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눅 23:39-45, 권다니엘목사)

우리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라고 하는 것 믿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잘 알고 있습니다. 기독교 하면 십자가, 십자가 하면 기독교, 기독교 없는 십자가는 무의미하고, 또 십자가 없는 기독교는 이미 기독교가 아닙니다. 여러분! 수많은 종교 중에도 우리 기독교는 십자가 중심의 종교입니다. 기독교의 중심에는 십자가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 십자가는 우리  기독교의 가장 핵심적인 교리이고 중심적인 사상입니다. 기독교의 모습을 다 갖추고 있어도 십자가가 없다면 그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여러분, 그런데 오늘 이 십자가와 나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아무런 생각 없이 형식적으로 예수 믿는다면 우리 신앙생활은 무의미한 신앙생활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우리 그리스도인과는 떼레야 뗄 수 없는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그리고 십자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1. 수난의 십자가입니다.
성경에는 수난 사건이 274번이나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91번이 예수님의 수난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리고 그 91번 중에 24번이 고난주간인 일주일 안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보통 십자가에 달리면 사흘만에 죽습니다. 그것이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에 다리를 꺾어 죽음을 재촉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이 십자가가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이것을 깊이 깨닫고 깊이 생각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매우 중대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고난과 멸시, 천대를 당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은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입니다. 십자가 없는 영광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이 아침에 이 십자가가 여러분의 마음 속에 임재하고, 여러분의 마음 속에 이 십자가의 깊은 감격과 체험을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큰 고통을 당하고 계실 때 그 십자가 아래서 로마군병들이 예수님의 옷을 누가 가질까 제비 뽁으면서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심했던 것처럼 오늘날도 이 십자가가 우리와 더불어 아무런 관계가 없이 무관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십자가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이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2. 구원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분기점이다.
여러분, 오늘 한국이나 외국에 가면 교회마다 꼭대기에 십자가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밤이 되면 그 십자가에서 빨간 불이 찬란하게 비추입니다. 왜 교회마다 이 십자가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까?

1) 구원의 분기점이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는 우리의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십자가는 우리의 구원이기 때문에, 십자가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이 십자가는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 양 편에 두 강도가 매달려 있습니다. 한 강도는 예수님께 말하기를 \"이 예수님은 아무런 잘못이 없어. 예수님은 선한 분이야.\" 하고 바르게 고백을 합니다. 그러면서 \"오늘 하나님의 나라에 임할 때 나를 천국에 데려가 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 있는 강도는 예수님을 비방합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우리들을 십자가에서 내려오게 해달라.\"고 예수님을 야유합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순간에 두 사람의 영혼이 서로 갈라진다는 것입니다. 한편에 있는 강도는 \"주여 주의 나라에 임할 때 나를 생각하소서.\" 그 말을 듣고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천국에 있겠다는 것입니다. 한편 강도는 지옥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십자가라고 하는 검ㅅ은 무엇인가하면 우리의 구원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십자가를 의지하고, 믿고, 바라보고, 십자가를 가까이 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많은 기적 중에서 가장 큰 기적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구원이라고 하는 기적입니다. 신비 중의 신비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다고 바라보기만 한다고 어떻게 구원을 받겠습니까? 정말로 신비 중의 신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사람, 십자가의 구속과 사랑을 믿는 그 사람만이 구원을 받게 됩니다.

2) 영생의 분기점이다.
여러분! 십자가는 또한 우리 인생에 있어서 삶의 분기점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십자가를 바라보는 그 사람은 생명을 얻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은 사망 가운데 빠지게 됩니다. 바로 영생과 사망의 분기점이 되는 것입니다.

3) 행복과 불행의 분기점이다.
십자가는 행복과 불행의 분기점이 됩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행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구속의 사랑을 믿는 그 사람, 그 사람 속에는 행복이 있습니다. 참 행복은 오직 십자가 안에만 있습니다. 세상에서 십자가 없이 행복을 찾아보십시오. 거기에는 복이 없습니다. 세상에서 온갖 것을 다 소유해봐도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 것을 다 소유해보고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누렸던 솔로몬의 최종 고백은 \'헛되고 헛되니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세상 것들은 다 헛되다\'는 것입니다. 오직 십자가 안에만 행복이 있습니다. 십자가 안에만 기쁨이 있습니다. 십자가 안에만 참 삶이 있습니다. 행복과 불행의 분기점이 되는 것입니다.

4) 의와 불의의 분기점이다.
십자가 안에만 의가 있습니다. 죄가 있는 곳에는 행복이 없습니다. 죄가 없는 곳에만, 죄를 용서받은 곳에만 행복이 있습니다. 여러분, 죄 가지고 세상 부귀영화 다 누려보십시오. 행복하겠습니까? 행복하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십자가의 보혈로 죄인 된 우리들의 죄가 씻음받고 용서함을 받고, 정결함을 받고, 깨끗하게 되어 의인이 되었을 때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라고 하는 것은 의인과 죄인의 분기점이 되기도 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십자가는 죄인과 의인을 갈라놓습니다. 사망과 영생을 갈라놓습니다. 행복과 불행을 갈라놓습니다.

