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신비로운 선택(로마서 9장)
1. 우리가 누려야 할 영성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가? 심령 깊은 곳에서 나오는 감격과 기쁨, 사과 하나는 먹으면서 행복하다고 고백할 수 있는 영성이 아닐까?
초막에서도 천국과 같은 기쁨이 있고, 심지어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는 기쁨
2. 오늘 중증장애인이 부른 찬양의 고백을 함께 부르고 싶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가진 건강 없으나. 공평하신 하나님이...
3. 오늘 본문은 다루기 어려운 부분이다.
롬9-11장은 건너뛰거나 아니면 성경의 의도와는 다르게 설교하기 쉬운 부분.
롬마서 1-8장까지는 내가 왜 죄인인지, 어떻게 구원받게 되는지, 구원받은 자로 서 거룩한 삶을 어떻게 살 수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12장으로 바로 넘 어가서 그러므로 ‘구원받은 자로서 이렇게 살자’ 하면 틀이 딱 맞는다.
그런데 9-11장에 갑자기 바울이 자기 동족 유대인이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영접 지 않는 문제로 괴로워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중간에 삽입시켰다고 말한다.
그러나 9-11장은 놀라운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말하면서/구원받는 것도 내 가 아니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고/ 거룩한 삶을 사는 것도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고/ 우리의 인생 자체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한다. 그리고 12장에 가서
‘그러므로 구원받는 자로서 이렇게 살자’고 말하는 것이다.
5. 오늘 본문은 나와 여러분에게 두 가지 질문에 대답을 하고 있다.
Ⅰ. 원인 - 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면서 불평과 원망의 삶을 살까?
1. 우리의 시선의 문제이다. - 사람과 세상에 있기 때문이다.
2. 오늘 본문을 보면 불평적인 모습들을 볼 수 있다.
6절 -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다. - 하나님이 신실하지 않으신 것 같다.
14절 -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 하나님이 불공평하신 것 같다.
19절 -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다 행하시고는 왜 사람의 잘못을 사람에게 돌리뇨?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이 구원받은 자를 선택하셨다면 구원받지 못한
그들의 책임도 하나님께 있지 않느냐?
3. 모든 불평과 원망이 사람과 세상을 바라볼 때 나오는 것이다.
1) 1-6절을 읽어보자.
2) 왜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은 불신적인 생각이 들었을까?
장소는 로마다. 로마에 있는 교회를 볼 때 택함을 받지 못하였다고 생각했던 이방인들은 훨씬 더 많이 예수님을 영접하는데, 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유대인들은 왜 복음을 안 받아들일까? ‘이방인인 우리를 부르신 은혜보다, 왜 저들은...’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은 불공평하신 것 같다.(13-14절을 읽어보자)
하나님이 태어나기도 전에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은 사랑하였다고 말함
야곱과 같은 나를 택하셨다는 것에 감격하기 보다는 왜 에서는???
4) 19절 그러면 왜 하나님은 모든 허물을 우리에게 돌리시는가?
4. 오늘 우리가 불평하고 원망하는 내용을 보라.
1) 하나님은 왜 이렇게 불공평하신가?
2) 왜 하나님은 나를 가난하게 하시는가? - 저 친구는 학교 다닐 때...
3) 왜 나는 건강하지 못할까? 저 친구들은 건강한데....
4) 왜 저 사람은 나보다 더 많은 혜택을 받고 사는가?
5. 왜 원망과 불평을 하며 심지 하나님 앞에서 따지고 싶은 마음이 드는가?
1) ‘자신 속에 이웃을 사랑함이 없기 때문’이다.
불공평을 말할 때는 언제나 ‘남과 비교해서’ 남이 잘되는 꼴을 못 보기 때문
2) 예화 - 네가 구하는 것에 두 배를 상대방에게 주겠다. 얼마나 구했을까요? 100원/ 상대방은 제 눈 한쪽을 빼 주세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3) 우리의 행복의 기준이 다른 사람이 나보다 못한 것을 볼 때이다.
6. 사람이 남과 비교하는 말을 들을 때 가장 싫어하면서도 자신은 늘 남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7. 신앙은 우리의 시선을 세상과 이웃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리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게 두는 것이다. 그때 원망이 아니라 찬양의 삶을
절망과 낙망가운데 있던 다윗 - 내 영혼아 여호와를 바라라.(마인드 컽트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
(두 번째 질문)
Ⅱ. 해결 -어떻게 불공평해 보이는 세상에서도 찬양의 인생을 살 수 있을까?
A.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19-29).
1. 인간의 눈으로 사람과 세상을 볼 때 모든 것이 불공평해 보인다.
2. 인간의 눈은으로 사람을 볼 때 상처를 받는다. ‘사람은 극찬 해도 안되고, 극단 적으로 비방해서도 안된다’
사람은 믿을 대상이 아니라 사랑할 대상이다.
교회는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 아니라 함께 하라고 하신 사람들의 모임
3. 하나님의 절대주권적인 섭리를 볼 때 하나님을 향한 경외와 찬양이 나온다.
1)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 따진 사람이 있다.
