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적치유 내적치유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삶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서 내면의 깊은 상처를 갖게 된다. 이 상처는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쳐 걱정스런 생각, 나쁜 기억, 쓰리고 상처받은 감정 같게 하거나, 여러 모양의 죄와 우울증, 충동적인 행동, 가치관의 상실과 열등 의식, 이유 없는 두려움과 염려를 낳게 함으로 고생하며 살아가게 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상처는 사탄의 공격 대상이 된다. 이러한 가운데 있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여전히 살피신다. 질고를 담당하신 예수, 채찍에 맞으신 예수께서 성령안에 자들을 오늘도 여전히 만지시기를 기뻐하신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이루신 일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신 것과, 마음이 상한 자의 고통을 없애 주시기 위한 길을 여신 것이다. (사61:1-3)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눅4:18) 예수님은 자기 백성에게 자유를 누리라고 초대하신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구원은 받았으나 자유는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분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으나(요14:27) 우리는 아직도 근심 속에 있다. 예수님은 두루 다니시면서 축복하시고 치유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용서하셨다. 그분은 적에게 고통하고 있는 자들에게 평화와 자유를 주셨다. 영원히 자유를 누리게 해 주셨다. 또 그분은 제자들에게(눅9:1-2) 그리고 그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마28:20), 우리와 같은 시대에 사는 자들에게 완전한 자유를 가져다 줄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을 부여하셨다. 시편 139편은 내적 치유 사역의 실재를 보여주는 진실한 외침이다. 1-6절/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전인격과 마음 모든 행위를 완전하게 감찰하시며 모든 행위를 아신다. 7-12절/하나님은 공간적 제약을 받지 아니하시고 온 우주 어디에나 계시고 우리와 함께 계셔 강하신 두 팔로 우리를 안아 주시며 인도해 주신다. 13-18절/하나님은 무한한 능력으로 우리를 심묘 막측하게 창조하시고 주권적 섭리에 따라 인생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19-22절/다윗은 하나님과 대적하는 악한 원수들에 대한 심판을 호소한다. 13-24절/하나님께서 다윗을 살피셔서 그가 악을 떠나 영원한 길로 가도록 인도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다. 병든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목적은 치유이다. 치유 가운데 우선되어야 할 것은 내적 치유이다. 내적 치유가 있어야 온전히 병도 치유되어진다. 퓰러 신학대학원 교수인 챨스 크레프트는 \"귀신을 쫓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적 치유이다\"라고 말했으며, 그리고 그는 \"하나님, 자기 자신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깨어짐으로 인해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에 대한 치유가 성령의 능력 하에서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온전한 치유가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내적 치유를 하지 않으면 개인적으로 육체적, 감정적, 영적 건강을 헤친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자신과의 관계,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에도 크게 영향을 끼친다. 내적 치유란 무엇인가? 1.챨스 크래프트 - 깊은 차원의 치유 \"인간이 갖고 있는 질병 중 대다수가 상한 감정이나 영적인 문제와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내적 치유는 이런 영역들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내적 치유는 사람들에게 상처가 된 문제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치유되기를 구하는 것이다\" 2. 존 윔버 \"쓰라린 기억을 포함한 정서적, 심리적인 상처들은 우리 자신이 저지른 죄악 또는 다른 사람들이 저지른 죄악으로 인한 피해 때문에 생기게 된다. 이러한 상처들을 성령께서 죄의 용서와 정서적인 회복을 이루어 주심으로 곤경에 빠져 있는 자신의 존재와 삶의 일정 영역에 복음의 능력이 역사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과거의 상처들이 치유되면 속사람-보이지 않는 그리고 볼 수 없는-이 회복된다. 따라서 과거의 상처들에 받은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것은 육체적이고도 가시적인 치유, 즉 외적인 치유와는 분명하게 구별되는 개념으로서 일반적으로 \'내적 치유\'라고 불리우고 있다.\"(능력치유,145) 3. 탭스콧(Tapstcott) \"내적 치유란 속 사람의 치유이다. 그것은 마음, 감정, 고통스런 기억, 꿈 등을 포함한다. 내적 치유는 원한, 거부감, 자기 연민, 우울, 죄의식, 공포, 슬픔, 열등감, 죄책감, 무가치함 등의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과정이다.\"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4. 씨맨즈(Seaaamands) \"내적 치유란 기독교 상담과 기도의 한 형태이다. 내적 치유는 어떤 마음, 감정, 고통스런 기억, 꿈 등 영적 문제들에 대한 성령의 치유 능력에 중점을 두는 사역이다.\" 5. 스캐란(Michael Scanlan) \"내적 치유란 속사람을 치유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속사람\'이란 우리가 보통 정신, 의지, 또는 마음이라는 일컫는 지적, 의지적,감정적 영역들을 말하지만, 또한 정서, 심리, 혼, 영과 관련된 영역들도 포함된다. 내적 치유는 흔히 육체적 치유라고 불리는 외적인 치유와는 구별되는 것이다.\" 6. 베네트(Dennis bennett) \"내적 치유란 간단히 말해서, 성령의 역사를 저해하고 있는 요인들을 치유함과 동시에 그것들을 우리의 심리적인 본성으로부터 제거해 버리는 일을 주님과 협력하여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종합적으로 정의하면 내적 치유는? ` 해방되는 것이다. ` 바르게 하는 것이다. ` 과거의 사건을 재조명(새로운 시각)을 하는 것이다. ` 바꾸는 것이다. ` 기억의 치유이다. ` 용서를 적용하는 것이다. ` 은혜의 수단이다. ` 감정적 상처를 치유하시는 주님의 원동력 적용 방법이다. 요약하자면 내적 치유란 과거의 상처들을 해결하시도록 성령의 역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께 의탁함으로 그 상처의 부정적인 결과들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도록 하는 것이다. 치유란 상한 것을 단지 다시 쓸 수 있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상하게 하는 힘으로부터 자유케 하여서 더 이상 상하게 하는 힘이 우리를 다스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하나님을 온전히 섬김으로 온전한 영적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게 하는 것이다. # 내적 치유가 아닌 것은? 1) 정신 치료법이 아니다. 2) 적극적 사고방식이 아니다. 3) 명상이 아니다. 4) 도피주의가 아니다. 5) 그룹 치료가 아니다. 6) 슬픔의 사역이 아니다. 7) 회복을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다. 8) 구원이 아니다. 9) 뉴 에이즈 운동이 아니다. 10)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내적상처의 원인은? 우주에는 만유인력 처럼 하나의 법칙들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다. 그 법칙이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우리는 그 법칙에 지배를 받고 살아가고 있다. 이런 법칙을 어기면 문제들이 생긴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러한 법칙들은 자연적이면서도 영적이다. 그러므로 자연적인 상처 위에 영적인 상처까지 겹치게 된다. 1. 인간의 시조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해서 모든 사람이 상처를 가지게 되었고, 그 후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므로, 즉 죄악으로 인해서 많은 상처들이 남게 되었다. 출 20장 / 십계명과 연관해서 생각해 보자. 2., 타락한 인간관계에서 많은 상처들이 생기게 되었다. (고후2:10-11) 너희가 무슨 일이든지 뉘게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이는 우리로 사단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그 궤계를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갈6:7-8)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롬2: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 가족, 친구, 전혀 모르는 사람들로 인한 심리적, 육체적인 학대로 생긴다. `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나큰 감정상의 충격으로 상처가 남는다(눅10:30-36). - 사별, 결혼의 실패, 사업의 실패, 사고, 지위나 명망을 잃어버렸을 때, ` 오랜 기간 동안 스트래스를 받는 부정적인 환경 속에서 지냈을 때 - 부정적인 말 ` 잦은 불화, 심한 잔소리, 엄한 권위 밑에서 무섭게 양육 받음, 심리적 스트래스, ` 유년시절의 경험은 흔히 충격적이다. - 유아기의 거절당한 감정, 유아기의 질병, 버림받은 경우, 낙태 위험, 부모의 소홀함, 혼외 관계를 통한 출생, 부모가 원치 않는 성별을 가지고 태어남 - 학교 입학, 이사, 사춘기의 문제, 3. 나 자신과의 부조화로 인해서 상처들이 더하여지게 되었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좌절되었을 때 부정적인 감정이 생긴다. 우울함, 원망, 분노, 적대감, 실패에 대한 두려움, 근심, 걱정, 불안, 긴장 내적상처를 가졌을 때 나타나는 현상 내적인 상처(감정)는 분명히 실제로 존재하지만 살을 베인 것이나 멍든 것처럼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상처받은 감정의 고통은 보통 신체적 부상이나 질병으로 오는 고통보다 더 심하다. 감정적으로 손상받은 영향은 일반적으로 사람의 행동이나 태도에서 관찰할 수 있으며 내적 상처로 인하여 밖으로 드러나는 증상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시맨즈는 \"사람들은 많은 칭찬은 쉽게 잊어버리는 반면에 단 한 마디의 상처를 주는 비평은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그들은 자신이 행한 일보다는 자신의 인간성에 대한 긍정적 또는 부정적인 말을 훨씬 더 깊게 받아드린다. 그러므로 인간성을 깎아 내리는 말은 자존감을 타격한다고 믿어 버린다. 사람들은 상처를 당할 때에 자기의 감정을 억누르고 상처를 빨리 싸매 버리기 때문에 아무도 그들이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보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그 상처는 소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곪게 되고 시간이 흐르면 싸맨 것을 통하여 고름이 새어 나오기 시작한다. 그렇게 되면 매우 오래 전에 생긴 상처이지만 치유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상처는 그 사람의 현재 삶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내적 상처를 그대로 두면 상처를 받은 즉시 혹은 가능한 한 빨리 솔직하게 이를 다루는 것이 이상적이다. 이 상처를 바로 처리하지 않고 우리 안에서 곪아터지게 방치해 둘 때 세 가지 관계에 약하게든 심각하게든 문제가 생기게 된다. 1. 자기 자신과의 관계가 잘못 형성된다. ` 감정적인 반응이 격하게 나타난다. - 미움, 격노, 쓴감정, 원한, 용서하지 않음, 완고함, 저항, 비판 의식, 낙담, 자살, - 신체적, 성적, 정서적 학대 ` 감정의 변화가 있을 때 심한 통증이 뒤따른다. ` 부자연스럽게 보일 정도로 과묵해지거나 냉정하고 무감각해진다. ` 부정적인 감정, 태도 : 말, 우울한 성격, 강박관념, 자살 충동, 자기 혐오, 증오감, ` 우유부단하다. ` 생활환경이 무질서하다. 