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기도 - 하나님과의 교제 I. 하루아침에 크는 버섯보다는…
중국 우화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한 옛날 어느 곳에 세 신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의 이름은 정과 숙 그리고 혼돈이었습니다. 어느날 혼돈 신이 정과 숙 신을 초대습니했다. 진수성찬에다 풍성한 대접을 받은 정과 숙은 고마운 마음에 혼돈 신에게 좋은 선물을 해주자고 하며 의논 끝에 혼돈 신은 항상 혼돈 상태에 있어서 뚜렷한 얼굴이 없기에 미남의 얼굴을 만들어 주기로 결정했습니다. 드디어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반듯한 이마, 부리부리한 눈, 우뚝한 콧 망울, 잘생긴 귀, 굵직한 눈썹 그리고 마지막으로 붉은 입술을 완성한 뒤 혼돈 신에게 한 번 웃어 보라며 툭 치니 혼돈 신은 죽어 있었습니다. 혼돈 신은 혼돈 상태에 있는 것이 바른 삶인데 질서정연함을 강요했으니 그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사이 많은 십대들이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과 여건에 대해 긍정적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복권을 사기도 하고 화려한 연예인이 되는 꿈도 꾸는 다분히 요행적인 삶을 바라고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요행을 바라는 것만큼 어리석고 못난 일도 없을 것입니다. 참된 삶이란 어떠한 역경과 고난 앞에서도 서서히 그것들을 변화시켜 나갈 때 그 앞에 보이는 무한대의 가능성과 거기에서 우러나는 아름다움이 있는 법입니다.
하루 아침에 잘 크는 버섯이 있습니다.특히 무서운 독이 들어 있는 독버섯은. 더더욱 하루가 다르게 쑥쑥 성장합니다. 그러나 단단한 거목은 오랜 세월을 두고 조금씩 성장해 갑니다. 성장 도중 크고 튼튼한 뿌리를 내리기 위해 음산하고 축축하고 차가운 때로는 징그러운 뭇 벌레들이 스멀대는 어두운 땅 속을 잘 견디어 냅니다. 나무는 이 고역의 땅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땅에 순응하고 길들여집니다. 고통과 아픔을 인내하는 땀방울 속에서 서서히 성장해 가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성장임을 가르쳐주는 자연의 계시입니다. 11호 자가용(?)을 몰고 다니다가 대형 교통사고가 난 적이 있었던가요? 한시라도 빨리 가고자 하는 조급함에서 영원한 인생의 추월이 있음을 왜 순간순간 망각하고 사는 우리입니다. 지금은 꽃이 아니어도 좋다고 말해야 합니다. 순리대로 가노라면 언젠가 장성한 분량에 이르지 않겠는가라고 항상 마음으로 다짐하며 살아야 합니다.
갑자기 교회에서 은혜 받았다고 껑충대는 아이들을 보면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앞서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쉽게 주님을 따르겠노라 큰 소리쳤던 베드로는 쉽게 주님을 부인하지 않았습니까. 다혈질적이고 충동적인 행동보다는 지속적으로 서서히 무언가를 이루어 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시나브로 성장하며, 병든 가지는 잘라 주기도 하며, 쓰러지면 기둥으로 받쳐 주기도 해서 아름드리 거목이 되길 바라는 것입니다. 이미 다 자라 버린 나무를 억지로 새로이 다듬으려 든다면 그 나무는 필경 시들어 죽고 말 것입니다.
생활 곳곳에 잘못된 습관이나 게으름의 가지를 자르고 삶의 순간 순간 넘어지는 나를 예수의 기둥에 동여매어서 어떠한 비바람 속에서도 견디어 나갈 때 어느 날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되는 것이라고 버섯을 보며 생각에 잠깁니다. 기도는 이처럼 우리를 서서히 자라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하나님과의 만남이요, 교제이기 때문입니다.
