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 세계의 치유

내면 세계의 치유
정태기 지음



1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1장 내 마음 속의 운전사
우리 인간은 마치 자동차와 같다. 자동차는 저절로 알아서 움직이는 게 아니다. 반드시 운전사가 운전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즉, 운전사 마음대로 움직여지는 것이 자동차이다. 어쩌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낯모르는 운전사에게 인생이라는 자신의 자동차를 내맡긴 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운전사 중에는 아주 신이 나서 근사하게 차를 좋은 곳으로 몰고 다니는 운전사도 있고, 불행하고 소극적이며 부정한 곳으로만 차를 몰고 다니는 고약한 운전사도 있다.

그런데 왜, 어떻게 해서 이런 운전사들이 우리의 마음 속에 들어와 자리잡게 되는 것일까? 특히 잘못된 운전사들이 어떻게 우리 마음 속에 들어와 구부러진 인생을 살게 하는 것일까?

이 책은 잘못된 운전사를 인생의 운전석에 앉히는 바람에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씌여졌다. 따라서 이 책의 관심은 나쁜 운전사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거나, 당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구제하는 데 있다.

나 역시 어린 시절 내게 들어온 잘못된 운전사가 서른 일곱 살이 될 때까지 나를 어둠 속으로 끌고 다녔다. 내 운전사가 내 마음에 자리잡게 된 사연은 딴 살림을 차린 아버지와 날마다 일 속으로 도망치는 어머니 그리고 그 사이에 소외된 어린 시절 때문이었다. 내 안에 쌓인 분노는 질긴 울음으로 터져 나왔다. 나의 끈질긴 울음은 한 번 울면 항상 잠들 때까지 이어졌고 잠에서 깨면 깨나자마자 또 다시 울었다. 내 안에 가득한 짜증과 욕구 불만의 덩어리들은 좀 더 커가면서 만만하다 싶은 상대에게 터져 나왔다. 때로 잔인한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집안에 키우던 가여운 소, 동생 막둥이, 친구 삼식이, 동네 아낙들까지 잔인하게 괴롭히며 내 마음 속엔 언제부터인가 아주 잔인하고 섬뜩한 운전사가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이 시점에서 당신도 어린 시절의 나처럼 마음 속에 어떤 응어리와 상처 혹은 어두운 그림자가 들어와 있는 것 같지는 않는가? 만약 그렇다면 머리 속에 집안의 가계도를 한 번 그려보라. 오늘의 나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외가, 친가, 친지들과 오랜 만남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 안에 이상한 운전사가 들어와 앉는 것이다.



2장 영적 갈망과 전인 건강
치유 상담이란 “내가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오늘의 나는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알아보는 사역이며, 한 인간을 전인적이고도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사역이다. 또 전인적이고도 총체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목회는 1)나의 영적인 면, 즉 “나의 영은 건강한가?”, “죄책감에 눌려 있지는 않은가?”에 관심을 둔다.

왜냐하면 죄책감이 심하면 삶이 흔들리고, 삶이 흔들리면 우리의 영도 흔들리기 때문이다. 영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만사가 그에 따라서 흔들린다.
먼저 가정의 화목이 깨지고, 사회 생활이 불편해진다. 항상 마음이 불안정해서 무슨 일에도 집중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 신속하게 사망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적 지도자는 영적인 갈망을 개방하고, 사랑하며, 성장하고, 삶을 즐거워하며, 자존감을 강화시키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방법으로 신자들의 영적 욕구를 채워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폐쇄적이고, 도덕적이며, 권위적이고, 우상적이며, 현실 부정이나 공포감을 조성하고, 죄책감을 더하는 방법으로 신자들의 영적 갈망을 충족시키려는 영적 지도자가 있다면 그는 전인 건강을 해치는 사이비에 불과하다.

2)정신은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도 있고 치유할 수도 있는 힘이 있다. 놀라운 것은 ‘플라시보 효과’처럼 잘못된 신념에 대해서도 육체가 반응한다는 사실이다. 플라시보 효과란 의학적 기능이 전혀 없는 약품(사실은 약품이 아닌 무해무익한 물질)을 복용한 후에 그 약의 효력을 정말로 믿은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치유효과를 말한다. PNI(정신신경면역학)이라고 부르는 이 최근 발전하고 있는 놀라운 의학분야에서는 마음과 육체의 상호 관계를 설명해주고 있다.

3)다음은 신체적인 면이다. \"나의 신체적인 조건은 어떠한가? 건강한 편인가, 그렇지 못한 편인가, 이것이 나의 영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에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가 기분이 나쁠 때는 곧잘 체하는 것을 보게된다. 따라서 신체가 건강하다는 것은 영적인 면과 정신적인 것이 모두 건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측면에서 자신의 신체를 건강하게 관리하는 것은 바로 영적인 훈련이다. 신체가 건강하지 않고서는 영성을 꽃피우기가 어렵다. 최선의 자기 관리는 자기 몸을 포함하여 자신의 총체적인 전존재를 사랑하는 것이다. 예일 대학교 의과 대학 교수인 버니 시걸은 이렇게 말한다.

“대부분의 환자가 직면하는 기본적인 문제는 자신을 사랑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가슴속에 뿌리를 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도울 수가 없다. 이것은 어린아이 시절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어른이 되어서도 그들은 아동기의 응답을 반복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병은 더욱 악화된다. 자신을 사랑하는 능력은 인생을 사랑하는 능력과 더불어 인생의 질을 높여준다. 인생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완전히 받아들일 때 이런 능력은 더 높아질 것이다. 외과의사로서 나의 역할은 환자들이 스스로 치유하는 동안 그들을 위해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나는 다른 사람들과 대체로 원만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 아니면 좋지 못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4)대인 관계가 원만치 못하면 반드시 영적인 상태에도 문제가 생긴다.
하나님은 애초부터 서로 사랑하지 못하면 기도할 수 없도록 우리를 창조하셨다. 사랑 없이는 믿음도 성장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우리의 전인 건강은 본질적이고도 불가피하게 관계성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치유과 건강을 위해서는 좀 더 깊은 ‘관계에의 의지’를 만족시켜야 한다. 질병을 일으키는 정서적 요인 중 사회적 소외(고독)은 흡연에 버금갈 만큼 심각하게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요인이 된다고 한다.