산만할 뿐만 아니라 제대로 정리할 줄 모른다. ` 지나친 두려움이 앞선다. ` 도덕관념이 없다. - 음란, 외설, 물질 남용, 질투심, 소유욕, ` 부정적인 말들을 자기의 것으로 삼아 마음 속에 계속 되씹는 경향이 있다. ` 그 상처들로 인해, 편두통, 소화불량, 불면증, 현기증, 기타 신체기능상의 장애가 생긴다. ` 개인으로 하여금 스스로의 적이 되어 자신을 거부하고 미워하는 마음, ` 자기 자신을 싫어하거나 자신의 일부분(이름,신체, 마음이나 감정)을 싫어한다. ` 자신이 다른 사람이기를 바란다. ` 자신을 용서하지 못함 ` 자아상의 문제를 지닌 자신의 죄성에 사로잡혀 괴로워한다(죄책감). `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라는 느낌을 피하기 위해서 기분전환 방법을 시도한다. ` 인정받기를 급급하거나 성취 지향적이다. 2.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잘못 형성된다. ` 대인관계 속에서 배타적인 태도, 또는 지나치게 의존적인 태도를 취한다. - 자신을 과대평가, 자기 중심적 성향, 자학적인 성향 - 자신의 배경이나 죄가 드러날까봐 두려워하는 마음, 지배(소유)하려는 성향, ` 열등감의 문제가 생긴다 - 비판, 부끄러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 자신을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생각 - 빈곤한 자아상을 가진다. - 지나친 수줍음, 지나친 의존, 결단력 부족 ` 관심을 사기 위한 필사적인 시도 때문에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 많은 사람들이 간단히 자신을 포기한다. `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3.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 형성된다. 하나님과 친밀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 하나님을 생각할 때 심한 죄책감을 느끼는 것, 하나님께서 정죄하거나 벌을 내릴 것이라고 생각, 심지어 하나님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에 몰두하고 계시다는 생각 등의 반응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구원에 대한 확신을 잃거나 영적으로 의심케 하는 심한 영적 공격이 있다. 영적인 복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4. 사역에 있어서 내적치유가 되어 있지 않으면 사역의 관심이 내 필요, 내 경험, 내 치유, 내 사역, 내 은사에 쉽게 갇힐 수 있다. 내적상처를 발생케 하는 영적인 근원 - 챨스 크레프트 1. 영적 질병의 주요 원인은 죄이다 인간의 본성(육)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성경은 말한다(롬7:18). 육은 온갖 종류의 죄로 가득차 있다(갈5:19-21). 그러므로 우리가 본성의 행위에 굴복할 때, 우리는 영적으로 병들게 된다.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받지 않는 한 하나님과의 우리의 관계는 막히게 된다(요일1:9) 2.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는 것도 영적 질병의 원인이 된다.(마14:13) 우리는 하나님과 친밀하도록 만들어졌다. 친밀함은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필요로 한다. 예수님은 이 친밀함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셨다 3.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견해도 영적 질병의 원인이 된다. 하나님은 너무 멀리 계시기 때문에 인간의 일에 관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 하나님이 너무 비판적이어서 우리를 돕기를 거부하거나 또는 우리에게 화가 났기 때문에 그가 우리를 벌 주기를 원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행위 집착적인 그리스도인들은 1) 끊임없는 죄책감, 정죄감, 하나님이 나를 판단할 것이며 싫어할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2) 이로 인해 자기 무가치감, 낮은 자존감, 끊임없이 엄습해 오는 내적 자기 비하와 자기 경멸, 자존감이 생긴다. 3) 이어서 다 장난 같고 현실이 아닌 것 같은 느낌, 공허한 껍데기가 되는 것 같은 기분, 나의 참 자아를 잃어버린 것 같고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겠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4) 불합리한 공포, 응어리진 적개심, 분노의 폭발, 지나친 감정의 기복 및 우울 등을 유발하는 많은 부정적인 감정들, 특히 불안과 분노 등이 생긴다. 5) 그래서 결국은 대인관계 곤란, 특히 친밀함이 수반되는 관계에 심한 문제를 야기한다. 그릇된 존재 양식은 그릇된 행동 양식 즉 그릇된 인생 적응 양식과 그릇된 관계 형성 양식을 낳는다. 4. 하나님에 대한 분노도 영적 질병의 근본 원인이다(롬8:28).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렸거나 소홀히 하셨다고 생각하여 하나님에게 분을 품는다. 그러한 분노, 원망과 용서하지 않는 마음을 품는 것은 영적인 병을 초래한다. 5. 각 사람의 내면에 있는 쓰레기를 통해 사탄이 공격한다. 사탄은 영적 문제, 감정적 문제, 정신적 문제, 또는 개인의 의지가 무질서한 상태에 있는 사람을 공격한다. 사탄은 두려움, 죄책감, 분노, 정욕 등을 이용하여 공격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는 그러한 문제부터 공격을 시작하면서 종종 수면을 방해하고 기도, 예배, 성경공부 등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방해한다. 6. 외부로부터 공격이외에도 귀신들림, 즉 개인의 내면에 사는 악령이 사는 현상도 있다. 7. 마지막 원인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는 악령이나 저주가 있다. 내적치유의 시작은? 첫째로, 나 자신을 바로 발견하는데서 부터이다.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 - 그리고 나 자신이 그분의 아들이란 신분을 가지게 되었음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인간적인 아버지에 대해 만족스러운 경험을 하지 못했을지라도 아들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우리의 모든 욕구를 충분히 채우신다. 웨슬리는 이제 자신이 \'어느 모로 보나 분명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며 전에는 자신의 종교가 \'종\'의 종교였으나 이제는 \'아들\'의 종교로 바뀌었다고 고백했다. 치유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새로운 신분을 분명히 깨닫게 될 때 시작되어지는 것이다. 종은 수용과 가치 인정의 근거가 행위에 있지만 자녀는 신분에 있다. 주인이 진정 나의 일을 맘에 들어하실까 생각하면서 종은 하루를 불안과 염려로 시작하지만 자녀는 가정의 안전한 사랑 속에서 쉼을 누린다. 종은 일 솜씨 때문에 받아들여지지만 자녀는 관계 때문에 받아들여진다. 종의 소속은 능력과 행위에 달려있지만 자녀의 소속은 한 사람으로서의 신분 자체에 달려있다 하루를 마칠 때 종은 자기의 일로 자기의 가치를 입증해 보였다는 확신이 설 때에만 마음이 편하다. 그러나 자녀는 하루 종일 안전하며, 내일이 자신의 신분에 아무런 변화도 가져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종은 일을 잘 못하면 자리가 위태해진다. 실직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녀는 실수를 하게 되면 부모를 속상하게 해드렸다는 것 때문에 마음이 아플 수 있고 또 꾸중을 듣고 훈계를 받을 수는 있으나, 버림을 당할까봐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자녀는 가족의 일부로 소속이 돼있고 또 사랑을 받는 존재이므로 근본적으로 당당하며, 행위가 그의 신분을 조금도 흔들어놓지 못한다. 둘째로, 머리에서 가슴으로 은혜를 아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은혜에 대하여 건전한 성경적인 교리를 가지고 있으며 머리로부터는 그것을 에누리없이 받아들인다. 그들이 하나님에 관하여 믿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가슴 속으로부터 그분과 더불어 사는 차원은 아니다. 그것은 타인들과 자기 자신을 대하여서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교리적인 것이지 관계적인 것은 아니다. 그들은 믿긴 하지만 그렇게 살아내지는 못한다. 은혜를 아는 것이 이제 45cm 정도 밑으로 내려올 필요가 있다. 가슴속으로 느껴질 수 있도록 말이다. 은혜에 대한 신학적이고 지적인 이해가 나의 존재 깊은 곳으로 뚫고 들어와 가슴 속의 은혜로 경험되어야만 한다. 우리의 몸 안에는 혼이 있다. 그리고 이 혼 안에는 영이 있다. 여기서 혼이란 우리의 지각, 감정, 의지를 말하는 것으로 그 중심이 마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마음속에 영이 있고 그 안에 우리 주님이 좌정하시고 계신다. 마음이 어디 있는가? 우리는 가슴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는 얼핏 그것이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성경 시대의 사람들이 깊은 신념이나 감정 경험의 근원을 뱃속이라고 생각했었다는 사실을 살펴보면 아주 재미있다. 보통 \'마음\'이라고 번역되는 말들이 영어 흠정역에는 \'배\'나 \'뱃속\'으로 번역되어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요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빌2: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뱃속, 창자를 나타내는 단어 bowels가 쓰였다)이나 자비가 있거든 (몬1:20) 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를 인하여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역시bowels)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요일3:17)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역시bowels)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이렇듯 성경 시대에는 배, 뱃속이라는 말이 우리가 지금 쓰는 가슴속이라는 말과 똑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단지 감정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태도와 행동에도 마찬가지였으며 결국 생각하고 느끼고 움직이고 관계를 맺는 등에 있어서의 하나의 총체적인 유형이었다. 진정한 나는 누구인가? 이름, 직업, 국적, 교파, 신체적 조건 등으로 표현할 수 있는가? 내가 누구인가 하는 것은 겉으로 보는 것 이상일 것이다. 이 질문이 그리스도인의 성숙과 관계될 때 더욱 중요한 질문이 된다. 그리고 이 질문에 확실한 대답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행위에 절대적 기준이 된다. 성령이 가르쳐 주는 내적치유 내적 치유는 교회 역사에서 그동안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시행되어 온 기도와 상담을 통한 성령님의 역사중 현대적 사역의 한 줄기라고 볼 수 있다. 성경에 분명하게 내적 치유 사역에 사용되고 있는 용어들이나 단계적 절차 같은 것이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감정적 혹은 내적 치유의 실제와 필요성들은 성경의 여러 부분에서 그 기본 원리들을 제시하고 있다. 성경은 내적 치유를 많이 가르쳐 주고 있다. 1) 하나님은 우리의 감정을 치유하시는 데 관심을 갖고 계신다. (시139:11-12)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정녕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 지라도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취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일반이니이다\" (단2:22) \"그는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고 어두운 데 있는 것을 아시며 또 빛이 그와 함 께 있도다 나의 열조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이제 내게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우리가 주께 구한 바 일을 내게 알게 하셨사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고 주를 찬양하나이다. 