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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기도의 신학적 입장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명하셨고 그 자신이 다른 모든 것들에서 처럼 기도의 한 예를 보여 주신 바 있다. 곧 주기도문 이 그것인데 그 기도를 통하여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모든 인류는 공동의 한분 아버지를 가진 하나의 거대한 가족이라는 인류의 형제애를 가르치셨다. 따라서 기도는 집단적인(공동적인) 것으로서 전체 가족이 다 같이 그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인 육체와 영혼의 필요를 위한 탄원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그러기에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공동으로 기도할 것을 가르치셨고 또한 그가 본보기로 보여준 그의 기도는 \"우리 아버지\"라는 말에서 볼 때, 사실상 공동체를 위한 대표기도 형식을 띠고 있는 것이다.
공중을 위한 대표기도는 하나님의 가족이 하나님께 응당 드려야 할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였을 때 되어진 기도였는데 대표 기도의 역사는 교회의 예배에서 그리고 그 원류는 유대교 성전과 회당에서 드리는 예배로부터 계속되어 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덧붙여서 그리스도인의 기도의 신학에 있어 빠져서는 안될 것 세 가지 가 있는데
첫째 :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언제나, 심지어 우리가 골방으로 기도하기 위해 들어갈 때 조차 우리를 통해 올려지는 기도의 주체는 하늘 안에 즉 지상 위에 있는 교회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우리’의 아버지 앞에 홀로 들어갈 수 없다. 하나님은 오로지 그가 내 동료와 교우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서만 ‘나의’ 하나님이시다. 그가 하나님이시므로 나의 관심사는 그의 관심사이며, 그의 관심사는 곧 나의 관심사인 것이다. 그런 연고로 대표기도 는 모든 기도자들의 기도인 것이다.
둘째 : 우리가 대표기도할 때 우리의 감정 흥분 상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느끼는 바에 관하여 망각하고 있다든지 우리 자신의 종교적 만족이나 기쁨에 관심을 두고 있다면 우리는 기독교적 의미에서 볼 때 진정으고 기도하는 것이아닌 것이다. 기도하는 중에 우리가 적도의 반대편 글에는 누군가가 있는가 없는가를 알아내려는 것과 같은 그런 심리적인 문제에 관심을 쏟고 있다면 우리는 진정한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대표기도는 완전한 헌신이며 자기포기인 것이다. 또한 대표기도는 자기 반성을 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기도자들에게 행동을 야기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셋째 : 대표기도자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세대의 모든 사람들은 적어도 그들 삶의 어떤 순간들에는 자발적이면서 불가피하게 기도해야 할 긴급한 본능적 요구를 경험한다.
이와 같은 기도하고 싶은 보편적인 충동은 그리스도인의 기도 속에서 참된 표현과 성취를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대표기도 속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은총은 그와 같이 기도하는 인간의 본질적 본성을 완성한다.
따라서 대표기도는 인간의 영적인 본성의 최고의 행위라 말할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완전한 일치를 위하여 접근해 가는 영혼의 당연한 과제이다. 게다가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기를 바라는 요구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보여준대로 신뢰와 복종. 그리고 하나님과의 연합의 최고의 표현이다.
대표기도는 개인적으로나 공동의 기도로도 행해져야 한다. 기도는 개인적인 동시에 중보적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대표기도는 그리스도의 은혜와 중재에 근거 되어져야 하며 주텀의 나라와 그의 선하신 목적의 한계 아래서 드려지게 되는데 이는 주님의 선한 목적이 전체 그리스도인의 유익을 조건으로 하여 기도자 자신과 다른 사랑들의 유익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1. 구약에 있어서 이스라엘 민족의 대표자들의 기도 대상이었던 하나님은 선지자(예언자)들의 증거대로 구원하고 보호하고 심판하는 하나님이었다. 시편은 하나님께 대한 이스라엘 민족의 직접적인 접근을 보여준다. 즉 시편이 보여주는 바에 따르면 이스라엘 민족은 개인적으로든 또는 공동으로든 간에 그들의 안전과 그들의 수확, 죄와 실패. 그들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그들의 감사와 찬양에 대한 그들의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쏟아 놓았다. 그러한 자발적인 간구는 하나님이 근본적으로 「당신」 즉 그의 이름을 아는 자들의 감동을 일으키시는 분이었기 때문에만 가능했다. 2. 신약에서 얘수님과 그의 제자들은 하나님께 대한 인격적인 접근의 이 오랜 그리고 귀중한 전통을 물려받았다. 구약성서는 확실히 그의 아들인 이스라엘 백성의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에 관한 관념에 정통하였지만 (호 11:1), 얘수 그리스도에 와서는 그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에 그가 친히 하나님의 오른편에서 중보하여 주시기 때문에 더욱 친밀한 인격적 교제를 통해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이기적인 요구들을 배제하는 대표기도는 하나님의 주의 능력을 사로잡고 그의 의지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일종의 마력이 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대표기도의 본질은 사실상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바치는 것이며 이기주의적인 것이아니라 함께 기도하는 모든 기도 자들의 자기 헌신에의 다짐을 토로하는 것이다. 즉 “우리의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다”가 기도 신학의 본질이다. *. 우리의 대표기도의 핵심은 하나님의 의와 그 나라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애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먼저 (첫째로)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셨는데 간구하는 것의 전체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것이며. 하늘 나라를 위한 준비로서 살아가라는 다짐을 각오케 하는 것이다. 결국 그러한 간구속에는 자질구레한 온갖 소망이 걸러지고 순수하게 포괄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일 우리가 우리안에 애수의 영(마음)을 지니고 있다면 이러한 관심사들은 자신들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어야 할 것이며 대표기도의 합당한 입장을 개진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대표기도는 사락의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완전한 신뢰가 실현되는 곳에서만 가능하다. 대표자의 기도는 여타의 모든 기도들과 바로 이 점에 있어서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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