개인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사회구조, 즉 정치, 경제, 교육 등을 관장하는 5)사회제도가 좋아야 한다. 북한동포의 경우 그들의 어려움은 사회구조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샬롬’으로 인사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여기서 ‘샬롬’이란 보통 평안으로 번역되는데 이것은 공동체 속에서 건강과 행복을 의미한다. 어원적으로는 “선한 것이 당신에게 충만하여 당신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흘러가기를 원합니다.”라는 것이다. 거듭 말하자면 ‘샬롬’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 샬롬의 정신으로 우리는 좀 더 적극적으로 잘못된 사회구조를 개선하고 그 정신을 구현할 수 있는 공동체를 개발해 나가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처한 사회 구조 속에서의 전인건강을 지켜 가는 열쇠이다.

아무리 건강을 위해 노력한다해도 6)자연 생태계가 병들면 온전한 건강을 유지할 수가 없다. 치유 목회란 인간은 물론 하나님의 피조물인 자연을 소중히 여기고 아끼는 목회이다. 자연 생태계가 병들면 치유 목회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환경을 나의 문제로 삼는 태도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인간은 7)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서 기쁨과 보람을 느껴야 진정한 건강을 누릴 수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 건설적인 일을 하게 되면 자존감이 높아지고 전인 건강과 행복감이 증진된다.

치유 상담이란 이상 일곱 가지 차원에서 ‘나’를 찾아보는 작업이다.
“지금 내 병이 어디서 시작된 것인가? 어떤 운전자가, 언제부터, 무슨 연유로, 내 의식 속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나를 끌고다닌 것인가?”를 탐구하여 그 원인을 찾아 눌린 영혼을 해방시켜주는 것이 바로 치유 상담이다.



3장 나는 누구인가?
어느 동물원에, 동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원장이 부임해왔다.
새로 부임한 원장이 직원들과 함께 동물원을 돌아보다가 길고 날카로운 매의 부리와 발톱을 보고 말했다. “저 새의 부리와 발톱이 아주 흉측해 보이는군요. 예쁘게 깎아주도록 하세요.”
직원들은 원장의 지시대로 매의 부리와 발톱을 예쁘게 깎아주었다. 그러자 매는 더 이상 매로 존재할 수 없었다.

우리는 종종 잘려나간 매의 발톱처럼 중요한 기능들을 잃어버리고 살아갈 때가 있다. 그러므로 누가 이것을 잘라버렸는지, 또 언제 그런 사건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어째서 자신에게 주어진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지 알아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지금 나는 어떤 사람인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와 아내는 심각한 갈등을 겪어야 했다. 내 안에서 제대로 자라지 못한 어린 아이가 그 결혼 생활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혼 생활은 물론 나는 사회 생활에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내 안의 성인아이가 원하는 대로 가려고 하면 주변과 충돌이 생기고 주변과 화해하면 내 안의 성인 아이가 맹렬히 저항했기 때문이다. 나는 극심한 갈등과 혼란 속에서 인생의 번뇌를 느꼈다.

자기 밖에 모르는 것이 어린아이의 부정적인 특성이다.
부정적인 특성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의 입장을 전혀 헤아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런 특성을 가진 사람은 나이가 아무리 먹어도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다.

고린도 전서 13장을 보면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어린아이는 오래 참지 못한다. 성질이 급한 것은 어린아이의 부정적 특성이다. 성질이 급한 사람의 심층심리 속에는 반드시 상처 입은 어린 아이가 자리하고 있다. 성숙한 사람은 모든 것에 오래 참을 줄 아는 사람이다.

고린도 전서 13장 11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어렸을 때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이것이 사랑의 원칙이다.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의 입장을 살펴볼 수 있는 눈은 어른에게만 있다. 당신은 지금 어떤 눈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흔한 마음의 장애는 빈곤 증상이다.
돈이 없다는 핑계로 무슨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해버리는 일이 다반사이다. 하지만 자본이 없던 우리나라 초창기를 생각해 보라. 또한 역경을 극복한 많은 사람의 예를 보라. 잘 알려진 대로 김대중 대통령은 중학교 졸업의 학력으로 대통령이 되었으며 47세 때 감옥에서 배운 영어로 외국 기자들과 원고 없이도 회견을 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

이제 당신 마음의 운전사를 몰아내라. 당신을 끌고 다니는 운전사의 정체를 낱낱이 파악하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죽는 날까지 그 운전사에게 끌려 다니게 될 것이다.



2부 만남에서 상처받고 만남에서 치유되고

4장 잊지 못할 아름다운 만남
아프리카 성자로 불려지는 슈바이처는 두 번의 만남을 통해 아프리카 행을 결심했다고 한다.
첫 번째 만남은 초등학교 시절 동네 아이와의 싸움이었다. 상대는 끼니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가난한 집의 아이였다. 그 싸움에서 이긴 슈바이처가 승리감에 취해 있을 때, 상대 아이의 말은 비수처럼 그의 심장에 날아와 꽂혔다. “나도 너처럼 고기를 먹을 수 있다면 너를 이길 수 있어.”
그 날부터 슈바이처는 오랫동안 고기를 입에 댈 수 없었다고 한다.

두 번째 만남은 그가 세계적인 학자로 성공한 다음에 이루어졌다. 어느 날 공원을 산책하고 있던 그의 눈에 한 조각상이 들어왔다. 흑인 노예가 백인 주인의 발을 닦아주고 있는 모습의 조각상이었다. 그 순간 슈바이처의 심장에 또 하나의 비수가 꽂혀들었다. 이 두 번의 만남으로 슈바이처 박사는 아프리카로 떠나게 되었다.

어려운 성장 과정 속에서도 그 상처를 극복한 사람은, 한 번 상처를 입었던 자로서 자신과 같은 상처를 가진 자들을 보듬어 위로해 줄 수 있는 치유자가 된다. 마음에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치유될 정도로 인상적인 만남을 나는 ‘아름다운 만남’이라고 부른다.

