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와 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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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장 성령세례, 중생, 성령 충만

1.성령을 받는다는 말과 성령 세례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님을 받은 것은  오순절 성령 강림 때이며 그 이전에는 성자 예수의 말씀과 표적과 기사와 인격 등에 의하여 예수님을 알았기 때문에 그들이 가진 예수님에 대한 지식은 결핍이 있는 것, 제자들마저도 완전한 그리스도의 지식에 이르기 위해서는 오순절 성령강림의 날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제자들의 중생시기-오순절 성령 강림시.

2.성령 세례의 증거
1)성령님께서 오시면 우리의 죄를 책망하신다.
2)예수임을 믿지 않는 것이 죄임을 깨달아 알게 된다.
3)우리가 성령을 받지 못하면 예수님의 십자가가 구원의 십자가요, 그 피가 나를 위해 흘리시는 예수님의 보혈이요, 하나님의 영광이요, 구원의 능력임을 깨달아 수 없다.
4)성령님께서 오시지 않으면 누구든지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할 수 없다.
5)하나님께서 보내신 성령님께서 우리 입으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신다 등등

토론 거리: 첫째문항에서 사람들은 실질적으로 죄가 아닌 것이지만 자기 자신의 가치관에 맞지 않는 행동을 했을 시 자기 자신은 죄책감을 느낀다. 다른 사람은 느끼지 않을 부분에 대해서 죄책감을 가지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죄책감을 더 많이 느끼는 사람에게 성령이 더 역사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3.성령 충만
성령 세례-예수님을 알게 하고 그분을 받아 영접하여 새 생명을 얻게 하는 것. 성령 충만-계속적으로 성령님의 능력을 받아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며 그리스도의 교역에 참여하게 하는 것.


제 2장. 성령의 은사

1. 율법적 교역과 복음적 교역
2. 분리주의적 교역과 통합적 교역
3.부분적 교역과 전인적 교역
4. 지도자 중심 교역과 교회 중심 교역
@구약성경에 나타난 은사와 교역의 관계-무든 인간은 성령을 통한 재창조의 선물로 말미암아 존재를 부여받고 있기 때문에 모든 존재는 영적인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특권을 주셨는데 이 은혜의 선물은 곧 봉사의 선물이며 은사를 받은 이스라엘은 세상의 모든 민족들을 구원하며 봉사하는 종으로서 사명을 받은 것.
@초대 교회 교인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연적이라고 경험하는 것들과 사건들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운 임재와 역사를 식별할 수 있는 독특한 의식을 소유하고 있었다. 즉, 그들은 은혜에 대한 인식을 갖고 있어서 과학적인 기준과 철학적인 기준에서 자연적인 것이라고 분류하는 모든 사건들과 교역들과 존재들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운 임재를 경험하였고 그것들을 영적인 것으로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토론 거리-현대에도 사건과 하나님의 뜻과 연관시키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도 이 범주에 포함되어 긍적적인 효과를 미친다고 할 수 있나? 
@은혜의 공동체에 속한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새 시대 속에 살고 있다고 믿었다 - 나도 지금 새 시대에 살고 있다고 믿는가? 아니라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1)은사와 재능의 관계-인간의 의지에 의하여 시작된 어떠한 활동들이나 순전히 인간의 타고난 재능을 훈련함으로 얻어지는 일들 가운데서도 성령의 임재를 체험케 된다면 그것들도 성령의 은사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능력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용하고 교회의 덕을 세우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게 하는 것은 오직 성령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다. 즉 성령님은 우리의 재능을 은사로 바꾸시는 분이시다.

2)은사의 개체성과 사용의 공동체성- 바울은 은사의 다양성을 기술하고 이것이 신앙 공동체와 항상 연결시키는데 이것은 은사를 개인에게 개체화시킨 성령님께서 개체화된 그리스도인 지체들을 공동체에 속하게 하여 그의 더욱 큰 목적을 수행하고 계신다.

3)은사와 교역의 상호 관계-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수직적으로 인간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 공동체를 향한 수평적인 교역에 있어서만 의의가 있다. 모든 수평적인 봉사와 교역은 수직적으로 베푸시는 성령님의 선물이 없이는 결코 그리스도의 영광과 공동체의 덕을 세울 수 없음을 인식하여 인간의 지혜와 경험으로 교역하는 어리석음을 버려야 할 것. 모든 그리스도인은 다 성령님의 선물을 받고 있는 자들이며 모두 pneumatikos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그 은혜의 선물은 반드시 교역이라는 교회 공동체의 장에서 구체화시켜야 하며 이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사명자로서 온 교회가 교역에 동참하여 각 지체의 사명과 교역을 감당케 될 것이다.
 