곧 주께서 왕의 그 일을 내게 보이셨나이다 하니라\" (사61:1-3)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 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눅4:18절 참고)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들과 명령이 이행되고 자신의 뜻이 온전히 성취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 주셨다. 따라서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기도를 드릴 때 우리의 영혼 즉 마음과 생각과 감정의 치유를 경험하게 된다. 우리의 감정을 치유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열망은 예수님의 사역과 생애에서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눅17: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막5:25-26, 33-34) 예수님은 문둥병자들의 육체뿐 아니라 깊은 내면의 상처들도 치유하기 원하셨기 때문에 그를 만져 낫게 하시고 제사장에게 보내어 그 병이 치유된 것을 증명하게 하심으로 앞으로 사회 생활에 온전히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 것이다(막1:40-45). 2) 죄는 우리 내면을 상하게 하지만 회개는 우리 감정을 치유한다고 말씀한다. (시32:5, 시51:2,8,10,12, 눅19:8-9) (시103:1-5)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3) 성경은 육체적, 정서적 행복을 위하여 여러 계명을 말씀하신다. (신5:16)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마7:1-2)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갈6:7-8)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 다윗의 간음과 살인죄로 인한 그 결과의 끔찍함을 보라 - 나단 선지자의 예언. (사58:6-8)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주린 자에게 제 식물을 나눠주며…그리하면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4) 성경은 영과 감정에 대적하는 사단과의 영적 전투가 있음을 보여 준다. ` 사단은 죄의 근원으로서 우리의 연약한 부분을 끊임없이 유혹하고 공격한다. (창3:1-6, 벧전5:8-9, 요8:44, 눅22:31, 갈5:20-21) ` 사단은 질병과 고통으로 괴롭히기도 한다. (행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 축사를 통한 치유를 말씀한다. 내적 치유는 한 사람의 여러 측면 즉 영,혼,몸 등을 다룬다 성령에서 내적치유의 예 1. 요셉 요셉은 형들에게 참으로 수치스런 버림을 받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와 목적과 계획들을 바라봄으로 원한과 분노와 보복심이 치유된 모습을 본다. (창45: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창50:19-20)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2. 다윗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에 무슨 숨겨진 죄가 있나 보시고 상하고 망가진 부분들을 치유하시며 회복하셔서 자신을 온전함과 구원 즉 영원한 길로 인도해 달라고 부르짖고 있다. (시139:23-24)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다윗은 그의 영혼 즉 마음과 생각과 감정에 이와 같은 사실을 되새기며 찬양하고 있다. (시103:2-5)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3. 베드로 예수님을 배반하였다가 다시 회복한 사건을 보면 과거의 사건을 재생하여 내적 치유가 있어났음을 알 수 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베드로를 찾아 오셔서 메드로와 대화하셨다. 그 대화로 베드로는 치유함을 받은 것이다. (요21:15-17)/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의 질문을 통해서 4. 향유를 붓는 여인(눅7장) 죄인인 한 여자가 예수님의 영광 앞에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는 과정 중에 치료함을 받은 것이다. 5.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눅24:13-35) 부활하신 주님께서 말씀을 가르치시고 떡을 떼실때 치유가 일어났을 것이다. - 소망과 치유와 새로움을 안겨 주심 6. 탕자 비유 / 눅15장 아버지 품을 떠나 나그네로 방황하던 그 삶을 돌이켜 아버지 품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께서 마중 나오시고 안아 주시고, 회복시켜 주는 과정 속에서 치유함이 있었을 것이다. 7. 이외에도 혈루증을 앓던 여인, 문둥병자, 귀신들린 자, 부정하다고 여겨졌던 자들이나 버림당했던 자들이 온전히 회복되는 예를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내적치유의 효과적인 원리들 1. 필수적인 요소 - 성경말씀 한 어린이가 신앙에 관련된 잡지에서 세계 지도를 뜯어낸 후 그것을 조각조각 찢었다. 그리고 나서 그 조각들을 다시 짜맞추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그 아이는 울먹이면서 그의 아빠에게로 가서 도움을 청했다. 아빠는 그를 사랑스런 눈빛으로 바라보셨고 그 세계지도 뒷면에는 예수님의 모습이 그려져 있던 것을 기억해 냈다. 아빠는 그 소년이 작은 조각들을 하나하나 맞추는 것을 도와 주었다. 그리고 당황해 하던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예수님이 정확한 위치에 자리잡고 계시면 우리는 이 세상을 다시 회복시킬 수가 있게 된단다\" 내적 치유 사역에 가장 필수적인 요소는 성경이다. 모든 사역의 원리는 성경에서 나와야 한다. 기도 받는 사람들이 이 사역이 강력한 성경의 근거 위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해야 한다. 성경에 익숙하지 않는 사람들을 과장이나 오해로부터 지켜 줄 필요가 있다. 기도 시간에 성경 말씀을 사용하면 이 특별한 말씀이 앞으로 있을 사단의 공격과 의심들에 대해 \'성령의 검\'으로 쓰일 수 있다. 존 웸버는 \'회심요법\'이란 말을 쓰면서 과거의 체험들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재조명하면서 치유한다고 했다. 따라서 성경을 기초로 하여 성경적인 관점에서 치유가 일어나야 한다. # 성경 묵상을 통한 치유 (수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시19:14)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시104:34) 나의 묵상을 가상히 여기시기를 바라나니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로다 (시119:97)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시119:98) 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이 나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시119:148)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 성경 묵상을 통한 치유를 돕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기도 - 주님이 눈을 열어 주셔서 말씀 안에서 예수님을 볼 수 있도록 기도한다. 2) 읽기 - 말씀의 내용이 마음 속에 분명해지도록 두세번 그 구절을 읽는다. 3) 그려봄 - 말씀의 상황을 그려 본다. 예) 베드로의 고기 잡음 4) 투사 - 이야기 속의 사람의 역할에 자신을 투사하는 것이다. 이 단계는 아주 핵심적인 부분으로서 성령님이 특별히 당신의 마음과 생각에 말씀하시는 단계이다. 5) 해결 - 태도, 우선순위, 행동이나 믿음, 절차나 관계나 느낌 등이 변화되어야 한다 2.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라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갈4:4-7)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 - 그리고 나 자신이 그분의 아들이란 신분을 가지게 되었음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받아들이라. 인간적인 아버지에 대해 만족스러운 경험을 하지 못했을지라도 아들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우리의 모든 욕구를 충분히 채우신다. 웨슬리는 이제 자신이 \'어느 모로 보나 분명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며 전에는 자신의 종교가 \'종\'의 종교였으나 이제는 \'아들\'의 종교로 바뀌었다고 고백했다. 치유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새로운 신분을 분명히 깨닫게 될 때 시작되어지는 것이다. 종은 수용과 가치 인정의 근거가 행위에 있지만 자녀는 신분에 있다. 주인이 진정 나의 일을 맘에 들어하실까 생각하면서 종은 하루를 불안과 염려로 시작하지만 자녀는 가정의 안전한 사랑 속에서 쉼을 누린다. 종은 일 솜씨 때문에 받아들여지지만 자녀는 관계 때문에 받아들여진다. 종의 소속은 능력과 행위에 달려있지만 자녀의 소속은 한 사람으로서의 신분 자체에 달려있다 하루를 마칠 때 종은 자기의 일로 자기의 가치를 입증해 보였다는 확신이 설 때에만 마음이 편하다. 그러나 자녀는 하루 종일 안전하며, 내일이 자신의 신분에 아무런 변화도 가져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종은 일을 잘 못하면 자리가 위태해진다. 실직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녀는 실수를 하게 되면 부모를 속상하게 해드렸다는 것 때문에 마음이 아플 수 있고 또 꾸중을 듣고 훈계를 받을 수는 있으나, 버림을 당할까봐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자녀는 가족의 일부로 소속이 돼있고 또 사랑을 받는 존재이므로 근본적으로 당당하며, 행위가 그의 신분을 조금도 흔들어놓지 못한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라.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상처를 담당하시기 위해서 육신으로 이땅에 오셨다. 그분의 사랑을 받아들이라. 예수님을 자신의 문제 가운데로 초청하여 상한 부분을 치유해 달라고 하라. 그러면 예수께서는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실 뿐 아니라 상상도 못할 방법으로 내면에 있는 깊은 상처들을 부드럽게 다루어 주실 것이다. 예수님의 사랑의 원동력은 우리와 친밀해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간절한 열망, 용서함으로 치유하시는 능력, 우리의 죄와 연약함을 그의 구원과 치유로 바꾸어 주시는 모습으로 드러난다(더그). 자신이 받았던 한 사건을 구체적으로 회상하고 예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인식하에 기도한다. 성령님께 인도하심을 구하면 성령께서는 그 상처와 고통의 깊은 것까지 하나씩 하나씩 치유해 주신다 3. 십자가의 은총으로 내적인 상처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라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온 인류에게 가져온 모든 해악들 - 죄책감, 슬픔, 고통, 질병, 절망, 두려움, 소외 등 이 모든 것을 다 치료하셨다. 그러므로 이러한 십자가의 은총 가운데로 나아가는 자만이 치유받을 수 있다. (사53:3-4)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 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마음속에 갈보리의 십자가에서의 고난을 그려보는 것이다. 예수께서 우리의 질병과 고통을 짊어지셨기 때문에 우리가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치유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온전히 나음을 입었다 예수님의 보혈을 믿을 때 속죄함과 보호와 치유도 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악을 담당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마귀에게 가장 큰 승리를 거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의 고난을 믿음으로 바라볼 때 치유가 있다 4. 성령님의 역사로 성령님은 양자의 영이시다(롬8:15). 이것은 우리 현대 서구적인 용어에서의 양자가 아니다. 유대인에게서의 양자는 아들이 성숙한 성인의 단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숙의 영으로 우리를 그리스도의 분량에까지 성숙하게 해준다. 그래서 성령은 위로자 혹은 돕는자가 되신다. 성령께서는 깨어진 심령을 다시 온전케 하시는 기름부음의 일을 하신다. 