나 역시 아름다운 만남이 여러 번 있었다.
존경하는 나의 스승인 웨인 오츠 박사와의 만남도 잊을 수가 없다. 그는 아주 궁핍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어찌나 가난했던지 초등학교를 막 졸업할 무렵 그가 가족의 생계를 모두 책임져야 했다. 그는 워싱턴시 의사당 앞에 있는 구두 수선소에서 열심히 구두를 닦았다. 하루는 한 상원의원이 그곳에 구두를 닦으러 왔다. 그 상원의원은 구두를 닦는 웨인 오츠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나이를 물었다. 열두 살이란 그의 대답에 그 상원의원이 이렇게 말했다.
“나도 너처럼 열두 살 때 구두를 닦았단다. 그러니 너도 열심히 살면 나처럼 상원의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순간 웨인 오츠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같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일을 끝내고 열심히 공부했으며 마침내 그는 켄터키 의대의 정신과 교구와 침례교 신학 대학의 치유상담 교수를 겸임하는 등 세계적인 학자로서 치유상담 분야에 큰 족적을 남기게 되었다.
오츠 교수는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란 나를 무척이나 대견하게 생각했다. 내가 그 상처를 치유받을 수 있겠다 싶은 모임이 있으면 적극 추천해주고 갖가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오츠 박사처럼 될 수 있다는 얘기를 여러 번 들려주었다. 열두 살 구두닦이 소년가장에서 세계적인 학자가 된 오츠 박사는 때때로 절망의 늪으로 빠져 들어가는 나를 건져주는 생명줄과도 같았다.

비록 만나본 적은 없지만 또 한 명의 학자 롤로 메이에 대한 일화를 하나 소개하겠다. 그가 유니온 신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 히틀러 정권에 의해 추방당한 독일의 신학자 폴 틸리히가 부임해 왔다.
폴 틸리히 교수는 당시 철학과 신학, 심리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석학이었다. 그런 폴 틸리히 교수에게도 약점이 있었다. 영어에 익숙치 않아 억센 독일식 악센트가 그대로 튀어나오는 우스꽝스러운 영어 발음을 낸다는 것이었다. 그의 강의 시간 내내 학생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한 학기 동안 이런 일이 계속되자, 폴 틸리히 교수는 강의에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다. 더군다나 그는 사랑하는 조국에서 추방당하고 고독한 망명객의 처지였다. 본의 아니게 낯선 땅에서 망명 생활을 감내해야하는 그에게 학생들의 비웃음은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한없는 좌절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하면서 모든 의욕을 잃어갔다.

2학기가 되자 폴 교수는 강의실 앞에만 서면 벌벌 떨었다. 강의는 안 할 수 없고 하자니 어렵고, 그 사이 폴 교수의 마음에 생긴 병은 점점 깊어만 갔다. 그러나 하나님은 롤로 메이에게 이런 틸리히 교수의 고통을 바라보게 하셨다. 어느날 경직된 마음으로 강의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던 틸리히 교수는 우편함에서 카드 한 장을 발견했다. 카드에는 다음과 같이 씌여있었다. “선생님, 힘을 내세요. 우리가 웃는 것은 선생님의 발음 때문이지 강의 때문이 아닙니다. 선생님의 강의는 너무나 훌륭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웃더라도 힘을 내십시오. 우리 모두 선생님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롤로 메이 드림.”
그날 저녁 카드를 읽은 폴 틸리히 교수는 눈물을 펑펑 쏟았다. 저녁 식사도 거른 채 오랫동안 감동에 젖어 있다가 노트에 이렇게 썼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의 아픔을 알아주는 것도 이렇게 놀라운데, 죄인 된 인류의 아픔을 치유하러 오신 주님의 역사는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
이날 폴 틸리히 교수가 뜨거운 가슴으로 써 내려간 책이 그 유명한 <조직신학 2권>이다.
그날부터 폴 틸리히 교수는 롤로 메이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고, 롤로 메이는 심리학자로서 그리고 틸리히 교수는 신학자로서 서로를 도왔다.
후일 시카고 대학에서 폴 틸리히 교수의 장례가 치러졌을 때도 롤로 메이가 조사를 낭독했다. 그날 롤로 메이의 눈물의 조사는 수천 명의 조문객들을 울리고도 남았다.



5장 치유되어야 할 상한 감정
자기 감정을 자꾸 억누르다보면 사람들에게 이런 칭찬을 듣게 된다.
“저 애는 참 착실해”
“저 애는 좋은 애야”
“저 애는 믿을 수 있어”
하지만 이 칭찬은 이렇게 바뀔 수 있다.
“저 애는 언제든지 정신병에 걸릴 수 있어!”

요즘 청소년 중에 “저 앤 착실해, 말도 없고 얌전하지.”라는 얘기를 듣는 아이가 있다면 한 번 주의 깊게 살펴보기 바란다. 이런 아이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자기 감정에 억눌려와서인지 다른 사람이 좋아할 만한 행동만 찾아다닌다. 이런 아이들은 꼭두각시와 다름없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꼭두각시를 좋아한다. 특히 우리나라 며느리들에게 강요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들이다.

우리의 마음은 구정물통과 같다. 구정물이 가득한 물통이라도 오래 놔두면 찌끼가 가라앉아서 그냥 물통처럼 보인다.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아주 큰 상처를 갖고 있는데도 오랫동안 그 환부를 건드리지 않고 가만히 놔두면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흔들어도 금세 새카매지는 구정물통처럼 마음 속에 가라앉아 있는 상처들도 빌미만 생기면 삐쳐 나와서 우리의 발목을 붙든다는 것을 기억하라.

바로 이 1단계가 마음 속의 구정물을 흔드는 작업이다. 구정물통을 흔들면 온갖 찌끼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듯이, 이 작업을 통해서 그 동안 심층의식 속에 가라앉아 있던 크고 작은 상처들이 의식의 표면 위에 떠오르게 된다. 이때 비로소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보게 된다.
자신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하는 단계라는 것이다. 6개월 내지 1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진행되는 2단계, 3단계는 1단계에서 수면 위로 떠오른 찌끼들을 끄집어내는 작업이다. 이를테면 조리질 역할이다.
치유 그룹에 한 번 다녀왔다고 해서 당장에 천지가 개벽할 줄로 여기지 말라. 적어도 2,3년의 과정을 기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6장 하나님과의 신비로운 만남
주님을 만난 사람들에게서 우리는 죽음을 넘어선 모습, 전인적으로 건강한 모습을 보게 된다. 치유 목회의 목표는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다.
살아서는 예수님을 만나 참되고 건강한 삶을 사는 것, 또 언제든지 죽음이 찾아오면 멋지게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는 고백을 통하여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 존재임을 천명하였다.
그러면 새로운 피조물은 어떤 존재인가? 사도 바울의 삶에서 답을 얻을 수 있다. 그는 세 번의 중요한 만남으로 완전한 새 사람으로 거듭났다.

