가리우지는 못한다 하나님은 나의 시력을 거두어 가신 대신에 나의 영안을 열어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능력으로 내가 일생을 일하도록 하신 것을 나는 믿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이 찬송을 지었습니다. \"십자가로 가까이 나를 이끄시고 거기 흘린 보혈로 정케하옵소서 십자가 십자가 무한 영광일세 요단강을 건넌 후 무한 영광일세 십자가에 가까이 의지하고 거기서 천국가도록 항상 머물겠네…\"우리는 크로스비 여사가 예수의 십자가를 깨달은 이후에 그 십자가의 승리가 그의 승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십자가를 발견한 자들의 영광스러운 삶들을, 승리의 삶들을 볼 수 있습니다. 토마스 아킴퍼스는 \"그대는 온 천하여 다니면서 십자가를 보라 더 좋은 것이 있는가 찾아 보아라 그대가 십자가를 진다면 그 십자가는 그대를 져 줄 것이고 마침내 그대가 원하는 곳으로 인도해 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십자가는 구경하기 위한 십자가가 아니라 신뢰와 복종을 요구하는 신앙의 대상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영광의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삶은 승리하는 삶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연구2 성도의 자랑인 십자가

성도의 자랑인 십자가

(갈6:11)

바울은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만이 자기의 삶이라고 하였습니다. 가가와 도요히꼬씨는 \"십자가 묵상\"이란 책에서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실때까지는 자신이 메시야로서의 사역이 끝난 것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에 한번도 자기를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고 하신일이 없고 항상 이르기를 이를 알리지 말라고 하셨다\"고 하면서 이것이 바로 그의 십자가의 비결이라고 말했습니다. 십자가를 빼 놓으면 성경이 무의미하고 그 비결을 모르면 속죄의 도리를 알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시편 22편과 이사야 53장의 예언이 성취될 때까지는 메시야로 자처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또 그는 군중들이나 제자들이 혁명을 일으켜서 그를 왕으로 모시고자 했으나 그러한 방법으로 임금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 아니었고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통해서 승리해야 할 것을 아셨기에 피하셨습니다. 그의 생애 33년의 단명한 것이요, 평범한 생애이었으면서도 가장 값진 열정적인 것이요, 우주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는 십자가의 연속된 생활을 하셨으니 하늘에서 내려오심부터 십자가에 못박히시기까지 십자가의 행로였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없는 기독교는 이을 수 없으며 그래서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이요 교회의 표식이 되었습니다. 로마의 무서운 사형틀인 십자자가가 사랑의 십자가로 바뀐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생애와 십자가의 죽음으로 형벌의 십자가는 살리는 십자가가 되었으니 육신을 살리는 병원의 표식이 십자가요 영혼을 살리는 교회표식이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십자가만을 자랑한다고 하였는데 오늘 이시간 그 십자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I. 십자가는 우리에게 죄를 가르쳐 줍니다.

인간의 최대 근본문제는 죄에 대한 문제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십자가는 우리에게 죄가 얼마나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죄는 회개하지 않으면 안 될 무서운 죄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고 했습니다(눅 3:3). 인간은 죄에게 팔린 노예로 그 안에 갇혀서 죄의 법을 따라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죄는 하나님께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으므로 하나님께 감추지 못합니다. 죄는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오지 않을 수없고 죄는 벌로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죄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죄의 형벌은 미래에 받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받습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는 저주받아 죽었고 부자와 나사로 비유에서 부자는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 던지웠습니다. 이렇게 죄는 심각하고 맹렬하고 무서운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십자가는 이러한 인간의 고통을 홀로 담당한 가장 위대하신 분이 지신 십자가입니다. 이렇게 무서운 죄를 위하여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죄가 이런 고통을 준다는 것을 다시 알게 하였습니다. 죄가 없었다면 예수의 십자가의 고통이 필요 없었으니 죄가 있는 한 십자가도 필요합니다.

II.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쳐 줍니다

하이트는 말하기를 \"십자가에서 죄는 드러났고 썩은 것이 정화되었다. 죄는 최악을 다했으나 패했다. 악한 근성을 드러냈으나 그리스도의 사랑에는 이기지 못하였다\"고 갈파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에서 나타났다\'고 강조했습니다(요 15:13).