성령께서 우리의 감정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우리의 상처 입은 감정을 가지고 성령의 역사 안에 열어놓아야 한다. 예수께서도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마귀에게 포로된 자, 병든 자,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실 수 있었던 것이다. 성령님은 우리 위로자요, 돕는자요, 치유자이시다. (눅4:18-19)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내적 치유는 성령님과 함께 할 때 일어나는 것이다. ※ 성령님의 임재 기도 내 안에 계신 성령님 지금 역사하소서 성령님 나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십자가의 은총가운데로 인도하소서 나의 O O O O O 한 상처, 아픔을 주님께 내어 놓습니다. 치료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으시고, 자르시고, 제거하여 주소서 성령님!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새롭게 채워주소서 예수 안에서 자유와 치유, 회복을 주시옵소서 5. 용서하라. 6. 회개하라. 하나님의 우주적 법칙 중 하나는, 사람이 죄를 고백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면 그 죄의 포로가 된다는 것이다. 이 법칙을 어긴 다윗은 (시32:3-5)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셀라).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 (셀라) 우리가 범죄했음을 시인하지 않고 부인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짓말장이로 만들며(요일1:10)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요일1:8). 뿐만 아니라 내적 치유를 필요로 하는 여러가지 문제를 생기게 한다.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고백하지 못하게 하거나 용서받은 죄에 대해서 계속 죄책감을 느끼게 만든다. 깊은 회개, 즉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악을 낱낱이 고백하고, 그 죄악된 죽은 행실을 잘라버리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성령의 권능 앞에 나아가는 깊은 회개로 인해서 치유가 일어난다. * 깊은 회개 부분을 참고하라 7. 사단의 영향력을 뽑아 내라. 챨스 크래프트 박사는 자유를 방해하는 방해물을 세계관, 영적 전쟁 의식의 결여, 습관, 친밀감의 결핍이라고 하였다. 사탄에게 붙잡힌 사람에게는 자유가 꼭 필요하다.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어야 한다. 예수님은 병자나 귀신 들린 자들을 정죄하거나 책망하지 않으셨고, 심지어 죄를 지은 자들도 벌을 받기보다는 동정을 받아야 할 대상으로 보셨다 ` 요4:1-18 /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 ` 요8:1-18 / 간음한 여자 ` 요21:15-19 / 예수님의 하신 일은 사탄에게서 해방시켜 주시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영적 학대의 피해자이던지 또는 사탄에 의한 직접적인 공격의 피해자이던 간에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선포하시고 또 실제로 자유를 주시기 위해 오셨다(눅4:18-19). 예수님은 우리도 예수님처럼 사탄의 영향에서 자유롭기를 원하신다(요14:30하) 예수님은 자기 백성에게 자유를 누리라고 초대하신다(마11:28-30). 우리는 전신갑주를 입고 사탄을 대적하여야 하며, 자유를 얻어야 한다(엡6:14-17). * 이 부분에 대해서 덧 붙일 것은 교리, 전통에 묶이지 말고 성경을 있는 그대로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적치유를 위한 과정 급성치유책이나 신속 해결책은 없다는 사실을 우리가 아주 처음부터 확실히 해두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한번의 기적적인 경험이나 즉흥적인 치유로는 아무도 행위의 덫이라는 올가미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다. 특히 그것이 중증 완전주의일 때는 더욱 그렇다. 신비한 마술의 흉내를 내면서 그렇잖아도 고통 중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 오히려 혼돈만 가중시키는 그런 해결책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경계해야 한다. 즉흥적인 치유책을 찾다고 실패하여 환멸에 빠져버린 많은 사람들이 있다. (롬7:15)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롬7: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천천히 시간을 두가 한 단계 한 단계씩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바른 인식과 바른 깨달음은 여러 모양으로 커다란 도움이 된다. 특히 우리가 무엇을 구해야 하며 어떻게 기도해야 할는지를 보여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 인식과 깨달음을 통해서 우리는 또한 우리를 구원해주고 거룩하게 해주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 우리에게 치유의 은혜가 필요한 영역들이 어디인지를 알아낼 수도 있다. 1단계 / 감정을 드러내기 내적 치유와 관련해서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감정의 문제를 직접 안고 있는 본인만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본인이 직접 의지로 결단하고 행동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왜냐하면 문제는 바로 의지에 있기 때문이다. 감정을 묻어 두어서는 안 된다. 감정의 억압은 대개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억누른 감정들은 더 이상 가누기가 쉽지 않으며 의지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 이러한 감정들은 우리의 인성 깊은 곳에 요동치고 있다가 이따금씩 질병의 형태로 나타나거나 영적인 곤란에 빠지게 한다. 기억력은 상처 입은 감정을 여는 데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를 면밀히 살펴보시도록 청해야 한다. 성령께서만이 우리 안에 있는 기억들 중에 어느 것이 참으로 중요한 것이지 아신다. 한편으로 성령의 은사인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통해 우리가 그동안 묻어왔던 의식들, 상황들, 감정들을 다시 일깨우기도 한다. 다음의 예들을 일깨워 주도록 요청한다. 1) 상처, 쓴뿌리를 살핀다. 2) 원망 혹은 쓴뿌리, 용서하지 않음을 살핀다 - 사탄의 포로가 된다. 3) 충격적인 사건,사고를 살핀다 - 슬픔과 비탄 4) 가계에 흐르는 죄악을 살핀다 - 사술에 종사, 주술을 행함, 비밀 집단, 속박들(약물, 습관) 5) 습관적인 죄악을 살핀다. 2단계 / 용서하거나 회개, 축귀한다. 3단계 / 예수님께서 우리의 상처를 담당하시도록 맡긴다. 일반적인 인간 심리치료의 방법과는 달리 복음만이 지니고 있는 유일한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상처를 담당하시는 구주가 계시며, 우리의 치료자가 계시다는 사실이다. 그분이야말로 우리의 죄와 질고를 담당하시며 동시에 우리를 온전케 하신다. 1) 아무리 고통스러운 감정일지라도 우리는 의식세계 안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 2) 이와같은 감정들은 예수 그리스도께 가져가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의 감정을 동일하게 느끼신다. 그분은 친히 배척과 모욕과 불의를 당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와 함께 지금도 상처를 받고 계신다. 복음으로 치유하는 데에만 독특하게 있는 것은 실제로 살아계신 초자연적인 구세주와 치료자가 상황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시62:8)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셀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후 제일 먼저 들어간 곳은 \'수르 광야\'였다. 이 광야는 하갈이 사래에게서 멸시를 받고 도망해 나와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하갈은 이곳에서 인생의 아주 쓰디쓴 경험을 겪었다. 하갈은 광야의 샘 곁에서 천사를 만나 위로를 받고 나서 하나님은 어디서나 자기를 감찰하시는 분인 줄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그 샘을 \'나를 감찰하시는 생존자의 우물\'이라고 이름하였다(창16:7-14). 이스라엘 백성들도 같은 장소에서 \'마라\'라는 쓴 물을 마시게 되었다. 쓴 물을 마신 이스라엘 백성들의 첫 반응은, \"하나님, 왜 저희를 이런 상황에 두셨습니까? 하는 원망이었다. 이렇게 백성들이 원망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자신이 \'우리를 치료하시는 분\'이심을 보여 주셨다. 그분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 인생들 안에 있는 모든 아픔과 상처를 그분 앞에 가지고 와 온전히 치료받기를 원하신다(창15:22-26). 모세가 쓴 물에 던졌던 나뭇가지는 우리의 슬픔과 아픔을 위해 자신의 삶을 던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모형이다(사53:3-5). 4단계 /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인다. (시139:13-16)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기우지 못하였나이다.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치유하시도록 그 사랑을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성장하기 위하여 양자의 영 곧 성장케 하시는 영인 성령의 능력을 받을 필요가 있다. 5단계 / 감정이 성숙해야 한다. 상처받았던 감정은 미성숙한 상태에 있었으므로 치유 후에 다시 성장해야 한다. 1) 감정은 언제나 계속해서 죄로 인한 모든 왜곡과 상처로부터 깨끗이 씻겨져야 하고 치유되어야 한다. 감정은 깨끗이 정화되어야 한다. (시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2) 새로운 감정은 우리 안에서 정당한 위치를 차지하며 중요한 부분임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며 존중할 때 풀어진다. (겔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3)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인도하고 수정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6단계 / 치유하기까지 인내하라. 포기하지 말라. (빌1: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용서하라 1. 용서하지 않은 결과 내적 치유를 받는 데 가장 큰 장애는 용서하지 못함이다. 용서하지 않는 마음을 계속 유지하면 육체적, 감정적 존재를 크게 상하게 하여 매우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1) 뼈가 쇠하여진다(시32:3,잠14:30,17:22). 증오심과 원한은 사람의 혼과 마음에 상처를 남긴다. 완전한 치료를 하지 않으면 나중에도 계속해서 출혈이 종종 일어난다. 과거에 자신을 상처 준 사람들에 대하여 원한이나 복수심을 오랫동안 마음속에 계속 품어오고 그대로 방치하여, 하나님의 개입과 치유를 받지 아니하면 그 상처의 흔적과 후유증으로부터 일평생 해방 받을 수 없게 되어 버린다. 2) 귀신에게 문을 열게 된다(엡4:26-27,고후2:10-11,마18:34-35). 이러한 원한, 증오심, 고통스런 감정의 하나 하나가 악령들에게 마음의 문빗장을 활짝 열어 놓는 셈이 되는 것이다.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사단에게 발판을 만들어주는 지름길이다. 사탄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오며, 이 마지막 시대에 온 인류를 대적하기 위해 수많은 악령들을 풀어 놓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친아들과 서로 대립하게 하고, 부부를 적대시하게 만들고,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를 이간질 시키고, 우정을 깨뜨리고, 모든 종류의 가까운 인간관계를 깨뜨리는데 성공하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용서하지 않고 서로가 대랍하고 적대시 한다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우리에게 임하는 것이 방해받게 된다. 