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성 훈련이란?





  
영성훈련이란?


한마디로 삼위 하나님을 아는 영의 사람이 되도록 하는 훈련입니다.

1.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모양\'대로 창조하셨습니다. 즉 흙으로 빚으시고, 거기에 생기를 불어넣으셔 만드신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는 것입니다(창1:27).

    이 \'형상\'에 대해서 엡4:23-24은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는 말씀에 비춰볼 때 형상은 의롭고 참되고 거룩한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 짓기 이전의 아담과 하와는 의롭고 참되고 거룩하여, 거짓이나, 악한 것이나, 문제가 없는 그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께서는 형상에 맞게 에덴 동산을 주셔서 거기에서 살게 하셨던 것입니다.

2. 형상을 잃어버린 인간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사단의 꾀임에 빠져 선악을 알게 하는 과일의 열매를 따 먹으므로 인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인 의,진리,거룩함을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3. 문제가운데 빠진 인간

    형상을 잃어버리자 곧 인간들은 문제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창세기 3장에 기록된 여러가지 문제들입니다. 그 문제들이 여러가지로 찾아볼 수 있지만 영성에 촛점을 맞추어 몇가지만 나열해 보면 이렇습니다.

    이에 대해 엡2:1-3은
    첫째로 허물과 죄로 죽었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아는 영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 수 있는 인간의 영이 마비가 되어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아는 우리의 영적 기관인 영이 그 기능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자, 인간의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풍속을 좇아 살게 된 것입니다(엡2:2). 그래서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 세상 풍속, 돈,명예, 권세, 인기를 누리기 위해 영적인 것과 반대되는 것을 추구하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뿐만아니라 우리의 육체가 드러나 인간의 삶이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엡2:3). 지금 인간의 모습이 아닙니까? 먹고 사는 것이 중심이 된 삶 바로 그것입니다.

    넷째로, 하나님의 법 테두리가 없는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엡2:3).

    다섯째로, 영적으로는 악한 영에게 사로잡혀 있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엡2:1-3 이 동일한 성경구절에 불신자의 실존을 말씀하는데, 이 세상 풍속을 좇고,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되 영적으로는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악한 영에게 사로잡혀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삶을 사는 인간에게 들어난 문제들이 육체적인 문제, 정신적인 문제, 물질적인 문제, 관계의 문제, 영적인 문제가 생겨난 것입니다.

4. 구원자 예수

    이러한 문제 가운데 있는 인간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 참 하나님의 형상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고후4:4).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므로 말미암아 문제 가운데 빠진 인간들에게 다시금 참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되고, 이로 인해서 에덴 동산의 복으로 회복되게 하신 것입니다.

5. 영성 훈련이란?

    어떤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새롭게 태어나는 것과 같은데,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 신분상 완전히 완전히 변하지만 습관상 변하지 않은 영육간의 여러부분들이 있는데 그러한 부분들을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하는 훈련이 영성 훈련인 것입니다.

   (엡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즉 속 사람(영의 사람)이 강건함으로 신령한 영적지각이 있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게 되고 영적 교제를 통하여 하나님을 실제적으로 알게 되고, 그분으로부터 계시와 영감을 받으며 하나님의 능력과 말씀과 지혜와 사랑 등, 하늘의 신령한 축복을 힘입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고,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고, 더 나아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영의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균형잡힌 영성을 위하여

  
1. 영성의 뿌리와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기독교 영성의 뿌리와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 영성훈련의 가장 중심된 목적인데 참 하나님의 형상이 바로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엡3: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골2:6-7)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고전3: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2. 자신을 비움으로 시작됩니다.

   비움은 영성의 시작입니다. 주님의 영성도 비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빌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무엇인가 가득 차 있는 그릇에는 어떤 것도 담을 수 없다. 하나님은 인간을 그릇에 비유하셨다. 영성도 그릇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것들로 채우기 전에 해야 할 일은 비우는 일이다. 그것은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는 것입니다(엡4:22).

   위대한 신앙인들은 비우고, 버리고 떠남으로써 위해한 발자취를 남길 수 있었습니다(아브라함, 베드로).

3. 채워야 합니다.

   영성은 비우는 데서 시작하지만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영성의 다음 단계는 채우는 것입니다. 비움은 채움이 있을 때 의미가 있습니다. 버리는 것은 얻음이 있을 때 의미가 있습니다. 떠나는 것은 새로운 목적지가 있을 때 의미가 있습니다.
   동양의 명상은 비우는 것을 강조합니다. 텅 빈 것을 최고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텅 빈 충만\'이란 말을 쓰기도 합니다. 자기를 잊어버리는 무아지경을 깨달음의 깊은 경지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영성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골1:19),

   사역의 출발은 주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입니다. 받아야 줄 수 있습니다. 요1:16은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는 주기 전에 많이 받는 자입니다. 많이 받는 만큼 많이 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충만\'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은혜 충만, 진리 충만, 성령 충만, 지혜 충만, 그리고 믿음 충만이란 표현이 사도행전에 보면 자주 등장합니다.

