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 목회
능력목회
21세기 교회의 모형
부르심의 사역이 크면 클수록 그 과정의 훈련의 강도와 길이가 더 크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사실은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되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부르심에 응하는 자들은 이에 대한 준비와 이해를 가져야 마땅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1) 성령께서는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성취하시고자 하는 바를 알리시기를 원하신다. 21세기 교회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며,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하려 하실 때 우리가 어떻게 협력해야 하는 가를 알려 주실 것이다.
2) 예언적 사도 운동은 선지자와 사도의 사역들이 교회 안에 충분한 회복을 가져오도록 목표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3)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목적에 이르도록 하는 그 과정을 이해해야 할 중대한 사명이 있다.
1.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주기도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옵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주님의 왕국이 바로 교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사도적인 운동은 왕의 능력있는 소유권을 풀어놓아 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왕되신 주님께 왕적 역사를 온전히 이룰 수 있도록 우리의 모든 것을 내어드려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바람이 불어 오고 있다. 그 바람은 알곡과 쭉정이를, 부정한 것과 순수한 것, 육과 졍, 그리고 거짓된 것과 진실한 것을 구별하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나타내심, 자신을 섬기는 사역, 희생적인 사역, 개인적 왕국을 세우려는 사역과,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려는 사역을 구별하여 드러내실 것이다.
1) 하나님의 위대한 움직이심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서 찾을 수 있다)
(1) 혼합된 군중들 속에서
그들의 구출, 표적과 기사들, 모든 필요를 초자연적으로 공급해 주실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그들이 무슨 역할을 하게 되어 있는지 혹은 하나님의 점진적인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길이 없어 방황하였다.
(2) 성산 주위에 진을 침 - 좀더 질서적임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각자가 저마다 그들의 부르심, 직분, 사역과 하나님의 지역교회와 우주적인 교회내에서의 더 위대한 하나님의 목적에 대해 알게 되어 하나님의 성산 주위에 진을 치고 잇다.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애굽적인 종교적 체제 속에서 나와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내에서 그들 자신의 부르심과 교인 신분의 사역을 알도록 구별해 내고 계신다.
2) 회복 운동(갱신)
하나님께서 초대 교회 이후로 활발하게 나타내지 못했던 주요 진리들, 사역들과 영적 체험들을 회복시키기 위해 주권적으로 역사하실 것이다. 신자들 개개인에게도 삶 속에 초자연적인 영적 체험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회복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은 받은 기쁨, 해방, 하나님의 변화를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성령의 도전에 적절한 반응을 보여야 할 것이다.
3) 사역들이 태어나고 있다.
(1) 약속을 지키는 자들
(말4:5-6)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2) 중보 기도의 장군들
신디 제이콥스와 같은 자들이 지휘하고 있다. 이들은 세계 여러나라에 다니며 수천명의 사역자들에게 예언적 중보의 영적 전쟁 기도를 가르치고 활성화 시켜 주고 있다. 그들은 국가적 지도자들에게 그 나라 위에 있는 강한 자를 어떻게 영분별하며, 그 다음에 지배하는 악한 권세를 어떻게 파하는가의 시범을 보여 주고 있다.
(3)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들로 인한 집단적인 복음 전파
베디 흰, 본케와 같은 하나님의 사람들로 말미암아 재 활성화되고 있다.
4) 새로운 사도적 개혁
초대교회 선지자들과 사도들은 교회의 토대를 세워 놓았다. 이제 새로운 사도적 개혁은 교회 위에 최종적인 마지막 손질을 가하게 될 것이다. 사도적이라 함은 사역자들과 교회 회원들로 말미암아 회복된 진리, 표적들, 기사들과 기적들을 겸한 이적의 사역들을 행하며 새로운 하나님의 질소로 가는 과도기를 만들어 주는 사역자를 일컫는다.
새로운 사도적 개혁은 그리스도의 단체적인 몸된 교회가 그들의 교인들을 가르치고, 훈련시키고, 활성화되고, 성장되도록 하여, 교회가 충분한 기능을 발휘하게 되도록 그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1) 목사라는 직책
현재 교회에서 부르는 목사라는 직책은 다시 정의를 내리게 될 것이다. 앞으로의 목사는 운동경기 팀의 소유주라기 보다는 코오치와 더욱 비슷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코오치는 팀의 선수들이 최고의 가능성에 도달하도록 가르치고, 훈련시키고, 정비하여 소명을 다하도록 한다. 각자 선수가 시합하기에 제일 좋은 자격을 갖추었는지를 발견해 내도록 한다. 각자 선수의 재능을 개발해 주는 동시에 다른 한 편으로 팀 맴버로서 시합을 잘 하도록 해 준다.
반대로 소유주는 관중에 숫자에 관심이 있다. 이득에 관심이 있다.
일인조 밴드가 아닌 밴드 지휘자가 될 것이다. 지휘자는 모든 대원이 각자 맡은 부분을 제대로 연주할 수 있도록, 화음이 되도록 도와 준다.
21세기 교회는 오늘날의 전통적인 교회와는 전혀 다르게 기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2) 신자들로 하여금
한 사람이 각광을 받는 사역은 끝장이 나게 될 것이다. 앞으로는 수백만에 달하는 사람들이 능력의 시범자가 될 것이다. 세상은 \'얼마나 능력있는 사람인가?\'라고 감탄하지 않을 것이며, 그 대신 \'얼마나 능력있는 교회인가?\'라고 감탄하게 될 것이다.
(3) 사도적 개혁에는 누가 지도자들이 될 것인가?
사도들만이 아니라 오중사역자들이다. 이런 자들을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만들어 사역자 그룹이나 큰 교회가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게 될 것이다.