또한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으니 죄인을 위하여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했습니다(롬 5:6).

이 십자가는 사랑이요 생명이요 구원하는 힘입니다.

카넬은 \"구원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잉태된다. 성부는 구원을 계획했고 성자는 실행했고 성령은 그것을 응용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랑은 기계적인 것이 아니며 논리적인 것도 아니며 도덕적인 것이기 때문에 사랑을 받는 자는 받은 만큼 보답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 보답이 또한 사랑입니다(요 14:21). 그 사랑은 계명을 지키는 사랑입니다(요 13:3)

고구엘은 \"사랑으로 용서함받는 사람에게는 죄의흠집이 없으니 용서를 받는 자가 용서해 준 예수님에게 은혜를 갚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천만분지 일이라도 있는 힘을 다해서 그저 보답할 뿐이지 갚을 수는 없습니다.

이 십자가는 무서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난 것입니다.

III.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인간의 범죄에 대하여 용서할 수 없는 하나님께서 그 무서운 인간의 범죄 때문에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시지 않으시면 안 될만큼 인간의 죄가 심각하였던 것을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알게 하시고, 그 죄악으로 인하여 사람을 죽이지 아니하시고 자기의 외아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한 사랑을 나타내 보이신 것이며 또 예수님께서 이 십자가를 지시지 않으면 아니되었던 것이 하나님이 계획이 었으며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범죄한 인간은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야 마땅했지만 그리스도께서 인간대신 십자가를 지셨씁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사랑을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나타내셨고, 이를 통하여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계획하셨습니다. 그 계획이 곧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하나님께로서 오는 심판을 막는 행동인데 주님이 자원하여 취하신 것이니 이것은 예언의 성취입니다. 이 십자가를 통한 구원이 하나님의 계획하신 바였으니 십자가 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 기사가 벌써 고난의 시작이며 십자가의 시작인데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였으며 일평생의 생활이 모두 하나님의 정하신 바대로 행하셨으니 모두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십자가 그늘에서 자라셨으며 생활하시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서 자기의 생의 목적을 달성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셨는데 그 하나님의 뜻이 십자가가 아니겠습니까? 이 아버지의 뜻을 이룸이 그리스도의 위대함입니다. 구세군 창시자인 부스 대장의 딸 마리암 부스(Mariam Booth)가 전도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마지막 병으로 죽을 때 친구가 와서 조롱했습니다. 그때 그 마리암 부스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도 위대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은 더 위대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십자가를 지는 것은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임을 명심하여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하겠습니다.

IV. 십자가는 속죄의 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중에 \'인자가 온 것은 섬기려 하고 많은 시간을 위하여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섬긴다는 것은 봉사요, 자기의 목숨을 주려함은 봉헌이요, 주려함은 봉납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만 우리가 죄속함을 받은 것입니다. 이 길밖에는 우리에게 구속의 방법이 없습니다. 바울은 이 십자가의 도 외에는 구원의 방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V. 십자가는 승리입니다.

죄와 사망에서의 승리입니다(고전 15:54)

십자가가 있는 곳에는 정죄가 없으며 형벌이 없으며 죽음이 없으며 고통이 없으니 이는 곧 승리인 것입니다.

이 십자가는 죄의 심각성을 보여 주고 하나님의 사랑의 상징이며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 하나님의 뜻이며 구속의 길이며 승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와 같이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나님의 뜻에 복종한 십자가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십자가를 통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우리가 이 십자가를 자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바라기는 여러분의 삶이 다 하는 그 날까지 주님이 지신 십자가를 자랑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연구3 인류를 위한 십자가

인류를 위한 십자가

(사 53:4)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요즘처럼 개인적 이기주의, 집단적 이기주의가 팽배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남을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한다는 말은 생소하게 들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물론 드물게 이러한 희생정신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언론들이 대서특필하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는 전반적으로 앞에서 언급한 두 종류의 이기주의가 포화상태를 이루고 있는 형편이며,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할 줄 아는 공동체적 의식의 결여는 부정적 사회 문제를 심화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매우 특별한 희생의 죽음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데, 이기주의가 전혀 베재된, 온전히 남을 위한 죽음, 인류를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에 관해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은 진리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I. 죄아래 있는 인간의 상태를 교훈함