4. 영성은 균형잡힌 삶의 모습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균형에서 극치를 이룹니다. 비움과 채움, 텅빔과 충만, 버림과 취하심이 완전한 조화를 이루셨습니다. 비하와 존대, 섬기심과 섬김 받으심에 조화를 이루셨습니다.

   버리는 것을 절대화해서도 안되며, 채우는 것을 절대화해서도 안됩니다. 비움은 채움을 위함이요, 채움은 비움을 위함입니다. 떠나는 것을 절대화해서도 안됩니다. 그러면 방랑자가 됩니다. 머무는 것을 절대화해서도 안됩니다. 그러면 안주자가 됩니다. 안주하면 썩기 쉽습니다. 흐르는 물만이 썩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을 이루는 것입니다.

   균형잡힌 영성을 위하여!!!




    영성훈련을 위한 제언


1. 영성의 길을 막는 가장 최대의 요인을 알고 멀리하십시오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 버린 인간은 하나님과의 교제, 즉 영성의 길을 벗어나 이 세상 풍속을 좇고, 육체의 욕심대로 살아가는 육적인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신령한 세계를 바라보고 신의 성품에 참여하기 보다는 육체의 소욕을 좇아 구습을 좇는 옛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일상적인 삶이 되어 버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했으나 정신차려 성령 안에서 속 사람의 강건을 이루지 않으면 자연히 나타나는 옛 사람의 삶을 살아갈 수 없게 됩니다.

   영성회복을 위해 근신하고 깨어 있어 성령을 좇아 살기 위해서는 옛 삶의 방식을 벗어 버리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그 진리에로 나아가는 길을 방해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전통이든, 교리이든, 종교생활이든 자기의 고정관념이든 다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2. 은사,능력 받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성훈련\' 하면 어떤 은사,능력을 받으려고 하는데 집착합니다. 영성훈련은 은사,능력 받는 것이 주된 목적이 아니라 우리의 몸에서 오직 그리스도가 존귀(확대되어지는 것)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온전히 이루어 질 때 은사는 저절로 풀어지고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3. 댓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영성에 대해서 조금 알고 보니 좋고, 이것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너무나 이전에 가졌던 세상 풍속이 좋고, 이전의 방법이 좋아 이전의 것을 버리지 못해 결국은 거기에서 돌아서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전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풍성이 아니라면 그것은 썩어지는 것이요, 쇠하여 지는 것이요, 없어지는 것이요, 종국에 가서는 모두 타버릴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정 남을 만한 것에 투자하십시오. 시간과 젊음, 물질을!

4. 끝까지 인내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영성훈련의 길은 길고도 멀고, 험합니다. 자신과 싸워야 하고, 악한 영과 대적해야 합니다. 영적인 전쟁입니다. 이 길은 피흘리기 까지 싸워야 하는 길입니다. 인내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선 눈에 보이는 것, 손에 잡히는 것이 없다고 포기해서 안됩니다.

   인내하며 기다리고 나아가면 반드시 놀라운 하나님 나라의 그 풍성함이 눈 앞에 나타날 것입니다. 그때는 지나온 그 험란한 길에서 격었던 모든 것이 눈녹듯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포기하지 맙시다.

   우리의 몸에서 그리스도만이 존귀하게 되기까지 나아갑시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온전히 입기까지 나아갑시다.
  
   이러한 마음으로 나아가다가 자신의 영성을 살펴보면 깜짝 놀랄만한 자신을 발겨하게 될 것입니다. 영안이 열려 있어 환상을 보게 될 것이고, 영적인 귀가 열려 있어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이며, 은사와 능력으로 무장되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때를 바라보면 인내하며 끝까지 갑시다. 할렐루야!

5. 주님 앞에 진실합시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 상처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 치유받고, 죄악의 모습 그대로 나아가 회개하며, 눌림받은 그대로의 모습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 자유함을 받읍시다.

   주님 앞에 나아감에 있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너무나 포장하고 살아왔습니다. 사람에게 보일려고 하거나,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이었습니다. 형식적이고 위선적이었습니다. 과거 신앙의 삶을 살펴보십시오. 예배를 살펴보십시오. 기도의 삶을 살펴보십시오. 진실이 결여된 우리의 삶을 발견할 것입니다.