첫 번 째 만남은 예수님과의 만남이다. 이 만남은 화해의 만남이다.
두 번 째 만남은 자기 자신과의 만남이다. 예전에는 미움과 두려움으로 가득했으나 이제는 담대함과 사랑으로 넘치게 되었다. 이전에는 진정한 나를 몰랐기 때문에 늘 불안하고 두려웠으나 이제 자신의 소중함을 깨달은 것이다.
세 번 째 바울은 이웃과 만났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된 그는 성령 충만하여 이웃을 돌아보게 된다. 전에는 원수처럼 여기던 사람들도 이제는 친형제처럼 느껴지게 된 것이다.

바울은 이 세 번의 만남으로 완전히 새 사람이 되었다. 새 사람이란 구원받고 치유 받은 사람을 말한다. 구원받고 치유 받은 사람의 증거는 “예수님을 만났는가? 나 자신을 만났는가? 그래서 예수님과 진정한 화해를 이루었는가?” 라는 질문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아직도 나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는가?”, “나 자신의 문제를 아직도 외부의 탓으로 돌리고 있는가?”, “마음의 벽을 허물고 이웃과 만나고 있는가?”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모든 인간의 내면에는 예수를 알든 모르든 하나님을 그리워하고 그 분에게로 가고 싶은 욕구가 들어있다. 믿음을 지향하는 욕구는 계곡의 맑은 물에서 태어난 연어가 바다로 나갔다가 다시 수만 리를 헤엄쳐 돌아와 모천에서 산란하고 죽게 된다는 귀소본능과도 같은 것이다. 영국에서 잡은 새를 미국에 가져가서 날리자 영국으로 곧장 날아가더라는 얘기나 코끼리가 죽을 때는 반드시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서 죽는다는 이야기도 다 귀소본능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야생의 동물들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도 본향인 하나님께로 돌아가고자 하는 강렬한 귀소본능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 귀소본능의 욕구, 즉 믿음에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병이 들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의사이자 금세기 최고의 심리학자였던 칼 융은 35세 이상의 환자만 치료했다고 한다. 그는 53년 동안 수천 명의 환자를 치료하면서 대부분의 환자들이 믿음에의 욕구에 굶주려서 병이 났다는 것을 발견했다.
융은 이 욕구를 ‘영적 욕구’라고 부르면서 환자들에게 이 욕구를 강하게 채워줄 수 있는 신앙적인 방법들을 제시해 주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방법으로 치유된 사람은 병이 전혀 재발되지 않았다.
융은 자기를 찾아온 정신병자, 성격 파탄자, 히스테리 병자 등을 상대로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보았는데 약물 투여 방식으로 병을 치료해준 환자들은 6개월 이내에 재발하여 다시 그를 찾아왔지만, 신앙적인 방법을 제시해 준 환자들은 아무도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어느날 미국의 백만장자 밀톤이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스위스에 있는 융을 찾아왔다. 밀톤은 불면증에 걸렸는데 백방으로 노력해도 낫지 않자 급기야 융을 찾은 것이다. 융은 밀톤에게 모스크바 교외에 있는 한 수도원 원장을 찾아가 보라며 소개서를 써주었다. 다음은 밀톤과 수도원장이 나눈 대화이다. 수도원장이 물었다.
“무엇이든 내가 지시하는 대로 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주기도문을 3백번 외우세요.”
이튿날에도 수도원장이 밀톤에게 말했다.
“오늘은 주기도문을 6백번 외우시오.”
다음날도 수도원장은 말했다.
“오늘은 주기도문을 9백번 외우시오”
밀톤은 지시대로 날마다 3백번씩 더 주기도문을 외우면서 시간을 보냈다.
마침내 6천 번을 외워야 하는 날이 되었다. 막 주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하려고 할 때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다. 오랜 가뭄 끝에 소나기처럼 그의 몸에서 힘이 솟기 시작한 것이다. 그 순간 밀톤은 자신이 완전히 치유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융은 밀톤에게서 영양실조에 걸린 ‘믿음에의 욕구’를 간파했던 것이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서도 기본적으로 거룩한 믿음에의 욕구가 충족되어야 한다. 또한 성경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은 거룩한 신비에의 욕구, 믿음에의 욕구를 집중적으로 공급해준다. 교회라는 장소도 마찬가지다. 교회에서만이 올바른 찬양과 말씀, 기도와 친교로 교인들에게 거룩한 신비의 영양소를 공급해줄 수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 머슬로우는 “세계의 역사를 움직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음에의 욕구, 즉 신비에의 욕구가 충족된 사람들이었다.”라고 말했다. 이런 신비가 가장 급속하게 채워지는 때가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 폭발적인 자유와 해방감을 맛보는 것이다.



3부 하나님 체험을 통한 내면세계 성장

7장 속 사람의 성숙을 위한 영적 체험
수많은 사람들이 이 신비에의 체험을 하고 나서 삶의 방향을 180도로 바꾸는 역사가 일어났다. 찬송가 405장의 작사가로 유명한 존 뉴턴은 원래 아프리카 사람을 잡아다 팔아먹는 노예상이었다. 그런 그가 흑인노예를 싣고 항해하는 도중에 꿈 속에서 어머니의 기도를 들었다. 그리고 그 밤에 풍랑을 만나 이튿날 아침 해변에 홀로 떠밀려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뜨거운 신비감에 휩싸이게 되었다. 보잘것없던 학력의 노예 무역선 선장을 지낸 이 뉴톤의 이야기는 전구라파의 반 기독지식인들을 주님 앞으로 돌아오게 하는 데 힘을 발휘했다. 그들에 의해 노예 운동이 시작되고 전 유럽의 지성을 바꾸어 놓게 되었다.

1950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거리에서 늙은 걸인이 바이올린을 켜며 구걸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 바이올린을 켰지만 노인의 모자에는 달랑 동전 몇 개가 들어있었다. 이때 그곳을 지나가던 중년의 한 신사가 노인의 바이올린을 받아들고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삽시간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신사의 매혹적인 선율을 감상했다. 얼마 안가 늙은 걸인의 모자는 돈으로 꽉 차고 넘쳤다. 잠시 후 중년 신사는 걸인에게 바이올린을 되돌려주고 골목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그 중년신사는 바이올린의 거장 파가니니였다고 한다.