사단은 이 사실을 우리 그리스도인들보다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들이 사단의 손아귀에 잡히게 되면 자살, 우울증, 정신착란 등을 유발시키고 때로는 신체적 증상으로도 나타나게 된다. 3) 우리에게 상처입힌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도 하나님께 용서받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막11:25)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더라 2. 왜 용서해야 하는가? 1) 하나님께서 화해하게 하셨기에 (롬5:10-11)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에 영접하는 것에 의해서 우리들과 화해하신 하나님은 바울 사도의 말에 의하면 이 화해의 역할을 우리들에게 주셨다는 사실이다. 이 화해의 역할은 하나님과 우리들 사이만의 것이 아니고, 우리를 상처주고 고통스럽게 했던 모든 사람들과의 사이에 주어진 역할이다. 화해라고 하는 말은 라틴어로는 reconciliatio라고 하는데 \"파괴된 관계를 회복한다\"는 의미가 있다. 또 그리스어로는 katallage로 번역되어 있지만 \"적의를 우정으로 바꾼다\"는 의미가 있다. 용서와 화해의 다양한 모범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으뜸가는 본보기는 예수님과 스데반이다. 왜 용서가 우리의 자유에 그렇게 결정적인 요소가 되는가? 그것은 십자가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대가를 받게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그분의 자비하심을 따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셨다. 그래서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신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눅6:36). 우리가 용서를 받은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용서해야 한다(엡4:31-32) 2)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용서하셨기 때문이다. (고후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정의(正義)는 어디에 있는가? 십자가의 용서가 그 사람을 법적으로 도덕적으로 의롭게 만든다. (롬6:10)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3) 용서해야 성령충만을 받을 수 있다. 뚜껑을 한 채로 빈 병을 물 속에 넣어도 결코 물로서 가득 채워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한 방울의 물도 들어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영의 세계에서도 완전히 이것과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든 사실이다. 당신의 삶 위에 자유롭게 임하시고 충만하게 임하시려고 하시는 성령님을 방해하고 막고 있는 두껑을 지금 곧 치워버리라. 3.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 1) 먼저 몇가지를 깊이 생각해 보라. 첫째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해 주신 일들에 대하여 깊이 묵상하라. (엡4:3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골3:13)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둘째로, 주님께서 우리를 아프게 한 사람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축복에 대해 감사드려라. 우리에게 상처를 주었을 때, 그들의 개인적인 필요 - 정신적, 신체적, 감정적, 영적 - 에 대해 생각해 보라. 그 당시(그리고 지금도) 그들이 우리 보다 더 어렵고 도움이 필요한 상태였을 가능성이 크다. 셋째로, 그들을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구하라. 이는 성령의 역사임을 인정하고 믿음으로 받아들이라. (롬5:5)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갈5:6)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넷째로, 하나님의 사랑을 당신의 말과 행위로 그들에게 표현할 기회를 얻도록 기도하라. (요일3:17)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 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다섯째로, 그들을 위하여 고정적인 중보기도자가 되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축복하고, 격려하고, 위로하고, 강건하케 하며, 그들의 가장 깊은 필요를 채워 주시도록 기도하라. (마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 라 2) 과거에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을 용서하라. 자신이 용서할 수 있다고 느낄 때까지 지체하지 말라. 반드시 용서해야 한다. 용서한 의지적인 행동이다. 우리가 용서하기를 소원해야 한다. 3) 용서의 12단계 (1) 상처를 준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해 내라.(종이에 적으면 효과적이다) 거절, 사랑의 결핍, 불의, 불공평, 폭언, 성적,감정적,신체적 학대, 배반, 무시 등 이렇게 기도하라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당신의 인자하심이 저로 회개케 하셨음을 깨달으면서, 당신의 인자하심과 오래참으심, 인내하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롬2:4). 저는 저에게 잘못한 사람들에게 그렇게 인내하지도 못하였고, 자비를 베풀지도 못하고 비난과 원한을 품고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제 자신을 살펴보는 이 시간에 제가 용서해야 할 사람들을 기억나게 해 주시고, 저 또한 용서해 주십시오(마5:23-24)\" 기도할 때, 그동안 기억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마음속에 떠오르도록 준비하라.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이 그들의 부모라고 답한다. 그리고 여기서 간과되기 쉬운 것은 자기 자신이다. 왜 자신을 용서해야 하는가? 왜냐하면 자신의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을 비난할 수 없을 때 자기 자신을 비난하게 되기 때문이다. (2) 자신의 상처와 증오를 직시하고 인정하라. 감정을 기록하라. 만일 자기 과거의 감정은 그대로 두고 다른 사람을 용서한다면 그것은 불완전한 용서이다. 이것은 복음주의적인 은닉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는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치유하실 수 있도록 그 아픔을 표면으로 나타내자. (3) 십자가의 의미를 깨달으라. 용서를 법적으로 도덕적으로 정당하게 한 것은 예수의 십자가이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죄와 당신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들의 죄를 포함하여 세상의 모든 죄를 지고 \'단번에\'(히10:10) 죽으셨다. 당신은 마음속으로부터 \"그것은 불공평해. 정의가 어디 있어?\"하고 외칠지 모른다. 그것은 십자가 안에 있다. (4) 서로 짐을 지기로 결정하라. (갈6:1-2)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 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5) 용서하기로 결단하라. 용서는 다른 사람은 그대로 내버려 두고 자신의 과거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의지적 결단이며 의식적인 선택이다. (6) 목록을 하나님께 드리고 \"이러이러한 죄를 용서합니다\"와 같이 기도하라. \"주님 나는 ○○○가 내게 이러 이러한 고통을 준 것을 예수 이름으로 용서합니다.\" \"주님 제가 용서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돕고 계시기 때문이다. \"주님, 저는 용서하기를 원합니다\"라고 기도하지 말라. 그런 기도는 용서하기로 선택하는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각 개인을 위해서, 그들이 자신에게 입혔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모든 고통이 다 사라졌다고 확신할 때까지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라. 기도할 때,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과거의 사람들과 경험을 하나님께서 마음 소게 떠오르게 해주실 것이다. 그것이 고통스러울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도록 하라. 하나님은 우리가 자유하기를 원하신다. 자신을 괴롭힌 사람들의 행위를 합리화하거나 설명하려 할 필요는 없다. 용서는 자신의 고통과 관계있는 것이지 범죄자의 행위와 관계있는 것이 아니다. 긍정적인 감정은 적절할 때에 따를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과거로부터 자신이 자유하게 되는 것이다. (7) 그 목록을 찢어 버리라. 당신은 이제 자유이다. 당신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에게 당신이 용서한 것을 이야기하지 말라. 이 용서는 오로지 당신과 하나님 사이의 일이다. 당신이 용서해야 할 사람이 이미 죽어버렸을 수도 있다. (8) 그 사람을 용서하기로 했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큰 변화를 기대하지 말라. 그대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라. (마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9) 당신이 용서한 사람들을 이해하라. 그들 역시 희생자이다. (10) 당신 안에서 용서의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라. 때가 되면 당신은 상처나 분노, 앙갚음 없이 상처를 준 사람들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부정적인 반응 없이 그들을 대할 수 있을 것이다. (11) 상처받은 결과로 얻은 영적 성장과 그 교훈에 대하여, 또 상처를 입힌 사람들을 용서함으로 인한 모든 유익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라. (12) 상처를 받은 것의 일부 책임이 당신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 당신의 실패를 하나님과 상대에게 고백하라(요일1:9). 용서는 단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일종의 과정이다. 마음의 고통이 사라질 때까지 끊임없이 용서하는 것이다. 상처가 깊을수록 용서함의 크기도 크다. 외과의사가 육체의 상처를 수술할 때, 다시는 감염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도려내듯이 우리도 자신의 상처가 완전히 회복되도록 감정의 상처까지 치료하는 것이 필요하다. 용서란 치료뿐 아니라 감정의 상처가 다시 곪는 것을 방지하는 일종의 명약이다. 어떤 정신과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나를 찾아오는 환자들 가운데 절반은 자신이 용서받았다는 사실만 안다면 일주일 만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상담과 내적 치유의 중심 과제는 용서의 장애물을 제거해 줌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은혜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데 있다. 내적치유를 위한 제언 가짜를 포기하라 과거에 혹은 현재 가지고 있는 사단의 영향력으로 인한 마술적인 행위나 거짓 종교들의 참여를 포기하라. 많은 사람들이 아마 과거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영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고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려고 많이 애를 써봤을 것이다. 그때의 모든 것을 포기하라. 무속적인 모든 것을 포기하라. 초대교회에서는 공적인 신앙고백 중에, \"나는 사단과, 사단의 모든 일과 방법을 부인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카토릭 교회와 희랍 정교회, 그리고 많은 다른 교회들은 아직도 예배 중에 이런 의식을 행한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대부분의 복음주의적 교회에서는 이 의식이 사라졌다. 우리는 이 진리를 선택해야 할 뿐 아니라, 사단과 그의 거짓말을 물리쳐야 한다. 