(4) 기드온의 300명 용사의 그룹이 지금 교회안에 일어나고 있다.
수백명 수천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지금 소생과 축복의 강으로 왔고, 또 계속해서 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많은 사람들 중에 강에서 시험을 받아 통과하게 된 자들이 하나님의 마지막 때 예언적/사도적 용사들이 되는 과도기를 통과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올바른 영과 올바른 태도를 갖고 있는 즉 강에서 마시는 자들을 그의 기드온의 군대의 일원이 되도록 선택하실 것이다. 그들은 주님의 교회를 대적하여 진을 치고 있는 미디안인들을 대항할만한 마지막 때 대 결전을 준비하게 될 것이다.
2. 최후의 교회 - 하나님의 뜻과 새로운 지시들이 하늘에서 만들어짐
1) 천사의 무리에게 새로운 임무지시
하나님의 거룩한 천사들의 출현과 마귀의 귀신의 나타남이 지금 선포되기 시작하였고 주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계속 증가되고 있다.
2) 계시와 은사의 활성화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 교회에 계시를 주실 것이요 성령의 은사들을 활성화할 것이다.
(1)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회복
(2) 주께서는 오중사역자들을 훈련시키고 정비시키고 성장시키고 의욕을 불어 넣고 계신다.
(3) 지역 목회자들은 길 잃은 자들을 전도하며 몸된 지체들을 세워주며 활성화 시켜 주어야 한다.
3. 사도적인 운동
1) 사도적 운동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
오중 사역자들 즉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 선지자, 사도(엡4:11-13)의 완전한 회복을 완성시킴으로서 사도의 회복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다. 사도가 회복될 때 모든 오중 사역자들이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주신 목적을 달성하게 되며, 그런 뒤에 최대의 영혼 추수를 하게 될 것이다.
사도 사역은 한 세대에 본적이 없었던 최대의 기적들과 표적들과 기사들의 나타남을 풀어 주도록 목적을 두고 있다.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은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서 시작될 것이다.
그 의로운 심판은 비신자와 세계의 열방으로 퍼져 나가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두렵고 떨리는 경외감이 교회에 다시 세워질 것이다.
교회를 대적하는 굉장한 핍박이 오게 될 것이다.
세계의 경제가 속속들이 흔들리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진정한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교회와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해답들을 가지고 전방에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
2) 사도적 운동이란 무엇인가?
그리스도 교회를 충분히 성장시키도록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통일성 있게 전개된 하나님의 섭리로 된 회복운동이다.
교회가 하나님의 예언적 목적을 달성하는 장소로 가게 하기 위한 하나님이 제정 해놓으신 운동이다.
이 운동은 교회내에 더 많은 진리, 영적 체험들과 그리스도의 사역들을 다시 회복함으로써 많은 성경 구절들을 성취하도록 예정해 놓으신 것이다.
이 운동은 하나님의 회복 과정의 다음 단계이다.
이 운동의 하나님의 새로운 품종인 사도들과 선지자들에 관한 하나님의 새로운 계시를 믿고 또 받아 드리는 것이다.
3) 사도적 운동이 아닌 것
사도 운동은 암흑시대 종교적 성직자의 정치적 질서를 교화의 사도적 머리의 신분과 더불어 재생시키는 것이 아니다.
사도 운동은 이기주의적인 목회자들을 다른 사람위에 권위와 통치의 높은 지위로 높여주는 운동이 아니다.
사도 운동은 한 오중 사역자를 모든 다른 사역자들 위에 높이기 위함이 아니다.
사도 운동은 사도와 선지자를 교회 지붕위에 절정까지 높이려는 운동이 아니라 교회의 기초로서 그들의 종의 도의 위치를 회복하도록 함이다.
4. 신 모형의 교회운동 - Donald Miller 교수
1) 신 모형 교회 운동은 1960년대 중반 Jesus Movement와 대각성운동으로 부터 대두되었다.
2) 이런 새로운 양태의 교회는 그 주요 멤버들이 1945년 이후에 태어난 세대이다. 이들은 베이비 부머와 베이비 버스터 세대로서 기존 주류 교단의 관료주의적 교회형태에 순응하지 않는 정서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런 교회는 엄격한 계급주의적 교회제도를 배격하고 느슨하고 융통성 있는 교회조직을 선호한다.
3) 목회자의 신학교수업이 절대적으로 요구되지 않는다. 보다 중요한 것은 목회자의 영적 능력이며, 그가 하나님의 소명에 대한 확신이 있는가이다. 그래서 목회자의 수련은 제도적이고 형식적인 수련보다는 도제학습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4) 예배는 전통적이고 의식적인 형태 대신에 당시대적이고 자유스런 형태를 띈다. 실제 삶의 현상에서 사용하던 평범한 악기나 음률을 가지고 교회예배에서도 그대로 평이하게 사용하다.
5) 평신도의 목회사역이 높이 강조된다. 이런 교회에서는 평신도들이 교회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또 책임지는 일에 많은 권한을 부여해 주고 있다.
6) 새로운 모형의 교회에서는 소그룹 목회사역이 활발하다. 이 모임들은 물론 평신도들에 의하여 인도된다. 전체 공적예배도 중요하지만, 이 소그룹 모임이 필요성을 대단히 강조한다.
7) 신 모형교회 운동의 주된 특징은 목회자들이 평이하고 비 형식적인 의상을 입고 있다. 이들은 만인제사장의 원리에 따라 교역자와 형신도들 사이에 거리감을 만들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것은 더욱 그리스도 안에서 성과 속의 구별이 없음을 인식시키려는데 목적이 있다.
