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에 나타난 성령의 은사

복음서에 나타난 성령의 은사

  오순절 이전에는 성령의 은사를 체계적으로 다룬 일이 없고 아마도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럼에도 구약의 입장과 매우 가까운 점은 성령의 은사가 “인격화된” 성령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공관복음서보다 요한복음에서 더 잘 알 수 있다. 이는 그리스도 사역초기부터 마지막 주간의 교훈에 이르기까지 모두 사실이다.

  성령의 은사에 대한 체계적인 목록은 없지만 메시야의 인격 뿐만 아니라 제자들의 삶에 대한 성령의 여러 가지 은사들을 볼 때 오순절 이후와 거의 다름없다. 메시야 시대는 도래했고 이러한 은사들은 그 도래의 표적이며 기사로 천국의 가장 작은 자라도 받게 되는 것이다.

  마 11:11절과 요 10:41절을 비교해보면 능력있는 세례 요한이라할지라도 천국의 제자된 지극히 작은 자와는 비교되지 않는다고 했다. 여기서 묘사된 것은 평범한 은사에 큰 강조를 둔 것이 아니고 엄청난 성령의 은사에 주안점을 두었다. 

  두 유형의 은사는 모두 성령에서 나온 것이며 이것은 성령의 현존과 활동에 대한 증거임이 틀림없다. 또 복음서 기사에는 이 둘이 다같이 나타나있으나 후자보다 전자를 훨씬 더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오순절 이전에 있었던 성령의 은사는 구약이나 세례 요한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성령은 오순절 이전에도 오랫동안 역사하고 있었다. 오순절에서 일어날 참 변화는 성령의 은사가 일반화되고 영구화되는 것이다.
 
  신약의 후편에서처럼 복음서에는 공관복음이든 요한복음이든 성령 자신이 가장 큰 ‘은사’이다. 이러한 일반적인 윤곽에서 메시야 자신이 그의 생애를 통하여 성령의 은사를 드러냈으며 또 제자들에게도 이와 같은 능력을 위임하였다. 그리스도가 파송한 70제자들의 활동이 신유와 귀신추방의 좋은 실예이다. 때로는 제자들이 이런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는데, 이것은 그 능력을 갖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믿음을 결여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복음서에는 표적을 행하는 능력이 있다고 해서 결론적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졌다는 뜻은 아니라고 명백히 한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한 약속은 그들이 성령을 받을 뿐만 아니라, 성령이 강림한 이후에는 주님 자신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