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웃기시고, 웃게 하시는 하나님(창21:1-7)
참조 : 15:1-5/ 17:1-8;15-19; 18:11-15; 참조)
1. 웃음은 유효기간이 없는 최고의 약이다.
병을 막아 주는 방탄조끼다.
신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아이들은 하루 3~400번 웃는데 어른은 고작 6번이다.
우리 몸에는 완벽한 약국이 있다. 웃음이다!
내가 웃으면 세상이 함께 웃고, 내가 울면 질병이 따라 웃는다.
10분을 배 잡고 웃고 나면 고통 잊고 2시간 숙면하게 된다.
웃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다.
웃을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2. 지난 주에는 우리나라의 톱스타 탤런트 최진실씨의 자살로 충격을 주었다.
1) 남에게 웃음을 주는 그녀는 정작 20년 동안 너무 외로웠다고 말함.
2) 공허하여 1,2시 경에는 잠에서 깨어 동틀 때를 기다렸다고 말함.
3) 그녀는 수 많은 사람의 인기를 한 몸에 받으면서도 속으로 울었던 여인
눈에 보이는 인기나, 성공은 우리의 속사람을 웃게 하지 못한다.
3. 최진실씨의 자살로 인한 충격은 목회자인 나에게는 더하다.
1) 2005년 영화배우 이은주, 2007년 가수 유나, 탤런트 정다빈, 2008년 탤런트
안 재환, 지난 주 톱스타인 최진실의 자살 - 모두가 교인이라는 것이다.
2) 한국 교회의 영성에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3) 지금 한국교회는 번영신학에 사로잡혀 있다. 평강, 복이 있다. 축복받는다. ..
4)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전 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가 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 니라』
5) 그리스도인의 인생도 동일하게 고난이 온다는 것이다.
요셉/ 다윗...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악인은 한 번 넘어지면 끝장이지만 의인은 7번 넘어져도 8번 일어난다는 것이다.
요셉; 하루아침에 노예의 삶일 되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매 형통하였더라.
다윗 ; 음침한 사망의 골짜기를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 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시편을 보라. - 고난 중에 주님을 찾을 때 찬양으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인내하며 나갔을 때 웃게하심.
형들은 내게 악을 행하였으나 하나님은 도리어 선으로 바꾸사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삶에 웃게하시는 하나님이시다.
4. 오늘 본문은 나를 웃기시는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Ⅰ. 하나님은 나를 웃기시는 하나님이시다.
1. 아브라함을 웃기시는 하나님
1). 17:1-8;15-19을 읽어보자.
2).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부터 자녀의 복을 약속하셨다(75세). 큰 민족
15장에 또 약속을 재확인 - 내 종이 내 후사? 아니다 네 몸에서 날 자다.
99세가 되었다. 지금까지 몇 년이 지났는가? 24년이다.
이번에는 이름까지 개명해 주면서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 것을 말씀하심
아브라함의 반응은 어떤가? 17장 17절을 읽어보자.
아브라함의 웃음은 어떤 웃음인가?
2. 사라를 웃기시는 하나님. 18장
1) 세 천사가 방문을 한다. - 아브라함이 나그네를 대접한다.
2) 하나님의 사자가 아브라함에게 말한다. - 9-15절을 읽어보자.
3) 왜 사라가 웃었을까? 그의 웃음의 의미는 어떤 웃음이었을까?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가 늙었고, 경수가 끊났을 뿐 아니라 어쩌면 불임여성 인 그에게 어찌 그런 일이 일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3.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참으로 우리를 웃기신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1) 아합의 시대에 아람군대가 포위함으로 기근이 심하였다. 성중이 크게 주려서 나귀 머리 하나에 은 팔십 세겔, 합분태(비둘기 똥) 사분 일갑에 은 다섯 세겔 이요, 자식을 잡아먹는 사태가 벌어진다.
엘리사가 아합 왕에게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하셨다.
아합의 군대장관 - 하나님이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2) 롯의 사위들 - 소돔과 고모라성을 유황불로 심판하신다고 할 때 롯의 사위들 은 농담으로 여겼다.
4. 저와 여러분의 삶에서 이런 경험이 있지 않은가?