똑같은 바이올린을 갖고도 누가 연주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이처럼 다르다. 교회 생활도 마찬가지다. 소음에 감동하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아름다운 소리에 감동하는 법이다. 많은 독서량을 자랑하듯 설교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목회자도 있다. 그러나 이것도 인간의 소리에 불과하다. 목회자가 자신을 전적으로 맡기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거룩한 신비의 체험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맡기고 자유하는 은총을 체험한다. 이런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을 심부름꾼으로 부리려 한다.

나의 다메섹 도상의 만남은 소록도에서 일어났다.
많은 사람이 그렇듯 나도 신앙의 위기를 느꼈다. 기도가 막히고 만사가 짜증스러웠다. 다급해진 나는 산으로 기도원으로 다녔으나 마음은 더욱 답답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훌쩍 소록도로 떠났다.
‘그런 곳에도 희망이란 게 남아있을까? 그런 곳에 사는 사람도 뭔가 살아야 할 이유같은 걸 갖고 있을까?’
나는 이 점이 궁금하기도 하고 그곳에서 어떤 희망 같은 것을 발견하고 싶었다. 소록도에 도착해 가까운 교회로 들어갔다. 마침 수요 낮 기도회 시간이어서 막 통성기도가 시작되고 있었다. 나도 그들 사이에 끼어 보려고 했으나 기도가 나오지 않았다. 그 때 마침 뒷사람의 기도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그 기도는 잠든 내 영혼을 깨우고 마른 내 가슴을 후려치기 충분할 만큼 간절했다.
“하나님, 제게 주신 은혜가 어찌 이리 큰지요? 어찌하면 이런 주님의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을 길이 있겠는지요?..어찌하면 이 크나큰 은혜를 갚는단 말입니까?”
기도의 주인공이 너무나 궁금했다.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특별한 주님의 은총을 누리고 있단 말인가? 얼마나 놀라운 것이기에 저토록 간절하게 기도드리는가? 아마 섬을 찾아온 기부자거나 천사같은 의사가 아닐까 생각하며 뒤를 돌아본 순간, 아! 거기에는 이것이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흉측한 몰골을 한 문둥이 노인이 앉아있었다. 얼마나 심한지 해골처럼 머리카락은 하나도 남지 않았고 얼굴은 이미 형태를 알아볼 수 없도록 일그러져 어디가 눈인지도 모를 곳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노인은 내가 처다보는지도 모르고 손가락이 다 떨어져 나간 손으로 연신 얼굴을 훔쳐가며 감사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순간 피를 토할 것 같은 통곡이 내 속에서 솟구쳐 올랐다. 나는 한없이 울부짖었다. 한참 후 눈을 떠보니 노인 혼자서 나를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눈을 뜨자 안심했다는 듯이 앉은뱅이 걸음으로 교회를 빠져나가려는 그를 급히 뒤따라 나갔다.
“할아버지, 뭐가 그렇게 고마우신 겁니까? 무슨 은혜를 그리 많이 받으셨어요?”
“내가 문둥병에 걸리자 피붙이도, 세상도, 다 나를 버렸지. 친구들도 떠나고 말이야 그런데 이런 나를 버리지 않고 이 소록도까지 따라와준 분이 계셔. 그 분이 내게 기쁨과 소망을 주셨지.”
“할머니가 오셨군요?”
“아니야, 예수님이 따라오셨지.”
나는 순간 또 한번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예수님이 얼마나 위대한 분인가 깨달았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아는 것이라곤 오직 예수 밖에 없는 노인에게서 나는 날마다 놀라운 신비를 체험하며 그렇게 노인의 좁은 방에서 일주일을 지내며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다.



8장 영적 체험에서 오는 치유
시카고 맥코믹 신학대학원에 교환 교수로 가 있던 때의 일이다. 미국 유학 시절, 함께 공부했던 미국 친구가 자신의 교회에서 설교를 해달라고 부탁을 해왔다. 그 친구는 학교를 졸업한 뒤 150년의 역사를 가졌지만 교인은 고작 70명이던 교회를 부흥시켜 3년 만에 900명으로 성장시킨 미국 사회에서도 대단히 성공한 목회자였다.

약속된 날이 되어 친구의 교회로 찾아간 나는 입구에서 청소하는 한 사람과 마주쳤다. 그런데 청소하는 사람의 태도가 어찌나 특이한지 절로 미소를 짓게 되었다. 40대로 보이는 그 남자는 무엇이 그리 좋은지 혼자 청소를 하면서 마치 춤을 추듯 걸레질을 하고 있었다. 걸레와 함께 돌아가는 그의 몸이 어찌 그리 유연해 보이던지, 그는 찬송가에 맞춰서 걸레질을 하고 있었는데 얼마나 청소에 열중하고 있는지 누가 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이 교회는 참 좋은 사찰을 두었구나’하고 생각했다.

설교를 마치고 교회를 나오다가 다시 그 40대 남자를 만났다.
이번에는 유리에 붙은 먼지를 털고 있었다. 그 사찰은 양손에 총채를 들고 춤을 추듯 먼지를 털어내는데 어찌나 열심인지 땀이나서 얼굴이 번들거렸다. 그 때 친구가 어깨를 치며 말했다.
“정교수, 바우서 박사를 알아보겠어?”
“박사? 박사라니, 사찰이 아니고?”
“그래, 바우서 박사 말야. 그는 우리 주민이 가장 존경하는 세 사람 가운데 한 분이라네. 노벨 물리학 수상자로 대학 총장을 지냈고 40년간 우리 교회에 장로로 봉직했지.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나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사찰이라 생각하던 그가 그런 대단한 인물이란 것도 놀라웠지만 40대로만 보이는 그가 40년동안 장로를 지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이런 내 생각을 눈치챘는지 친구가 환하게 웃으며 우리에게 다가오는 바우서 박사를 가리키며 물었다.
“장로님 연세가 얼마나 되셨는지 맞춰볼테야?”
“마흔 다섯에서 일곱? 아무튼 40대 후반이상은 아닐꺼야.”
나는 자신있게 말했다.
“이를 어쩌지? 바우서 장로님은 올해 여든하나시지.”
친구는 재밌다는 듯이 웃었지만 나는 무척 놀랐다. 80대 노인이 어떻게 저렇게 젊어보인단 말인가! 나는 그의 젊음의 비결을 알고 싶었다.