8) 이들 교회는 신자들의 신앙생활 표현에 관대하고 또 다양성을 인정해 준다. 즉 교인들의 의상, 머리 양식 들에 까다로운 규제를 두지 않고 보다 신앙의 본질에 주안점을 두기를 강조한다
9) 신 모형교회 운동의 목회자들은 권위주의적이고 웅변적인 설교 스타일보다는 청중에게 평안함을 주면서 진리를 평이하게 소개하는 역할에 충실하려고 한다.
10) 이들 교회는 지식전달 중심의 예배형태보다는 전인격적이고 참여적인 예배형태를 선호한다. 그래서 예배 중에 손을 들며, 육체의 치유도 추구하며, 단지 추상적인 진리를 인식하는 것 이상의 영적 체험을 갈구한다.
11) 이들 교회는 성령의 지속적인 은사부여에 대한 확인을 가지고 있다. 은사가 신자에게 부여됨을 믿는다.
12) 이들 교회는 철저히 성경중심의 가르침을 강조한다. 주제적 혹은 영해적 설교보다는 성경에 기록된 본문내용 그대로를 전하고 그것을 삶에 적용하기를 강조한다.
5. 교회 설립과 성장을 위한 소그룹
1) 99마리 중에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의 비유
(1) 주님을 위하여 1%의 손실은 너무 크다
(2) 목자는 모든 양과 한 마리의 양까지도 돌보기 위한 책임을 갖고 있다.
(3)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2) 이드로(모세의 장인)의 관리 원칙(출3:1)
어떤 문제는 목자와 관련이 되며(겔34장, 목자에 관한 고발), 어떤 문제는 구조와 관련이 되고 또 어떤 문제는 성령의 은사와 관련된다. 백성을 돌보는 이드로의 방식의 기본 단위는 10진법이다. 중앙집권 제도로부터 분권 제도로 이동한다. 신약시대에서는 세포만이 유무상통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며, 이런 작은 모임이기 때문에 서로의 성도의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소그룹에서는 교육, 친교, 예배, 기도, 성령의 사역, 전도 일들이 균형 있게 이루어진다. 이러한 내용들이 계속적으로 지도자를 양성하는 유일한 길이다.
3) 소그룹은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한 최고의 환경이다.
(1) 예수님은 추수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않았다. 예수님은 추수할 일꾼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 지도력과 제자의 도에 관하여 강조하고 있다. 세포 제도에서 지도력 양육은 옛날 수공업 장인 밑에서 견습하던 견습공 양육 제도, 즉 도제 양육 제도와 같은 것이다. 교회는 도제 관계가 되는 하나의 큰 공장이다(딤후2:2).
(2) 사역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지 말고, 사역자가 될 사람과 사역자를 생산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우리들은 코치 할 코치를 찾고 있다.
(3) VHS 철학과 같이 지도 양성은 1:1로 돌보아 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원칙이다.
(4) MATRIX모형
이 개념은 세포(소그룹)의 개념과 일치하는데, 두 개념이 서로 같은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 모형에는 2개의 기본적 종류의 지도자들이 있다. 즉 관계적 지도자와 직무적 지도자이다. 모든 지도자들은 관계적 지도자가 되어야 하며, 또한 모든 지도자는 직무를 완수하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도자들은 동기와 은사에 관해서 어느 한 쪽으로 끌리게 된다. 교회의 조직은 이 두 종류의 지도자들을 알고 있을 필요가 있으며 그들이 서로 협동해서 일할 수 있도록 한다. 이 두 종류의 지도자들은 그들 자신의 종류에 따라 재생산할 것을 찾게 되며, 그렇게 함으로 점진적으로 두 지도자가 양 영역에서 나타나게 된다.
지도력은 장차 같이 조화하여서 일하게 될 지도자를 코치하고 양육하는 일을 한다.
` 어떤 지도자들은 관계성에 치중한다(일반적 직능)
` 어떤 지도자들은 직무에 치중한다(특수 직능)
일반 직능자들이나 특수 직능자는 세포를 지원하기 위하여 일한다. 일반 직능자는 한 모임의 필요를 돌보게 될 일반 직능자들을 양성한다. 특수 직능자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세포에 씨를 뿌리게 될 작은 그리고 큰 그룹과 같이 일하게 된다.
4) 세포의 형태
(1) 세포에는 항상 다양성이 있다. 사람들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2) 순수한 세포 교회의 목표는 모든 사람이 세포 속에 들어가며 주 안에서 상장하며 세포의 실상을 사람들이 엥겔의 척도에 따라서 다양한 위치에 처하게 되며, 제자 양육의 다음 단계로 들어가는데 도움을 주게될 것이다.
이 그룹들은 사람들의 관계와 직무 수행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또한 뜻을 같이 하거나 혹은 사회 조직망과 연결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3) 세포를 조직할 때 사람(그룹에 속한 사람의 종류), 장소(사람들이 살고 있는 장소)는 대단히 중요한 고려사항이 된다.
(4) 옛날의 교구 지역개념의 돌봐줌이 아직도 효력이 있지만은 강력한 접착제는 사람의 소속감이다.
(5) 다양한 형태의 그룹의 가능성은 다음에서 토의될 것이다.
5) 소그룹의 역할
(1) 소그룹이 성장하고 건강하게 되기 위하여 최소한 다음 네가지의 역할은 그룹 회원들이 필히 수행해야 한다.
` 지도자 :
` 협력사역자 :
` 전도자 : 소그룹은 그룹의 전도 임무를 수행할 수 있어야하고 그 그룹의 전도 비전을 필히 유지하여야 한다.
` 주인 : 소그룹원이 다 자기 집을 개방할 수는 없으나 자기 집을 다른 사람을 위하여 개방하는 사람은 항상 이를 환영하는 느낌을 주도록 하여야 한다.