   이제부터 주님 앞에 진실합시다. 진실하면 주께서 가까이 하십니다.

6. 겸손하십시다.

   어느 정도 영적인 것에 대해서 눈을 뜨기시작하고, 은사가 능력이 오면 자칫 우리는 교만하기 쉽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다 나 보다 못한 것 같고, 나 자신이 제일인 것 같이 착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다른 사람의 것이 내게 들어오지 않습니다.

   이럴 때가 바로 넘어질 때인 것을 기억하고 우리는 끝까지 겸손해야 할 것입니다.

7.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 은사,능력이 개발되면 그것으로 자기를 드러낼려고 하거나, 자기 중심에 빠지기도 합니다. 은사를 이용하되 하나님을 이용하려 합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그러한 은사받고, 능력받으므로 인해서 우리는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은사, 능력이 나쁜 것이 아니고, 은사, 능력을 잘못 사용하면 마귀에게 이용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무지에서 벗어나라


     모든 죄 중에서도 무지는 우리로 하여금 사탄의 종이 되게 하는 데 있어서 큰 역할을 한다. 무지한 상태에서 범하는 죄는 다소 묵과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하겠지만 결과적으로 사망의 길에 이르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무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분명히 제시되어 있지만 그 길을 가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리하여 숱한 사람들이 무지로 인해 사망의 길로 빠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위한 해결책은 무엇일까? 먼저 지식의 열쇠가 필요하다. 그리고 진리이신 그리스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는 성령님 자체가 해결책이다.

     (눅11:52)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다시 말해서 무지란 그리스도를 향해서는 문을 닫아 놓고 사탄에게는 활짝 열어 젖힌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 무지와 죄

     1) 무지는 죄를 향해 열린 문이다.
     영적 무지 상태에 있는 사람은 마치 몽유병자와 같다. 그래서 자다 말고 일어나 정신 없이 맨발로 갇다가 독사를 밟아 물리게 되고 고통을 못 느끼는 것 같이, 무지도 죄로 인해 사망의 길을 걸어도 전혀 알지 못한다.

     2) 무지는 사람 안에 죄를 가둬 둔다.
     무지는 곧 어둠이다. 어둠은 또한 잠을 수반한다. 어두워진 마음과 둔해진 양심은 곧 우리를 영적 수면으로 이끈다. 영적으로 무지한 사람은 결코 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또한 죄를 범하고도 그것이 죄인지 아닌지를 분별하지 못한다.
     이러한 모습은 마치 어린아이가 바닷가에서 아장아장 걷다가 밀어 닥치는 파도를 향해 함께 놀겠다고 다가가는 것과 같다. 그 결과는 뻔하지 않은가. 그 아기는 결국 노도에 휩쓸려 바다에게 삼키워 버릴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진리에 대해 무지하면 죄가 우리 안에 슬금슬금 기어 들어와 온몸을 불사를 때까지 무감각하게 해 버린다. 왜냐하면 양심이란 한번 둔해지면 죄에 대항해서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적절한 시기에 회개를 통해 죄의 불꽃을 소멸하지 않는다면 영원한 지옥의 불로 떨어지게 된다.

     3) 무지는 구원의 길을 봉쇄한다.
     \'위험\'이라는 표지판을 크게 써서 보여 주더라도 그것을 볼 수 없는 무지 가운데 있는 사람처럼 영적 무지는 구원의 길을 봉쇄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본래 인간은 이러한 무지 가운데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먼저 빛의 아들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셨던 것이다.
     어둠에서 벗어나 빛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4) 무지는 사탄이 기뻐하는 노예이다.
     영적 무지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사탄은 마음놓고 노략한다. 이때 무지한 사람들은 사탄이 노략하는줄도 모르고 시험이려니, 연단이려니, 아니면 팔자려니 하며 체념하거나 그냥 인내하려 한다. 얼마나 어리석은가?