다음은 그와 나눈 대화의 내용이다.
“장로님은 마흔 한 살 때부터 교회 청소를 해오셨다고 들었는데, 무엇이 장로님으로 하여금 그렇게 40년동안 신명나게 청소를 하게 만들었나요?”
“내 마음 안에 있는, 예수님이 그렇게 만들었지요. 나는 마흔살에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을 했답니다.”
“노벨 물리학 상은 어떻게 받았습니까?”
“제가 만난 예수님이 받게해 주셨지요. 그런데 나는 노벨상 얘기만 나오면 죄책감이 듭니다.”
“왜 그렇죠?”
“이런 걸 상상해 볼수 있겠어요? 나는 어느 날 물리학을 연구하는 사람들만 노는 세계에 갔다가 물리학 이론이 씌어진 커다란 동전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고 그래서 그 동전을 집어들고 ‘여기 이런 것이 떨어져 있다’고 외쳤더니 노벨상을 주었다고요. 그래서 부끄럽단 거지요. 그런데 지금도 이상한 것은 다른 사람들은 수십년씩 그곳을 다녔어도 보지 못한 동전이 왜 내 눈에 그렇게 환히 보였냐는 거예요.”

나는 바우서 박사가 단순히 생물학적 눈을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형상, 곧 영의 눈을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바우서 박사가 말하듯 이 영의 눈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육신의 눈이 보지 못하는 세계를 볼 수 있다. 예수님을 만나면 이런 영의 눈이 떠지는 것이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에게서 가장 먼저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얼굴의 변화이다. 얼굴만 봐도 그가 예수님을 만났는지 못 만났는지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영적 신비를 체험하는 순간 우리 몸 안에서 엄청난 세포의 혁명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우리 몸은 수백개의 원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 가운데는 핵이 있고 바깥쪽으로는 전자들이 상호 유기적으로 끊임없이 돌면서 생명의 에너지를 발산한다. 절망적인 사람, 불안한 사람, 근심 걱정에 쌓인 사람의 전자 회전 속도는 아주 느리다. 겨우 몸을 움직일 정도의 전자 회전수는 일정 시간에 약 50회라고 하니까 건강한 사람의 회전수는 그보다 훨씬 빠르다.

만일 전자 회전수가 50회전이던 사람이 갑자기 충격을 받으면 그 회전수가 뚝 떨어진다. 그럼 그는 곧 쓰러져버린다. 그러니까 전자 회전수가 느린 사람은 조금만 무리를 하거나 유행성 감기만 걸려도 치명적이 될 수가 있다. 그래서 환자보다는 건강한 사람이, 늙은이 보다는 젊은이가 회전속도가 빠르다. 참고로 신생아에게서 발출되는 전력은 5볼트, 노인에게서 방출되는 전력은 1.5 내지는 2볼트에 불과하다고 한다.

어느 회사의 사장과 전무가 함께 점심 식사를 했다. 마침 회를 먹었는데 사장이 그만 식중독으로 죽고 말았다. 사인은 비브리오균 감염이었다. 그런데 사장과 함께 회를 먹은 전무의 위액에서는 반대로 죽은 비브리오균이 검출되었다. 똑같은 비브리오균에 감염이 되었는데 결과는 이처럼 달랐다. 무엇이 이런 극단적인 결과를 가져왔는가?

죽은 사장은 4년째 부인과 별거 중이었고 교회 집사지만 교회 나가는 일이 드물었다. 그러니 모든 일을 자기가 처리하려고 했고 비록 승승장구를 해 출세가도를 달렸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적도 만들었다. 그래서 그는 늘 긴장과 불안 속에서 살았다. 반면 전무는 새벽 4시면 어김없이 봉고차로 노인들을 교회로 실어 나르는 봉사를 했다. 부인과의 사이도 각별했고 범사에 감사하는 태도로 살았다. 집안에서는 찬송과 기도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그는 예수가 어떤 분인지 알았다.

이런 사람의 전자 회전수는 평소에도 빠르고 강력하다. 따라서 나쁜균이 침투해도 몸이 이길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병원(病原)과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항상 주님과 함께 살아야 한다. 그 참된 기쁨을 소유하고 예수를 만난 체험 속에 살면 뜨거운 사랑이 용솟음 친다. 그 체험이 있는 만큼 전자의 회전수도 증가하는데 200, 300, 500, 700, 1000 그리고 무한대로 증가하는 것이다. 전자 회전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 막대한 양의 생명 호르몬과 저항력이 증가되면서 원자 자체도 크고 새로워진다.

50회전으로 겨우겨우 생명을 유지하는 사람은 그 운명을 장담할 수 없는 사람이다. 언제 어떤 자극에도 쓰러질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4부 건강한 자아상 만들기와 물려주기

9장 나 자신과 만나는 체험
그러면 바우서 박사에게 놀라운 세계를 보게 한 그 영안은 어느 때 열리는 것일까? 영안은 지급(至急) 전보를 받았을 때 열린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 기도(지급 전보)를 드리고 하나님이 보내시는 응답을 여과없이 받아들일 때 영안이 열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급 전보는 언제 보내는 것이 좋을까?

전보를 보낼 때 거치는 곳이 많으면 전보가 지급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그래서 기도의 순간이 중요하다. 우리가 잠들기 직전과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이 하나님께 지급 전보를 보내기에 가장 알맞은 시간이다. 우리가 가장 맑고 투명해지는 시간이 바로 수면을 취할 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잠들기 직전에 기도하고 깨어나자 마자 기도해보라. 신속한 응답이 주어질 것이다. 길게 잡아도 3년 안에 하나님의 응답을 꼭 듣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복음을 위해 3년 전도를 하셨고 죽은 지 3일만에 부활하셨다. 군대도 3년 동안 다녀온다. 이것은 인간이 가장 효율적으로 변화되는데 3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3년의 복무기간을 채우지 않고 제대한 사람은 금방 군 생활의 마인드를 잊어버린다. 그러나 3년 동안 군대에 다녀온 사람은 60세가 되어서 다시 군대에 들어가도 똑같은 군 생활 적응이 가능하다고 한다. 기도도 마찬가지이다. 2년 정도 꾸준히 기도하다가 별 응답이 없다 싶으면 포기하지 말고 적어도 3년은 기도를 하라. 그래야 기도의 맛을 체험할 수 있다. 만약 그래도 응답이 없다면 기도 내용에 문제가 없나 점검해 보라.