6) 소그룹 지도자의 자격
(1) 세례교인
(2) 활동적인 교인
(3) 지교회에서 정의하는 바에 따라 VHS(비젼,소속감,기술) 참여에 열성을 나타내는 사람
(4) 소속 회원들의 돌봄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며 영적 권위자에게 보고하고 그에게 복종하는 자
(5) 그룹의 배가 운동을 위해서 제교육에 허신하는 자
7) 협력 사역자의 자격
(1) 소그룹 지도자와 같이 전략계획의 촉진 작용을 한다.
(2) 현장 상담 역할을 하는 자
(3) 소그룹의 일상 생활 활동을 평가한다.
(4) 소그룹지도자를 위한 목양 역할
(5) 소그룹지도자들의 도제 관계의 발전을 도와준다.
8) 지도팀
(1) 교회 팀의 주임무는 미래의 지도자를 키우는데 있다. 이들 지도자들은 일방적 직능자(관계)와 특수 직능자(업무) 모두 포함한다.
(2) 지도자들은 두가지 방법으로 훈련된다.
` 일 시작하기전 훈련(사전에 알아야 할 사항)
` 일 하는 동안 훈련(일하면서 배움)
(3) 각 교회는 이와 같은 매 형태의 훈련에 어떻게 접근하게 될 것인가를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 교회에서는 근무전 훈련을 위하여 4개의 소개 과정이 있으며, 매월 열리는 빈야드 지도자 회의에서는 근무중의 문제들을 돌보아 준다.
(4) 효과적인 지도자 양성에 있어서 근무중 훈련의 3개의 원리에는 비젼, 소속감, 기술(VHS)이 표함된다.
① 비젼 : 교회의 목회팀 특히 담임목사는 소그룹 지도자들의 비젼을 유지함으로서 초점을 잃지 않도록 한다(비젼은 30일 이내에 잃어버린다)
② 소속감 : 소그룹은 교회 목회 팀이 돌보아 주어야 하는 문제들과 일을 수행해 나가는데 방해되는 일들을 제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많은 실제적 교육과 지도는 이 환경 속에서 일어난다.
③ 기술 : 많은 문제들이 소속감 속에서 일어나는데 그러한 문제들은 특수 기술 훈련으로서 해결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같은 날 밤에 일어날 수 있으며, 다른 집회 장소로 해결할 수 있다.
9) 대형교회 대 세포교회
(1) 칼, 죠지가 쓴 책 \"당신의 교회의 미래를 대비하라\"에서 소개된 세포 모형의 다양성에 대하여 많은 토론이 있었다.
(2) \"다가오는 교회의 혁명\"이라는 책에서 칼 죠지는 랄푸 네이버가 정의하는 것은 \"순수한 세포 교회\"와 대형교회는 과도기에 있다는 것이며, 교회의 정문은 아직도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는 입구인 것이다. 죠지는 사람들은 여러 곳으로 흩어져 있으며, 소그룹은 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교회를 널리 흩어져 있는, 세포들에 대하여 영향을 미쳐야 하며, 한가지 원칙으로 모든 사역에 대처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 유사점(공통점)
1) 양자 공히 교회의 새로운 방법을 위한 긴급성을 인정한다. 세포교회, 즉 단순히 세포만을 갖고 있는 교회가 아니다.
(1) 세포그룹을 통해서 영적 선물이 넓게 퍼지고 있다.
(2) 세포는 가능하면 주 1회 모인다.
(3) 지도자 및 도제 제도의 수련생 없이는 활동 개시를 안한다.
(4) 세포의 활용은 성인, 청년, 자녀들에게 보다 효과적이다.
(5) 이상적인 세포 그룹의 인원수는 10명이다.
(6) 돌봄의 활동 한계는 사이즈에 한계가 있다. 목회자의 돌봄에는 5개의 세포를 담당할 수 있으며 이들은 평교인중에서 특별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다. 교회의 목회자들은 이들 평교인 목회자 돌몸 5-10팀을 담당할 수 있다.
2) 전도자와 제자 양육에 관하여 열정을 나타내어야 한다.
3) 도시 및 제3세계 교회 성장은 미래 세계 교회 성장의 중심이 될 것이다.
4) 속도 조절의 모형으로서 웨슬리, 조, 칼로웨이의 방법을 지지한다.
5) 교회의 기초 조직을 위한 프로그램 중심의 방법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반면, 뜻이 맞는 친근성, 이웃간의 친교 관계에 중점을 둔다.
6) 세포 그룹의 지도자, 세포그룹 지도자의 코치로서 여성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7) 보수적 복음주의 신학을 전제 조건으로 한다.
8) 교회 설립, 큰 교회의 목회 경험, 세미나에서의 강의 경험은 개인적인 배경을 중요시한다.
9) 세포 지향적 교회의 기능을 위해 계속해서 특별한 이론을 개발한다.
10) 지도력의 개발은 교회 성장을 위해서 결정적 열쇠임을 인정한다.
주여! 이 마음에 뜨거운 부흥을 주소서
1. 뜨거운 부흥의 시작
부흥이란 죄에 대한 새로운 각성과 회개이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의 결과로서 우리 속에서 일어난다.
부흥이란 자기를 완전히 낮춤으로써 그 의지를 하나님께 굴복시키는 행위이다.
2. 뜨거운 부흥이 필요할 때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형제 우애가 희박해지거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확신감이 결여되고 있다면 그때가 바로 부흥이 필요한 시기이다. 다시금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켜 주십사고 그분께 크게 부르짖어야 한다.