5) 진리와 비 진리의 분기점이다.
또한 십자가는 진리와 비 진리를 갈라놓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자는 예수 안에서 진리대로 행하게 되고 진리대로 살게 되지만 십자가를 멀리하고 십자가를 모르는 자는 비 진리 안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십자가는 우리의 삶의 분기점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자, 보십시오. 예수님 양 편에서 십자가에 달렸던 두 강도는 순간의 고백으로 인해서 사망과 영생의 분기점이 되어버립니다. 참 중요한 것입니다.

6) 용서와 사랑의 분기점이다.
십자가는 용서와 사랑의 분기점입니다. 여러분, 이 십자가야말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3. 용서와 사랑의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

1)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아가페의 사랑, 즉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쉽게 예를 들어본다면 어머니가 아기를 낳았습니다. 아이를 키웁니다. 그런데 아이가 필요하면 먹을 것을 줍니다. 입을 것을 줍니다. 밤에 잠을 잘 자는 아이도 있지만 밤엔 잠을 안자고 눈만 말똥거리고 울다가 아침엔 잠을 자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부모가 애를 먹습니다. 또 아이가 아프기라도 해보십시오. 밤새 눕지도 못하고 아이를 안고 일어서서 얼러주며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이가 부모에게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고맙다는 말도 안하고, 고맙다는 행동도 안하고 부모를 위해서 주는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이것이 무슨 사랑입니까? 바로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의 그림자라고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를 이렇게 사랑했습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범죄합니다. 하나님을 힘들게 합니다. 말씀에 불순종합니다.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방황할 때도 있습니다. 반항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조금도 마다하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사랑해주십니다. 끝까지 사랑해주십니다. 영원토록 사랑해주십니다. 변함없이 사랑해주십니다.

2) 용서의 사랑이다.
하나님께서 왜 독생자를 보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셨는가? 독생자를 왜 이 땅에 보내시고 숱한 고난을 당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또 독생자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웠겠습니까? 왜 그런 희생을 감수하면서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까? 또 우리 주님은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것은 죄 값은 사망입니다. 죄를 범하면 죽어야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 죄 때문에 인간을 죽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 되시며 공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그런고로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인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인류의 죄를 다 대신 짊어지시고 우리가 당해야 하는 고난, 우리가 당해야 될 희생, 우리가 당해야 할 괴로움, 우리가 당해야 될 아픔과 죽음을 우리 주님이 대신 다 당하셨습니다. 자,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예수를 믿는 자마다 온 인류가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이 실현되었습니다. 그런고로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공의가 만나는 장소입니다.


4. 소망의 십자가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이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십자가는 소망입니다. 이 땅의 어느 곳에도 소망은 없습니다. 다 절망 뿐입니다. 좌절과 낙심 뿐입니다. 어둠과 그늘에서 곤고하게 괴로움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믿는 사람, 십자가를 붙드는 사람, 그 사람 속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십자가를 우리 마음 속에서 날마다 명상하고 묵상하고 사도바울처럼 날마다 십자가를 자랑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인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1) 우리도 주님을 사랑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와같이 십자가의 사랑을 받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날마다 주님을 사랑해야 되겠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생명을 버려 죽어주심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그 주님을 우리도 사랑해야겠습니다. 여러분, 세상의 물질보다 더 주님을 사랑하시고, 세상의 쾌락보다 더 주님을 사랑하시고, 자녀보다 더 주님을 사랑하시고,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주님을 사랑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 구속의 은혜를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을 생각해서 주님을 사랑할 뿐 아니라, 그 은혜 그 사랑에 날마다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세상에 나를 위해 죽어주시다니. 요즘 가끔 그런 기사가 납니다. 어쩐 개가 주인을 위해서 이렇게 이렇게 희생했다, 또 어떤 소가 주인이 죽은 다음에 주인의 죽음을 서글퍼하며 묘지를 찾아갔다 그래서 장례식을 치러주고 비석을 세워주고 영원히 글을 남기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신 우리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우리 예수님이 죄로 인하여 영 죽었던 우리들을 위하여 머리부터 발 끝까지 죄로 검게 물든 우리들을 위하여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어주신 것에 대하여 감격이 없어서야 되겠습니까? 늘 감사하면서 살아야겠습니다. 이 감격이 있는 사람은 어떤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환난, 시련에도 승리합니다. 이 감격이 있는 사람은 결코 범죄하지 않습니다. 죄를 끊어버립니다. 깨끗하게 바로 살아갑니다. 설령 범죄했더라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됩니다.

3) 헌신, 봉사, 충성해야 한다.
여러분, 이 십자가의 뜨거운 사랑을 체험한 사람은 주님을 위해서 아낌 없이 헌신하고 봉사합니다. 우리가 벌써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고 봉사하고 드릴 때에 아깝고 부담이 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엊그제 감동적이고 은혜로운 일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 어느 권사님의 남편이 얼마 전에 50대의 젊은 나이로 먼저 천국으로 갔습니다. 얼마나 슬프고 외롭겠습니까? 경제적으로도 많이 어려울텐데 권사님은 순직한 남편이 받은 위로금 중 십일조 2천만원을 드리고 건축헌금으로 2천만원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가지고 있는 집도 교회의 이름으로 명의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습니까?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은 수난 주일입니다. 이번 한 주간은 주님이 고난당하신 수난 주간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면서 이 한 주도 주 위해 경건하고 깨끗하게, 우리의 남은 생애도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복된 생애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