II. 하나님과의 교제에서의 걸림돌
하나님과의 교제에서의 걸림돌은 다름 아닌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신앙 생활의 한 단면일 수 있습니다. 즉, 지금까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방패로 세상을 편안하고 즐겁게만 살아왔습니다. 편안함과 안락함, 부와 명예를 목표로 살아왔다. 빛으로 둘러싸인 밝은 영광의 십자가, 다만 무병 장수, 만사 형통, 물질 풍요, 최고 명예가 있는 십자가만을 바라보고, 그것이 전부인양 알고 추구해 왔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광만을 목표로 삼고, 세상 어떠한 사람보다 잘 먹고 잘 살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추구해 왔습니다. 부활이 있기까지의 십자가는 본받고 추구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걸림돌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버리고 부활하신 예수의 모습만을가지고 살아온 모습들과 자세들. 기도 생활에서도 작은 언어 몇 마디 소리 내어 외치고 나서 \'\'하나님 앞에 1시간 정도 앉아 있었으니 이만하면 하나님과의 교제는 할만큼 했다.\'\'고 스스로 만족해했던 오만하고 거만한 태도들. 사람에게 칭찬과 높임을 받기 위해, 남 앞에 자랑하기 위해 \'\'그래도 혹시\'\' 하며 세상에 미련을 두고 실 뿌리 하나라도 세상 속에 두고자 했던 지나친 \'\'안전 의식\'\'. 이 모든 것이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힘들고 어렵게 하여 결국 자기가 만든 감옥에 갇혀 죽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가위로 편집하여 보기에 좋은 모습만을 가지려는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세, 내가 원하는대로 되기를 기대하고 바라면서 하나님께 기도해 온 모습들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끌고자 하시는 참 의도를 외면하게 한 걸림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차분한 마음으로 돌아와 하나님과의 교제에 더 심혈을 기울여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III. 하나님과의 교제에 임하는 바른 자세
하나님과의 교제가 바르지 못하면 결국 우리의 많은 신앙적 열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다른 길로 가게됩니다.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작은 꼬마시절에 목사가 될 꿈을 가지고 있었으며 때때로 빈의자에 오라서서 목사 흉내를 내며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는 노래에 천부적인 자질이 있어서 전혀 음악공부를 하지 않았음에도 수도원 합창단단원이 되었으며 젊은 청년이 된 그는 열심히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는 음악감상에 열의도 대단해서 한때는 앉은자리에서 바그너의 작품 로엔그린을 계속해서 열번이나 들은 일도 있다고 합니다. 또 오페라의 음악을 듣고 콧노래로 이를 재생시켜 다른 친구들에게 들려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는 역사 철학 예술 등 각 방면의 책을 즐겨 읽었으며 재능 또한 대단하였습니다. 그가 군대에 있을 때 참호를 파고 은폐하여 있는 곳으로 작은 강아지가 한 마리 다가왔습니다. 그는 그 강아지를 붙잡아 먹이를 주고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둘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가 그 강아지를 훔쳐가 버리자 그는 슬픔에 잠겨 며칠 동안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는 전혀 어떤 사람에게도 어떤 짐승에게도 해를 끼칠 줄 모르는 사람 같았습니다. 특히 그는 집안이 가난하거나 여타의 결함으로 정상적인 사람들처럼 풍요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사랑하였습니다. 한번은 가난한 사람에게서 달걀 두 개를 받아 쥐고 감사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작은아이가 의자 머리에 부딪쳐 슬픔을 같이 하고 아이를 대신하여 그 의자를 때려주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서른 네 살 때에 자기 어머니에 대한 훌륭하고 아름다운 시를 써서 사람들에게 어머니를 사랑하라고 권면 하였습니다.이 사람이 도대체 누구인지 알고 싶을 것입니다. 그의 이름을 들으면 크게 놀라게 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는 바로 \'\'아돌프 히틀러\'\'입니다.
그 사람이 후일에는 지구 역사상 가장 잔인하고 악마적인 사람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즉 이처럼 한 인간이 어떤 인간으로 역사에 존재를 남기느냐는 우리가 지속적으로 누구와 교제하느냐와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여 그분의 것이 되지 아니하면 우리는 악의 도구가 될 수 도 있습니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모든 재능은 선과 악의양면으로 쓰여질 수가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앞에 언급한 내용들로 인해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께 대해 어떤 자세로 나아가야 하는지 짐작이 될 것입니다. 십자가와 그리고 그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풍성하고 풍부한 교제를 하는 사람은 결코 빗나갈 수 없습니다. 참된 영광은 십자가의 고난뒤에 있다는 것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제의 목표는 십자가를 이해하고 인생의 십자가를 지는것을 배우는것이라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교제로 우리를 초대하시는 성령님의 최종 의도에 맞추기 위해 우리가 우리의 삶의 궤도를 전격 수정해야 합니다. 즉 지금까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구해 왔던 것보다는 우리가 구하지 않았던 것, 즉 구하는 것의 반대편에 있었던 십자가를 향한 삶으로 방향 전환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지금껏 우리가 구하지 않은 것에 가까이 있고, 찾지 않던 것에 가까이 있고, 고통과 부족함 속에 있는 십자가를 구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보좌로 나아가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그런 기도로 나아가는 대표기도가 되어야 성도들을 하나님의 보좌로 이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본받아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도록 다짐하는 기도야말로 가장 위대한 기도입니다. 그리고 기도에 이어 십자가를 타고 가는 그리스도인 아니라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교제하는 데 있어 기도의 언어뿐 아니라 그보다 훨씬 많고 무궁무진(無窮無盡)한 교제 방법들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분은 영적인 느낌, 감각, 이미지, 환상, 영적인 소리, 떠오름, 전율, 마음의 소리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무수한 방법들을 가지고 우리의 기도에 찾아오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러한 하나님의 준비하심과 계획하심에 대해 하나님과의 교제를 단 0.1%라도 준비할 마음을 지닌다면 지금보다도 훨씬 더 많은 영적이 풍요함을 누릴 것을 확신합니다.
십자가는 지지 않고 오로지 부활의 영광만을 먹고살겠다는 이기적인 욕심과 세상과 사람들의 칭찬과 박수를 얻기 위해 애쓰던 비굴한 행태를 벗어 던지고 예수님께서 가신 그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 때 우리의 기도는 보다 더 큰 영적 체험이 일어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