성도들 사이에 불화와 증오, 그리고 악한 험담들이 오고 간다면 그때가 바로 부흥을 사모해야 할 시기이다. 이와 같은 현상들은 성도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가고 있다는 징표이며 따라서 부흥을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교회 안에 세속적인 풍조가 자리잡아 가고 있다면 그때 역시 부흥이 필요한 시기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 똑같이 입고, 세상이 좋아하는 모임들을 즐기고, 세속적인 쾌락들을 추구하며 그리고 저속한 글들을 찾던 그때에 교회는 저 낮은 곳으로 가라앉고 변질했다.
교인들이 천하고 추잡한 죄악들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면 그것은 바로 교회가 일어나 신앙의 부흥을 달라고 하나님께 울부짖어야 할 때이다.
1) 무관심한 그리스도인들
죄인들이 자기 죄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어리석다면 그리스도인들이 일어나 일할 때이다. 불이 났다면 일반 사람들도 깨어나야겠지만 누구보다도 소방수들이 깨어날 의무가 있다.
악인들을 삼키는 지옥불은 교회가 진화해야만 한다. 교회가 잠들어 있는가? 소방수가 잠들어서 온 도시가 불타도록 방관해도 괜찮단 말인가? 사람들이 그런 소방수들을 보고 뭐라고 하겠는가?
그렇지만 이들 소방수들의 죄책도 주변의 죄인들이 지옥불에 빠져들고 있는데 잠만 자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죄책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죄인들이 회개하지 않는 것보다도 그리스도인들의 심령이 부흥하지 않는 것이 더욱 책망받을 일이다.
2) 교회를 살아 움직이게 하려면
부흥 이외에는 교회가 거룩해지는 비결도 없고 은혜 안에서 성숙하는 비결도 없으며 그리고 천국을 위하여 단장되는 비결도 없다.
은혜 안에서 자라간다는 것이 무엇인가? 설교를 듣고 거기에서 몇가지 새로운 신앙적인 지식을 얻는다는 뜻인가? 아니다. 절대로 그게 아니다.
(1) 기도의 영
부흥은 그리스도인들이 그것을 위하여 기도하는 영을 가질 때에만 기대할 수 있다. 부흥은 마치 그것을 탈취하려고 공격하려는 듯한 태세를 갖출 때에만 올 것이다. 때때로 그리스도인들은 기도의 분위기에 흠씬 젖어 있을 때조차도 부흥을 위하여 분명한 태도로 기도하지 않는다.
기도의 영은 결코 열정이 아니다. 기도의 영은 바울이 느꼈던 바로 그것이다.
(갈4: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 는 수고를 하노니
(2) 자복, 헌신, 결단
그리스도인들이 죄악을 서로 자복하기 시작하면 부흥이 가까이 온 것이다. 일반적으로 성도들은 건성으로 죄를 자복하곤 한다. 근사한 말로 꾸며서 표현하곤 한다. 그렇게 해서는 아무 소용없다. 솔직한 \'깨어짐\'과 진정한 죄의 자복이 있을 때에라야 수문이 열리고 구원이 곳곳에 넘쳐 흐른다.
그리스도인들이 헌신의 약속을 기꺼이 감당할 각오를 분명히 할 때에 부흥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하나님의 사역을 위하여서 일과 시간과 자존심을 기꺼이 희생해야 한다.
3. 뜨거운 부흥을 위한 준비
(호10:12)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 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부흥은 두 가지 부분으로 이뤄진다. 하나는 교회와 관련된 요소이고, 다른 하나는 불신자들과 관련된 요소이다. 이 중에서 먼저 교회와 관련된 부흥이 앞서야 한다. \"묶은 땅\"이란 한 때는 경작했으나 지금은 황량하게 버려진 땅을 일컫는데, 다시금 파종하기 이전에 그 땅을 먼저 쟁기로 갈아엎어야 하기 때문이다.
1) 마음을 부드럽게 하라
당신의 당신의 마음 밭을 기경하려 한다면 우선 자신을 살피는 작업에서 시작해야 한다. 당신의 마음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살피도록 하라.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그들은 자기들의 신앙이 잘 되어 가고 있는지 아닌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진보하고 있는지 아니면 쇠잔해 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결실하고 있는지 아니면 황폐해 가고 있는지 관심이 없다.
지금은 당신이 다른 것들에서부터 돌이켜서 당신의 내면으로 관심을 집중시켜야 할 때이다. 이 점을 반드시 숙고해야 한다. 조급하게 서두르지 말라. 당신의 내면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당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하라. 당신이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지 아니면 마귀와 동행하는지 멈춰 서서 면밀하게 분석하라.
낱낱의 죄악을 도매금으로 자복할 것이 아니라 별개의 것으로 보아 자백해야 한다. 상인이 장부를 뒤지듯이 세밀하게 훑어내려 가라. 지나간 죄악이 떠오를 때마다 놓치지 말고 회개하라.
2) 소극적인 태만의 죄악들을 자백하라.
(1) 감사치 않음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베푸신 수많은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라. 감사치 않고 지나쳐 버린 경우들이 너무나 많아서 차라리 하나님 앞에 얼굴을 감추고 싶은 심정이 드는 사건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제 무릎을 꿇고 그 죄악들을 하나씩 차례대로 열거하면서 하나님께 용서를 빌라. 이와같이 자복하게 되면 연상의 법칙에 힘입어서 유사한 종류의 죄악들이 계속해서 떠오를 것이다.
(2) 하나님을 사랑치 않음
만일 당신의 자녀들이나 아내나 혹은 남편이 당신을 덜 사랑하고 있음을 눈치챈다면 당신은 얼마 당혹하고 슬프겠는가? 그들의 마음과 생각과 시간이 당신 아닌 다른 그 누군가에게 깊이 빠져 있다면 당신이 받는 마음의 상처는 얼마나 크겠는가? 당신에게 만일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야말로 질투심 때문에 죽고 싶은 심정일 게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드분 자신을 \'질투의 하나님\'이라고 일컬으신다. 당신은 하나님 아닌 다른 무엇 혹은 누구에게 당신의 애정을 쏟음으로써 하나님의 마음을 형언할 수 없이 상하게 한 적은 없는가?