1) 하나님을 입으로는 예배하지만 사업을 할 때는 성경대로 하면 안되고 세상 방 법대로 해야 된다고...
2)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지만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는 하나님 없 이 행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왜?
3) 입술로는 하나님을 인정하지만 행위로는 부인하는 자다.
5. 왜 하나님은 코미디같이 나를 웃기시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가?
1) 우리의 알량한 생각으로 주님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2) 그러므로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신 것
오늘도 99세된 아브라함을 찾아와서는 자신의 이름을 먼저 말한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나이가 늙고 불임여성이요, 경수가 끊어진 여인인 사라에게 찾아오셔서 ‘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네게 아들이 있으리라.
Ⅱ. 나를 웃게 하시는 하나님(21:1-7)
1. 2:1-7절을 읽어보자. 할렐루야
2.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를 웃기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웃게 하신다.
아들 이름을 이삭이라고 지었다.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셨다.
3. 오늘 이 말씀은 월요일 새벽에 일찍 잠에서 깨어 읽던 성경이다.
월요일에 나의 마음에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드림. ‘하나님 나로 웃게하소서’
오후에 순천향병원에 갔을 때 박종회 성도님이 건강한 모습으로 일반 병실
그 시간에 건대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홍교가 깨어났다고...
4. 내가 믿는 하나님은 누구시기에..
1) 99세의 이삭을 찾아와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엘 샤다이의 하나님
2) ‘엘 샤다이’라는 뜻은 엄마의 가슴을 말하는 것이다. 우는 아이가 엄마의 가슴 에 있기만 하면 울음이 딱 그친다. 그리고 씨익 웃는다.
아기에게 엄마는 전능자인 것처럼 우리 인생에 하나님은 나의 어머니시다.
3) 인생이 외롭고, 허하게 느껴지는가? 주님을 인격적으로 교제하라.
엘 샤다이의 뜻에는 풍성하게 공급하실 수 있는 분으로 “풍성하신 하나님”.
다윗은 주님을 따랐을 때 마지막 고백이 무엇인가? ‘내 잔이 넘치나 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4) 지금도 이 세상에 많은 상처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가?
엄마의 가슴은 자녀에게 젖을 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엄마의 가슴은 모 든 상처가 치유되는 곳이다. 아무리 밖에서 많은 상처를 받고 집에 들어 왔을 지라도 엄마 품에서 한 번 서럽게 울고 나면 그 상처가 치유된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너무나도 많은 상처를 받는다. 거절감의 상 처/ 권위자로 인한 상처/ 부모로 인한 상처가 있다. 이로 인해서 사람은 고집 불통이 된다. 권위자에 대해서 반항적이다. 항상 방어적이다. 자기를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여 점점 더 많은 것으로 자신을 감추려한다. 공격적이 된다. 조 그만 일에도 수치심을 느낀다. 중독에 빠진다.
그런데 주님 품에 안기니까 내 마음에 얼어붙어 있던 마음이 녹아지기 시작한 다. 내 속의 분노가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멀고험한 이세상 길...)
5) 우리 학생들도 그 풍성하신 하나님이 나를 축복의 길로 인도하실 것을 믿으라
토머스 에디슨은 너무 어리석은 “우둔한 아이”라는 평을 들었다. 조각가 로댕 의 학교성적은 항상 꼴찌였다. 그의 아버지는 “왜 하필 우리 집에 이런 바보 가 태어났는가”라며 통탄했다고 한다. 전쟁과 평화의 저자인 톨스토이는 대학 에서 계속 낙제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교수들은 “배우기를 포기한 젊은이”라 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들에게 중요한 한 가지 공통점은 엘 샤다이의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 람이었다는 것이다.
결론
오늘도 계속 치유의 하나님, 회복의 하나님을 고백하는 성도들이 나오고 있다.
질병에서 치유하시는 하나님, 부채 문제에서도 회복하시는 하나님, 가정을 회복하 시는 하나님
내가 믿는 하나님은 나를 웃기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나로 웃게 하시는 하나님이 시다. 그 하나님을 벼랑 끝에서도 끝까지 신뢰하는 성도들이 되어 ‘나로 웃게 하 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며 사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