2. 무지에 대한 경고

     믿음의 씨앗은 뿌려지지 않으면 결코 싹이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꾸지 않으면 곧 죽어 버린다. 그러나 무신론이나 비신앙적인 요소들, 또는 악한 행동들은 굳이 씨앗을 뿌리지 않더라도 잘 자랄뿐 아니라 강제로 뿌리를 뽑아내기 전에는 결코 죽지 않는다.
     복음에 대해 무지한 영혼들 가운데서 이러한 요소들은 무성하게 자란다. 우리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여 방치해 두는 동안 끔찍한 일이 전개된다. 즉 어린 자들의 마음과 지식 속에 성경이 전혀 자리 잡지 않는다면 사탄은 놓칠새라 다가와서 불신의 씨앗을 뿌려 놓는다.
     무지라는 질병은 불치의 암과도 같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우리의 영혼을 갉아 먹는다. \'영적 무지\'라는 질병은 무감각하다는 면에서 육신의 문둥병과 증세가 비슷하다.
     뿐만 아니라 무지로 말미암은 죄의 결과는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3. 무지에서 벗어나는 길

     1)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라.
     어떤 사람들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교인처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계3;17)
     눈이 멀어 있다. 무지는 영적 백내장과도 같다. 그러나 그들의 자존심으로 인해 선뜻 의사를 찾지 않는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무엇을 배운다는 것은 생각조차 안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일일이 초청장을 보내셨다. 그 내용인즉 모두 와서 배우라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학교에 들어가는 문은 너무 낮아서 자만심을 굽히고 몸을 최대한 낮추지 않고서는 절대로 들어갈 수 없다.
     스승이신 그리스도 자체가 겸손하시기 때문이다. 스승이 겸손한데 학생이 거만하기 짝이 없다면 어떻게 가르칠 수 있겠는가?

     2) 신실하라.
     진리로 인도하는 빛이 비취는 곳이 밝지 않으면 그만큼 검거나 어둡다는 것이다. 그럴 때 그 더러운 것을 조금씩 조금씩 걷어내면 거기에 밝은 빛이 비췰 것이다.
     신실함과 열심히 그 빛 앞에 나아가라. 그리고 회개하라.

     3) 보다 많은 지혜를 구하라.
     (약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하나님을 구하라.
     (롬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골2: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4) 규칙적으로 공부하라.
     이것은 마치 금을 캐기 위해 애쓰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으로부터 아담과 하와를 추방하신 이후로 인간은 땀 흘리고 수고해야만 했다. 즉 수고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요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여기 \'상고\'라는 말은 나태한 가운데서 지니는 호기심이 아니라 결심히, 그리고 세밀하게 성경을 공부한다는 뜻이다. 지식을 얻고자 하면 그것에 필요한 각자의 노력을 기꺼이 쏟아야 한다.

     5) 성령의 도우심을 의뢰하라.
     (빌1:19) 이것이 너희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갈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6) 빛이 비취는 곳으로 가라
     어두움 속에만 사는 자는 어둡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한다. 빛이 있는 곳에 가 보면 자신의 어두움을 알게 된다. 빛이 강하게 비취면 비췰수록 어두움을 더 어둡게 느껴진다



    영성훈련을 위한 방편


    1. 예배

    예배는 영성 훈련에서 가장 기본적입니다. 예배인 말씀, 기도, 찬양, 성찬을 통하여 성령은 강하게 역사합니다. 그러나 예배의식이 성령의 흐름을 억압하게 되면 영성은 그만큼 제한받게 됩니다.
다.
    (딤후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 서라

    우리 한국교회의 문제점이라면 예배 의식입니다. 예배 의식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의식 자체로 예배를 대신하려 할 때가 많습니다. 형식이 없으면 내용을 담을 수 없지만 형식만 있고 내용이 담겨져 있지 않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설교 메시지가 있으나 성령의 감동이 없다면!
    기도 소리가 있으나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는다면!
    찬양이 있으나 영혼으로 드려지지 않고 목소리만 전하여진다면!
    성찬이 있으나 연중 행사로 그친다면!

    성령 안에서 드려지는 예배의 회복이...

    이렇게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나는 성령 안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말하겠지요. 그러나 성령님과 인격적인 교제에 깊어 들어가면 들어갈 수록 우리의 예배의 모습이 너무 형식적이고, 외식적이고, 무지한 가운데서 드려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성령 안에서 얼마나 예배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어느정도 알고 있습니까?------

2. 성도의 영적인 교제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있는 성도들끼리의 교제는 영성을 배가시킵니다. 앉아서 세상 이야기하고, 험담하고, 비난하는 그러한 자들의 모임이 아니라, 영적인 갈급함으로 모이는 자들의 교제는 영적인 많은 유익을 얻게 합니다.

3. 삶의 현장

    말씀을 듣는 것으로 그 말씀이 능력이 되고, 영성이 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이 삶의 현장에서 경험되어질 때, 영적인 안목이 열려지게 되고, 힘이 생기게 되며, 생명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삶의 현장에서 연단과 시련을 통하지 않은 온실속의 영성은 뜨거운 햇빛에도 견디지 못하고, 비바람에도 견디지 못하는 나약한 영성의 소유자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고후12:9)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