(3) 성경읽기를 소홀히 함
성경을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모르는 자이며, 약속이 없으니 열매도 없다. 이런 삶에 무슨 목적이 있을 것이며, 이런 사람의 신앙은 참담한 상태로 파산되는 것이 어찌 당연하지 않겠는가!
(4) 불신앙
명백한 하나님의 약속과 선포를 믿지 못함으로 인해 진리의 하나님을 사실상 거스린 적은 없는가? 있다는 그런 경우들을 잘 기억해 내라.
(5) 기도하지 않은 죄
당신의 사적인 기도 시간이나 가정 기도회나 또는 교회의 기도회를 소홀히 여긴 경우들을 더듬어 찾으라. 차라리 전혀 기도하지 않느니만 못한 태도, 즉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기도로써 오히려 하나님을 노엽게 한 경우들을 기억해 내라.
(6) 천박한 영적 태도
아무런 감정이나 확신이 없이 그저 중얼거리는 기도, 즉 세속적인 형태와 심정으로 읊조리는 기도의 말들은 수다 떠는 것에 불과하다.
(7) 이웃 사랑의 결여
당신이 주변의 친구와 친척들에 관해서 얼마나 무정하게 대해 왔는지를 추억해 보라. 당신은 그들의 지옥으로 직행하는 장면을 곁에 서서 구경만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당신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식이다. 그들의 죄악된 상황을 보면서도 얼마나 많은 나날을 기도하지 않고 지냈는가? 얼마나 많은 나날을 그들의 구원에 무관심한 채로 지나쳐 버렸는가?
(8) 근무태만의 죄
당신은 교회와 가정, 사회에 얼마나 헌신하면서 생활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라. 마땅히 해야 할 의무들 중에서 당신이 소홀히 하지 않고 있는 것은 몇가지나 되는가?
(9) 자기부인을 태만히 함
많은 사람들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만 빼 놓고는 그 어떤 신앙적인 일이라도 기꺼이 감당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자기를 부인하는 어떤 일을 요청하는 것은 너무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것과 같다.
자기부인이 제자도의 조건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3) 적극적인 죄악들을 자백하라
(1) 세속적인 사고방식
세상의 재물에 대한 당신의 마음 상태는 어떠한가? 당신은 재물을 당신 자신의 소유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마치 당신 자신의 뜻에 따라 당신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2) 교만
당신이 교만하게 생각했거나 행동했던 경우들을 떠올려 보라. 허영심도 교만의 특이한 변형이다. 당신의 옷가지와 외모를 가지고 우쭐거린 적은 없는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보다 사람들에게서 추앙받는 데에 더 관심이 있어서 당신 자신을 떠받들어 오지 않았는가? 사람들의 주의를 자신에게 집중시킴으로써 당신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분열시킨 장본인은 아닌가?
(3) 시기심
어떤 면에서든지 당신 자신보다 뛰어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시기했던 경우들을 회고해 보라. 아마 당신보다 더 재능이 뛰어나고 여러 모로 쓰임 받았던 사람들을 시기했을 것이다. 그들을 시기한 나머지 그들을 칭찬하는 소리를 차마 들어줄 수 없었던 것 아닌가! 그래서 그들의 장점을 생각하기보다는 단점을 생각하는 편이 더 나았고 그들의 성공을 바라기보다는 실패를 바라는 것이 더 좋았던 것 아닌가!
(4) 비판, 비방 정신
형제에게 냉혹하게 대했던 경우들, 사랑과 관용이 없는 언사를 퍼부은 적은 없었는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들을, 사실이든 상상이든간에 그들이 안 듣는 데서 말하고 다닌 적은 없는가?
(5) 거짓
얼마나 많은 거짓이 일상사의 활동과 사회 여건과 언어와 표정과 그리고 행동들 깊숙히 침투해 있는지 한번 깊이 생각해 보라. 이 모든 것들은 진실과는 다른 이깆거인 이유들을 빙자해서 타인들에게 거짓된 인상을 심어 주기 위하여 조작된 것들이다.
(6) 위선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다. 이러한 삶 속에서 하나님과 사람에게 형식적인 어떤 행위나 이기적인 것은 모두가 위선인 것이다.
(7) 하나님의 것 도둑질
하나님을 섬기고 영혼을 구원하라고 주신 시간을 헛되이 탕진하고 악하게 사용했던 경우들들 기억해 보라. 당신의 은사들이나 정신적 능력을 오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당신의 돈을 정욕을 위해서 쓴 적은 없는가? 또한 건강이나 안위나 혹은 유익함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곳에다가 당신의 돈을 쓴 적은 없는가?
(8) 고약한 성질
당신의 아내나 자녀들이나 가족이나 동료들이나 이웃들을 학대한 적은 없는가?
(9) 타인이 유익하게 쓰임 받는 것을 가로막은 죄
어쩌면 당신은 다른 그리스도인을 은근히 회유하거나 압박함으로써 그의 영향력을 약화시킨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자기 자신의 은사들만 도둑질한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손까지 묶어 놓았다. 손을 놓고 빈둥거릴 뿐만 아니라 남이 일하는 것까지 가로막는 그 사람은 얼마나 악한 사람인가!