진리에는 중간지대가 없다. (눅11:23)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너무나 쉽게 용납했던 모든 것을 포기하라. (고후11:3-4)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이렇게 기도하라. \"하나님 아버지, 제가 알게 모르게 참여했던 신비적인 것이나 거짓종교, 그리고 거짓 선생들을 보여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마음 속에 깨닫게 해 주신 것들을 다 기록하라. 기록했으면 각 항목, 곧 우상 그 하나하나마다 다음과 같이 기도하라. \"주님, 저는 … 에 참여하였음을 고백합니다. 저를 용서해 주시고, 이제 저는 … 가 주님 앞에 배치되는 것이기에 단호히 버리도록 하겠습니다.\" 가족 중의 누가 참여한 적이 있어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사단에게 발판을 제공하였을 수도 있다. 속임수를 피하라 우리는 거짓을 버리고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여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속임수를 버리고 진리를 품는 사람이다. (엡4: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엡4: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요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렇게 기도하라 \"하나님 아버지, 당신은 우리 중심에 진실함을 원하시며 이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는 것임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저는 거짓의 아비(요8:44)에게 속은 것과 또 제가 제 자신을 속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요일1:8).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의 흘리신 보혈과 그분의 부활로 인하여 모든 속이는 영들로부터 자유를 선언합니다. 이제 성령으로 저를 인도해 주시되 특히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속임수는 가장 간교한 사단의 요새이다. 고질적인 습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들에게 계속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을 관찰해 본 적이 있는가? 알콜 중독자들은 그들의 음주에 대하여 거짓말을 하며, 식욕 부진증의 사람들은 그들의 식생활에 대해 거짓말을 한다. 또 성범죄자들은 그들의 습관에 대하여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은 거짓의 아비인 사단의 부추김을 받아서 하는 악한 범죄이다. 사단의 거짓말은 우리를 중독환자로 만드는 특성이 있다. 따라서 만성적인 습관에서 영적인 측면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아래 신조를 큰 소리로 자주 읽고, 마음을 새롭게 하라. 그리고 그 진리에 따라 확고한 신앙의 자세를 가지라. === 신조 ==== 나는 오직 한 분 참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출20:2,3)이 계신 것을 알며, 그는 성부, 성자, 성령으로 존재하시고, 또 영광과 찬양과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창조주이시며,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만물의 처음과 나중 되시는 분(계4:11;5:9,10 사43:1,7,21)이심을 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이시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안에 거하시는 분임을(요1:1,14)안다. 나는 그 예수가 사단의 역사를 깨뜨리러 오셨음을(요일3:8)믿으며,그가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음(골2:15)을 믿는다. 나는 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다. 왜냐하면 내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죽으시므로 그 사랑을 증명하셨기 때문이다.(롬5:8). 나는 또한 그가 나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어 그의 나라로 옮기셨으며, 그 안에서 내가 구속함을 받고 죄의 용서를 받은 것을 믿는다(골1:13,14) 나는 지금 하나님의 자녀이며(요일3:1-3),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운 것(엡 2:6)을 믿는다. 나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며,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며 나의 어떤 행위을 결과가 아니라는 것(엡2:8)을 믿는다. 나는 주 안에서 강하고 그의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 짐을(엡6:10)믿는다. 나는 육신을 신뢰하지 않는다(빌3:3). 왜냐하면 나의 싸움의 무기는 육신이 아니기 때문이다(고후10:4). 나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며(엡6:10-17), 믿음 위에 굳건히 서서 악한 마귀를 대적할 것이다. 나는 예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셨다는 것을(마28:18)믿으며, 또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되심(골2:10)을 믿는다. 나는 내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이기 때문에 사단과 그의 마귀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나에게 복종할 것을(엡1:19-23) 믿는다. 그러므로 나는 마귀를 대적하라는 명령에 순종하며(약4:7),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마귀가 나에게서 떠나도록 명령한다. 나는 그리스도를 떠나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요15:5)믿으며, 그래서 그리스도만을 믿기로 선포한다. 나는 많은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리는 길을 선택한다.(요 15:8). 나는 사단에게 예수는 나의 주라는 것을(고전 12:3) 선포하고, 또 나의 생애에 있어서 어떤 가짜 은사나 혹은 사단의 활동을 거부한다. 나는 진리가 나를 자유롭게 하며(요8:32), 빛 안에서 행하는 것이 하나님과의 유일한 친교임을(요일1:7)믿는다. 그러므로 나는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 함으로(고후10:5)사단의 속임수에 굳건히 대적한다. 나는 성경만이 유일한 권위의 표준임을 선포한다(딤후3:15-17). 나는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기로 결심한다(엡4:15). 나는 나의 몸을 의의병기로 거룩한 산 제사로 하나님께 드릴 것이며, 또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증명하기 위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마음을 새롭게(롬 6:13,12:1,2)할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으로 나의 마음을 채워주시고(엡5:18),모든 진리로 나를 인도하시며(요16:13),내가 죄를 떠나 육신의 정욕을 좇지 않도록(갈5:16) 나의 삶에 능력을 주시기를 간절히 구한다. 나는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으며(갈5:24),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 것이다. 나는 이기적인 목적을 모두 버리고 궁극적인 목적으로 사랑을 선택한다.(딤전1:5). 나는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첫째 되는 계명(마22:37-39)을 지킨다. 권위에 복종하라 우리는 권위자들을 판단하는 것을 자기의 권리인 것처럼 생각하는 반역적 시대에 살고 있다. 교인들은 성가대를 비판하고, 설교를 비판한다. 그러나 우리는 예배를 드리면서 설교를 비판하는 것보다는, 설교가 우리를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 1) 하나님을 반역할 때 우리에게는 고통만이 남을 뿐이다. 인간의 권위에 대한 복종은 그에 대한 신뢰를 증명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시며 복주실 것과, 또 모든 일이 형통할 것이라는 믿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가 복종하지 못한 것은 정결케 주시도록 기도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의 확고하신 권위를 통하여 역사하실 것을 믿는 믿음을 선포하라. 하나님께 대한 고의적인 반역을 고백한 후에, 큰 소리로 이렇게 기도하라.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반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邪神)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다(삼상15;23)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마음과 행위로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 저의 죄를 씻어 주시고, 저의 반역 때문에 악한 영들이 얻었던 모든 근거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보혈로 모두 깨끗이 없애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제 길에 빛을 비추어 주시어 저의 죄를 다 깨닫게 해 주시고, 순종하는 영과 마음을 갖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2) 우리는 또한 인간의 권위에 대해서도 반역을 한다. 권위자에 대해 우리는 두가지 책임이 있다. 우리는 권위자를 위하여 기도해야 하고, 또 그 권위자에게 복종해야 한다. 모세의 권위에 대항했던 누이 미리암을 보라. 문둥병이 들었던 것이다(민12:10). 하나님께서 이 세상 지도자들에 대한 불순종을 허락하신 경우는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법적,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을 우리에게 요구할 때이다. 국가 지도자(롬13:1-5, 딤전2;1-4, 벧전2:13-16) 부모(엡6:1-3), 남편(벧전3:1), 고용인(벧전2:18-21), 교회 지도자(히13:17) 교만과 죄악을 버리라 1. 교만을 버리라 교만은 살인자이다. 교만은 이렇게 말한다. \"내 힘으로 그것을 할 수 있어. 하나님의 도움 없이도 이 어려움을 나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어.\"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절대적으로 하나님이 필요하며, 또한 서로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교만은 루시퍼가 천국에서 추방당하는 요인이 되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이렇게 살 것을 서원하라. \"하나님 아버지, 당신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잠16:18). 저는 자신을 부인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십자가를 매일 지지도 않았고, 하나님을 따르지도 못했음을 고백합니다(마16:24). 그래서 삶에서 원수에게 근거를 제공하였습니다. 저는 제 힘과 수완으로 성공할 수 있고 승리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뜻대신 내 뜻대로 행하였고, 하나님 중심이 아닌 나 중심으로 살면서 하나님을 대적했던 죄를 고백합니다. 이제 이기적인 생활에서 돌이킴으로써 주 예수 그리스도의 원수들에게 제공한 모든 근거를 취소합니다. 제가 이기적인 일을 하지 않으며, 공허한 자만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길 수 있도록(빌2:3) 인도해 주십시오. 또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먼저 하도록(롬12:10) 도와주십시오.\" 2. 죄악을 버리라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범죄하고나서 고백하는 쳇바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은 기도로 자신을 일으켜 세울 수 있고 자신이 신뢰할 수 있는 의로운 사람을 찾을 필요가 있다. (약5:16)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이렇게 기도하라. \"하나님 아버지, 당신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롬13:14). 저는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지 못하고 죄를 지었음을 시인합니다(벧전2:11).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해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저는 거룩한 법을 범하였으며, 마귀에게 기회를 주었습니다(엡4:27, 약4:1, 벧전5:8). 