그리스도의 대속적이 죽음은 모든 사람이 처하여 있던 상태가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절망적이었습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무론하고 모두가 죄 아래 있었으며 거기서 벗어날 만한 어떤 대책도 가지고 있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이와같은 인간의 상태를 다음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을 거역하는 인간입니다(삼상 15:22)

모든 일에는 원리와 법칙이 있게 마련이며 이것이 존중될 때 문제가 생기지 않는 법이듯이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집니다. 아주 값비싼 어떤 기계를 작동시킨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거기 부착된 설명서를 무시하고 임의로 그것을 취급한다면 기계가 정상적으로 작동이 되지 않음을 물론, 심각한 고장을 일으키게 될 게 분명합니다. 사람이 정상적으로 활동하고 구실을 다하기 위해서 적용되어야 할 원리와 법칙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인데, 모든 사람이 끊임없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가운데 있었으므로 인류의 문제는 절망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적으로 황폐한 상태였습니다.

2. 사탄의 지배 아래 있는 인간입니다(엡 2:2)

이 세상에 속하여 죄와 더불어 살아가는 인류에게 있어서 사탄의 지배는 필연적이라 하겠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의의 자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사탄의 지배를 받지 않으나 죄 아래 있는 사람, 세상에 속한 모든 사람은 사탄의 지배 아래 있으므로 참된 평안이나 기쁨을 알지 못한 채 소망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탄의 제일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는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해서 찾아오는 우리의 대적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까지도 넘어뜨리기 위해 틈을 엿보며 끊임없이 활동합니다.

3. 지옥을 향해 달음질하는 인간입니다(롬 6:23)

하나님께서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불변의 법칙을 정해 두셨으므로 죄 아래 있는 사람은 아무도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없으며, 지옥 형벌을 향해 달음질하게 될 뿐입니다. 우리 가운데 지옥을 경험한 사람이 아무도 없으되 성경의 가르침을 통하여 우리는 그 곳이 영원한 절망의 장소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곳은 입구는 있으되 출구는 없는 불못, 고통의 장소입니다.

II. 인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교훈함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은 인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어느 정도 크고 놀라운 것인지를 잘 보여 줍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떤 언어로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없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1. 형벌보다 용서를 기뻐하시는 사랑입니다(겔 18: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음에도 그분은 형벌보다 용서를 기뻐하시기 때문에 이를 위한 방편으로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정죄는 사탄이 기뻐하는 일이고 용서는 하나님의 마음임을 알아성도들은 정죄하기보다 용서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2. 아들을 우리대신에 죄로 삼으신 사랑입니다(고후 5:21)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아들이신 예수께 담당시킴으로써 우리가 죄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우리 가운데 이기주의의 지배를 받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와 같은 사랑 앞에서 마땅히 부끄러움을 느끼고 회개해야 합니다.

3. 구원의 길을 넓게 열어 놓으신 사랑입니다(행 16:31)

사람이 세상에서 출세하고자 하면 통과해야만 할 관문들이 여럿있으며, 그 가운데는 어려운 것들도 적지 않은 법인데,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열어 놓으신 구원의 길은 누구라도 쉽게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즉 예수를 믿기만 하면 모든 죄의 속박에서 풀려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III.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

1. 우리가 죄인되었을 때에 대신 죽으셨습니다(롬 5:6)

그리스도는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살리시기 위한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습니다. 이 죽음은 인류 역사 가운데서 가장 위대한 죽음이었고, 우리에게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하는 죽음입니다.

2.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후사가 되게 하셨습니다(롬 8:17)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희생하심으로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후사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그나라를 우리가 소유할 수 있도록 특권을 부여받은 것은 그리스도의 희생의 대가임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3. 우리가 맡은 일에 충성할 것을 요구하십니다(계 2:10)

은혜를 입은 우리에게 주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충성뿐이며, 이 역시 우리 자신을 위한 요구입니다. 그가 맡기신 직분에 충성하는 것이 우리를 살리신 주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입니다.

인류를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이 갖는 의미와 중요성은 아무리 많이 강조한다 해도 지나치다 할 수가 없을 만큼 우리 모두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이전 상태를 돌이켜 보게 하고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지 알게 해 주며,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우리가 누리게 된 축복과 특권에 관해 교훈하여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