4) 거치는 것을 제거하고 믿음을 성장시키라
누군가에게 범죄한 것이 드러나거든 즉시 사것 그에게 죄를 자백하고 허물을 제거하도록 하라. 누군가의 재산을 사취한 적이 있다면 충분한 이자를 쳐서 돌려주라. 지금 즉시 손해 배상을 이행하라.
만일 당신이 전력을 다하여 장애물들을 제거하고 허물에 대하여 손해 배상을 철저히 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믿음은 결단코 점화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예수님과의 교제에서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백하고 제거해 버리기 바라시는 그 무엇을 당신이 교만한 마음과 육욕적인 마음으로 덮어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죄는 기쁨을 가로막는다. 기쁨의 결여는 당신이 성실하고 온전하지 못했음을 알려주는 신호인 것이다.
5) 백 배의 결실
내면의 땅을 온통 갈아엎어야 한다. 그냥 서 있지 말라. 장매물들이 있다고 뒤로 돌아가지 말라. 오히려 쟁기로 그 장애물들을 갈아엎어라. 깊이 더 깊이 파고 들어가서 저 아래 있는 흑을 뒤짚고 그것을 부드럽게 일구라. 그러면 땅은 씨앗을 받을 준비가 되고 흙은 백배로 결실할 준비를 갖출 것이다.
성경을 검문소로 여기고 정직한 마음으로 당신의 내면을 살펴야 한다. 하나님께서 기적적인 방법으로 당신의 묵은 땅을 기경해 주시리라고 기대하지 말라.
당신 자신이 능동적으로 이 작업에 참여해야 하며 당신의 의지를 굴복시켜야 한다. 만약 당신이 죄들을 주의깊게 살피면서 자신의 내면을 성찰한다면 틀림없이 무언가 느끼는 점이 있을 것이다. 아무런 느낌도 없이 무덤덤한 심정으로 그 죄들을 바라볼 수는 없을 것이다.
당신의 죄악을 완전히 회개하지 않는 한,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온전한 능력을 결단코 맛보지 못할 것이다. 이 온전한 참회와 철저한 자복을 통한 깨어짐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한 연후에 당신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기도의 영을 부여 받게 될 것이다.
당신의 내면이 여전히 완고하고 묵은 채로 있다면 거기에다가 무슨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든지 아무 소용히 없다. 마치 마위 위에다가 파종하는 농부와도 같아서 아무런 열매도 기대할 수 없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열매 없이 지내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교회의 외양은 화려할지라도 내면의 깊은 감동은 너무나도 희귀한 것이다.
4. 뜨거운 부흥과 기도의 영
(롬8:26-27)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당신 자신이 아무런 노력도 들이지 않는데 그냥 하나님께서 부흥을 쏟아 부으시지는 않는다. 아주 작은 감동이더라도 그것을 마음에 품어야 한다. 성경을 펼쳐서 이 세상의 상태와 전망이 어떻게 설명되었는지를 살피라. 세상을 바라보라. 자녀들을 바라보라. 이웃들을 바라보라. 그들 모두가 죄악 가운데 빠져 있는 그 참담한 상황을 바라보라. 그리고 성령님의 은총을 받기까지 기도로 인내하며 애쓰라.
그리고 성령님의 도움 없이는 어떤 선한 일도 이뤄지지 않는다. 성령님 없이는 아무리 기도하고 설교하여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혹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죄인들에게 설교하신다 하더라도 성령님이 없으시다면 단 한 죄인도 회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우리를 찾아와 기도하도록 일깨우실 때에 그분을 경멸하거나 무시함으로써 그분으로 근심하시게 말라.
기도의 형식
어떤 형식을 사용한다는 것은 성령님의 인도를 배척하겠다는 사고방식이다. 그런 것들보다 더 기도의 영을 파괴하도록 짜여진 것은 없다. 형식에 따른 기도는 터무니 없는 것일 뿐만 아니라 영혼을 파괴하고 기도의 능력을 진멸하려는 사단의 계략이다.
마음이 성령께 이끌리지 못한다면 언변이 아무리 좋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만약 마음속으로부터 기도드리고자 하는 욕망이 타오르지 않는다면, 설혹 생각이 집중되고 모든 감정의 흐름이 성령님에 의해서 분출되며 조종되는 일이 있을 수 있다손치더라도 그것을 어찌 기도라 할 수 있겠는가! 고정된 형식 때문에 사람들은 마땅히 할 수 있는 기도를 하지 못하게 된다.
기도의 영을 맛보라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 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기도의 영을 맛보지 못하고 있다면 지금 회개하라. 당신이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를 따지고 있을 필요는 없다. 단지 지금것 한 번도 회개해 본 적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회개하라. 겸비하게 나아가서 당신의 마음을 주님 앞에 쏟아 놓으라. 다른 방법으로는 결단코 기도의 영을 허락받을 수 없다. 기도의 영처럼 당신을 뜨겁게도 하며 아울러서 사람들로부터 저항받게도 할 것은 것은 다시 없다.
5. 뜨거운 부흥과 능력있는 기도
(약5:16)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부흥이 기대하는 목표는 두가지이다. 하나는 사람들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진리를 가지고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기도로 하나님을 움직이시게 한다. 이 말은 기도로써 하나님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다거나 또는 하나님의 성향이나 성품이 바뀌기도 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기도는 우리 속에 그런 변화를 일으키며 따라서 그렇게 변화된 우리의 내면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변함 없는 성품으로써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이다.
1) 기도는 명확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 나름의 기도를 \"해치우기\"위해서 기도의 골방으로 들어간다. 그리하여 그들은 타성에 젖은 기도에 빠지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 말씀드려야 할 무엇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마음 속에 기도드릴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무릎을 꿇고서 그저 상상의 나래를 따라 어디로 떠돌면서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를 마치고 나면 무엇을 기도했는지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이것은 능력 있는 기도일 수 없다.