하나님은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시면서 육신의 눈과 함께 엄청난 것을 볼 수 있는 영의 눈을 주셨다. 그러므로 적어도 3년 동안 지속적으로 영의 세계에 전보를 보내면서 그 확인 작업을 한다면 반드시 영의 눈을 뜰 수 있다. 말츠(Martz)는 “사람의 행동과 태도는 그 사람의 자아상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비굴한 행동이나 열등한 행동, 당당한 행동이나 용감한 행동 모두가 그 사람의 자아상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말츠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자아상이 크고 강한 사람이 성공하는 것을 우리는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말츠에 말에 따르면, 사람은 다 각각의 자아상을 가지고 있는데 어떤 사람 안에는 성공적인 기제(mechanism)가, 어떤 사람 안에는 실패하는 기제가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기제의 속성은 설정된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멈추지 않고 작동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사람의 마음 속에 어떤 기제가 작동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운명이 정해진다. 성공적인 기제가 작동하는 사람은 성공적으로 목표를 성취하며 실패의 기제가 작동하는 사람은 실패의 쓴잔을 마시게 된다. 즉 성공적인 자아상과 실패하는 자아상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좌우된다는 뜻이다.

그러면 언제 어떻게 우리 마음 속에 실패의 자아상(기제)이 자리잡는 것일까? 실패의 자아상은 수없이 반복되는 실패의 경험에 의해 자리잡게 된다. 이 자아상을 바꾸려면 그만큼 ‘성공적인 경험’이 많이 필요하다.

나도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강의도 하고 방송도 하고 있지만 태어날 때부터 이렇게 숫기가 많았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병약하고 신경질적이어서 다른 사람 앞에는 절대 나서지 못했다. 그러기에 나는 16년이나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했는데 그것은 우선 어른을 상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편안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설교는 너무나 떨려서 할 엄두가 나지 않았고 선생님들이 돌아가면서 하는 설교에 매번 이 핑계 저 핑계로 빠져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방학 동안 시골에 다녀와 보니 설교자 명단에 내 이름이 있었다. 얼마나 가슴이 떨리던지, 그러나 거절한 명분이 없었다.

그 날부터 고민이 시작되었고 3개월 후의 설교를 위해 나는 날마다 동화 읽기를 연습했다. 두 달 정도 지나자 어디서건 동화가 줄줄 쏟아져 나올 정도였다. 이렇게 연습을 하다가 드디어 설교하는 날이 되었다. 그러나 왠일인지 전혀 떨리지가 않았다. 나는 자신 만만하게 준비한 동화를 아이들에게 들려주었고 200명의 아이들이 숨죽이고 내 얘기를 들었다.

아! 그 때의 감동이라니! 그 후로 나는 동화 선생이 되었다. 나는 그 때의 경험이 나를 지금의 나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아이들이었지만 누군가로부터 인정받았다는 경험은 항상 주눅이 든 채로 대인 기피증에 시달리던 나의 자아상을 180도로 바꾸어 주었고 이후로 나는 대인 관계의 어려움을 완전히 극복했다.



10장 자아상이 싹트는 자리
영아원의 아이들이 울지 않는 것은 아무리 울어도(기도해도) 응답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무리 울어도 반응이 없으니까 아예 울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 마음 속에는 ‘기도해봐야 무슨 소용이야? 이루어지지도 않는걸’이라는 자아상의 바탕이 형성된다. 이런 자아상을 갖게 되면 응답받는 기도를 할 수가 없다. 이런 바탕은 또 다시 ‘세상은 믿을 수 없는 곳이야.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세상은 나를 신뢰하거나 인정해주지 않아’라는 부정적 사고방식으로 발전한다.

생후 1년은 자아상을 형성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시기이다. 이 시기는 특히 신앙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어떤 목적을 세우고 집착하면 모든 정신적, 영적 감각이 그 목적을 이루는 방면으로 발달되는 것이 인간의 특성이다. 즉 인간은 마음먹은 대로 뭔가 이루어내는 존재이다. 신앙적인 용어로 이것을 믿음이라고 한다.

반면에 반신반의하면서 기도하는 사람의 기도는 절대로 응답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입에 발린 기도만 하기가 쉬운데 심리적으로 자아상의 바탕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농부의 가정에 아기가 태어났다. 농번기가 되자 내외는 젖먹이 아이를 혼자 방에 뉘어두고 들로 나갔다. 내외는 아이가 밖으로 기어나가지 못하도록 아이를 끈으로 묶어 놓았다. 그리고 점심때 잠깐 들러 젖을 물리고는 황급히 들로 나가는 일을 반복했다. 방에 혼자 남겨진 어린 젖먹이는 끈에 매달린 채 방안을 헤매면서 울고 또 울었다. 그러나 아무리 울어도 관심을 보여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렇게 자란 아이에게는 어떤 자아상이 자리잡을 것인가?

반대의 경우다. 어느 삼대독자가 결혼한 지 10년 만에 아들을 보았다.
아이는 온 집안 식구의 관심 속에서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 키워졌다. 어머니는 잠시도 아기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고 젖을 먹고 잠든 아기가 좀 오래 잔다 싶으면 금세 불안해했다. 마침내 어머니는 아기가 울기도 전에 젖을 물려주곤 했다. 이런 행위는 아기 입장에서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달란 적도 없는데 다 채워질 뿐 아니라 넘쳐서 귀찮을 정도다. 이렇게 자란 아이의 마음속에는 게으름이라는 자아상이 형성된다.

그러므로 아이에게 울 시간(기도의 시간)을 주는 것은 중요하다.
갓 태어난 아기에게도 반드시 1분 정도 울 시간을 주어야 한다. 1,2분 정도 울리고 난 뒤 젖을 주어야 아이한테 ‘아 내가 기도하면 응답 받는구나’하는 믿음의 자아상이 생겨나는 것이다.