제 3장 성령과 목회
I.성령 사건에 대한 현상학적인 기술
 
1. 하나님과의 친밀 관계 형성과 성령 사건 

(1)임재하신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의 체험
(2) 성부 하나님의 사랑의 체험
(3)성령의 임재의 체험-성령에 관계되는 능력은 성령 그분 자신 안에 있는 성령의 특성이라기보다는 개인들과 교회 생활 속에서 발견되는 성령님의 결과 또는 성령님의 나타나심이라고 암시된다. 성령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한 가지 목적, 즉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는 것에 집중된다.
(4)생생한 그리스도의 체험
(5)예수님을 인격적인 주님으로 인식하는 체험
(6)삼위 일체 하나님의 체험-성자 예수님은 주님으로 경험되며, 성령 하나님은 능력으로, 성부 하나님은 사랑의 아버지로 경험됨.

2. 성령 사건의 콘텍스트 
(1)성령 역사의 현장으로서 말씀과 성례전 - 칼빈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성례가 예수님이 제정하신대로 집행되는 곳에 성령님이 임재하여 은혜를 베푼다고 가르친다.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와 성례전의 집행은 열매를 생산하고 하나님의 fqhr을 가져온다. -토론: 칼빈이 말하는 것은 둘 다 집행되어야 하는 것이나 성례는 1년에 기껏해야 4번인데 칼빈의 말대로 성령이 임재 할 수 있는가?
(2)성령 사건의 통로로서 교회, 성도의 교제 그리고 교역자-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교역자의 지도와 돌봄을 제대로 받고 있을 때 그는 성령님으로 충만한 삶을 살게 된다. 그렇지 못할 때 그는 죄와 세상과 사탄의 시험을 받아 고통당하게 될 것이다. 토론 거리 -큰 교회에는 교역자와의 접촉이 너무 힘들다. 그런 경우 큰 교회에 다니는 성도들은 사탄의 유혹에 빠질 확률이 더 높은가.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기가 힘든가.


II. .목회의 중심 이동이 필요하다. 

1. 능력 향상의 목회
(1)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교역자이다.(2)전 교인 교역자와의 비전 -how?
2. 능력 향상과 성령님
1)교회의 분위기 조성에 힘써야 한다. 2)소그룹이 함께 모여 말씀을 나누며 서로에게 중보기도해 주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성령 사건은 언제든지 성령님의 사람들을 통로로 하여 나타난다. 3) 목사의 지도와 가르침은 성령 사건의 틀을 제공할 뿐 아니라 성령 충만을 경험하는 성도들에게 올바른 방향과 가치를 갖게 해주어야 한다.

III. 성령 이해의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
1. 방법론의 문제
(1)하나님-인간 쌍방 관계로 성령님의 교역을 이해하고 삶의 구체적인 현장과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장인 교회와 분리해서 성령세례, 성령 충만 들을 이해함으로써 한국 교회는 현장성을 잃었다.  (2)하나님 -교회- 인간 3자 관계에서 성령교역을 이해- 하나님과 나 사이의 개인적인 관계 속에서보다는 구체적인 역사 현장에서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주님을 전하는 바로 그곳이 성령 사건의 장이 된다면 우리는 성령님을 구하거 산으로 올라가기보다는 고통을 겪는 자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2. 성경은 성령 사건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 - 성령 강림의 사건은 하나님의 말씀-그리스도인들(교회)- 사명수행의 세 맥락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성령은 교회 공동체를 통하여 세상 속으로 들어오시고자 한다. 복음이 필요한 현장에 들어가 말씀을 증거하며 사랑의 섬김이 필요한 현장에 들어가 섬김의 교역에 참여할 때 거기에서 성령이 충만하게 역사한다는 것을 확신하고 현장을 향해 달려가야 할 것.
제 4장. 교회는 은사의 공동체입니다. I. 신약 교회와 성령의 은사
@. 넘치는 은혜의 공동체 @.포괄적 의미의 카리스마: 영생, 칭의 , 성령 -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지금 이 세상에서 즐거워하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삶을 은사라는 뜻으로 사용. 카리스마타는 현재에 속한 것이요, 동시에 미래에 속한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카리스마를 소유한 사람이라고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