능력 있는 기도를 하려면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면서 기도해야 한다.
2) 결정적인 기도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알 수 없는 상태인데도 기도는 하지 않으면서 그저 복종만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처사이다.
3) 효과적인 동기
이기적인 동기를 가지고 기도하지 말라. 많은 부모들이 연민에서 우러나온 갈망으로 자녀를 위해 기도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렇게도 많은 기도들이 응답받지 못한다. 불신자들을 위한 기도는 단순한 동정의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4) 깊은 슬픔
영혼들로 인해서 깊이 근심하고 있는 사람들의 영은 사도 바울의 영적 상태와 유사하다. 바울은 영혼들을 위해서라면 자기 자신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사모한다는 태도로 수고했었다.
예레미야 선지자 역시 이스라엘의 범죄를 목도하면서 깊은 슬픔을 맛보았다.
(렘4:19) 슬프고 아프다 내 마음속이 아프고 내 마음이 답답하여 잠잠할 수 없으니 이는 나 의 심령 네가 나팔 소리와 전쟁의 경보를 들음이로다
야고보 사도는 너무나도 많은 기도를 했기에 그의 무릎이 마치 낙타 무릎처럼 못이 박혀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감정이다. 만약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 이웃집이 불타오르는데 그 안에서 나는 비명 소리를 듣고, 또 그들이 당하는 고난을 눈으로 보게 되면 자기도 덩달아 극도로 당황하고 흥분하고 괴로워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한 반응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실상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는 자들이 이상한 것이다.
5) 반드시 있어야 할 사랑의 성품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죄인들의 두려운 운명을 보면서 깊은 염려나 슬픔을 갖는데 왜 사람들은 그들을 보고 미치광이라고 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이러한 가슴 깊은 염려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진정한 자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지닌 사랑이라는 것도 실상은 피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사랑이리라.
사도 바울의 산고를 기억하라.
(갈4: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 는 수고를 하노니
6) 주님의 이름을 활용함
만약 당신이 백만장자에게서 그의 이름이 서명된 가계수표를 선물로 받아 은행을 찾아간다면 그 백만장자가 하듯이 당신도 얼마든지 손쉽게 돈을 인출 할 수 있을 것이다.
6. 뜨거운 부흥과 믿음의 기도
(막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 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약속이나 예언이나 섭리나 혹은 성령님의 감동을 붙들고 기도하라
성경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숙고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활용할 수 기회가 있는 일반적인 약속들과 원리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 약속들과 원리들을 응용할 상황이 닥치면 언제든지 그것들을 활용해야 한다.
(단9:2)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 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 년 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다니엘이 약속만 붙잡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약속을 믿음의 기도의 근거로 삼고 기도했던 것이다.
(단9:3)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 고
(겔36:37)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 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인수로 양 떼같이 많아지게 하되
성령님의 인도를 신뢰하라.
성령께서 강하게 임재하셔서 어떤 은총을 간구하도록 당신의 마음을 이끄시면 그것을 붙들고 당신은 반드시 믿음으로 기도해야 한다. 만일 당신에게 그런 열망과 동시에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과 거룩함이 있다면 그 열망이 곧 성령님의 역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믿어야만 한다.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 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쉽게 포기하지 말라
오랫동안 찾고 기다려야 한다. 당신은 무엇이든지 단 한차례 기도 드린 후에 그만두고는 그것을 믿음의 기도라고 하는가?
다니엘을 보라. 그는 스무하루를 기도했다. 은총받기 전에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결심을 단단히 하고 얼굴을 하나님께로 향해 기도하면서 응답되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세 이레를 기다린 끝에 응답이 왔다. 응답이 왜 더 일찍 오지 않았을까? 하나님께서는 응답의 전갈을 천사장 편에 보내셨지만 사단이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끈질긴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신다.
(눅18: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 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7. 뜨거운 부흥에 거침돌이 되는 것
1) 교만은 패망의 선봉
자기들의 큰 부흥에 우쭐하게 되면 부흥은 그것으로 끝난다. 이것은 부흥 운동에 있어서 거의 예외없이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다.
부흥의 주역들이 생각하기를 자신들이 얼마나 엄청난 부흥을 체험했던가, 얼마나 기도하고 수고했던가, 얼마나 용감하고 열정적이었던가, 그리고 얼마나 훌륭한 일을 성취했던가 하고 생각하기 시작하는 동시에 부흥의 역사도 쇠잔하기 시작한다.
부흥의 불길이 불타오를 때는 너와 나의 모든 장애 요소들이 불식될 것이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자기편 사람들을 얻기 위해서 은밀한 계략을 유포시키게 되면 부흥은 사그라든다.
부흥을 자랑하고 다닐 때에 성령님이 슬퍼하신다.
2) 편견, 그리고 형제 사랑의 정신을 놓칠 때
그리스도인들이 부흥의 영에 사로잡히면 형제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 그들은 서로를 아주 애정어린 마음으로 \'형제\', \'자매\'라고 호칭한다. 그러다가 서로간에 냉담해지게 되면 호칭 사용에 있어서 어색하게 된다.
3)일관성있는 목회 사역이 되지 못할 때, 기도가 냉랭해지고, 감정도 식을 때, 사역에 기계적으로 임할 때, 그리고 아무 감정도 없는 목소리로 말씀을 전파할 때
4) 교회가 지나친 사역으로 탈진할 때
5) 분쟁 - 구파와 신파간의 악의에 찬 반목이 지속되면, 수수방관하는 자들이 계속해서 반대 의견만 늘어 놓는다면, 성급하게 실적에만 집착한다면,
6) 선교의 호소에 귀를 막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