저는 이런 죄들을 고백하고 용서받고 죄의 멍에에서 나오기 위하여(갈5:1) 하나님 앞에 나왔습니다. 이제 제가 하나님의 법을 범하여 성령을 슬프게 해드린 일들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죄를 고백한 후 이렇게 기도하라. \"이제 저는 이 모든 죄를 고백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용서받고 정결케 된 것을 믿습니다. 또한 죄를 반복함으로 사단에게 제공하였던 모든 근거를 거부하며 죄악된 습관을 잘라 버립니다.\" 그리고 사단을 대적하라. 3. 조상의 허물과 유전을 버리라 마귀의 요새들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출20:4-5). 이것은 많은 문제들이 선천적으로 유전되거나 혹은 부도덕한 분위기 속에서 얻게 되기도 한다. 과거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기도하라. \"하나님 아버지, 저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사신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께 나아옵니다. 지금부터 내 안에 남아 있는 조상들의 모든 허물과 죄를 자복하오니(느9:2) 나를 깨끗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제 어두움의 권세로부터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로 변화되어 조상들로부터 전달된 모든 사단의 역사를 무효로 할 것은 선언합니다. 사단이 나에게 가졌던 모든 소유권을 거절하고 되찾아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의 모든 것을 영원히 맡기기로 선포합니다. 나의 마음에 성령으로 가득채워 주옵소서. 나의 몸을 의의 병기로, 산제물로 하나님께 드리고, 나의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위의 단계를 모두 거쳐서 자유롭게 된 후에도 사단은 계속해서 우리 안에 다시 들어오려고 시도할 것이다. 그러나 시도할 때 마다 분명하게 큰 소리로 명령하여 거절할 때 그 영은 떠날 것이며, 우리는 자유할 것이다. 낮은 자존감을 버리라 자존감은 자신에 대한 정신적인 이미지로서,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상황과 미래에 대한 상상을 다 포함하는 총체적인 그림이다. 그 그림에는 온갖 종류의 반성과 평가와 감정 등이 수반되면서 특별한 느낌을 유발시킨다. 만일 그 평가와 감정들이 대체로 긍정적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보고 좋은 자아상을 갖고 있다. 혹은 자신에 대해 좋은 느낌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만일 그것들이 대체로 부정적이라면 그것은 나쁜 자아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상담을 하러 올 때, 와서 처음으로 얘기하는 것들 가운데 하나는 자기가 자기를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들의 낮은 자존감은 \"나는 내가 싫어요.\"하는 좀 가벼운 것에서 \"자신에 대해 이젠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요.\"하는 한층 격렬한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표현된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토록 많은 진정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낮은 자존감이라는 고통으로 괴로워해야 하는 것인가? 1. 자기 부인과 자기 가치의 인식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자아상을 갖는다고 하는 말에 대해서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 의미를 완전히 혼동하고 있다. 그들은 자아,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음, 자기 부인, 자기 존중, 자존감, 자기 사랑, 자기 복종, 겸손, 교만 등은 물론 그밖의 수많은 관련 단어들을 온통 뒤죽박죽 얽히고 설킨 상태로 이해하고 있다. 그것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일상 생활을 그토록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잘못된 자기 부인 인식은 개인적으로는 하나님이 주신 자신의 은사들을 부정해 버리기도 하고, 자기 표현을 잘 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래서 결국 자기를 별 볼일 없는 존재이거나 아예 아무런 가치도 없는 존재로 생각하기에 이른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은 성경에 아홉 번 나온다. 모세가 두 번(레19;18,19:34), 예수님이 다섯 번(마19:19,22:39, 막12:31,33,눅10:27, 중복 포함), 바울이 두 번(롬13:9,갈5:14), 그리고 야고보가 한번(약2:8) 말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그 가운데 한 번은 \"너희와 함께 있는 타국인을 …자기같이 사랑하라\"(레19:34)로 되어 있다. 이 구절들이 본질상 자신을 사랑하라고 명령하고 있지는 않다는 말은 문자적으로는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의 정상적인 기초는 곧 온당한 방식의 자기 사랑이라는 사실은 매구절에 너무도 분명하게 깔려 있다. 성경 모든 곳에서 온당한 자기 사랑, 자기 보호, 자기 가치 인식은 정상적인 것임이 전제되고 있고, 자기를 미워하거나 무시하거나 혹은 자기 가치 비하에 빠져들라고 말하는 곳은 아무 데도 없다. 자기 부인이란 자기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의지를 부정하고 자기 영광을 구하려는 태도를 내버리는 것을 말한다.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다는 것은 우리의 육신적이고 자기 영광을 구하는 자아를 포기하고 그것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십자가에 못박히도록 하고자 하는 자발적인 마음을 뜻한다. 그것은 결코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은사들을 포기하거나 비하시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은사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될 수 있도록 그것을 하나님게 내어드리는 것이다. 성경에도 나타나있듯이 교만이란 자신에 대한 정직하지 못한 평가이다. 바울은 이것에 대해 이렇게 경고한다. (롬12: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 말미암지 않고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음을 거듭 말하곤 하는 바울이 이제 여기서는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의 믿음은 우리에게 동시에 우리 자신에 대한 정직하고 정확한 평가도 가져다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열등감과 불안과 부적절감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사단에게로부터 오는 바 참된 겸손의 모조품이다. 2. 낮은 자존감에서 빠져 나오려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모든 사실들에 전적으로 동감은 하면서도 여전히 자기 무가치감과 낮은 자존감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쉬지 않고 관련 성경 구절을 암송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자 애쓰며, 가슴 속으로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신의 모습들이 되어보고자\' 노력을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에 대하여 좋은 느낌을 갖지 못한다. 이 몇 가지 은혜의 내적 장애물들을 살펴보자. 1) 자기 용서가 필요하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자기 경멸적인 모습 때문에 괴로움을 당하는데 그것은 그들이 과거의 도덕적인 잘못들에 대하여 참으로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네, 저는 그리스도인이예요. 저는 그리스도께서 저의 죄를 위해서 죽으신 것과 하나님께서 저의 죄를 사해주셨다는 것을 믿어요. 그러나 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저는 그 뭔가를 인하여 제 자신을 영적으로 자꾸만 걷어차고 있는 것을 봅니다. 마음 속에 느린 화면을 통해 계속 그것은 반복되어 돌아가고 있고 결국은 자신을 행한 책망과 비하에서 끝이 나고 맙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으라. \"너희는 과거의 죄 때문에 근심하지 말고 자신을 미워하지 말라. 내가 바로 그 죄를 포함한 너희의 모든 죄를 위하여 고난을 받았고 목숨을 버렸다. 너희는 너희 자신을 용서함으로써 너희가 나의 용서의 선물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나에게 보여다오. 너희가 너희 죄로 계속 자신을 경멸한다면 그것은 십자가에서의 나의 죽음을 모욕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사실은 너희가 너희의 죄의 능력이 하나님의 능력보다 더 크며 너희의 죄가 너무 강하여서 하나님이 그것을 가지고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뒤집어 놓는 일이기도 하다. \'은혜가 더한 곳에 죄가 더욱 넘쳤나니.\' \" 2) 더 이상 부정적인 감정들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왜 그토록 강박적이리만치 과거에의 죄책감과 현재의 자기 경멸의 그 소용돌이 속에 그대로 눌러있는지를 물어보면 그들의 대답은 이렇다. \"만일 내가 자신에 대해서 그런 식으로 느끼지 않는다면 나는 아마도 입벌린 죄의 굴 속으로 그냥 미끄러져들어가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내겐 그것들이 필요합니다. 그게 없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무릅니다.\" 이 얼마나 비참하고 그릇된 개념이란 말인가! 이것은 율법의 참 목적하고도 상관이 있다. 율법은 사람들의 삶 속에서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게 하려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자신의 죄를 보게 해주고 그들 속에 죄책감과 정죄감과 상실감을 느끼게 해 주어 결국은 그들을 유일한 소망되신 그리스도에게로 오게 해주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롬3:20,갈3:23-25). 일단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자에게는 죄책감이나 정죄감이나 자기 경멸은 더 이상 올바른 삶의 동기가 될 수 없다. 변화에는 다소간 시간이 걸리겠지만 사랑만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의 삶의 동기가 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인가? 바울에 따르면 우리는 율법의 저주로부터 자유하고(갈3;13), 율법의 강압적인 힘으로부터 자유로우며(롬7:7-9), 율법이 요구하는 의식들로부터 자유하다(갈5:1-6).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향한 율법의 도덕적인 목적으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롬8: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 심이니라 (롬13: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성경적인 관점에서 볼 때 죄책감이나 정죄감이나 자기 비하적인 무가치감에 묶여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저주와 가시와 율법의 세력 아래서 살고 있는 것이다. 죄책감과 자기 혐오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감정은 두려움이다. 그리고 두려움은 모든 감정 가운데 가장 자기 중심적인 감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두려움을 올바른 삶의 동기로 삼는다면 그것은 우리를 더욱 더 자기 중심적이고 불안스럽게 만들뿐이다. 즉 두려움은 그 자체가 목표를 허물어 내리며 결국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그 목표에서 우리를 더욱 멀어지게 만든다. 4) 내부의 작업을 요한다. 낮은 자존감은 우리가 외부로부터 성취하거나 얻어내는 어떤 것에 의해서 치료되지 않는다. 문제가 워낙 뿌리깊기 때문에 치유도 내부로부터 와야 한다. 낮은 자존감은 행위에 강조를 두는 오랜 비교 행각에 대한 표현인 열등감 보다도 훨씬 심각한 것이다. 