11장 자녀에게 건강한 자아상 물려주기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된 록펠러의 부의 비결을 이제는 누구나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첫째는 철저한 십일조 생활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교회 앞자리에 앉는 것이었다. 그는 주일이면 항상 40분 정도 일찍 나와서 맨 앞줄에 앉았다. 또한 그는 92세로 세상을 떠날때까지 한 번도 앞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 이 비밀은 현대 물리학의 공헌으로 최근 밝혀지고 있는데 물리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목사가 설교할 때, 특히 기도하는 목사가 설교할 때는 엄청난 영적 파장이 쏟아져 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할 때도 엄청난 양의 영적 파장이 방출된다고 하는데 이 영적 파장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바로 나무라고 한다. 그래서 집안에 들여놓은 화분에 정성을 쏟지 않으면 곧 죽어버리는 것이라고 한다. 미국에서도 우울증 환자들을 교회 앞자리에 앉혀 예배드리게 한 후 8개월만에 완치된 예가 있다.

마지막 하나는 교회에 순종하고 목사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그는 교회 결정에 언제나 순종했으며 특히 목사님을 섬기는 데 애를 많이 썼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그를 대 부호로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이 세가지 비결은 그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바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었다.

록펠러의 부모는 사랑하는 아들에게 유형의 재산보다 더 풍부한 무형의 재산을 물려줌으로써 아들에게 무한한 가능의 세계를 열어주었다.
만일 그들이 아들에게 물질적인 부를 물려주었다면 결코 록펠러 신화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지만 자식에게 좋은 운전사를 물려주는 부모는 흔치 않다. 불행을 초래하게 하는 운전사나 살인자로 만드는 운전사를 물려주는 부모가 있는가하면 아주 행복하고 넉넉한 인생을 살아가게 하는 운전사를 물려주는 부모도 있다. 이것이 진짜 ‘유산’이다.
당신은 부모로부터 어떤 유산을 물려받았는가?



12장 영적 유산이 사람을 변화시킨다
나의 부전공은 가문연구이다. 왜 어떤 가문에서는 훌륭한 인물이 많이 배출되고 어떤 가문에서는 문제의 인물이 많이 배출되는지 연구하는 학문이다.
미국의 보편적인 가정을 대표하는 가문으로는 ‘조나단’과 ‘스미스’ 가문이 있다. 18세기 말 조나단과 스미스라는 평범한 두 청년이 비슷한 시기에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다. 조나단 가정은 부부가 화목하고 하나님을 사랑했다. 반면에 스미스 가정은 알코올 중독과 도박에 빠지고 부부 사이도 나빠졌다. 2백년이 지난 뒤 이 두 대표적 미국 가정을 조사해보니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먼저 스미스 가문이다. 이 가문에서는 지금까지 109명이 사형을 당했고, 후손의 3분의 1이 정신병을 앓았으며 절반 이상이 문맹자로 마약 사범과 알코올 중독자, 범죄자의 길을 걸었다.
반면 조나단 가문에서는 부통령 1명, 주지사 3명, 대학총장 13명, 변호사 149명, 판검사 48명, 목사 116명, 장차관 82명, 사업가 75명, 발명가 25명, 의사 68명, 교수 66명이 배출되었다.

이 두 가문을 비교 연구하면서 발견할 것은, 부부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질서 속에서 서로 존경하며 사는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여주는 것만큼 큰 유산은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가문연구를 마치며 이렇게 말했다. “부모들이여! 자녀들이 잘 되기를 바라십니까? 그렇다면 부부끼리 화목하게 지내십시오. 부부가 사랑하고 존경하면 자녀들은 저절로 잘 될 것입니다.”

한국 부모들은 자신들의 문제는 뒷전으로 미룬 채 자식들에게만 지나치게 신경을 쓴다. 그리고 그것을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미국이 오늘날 윤리적으로 엉망이 되어가는 이유는 대다수의 부부 이혼으로 가정이 파괴되어버린 데 그 원인이 있다. 겉으로는 세계 최강국으로 보이지만 사실 희망이 없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미국에서는 이미 3분의 1의 가정이 깨어졌기 때문이다.



내면 세계 치유의 여덟 가지 원칙
한 그루의 나무처럼 한 사람이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주위 환경조건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한 사람을 이해하는 데는 다음 여덟 가지 사항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1)어떤 부모 아래 어떤 가정 분위기 가운데서 성장했는가?
2)어떤 문화에서 성장했는가?
-어떤 분위기의 학교에서 어떤 친구들과 어울려 성장했는가 등의 지역 문화는 그의 성격 형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3)청소년기를 어떻게 보냈는가?
-성인이 되어 시시때때로 분노를 폭발하는 사람의 상당수가 사춘기의 상처가 원인이 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급한 성격의 소유자는 사춘기 시절의 애정결핍으로 인한 것인데 입시 불안으로 인해 우리 국민 가운데 소수를 제외하고는 거의가 사춘기 고착증을 앓고 있다.

4)결혼 이후 부부간에 애정욕구가 충족되고 있는가?
-음식으로 에너지를 공급받는 것처럼 부부간의 애정 결핍은 생명 유지와 관계된 중요한 요건이다.

5)삶의 의미 상실에서 오는 상처를 이해해야 한다.
-어느 날 중년기에 접어들어 나는 누구인가라는 실존적 질문에 시달릴 때, 자신의 삶이 보람되었다면 큰 문제가 아니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심한 우울증에 시달릴 수 있다. 그들은 삶에 흥미를 잃어버리고 젊음을 잃지 않기 위해 쾌락에 휘말리는데 이 모두가 치유의 대상이 된다.

6)죄책감에서 나오는 영적 상처를 이해해야 한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다. 하나님의 질서를 벗어난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과 죄책감은 영적 능력에 혼란을 초래하고 신체의 이상도 가져온다.

7)치유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함께 역사 하는 공동체를 통해 가장 강하게 일어난다.
-대부분의 상처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성은 불안, 절망, 분노이다. 이런 증상을 보이는 사람에게 지식적으로 치유를 설명하는 것은 부분적인 치유에 그치게 한다. 그들은 자신의 불안이 확신으로, 절망이 소망으로, 분노가 사랑으로 바뀌는 것을 체험할 때만 온전히 치유된다. 이런 체험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정신으로 얽힌 소그룹 사람들 속에 들어가 살 때만 가능하다. 가정이나 지역 공동체 속에 사랑 받지 못해 움츠러든 성격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도 수용해줄 사람을 만나야만 달라진다.

8)현대의 의학, 과학, 심리학을 하나님의 창조원리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세상의 과학과 의학도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있는 것이므로 정신과 영, 신체의 치유에 임할 때는 반드시 그 분야의 전문가와 깊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서로 돕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Acoustic Cafe - 사랑의인사

  • 글쓴이: 두나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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