(1) 하박국 - 하나님 왜 이 악한 시대에 가만히 계십니까?
(2) 하나님 - 하나님이 갈대아 사람을 통해 심판하신다.
(3) 하박국 - 하나님 이 악한 시대를 심판하시는데 왜 더 악한 갈대아 사람을 (4) 하나님 - 갈대아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을 징계하는데 몽둥이로 사용하시고 꺽어버 리시리라.
2) 하나님의 절대주권적인 섭리를 보면서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면서 찬 양을 함/ 하박국 2:17-19절
4. 본문을 통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보라.
1) 9장 - 어떻게 하나님의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에 예수님을 믿는데 실패할 수 있는가?
2) 10장 - 이스라엘 백성이 믿음으로 하나님께 다가가지 못한 불신앙 때문이다.
3) 11장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이 버림을 받았는가? - 하나님은 그 속에 남은 자를 남겨두셨다. 11장 1절과 5절을 보라.
5. 오늘 우리 인생의 주체는 ‘내가’아니라 ‘하나님’이시다.
1) 19-23절을 읽어보자.
2) 하나님을 깊이 경험할 때의 고백이 이것이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요 나는?
이사야 29:16절을 인용한 것이다. - 하나님의 절대주권적인 섭리를 말함.
3) 바울은 만세전에, 태중에서부터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음을 고백한다.
4) 나의 고백 ; 하나님이 나를 만세전에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시고, 목사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예수님을 주라 부를 수 있는 것? 교육?
6. 질문을 또 한다. - 그러면 인간은 뭐냐? 이창동 감독의 ‘벌레이야기’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 속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신성과 지혜와 총명이 있다.
빚음을 받은 물건이 자기를 빚은 자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이사야 29:16절 인용구)
7.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 속에는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심이 가득하다.
1) 23 - 25절을 읽어보자.
2) 창조 - 보시기에 좋았더라 ;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 인간
3) 두리안 - 과일의 황제
4) 우리의 인생의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를 받아들일 때 찬양
우리가 잘 아는 요셉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꿈을 꾸게 하신 후부터는 고난이 시작됩니다. 그의 인생을 눈앞에서 보면 실패의 인생처럼 보입니다. 노예로 형들이 팝니다. 또한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노예생활을 통해 인내를 배우게 되고, 밑바닥 인생을 경험하게 됩니다. 감옥생활을 통해 정치를 배웁니다. 왜냐하면 그가 갖힌 감옥은 정치가들이 갇히는 감옥이기 때문입니다. 때가 되니까 13년만에 애굽의 총리로 하나님이 세우신 것을 보게 됩니다. 눈앞에 삶을 볼 때는 억울한 일이지만 인생을 전체적으로 놓고 볼 때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볼 수 있습니다.
( 어떻게 불공평한 세상에서도 찬양의 인생을 살 수 있을까? )
B. 하나님은 야곱과 같은 나를 부르신 주님을 볼 수 있어야 한다. (1-13)
1. 1-13절을 읽어보자.
2. 바울의 간절한 소망이 있다. 다름 아닌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이 복음 을 믿고 구원을 얻는 것이다.
3. 이스라엘 백성은 많은 특권을 갖고 있으면서도 복음을 믿지 않았다.
1) 4-5절을 보라.
2) 이스라엘 백성은 공동체의 구원을 생각하고 있다.
이스라엘 자손으로 태어나면 다 자연히 구원받은 백성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모태의 신앙이라는 것이 없다. - 신앙의 어머니 배속에서 태어나면 신앙인?
4. 현실은 그렇지 않다. 복음에 들어오는 자가 유대인은 적고 이방인이 많다.
5.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폐하여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6. 그러나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신 것이 아니라 ‘나를’ 택하여 하나님 자녀 삼으셨다는 것이다.
1) 이스라엘인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6절)
2) 아브라함에게서 난 아들이라고- 이스마엘과 이삭 ; 그러나 약속의 씨다.
3) 한 배에서 나온 쌍둥이 이삭의 아들 에서와 야곱을 보라.
7. 여기서 사람들은 또 하나님께 논쟁을 한다(14절).
1) 하나님은 불공평하시다. 어떻게 누구는 택하고 누구는 택하지 않으시느냐?
2) 그래서 하나님의 선택론만 나오면 ‘감격’보다는 ‘논쟁’만이 나온다.
3) 왜 그런가? ‘다른 사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4) 하나님이 나 같은 자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셨다는 것이다.
8. 감격스럽지 않은가?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니...
9. 내가 누구인데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가?
1) 13절을 읽어보자. 야곱과 같은 나
문학적인 표현 ; (눅 14:26)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 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야곱이 누구인가? - 형을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빼앗은 자
아버지를 속이고 형의 축복을 빼앗은 자
하나님을 속이는 자.
2) 15-16절을 읽어보자. 하나님의 긍휼을 얻은 자이다.
긍휼이란 뜻은? -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야 할 자에게 내리지 않음
22절 준비된 진노의 그릇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긍휼
욥 ; 욥기 38장 1-7절/ 40:1-9절
하나님의 긍휼을 받은 자는 시끄럽지 않다. 단지 조용히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 앞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