낮은 자존감엔 인격의 존재 자체가 다 개입되기 때문이다. \"나는 무가치하고 받아들여질 수 없는 존재야, 내가 하는 일들은 단지 내가 그런 존재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것 뿐이야, 나의 실수들과 받아들여질 수 없는 행동들은 그저 나의 본 모습을 사람들에게 폭로해주는 것 뿐이야.\" \"나 같은 사람을 참으로 좋아해 줄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어\" 이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칭찬을 듣든 그런 것들과 무관하게 결코 자신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더 나아진 느낌을 갖지를 못한다. 자기가 무가치하고 받아들여질 수 없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먼저이다. 즉 그들의 존재 자체 속에 낮은 자존감이 이미 자리하고 있기에 아무리 값어치 있고 받아들여질 만한 행위를 많이 한다 해도 그것은 여간해서 바뀌질 않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그들에게 누가 봐도 잘한 일에 대하여 칭찬을 하거나 아니면 아주 받아들여질 만한 그리스도인다운 행동을 알아주고 지적하여주어도 그들은 결코 그것을 향유하지 못한다. 이 사실은 실로 설명할 방도가 없다. 그들은 듣긴 들어도 믿지 않으며 가슴 속으로부터 느끼지는 더더구나 못한다. 거꾸로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하며, 심지어 그것을 가장 정교한 방식으로 자신의 자기 비하를 더 한층 심하게 하는 데에 사용하기까지 한다. 그들의 정교한 생각들을 한 번 들어보자. ` 사람들은 나한테 미안한 마음이 있으니까 그냥 내 기분을 좋게 해주려는 것뿐이야. ` 난 저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아. 이 사람은 나를 속이고 있는거야. 이 따위 연민은 나에겐 필요없어, ` 이이는 지금 단지 내 기분을 좋게 해주려고 나한테 멋있어 보인다느니 어쩌느니 하는거야. 나는 제발 남편이 진실을 말해줬으면 좋겠어(종종 예쁜 여자들이 이런 말을 한다). ` 집사람은 내가 자랑스럽대. 하지만 그냥 기분 좋으라고 하는 소리지(종종 아주 성공적인 남자들이 이런 말을 한다) ` 사람들은 나를 몰라서 저런 소릴 하는거야. ` 아마 나라는 사람을 좀더 알게 된다면 그때도 그런 느낌을 갖게 되지는 않을걸 ` 칭찬 같은 거야 아무리 많이 받아도 내겐 소용 없어. 밑바닥이 영인데 거기다 아무리 뭘 갖다 붓는다 해도 맨날 영이지 뭐. ` 저한테 이런 말을 해주시니 고맙지만 당신은 상담자니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겠죠. 이 뿌리 깊은 낮은 자존감은 내부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우리 밖의 어떤 것에 의해서는 해결될 수 없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아래 방법으로 낮은 자존감을 이겨 볼려고 한다. 성취를 향한 추구 / 많은 사람들이 만일 자기가 어떤 일의 영역에서 성공만 할 수 있다면 자신이 가치있는 존재라는 것을 스스로 입증해 보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렇게만 되면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받아줄 것이고 사랑해줄 것이며, 자연히 자기도 스스로에 대해 더 좋은 느낌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좋은 결과를 성취하며 아주 높은 경지의 성공을 이뤄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오직 그들에게 행위나 성취의 양이 아무리 많아도 그들이 내적으로 스스로에 대하여 갖고 있는 느낌은 변화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해 줄 뿐이다. 결국 전체 악순환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고 행위의 덫은 그들을 이전보다 훨씬 꼼짝달싹할 수 없게 꽉 조여놓게 된다. 이런 길은 여자보다 남자가 선택하는 비율이 훨씬 높은 것 같다. 아무래도 남자들은 일에 더 많은 관여를 하고 있고, 따라서 자연히 자신의 노력을 통하여 지위와 자존감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애정에 대한 갈급함 / 다른 사람들로부터 주어지는 애정과 사랑을 통하여 더 높은 자기 가치를 느껴보고자 하는 것은 여자쪽이 훨씬 많다고 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것 역시 첫 번째 것만큼이나 만족스러운 채움의 방편은 못된다. 다시 한번 악순환은 시작되며 그 결과 그들에게는 작게는 지나치게 불안하거나 지나치게 요구하고 지나치게 소유하려 들거나 지나치게 비판적인 모습으로부터 시작하여 심하면 지나치게 애정을 탐하여 난잡한 성생활로 빠지는 모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일시적으로 갈급함이 경감되는 것 같은 기간이 있을는지 모르나 대개는 자신이 그토록 간절히 갈급해하는 그런 관계들을 유지할 수 없다. 4) 근원 치유 자존감의 상처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바로 거기가 치유와 보수와 새 부품이 필요한 부분이다. 치유의 은혜가 필요한 곳은 바로 여기이다. 첫째, 자신에게 상처나 모욕이나 박탈이나 거절을 당했었던 경험이 있다면, 다시한번 그것들이 준 고통을 그대로 느껴보고 그 고통에 대한 자신의 반응 감정들도 느끼도록 한다. 이것은 기도 가운데 하나님과 그리고 다른 사람과 나눌수도 있다. 이러한 자기 개방은 대단히 고통스러운 것일 수도 있으며, 여러분에게 충격을 던져줄 감정들이 일어나게 될 수도 있다. 둘째, 용서와 내어 맡김의 기도 가운데 그것들을 예수님께 내어드리는 것이다. 이것을 혼자 힘으로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어려운 일이므로 가까운 친구나 목사님이나 상담자 등으로부터 도움을 구하도록 하라. 오직 용서와 사랑만이 우리를 과거의 고통스런 기억들과 과거에 대한 파괴적인 평가들로부터 자유롭게 해줄 수 있다. 이 문제에 있어서 용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능동적인 용서(우리에게 잘못을 행하고 상처를 준 사람들을 용서하는 것)와 수동적인 용서(하나님의 용서를 받는 것, 그리고 때로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용서를 받는 것), 그리고 자기 용서(자신을 용서하고 더 이상 자신의 과거의 죄로 인하여 자신을 질책하지 않는 것)가 모두 다 중요하다. 은혜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장애물은 용서하지 않는 마음이다. 이것은 죄책감이나 자기 무가치감이나 자기 혐오 같은 뿌리깊은 감정들을 치유하는 데에 반드시 필요한 치유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일에 있어서는 더 한층 그러하다. 셋째, 매일 매일 새로운 자아상을 심는다. 치유하시는 은혜는 결코 위급할 때 딱 한 번 써먹고 마는 선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보다 새롭고 깊은 차원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게 될 때 번쩍이는 깨달음이나 혹은 깊은 감정적인 절정 경험을 통하여 찾아오며, 이것은 아직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속에 박힌 오래된 혹평의 \'나는 그래\'들을 깨뜨리기는 아주 어려운 일이다. 성령의 즉각적인 회복 행위들에 발맞추어 매일 매순간 협력해 나가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몰츠 박사는 과학적인 연구에 의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사람들에게 자신에 대한 느낌을 영구적으로 바꿔주는 데에는 새로운 개념을 내면적으로 계속 반복하는 데 소용되는 3주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3주간의 시간을 정해놓고 성령께서 참 모습을 깨우쳐주시도록 그 음성에 귀 기울이는 일에 마음을 집중하자 분노와 우울을 다스리라 행위 지향적이고 완전주의적인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마음속에 분노를 품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그것을 늘 의식하고 있었다거나 드러나게 표현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많은 경우 그들이 주는 인상은 스스로 아주 잘 통제되어 있거나 아니면 아주 사랑이 많은 사람으로서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들을 좀더 깊이 알게 되면,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내면적인 자아를 솔직히 열어놓게 되면, 그들의 인격 깊은 곳에 단단히 응어리진 분노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명백히 알게 된다. 사람들의 대다수는 자신의 분노를 의식하고 있다. 그만큼 분노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그들의 삶에 아주 중요한 문제라는 얘기이다. 그들은 적개심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고 때로는 더심한 격분에 시달리기도 한다. 도저히 통제가 불가능한 자신들의 분노 폭발들로 말미암아 그들은 직장과 교회에서는 물론 특히 부부관계나 자녀와의 사이에서 대인 관계의 파괴를 경험하게 된다. 그들은 이렇게 분노의 사람들이 되어가며, 무엇보다도 자신들이 그런 사람이라는 사실에 가장 크게 분노한다. 악순환은 여기서도 생겨나서 분노는 이어 죄책감과 낮은 자존감, 허위의식을 유발시키고, 나아가 우울의 근본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럼 치유하시는 은혜가 우리의 분노와 우울을 만지고 다룰 수 있는 몇가지 실제적인 방법들을 살펴보자. 1) 분노의 근본 뿌리를 찾아내어 직면하고 용서의 은혜가 그곳을 관통할 수 있도록 하라. 누가 그리고 무엇이 여러분 속에 그런 분노를 가득 채워놓았는지를 알아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분노를 유발시키는 것이 언제나 현재의 상황, 현재의 사람들인 것만은 아니다. 분노에 찬 사람은 어떤 면에서 전화 교환원대와도 비슷하다. 현재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그들은 그 사건을 가지고 과거에 당했던 상처에 탁 플러그를 꽂는다. 전체 분노 체제에 불이 활짝 켜지게 된다. 분노를 뿌리를 찾아내는 방법은 언제 내가 현재 상황의 자극의 정도에 넘어서게 분노의 반응을 하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복잡한 미로를 추적하여 참 원인을 찾아낸다는 것은 어떤 때는 아주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 나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토록 화가 나있는가? ` 나는 도대체 누구에게 이토록 화가 나 있는가? ` 왜 이 사람, 이 상황이 나를 이토록 화나게 만드는가? 문제의 근본 뿌리를 찾아내 거기 직면하고 은혜가 그것을 만지고 다룰 수 있도록 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히12:15)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2) 팽배해진 불공평감을 직면하고 용납의 은혜가 그것을 녹이도록 하라. 완전주의적이고 행위의 덫에 갇힌 그리스도인들은 뭔가 불공평하고 부당한 것에 대해서 너무나 지나친 민감성을 보인다. 그것은 마치 속에 설치된 시한 폭탄과도 같아서 인생의 불의한 것들에 조금만 접촉돼도 폭발해 버리고 만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자기의 분노에 찬 과민성을 하나의 미덕으로 간주하려고 함으로써 그것을 방어한다. 그들에게는 매사를 옳게 끝맺음하고 온갖 원인들을 다 밝혀내고 아주 공격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채울 수 없는 욕구가 있다. 대게 이들에게는 과거의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있다. 즉 불공평하게 취급되었다거나 상처를 받았다거나 모욕을 당한 일이 있어서, 그것이 그들의 고도로 발달된 부당하다는 느낌을 부채질하는 것이다. 많은 경우 이런 불공평하다는 감정은 유년기에까지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곤 한다. 너무도 많은 경우 자라난 불공평에 대한 분노는 심지어 직접 위를 향해 하나님께로 품어지게 된다. 그리고 거기엔 그분을 향한 숨겨진 적개심이 뒤따르게 된다. 그런 사람들은 종종 자기들은 인생에 분노를 느낀다는 말로 말문을 열곤 한다. 그러나 함께 주의 깊게 살펴보고 나면 그들은 그 분노가 실은 하나님을 향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옛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다. \"디자인이 마음에 안들면 디자이너도 싫어진다.\" 기도 가운데 하나님과의 대화를 시작할 때에, 치유하시는 은혜의 기적이 분노와 우울 속에 뚫고 들어가 그것을 녹여버릴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