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전한 그리스도인(눅 14:15-27)
1. 올해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이창동 감독의 ‘밀양’이 영화를 서론에서 나누고자 한다. 왜냐하면 지금 기독교에 뜨거운 감자로 있기 때문이다.
밀양이라는 영화는 기독교에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래서 ‘밀양이라는 영화 가 기독교에 대화를 걸다’는 주제로 ‘서울 명동 높은 뜻 숭의교회’에서 포럼이 열렸다.
2. 배경은 잘 이해를 하고 영화를 보아야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내용을 보면 종교적인 색체가 강한 영화이다. 어쩌면 반기독교적 분위를 띄우기 도 하는 영화이다.
3. 이 영화는 이청준의 단편소설 ‘벌레이야기’에서 착상한 영화라고 말한다.
벌레이야기는 광주사태를 빗대어서 다룬 소설이라고 한다. 광주 민주화 운동 때 많은 시민들이 군부독재의 총에 자식을 잃고 형제를 잃고 부모를 잃고 수 없는 고통과 상처를 입었다. 그들의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고 고통하고 있는데, 이들 은 아직도 용서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고 어쩌면 분노가운에 있는데 정치계에서 는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 쉽게 용서를 말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용서 하지 않았는데 누가 용서하느냐?’는 의미를 담고 있는 소설이라고 한다.
4. 이 소설에서 착상한 영화 ‘밀양’에서 기독교에 말을 걸고 있는 내용이 ‘용서’이 다. 피상적인 용서가 아니라 기독교에서 말하는 본질적인 ‘용서’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5. 내용을 보면 전도연이는 자매가 주인공이 되어 나온다.
1) 밀양에 와서 살다 아들이 유괴되어 죽게 되면서 방황함
2) 그녀는 교회에 전도되어 회복된 것처럼 산다.
3) 그래서 그를 용서하기 위해 감옥을 찾아간다. 그런데...
유괴범은 세상에서 그녀에게는 미안한 기색도 없이 가장 평안한 표정과 말투 로 이미 옥중에서 하나님을 영접했고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았노라고 말을 한다. 이때 여주인공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너무 기가 막혀서 뛰쳐나와 하나님 께 반항을 한다. \'내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6. 이 영화가 기독교에 말을 거는 대목이 이 곳이다.
아마 이 유괴범이 감옥에서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자신의 죄가 얼마나 비참한지를 놓고 괴로워하는 모습, 또한 그녀에 대한 미안함과 예수님을 만난 후의 그의 새로운 인생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용서’에 대 한 문제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7. 아마 이 영화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유괴범이 감옥에서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었 는지, 그가 어떻게 변했는지가 묘사되었다고 한다면 이 영화는 기독교영화가 되 는 것이다.
8. 문제는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용서가 앞과 뒤 가 없는 용서로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이것은 하나님의 용 서를 너무 피상적으로 그렸다고 이 영화에 대해 불만을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본 이 영화의 용서는 ‘지금 세상 사람들에게 나타나고 있는 기독교의 용서’ 라는 것이다.
9 하나님의 참된 용서를 경험한 그리스도인의 순전한 모습이라고 한다면 아마 첫 번째 과정이 자신의 죄에 대한 비참함을 놓고 하나님 앞에 통곡하는 모습이 있 었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하나님이 내 죄를 대신 십자가에서 심판받으시는 비참함을 보면서 하나님의 생명을 드려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용서의 경험 을 통해 마음의 평안함을 얻게 될 것이다. 세 번째는 피해 당사자에 대한 사과 와 회개의 열매가 있었어야 할 것이다.
9. 순전한 기독교의 용서가 다뤄지지 않기 때문에 용서의 참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순전한 기독교의 용서가 다뤄지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용서가 세상에 영향력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10. 무늬만이 아니라 순전한 그리스도인으로 돌아 갈 때
*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 이 시대에 영향력을 끼치는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 술집이 문을 닫고 성경공부하는 집으로 바꾸어지는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송받는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순전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드러날 때
* 겉 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날로 새로워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 예수님이 누리신 평안과 기쁨을 누릴 것이다.
* ‘내가 부족함이 없나이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풍성한 고백의 삶.
* 우리의 소원은 신앙을 통해 우리의 삶이 새롭게 되는 것 아닌가?
찬양 : 새롭게 하소서...
11. 이제 우리는 주변으로부터 많은 도전을 받게 된다. 옛날처럼 ‘믿습니다’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순전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이라고 세상은 도전을 하고 있 다. 이제는 막연하게 나는 기독교인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순전 한 그리스도인임을 보이라고 도전을 하고 있다.
12. 그러나 이 도전은 세상 사람들이 우리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 게 도전하고 계신 말씀이다.
13.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라.
1) 누가복음 14:15-24절, 아니 35절까지 연결된 말씀이다.
2) 먼저 이 말씀을 하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15절에 있습니다. ‘함께 먹는 사람 중에 하나가 이 말을 듣고 이르되 하나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니...’ 지금 이 신앙적인 것 같은 말을 한 사람을 향해 하는 말씀이다. 이 사람이 얼마나 신앙적인 말을 하고 있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상투적인 종교 언어보다 순전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요구하 고 있다.
(순전한 그리스도인은 어떤 그리스도인인가?)
Ⅰ. 영적인 것에 궁극적 관심을 갖는 그리스도인이다.
A. 본 문
1. 16-20절 말씀을 보라.
1) 잔치 할 시간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보냈다는 것을 보기 바란다.
2) 먼저 잔치를 할 때 종들을 보냅니다. 그리고 언제 잔치가 있을 거라고 오라고 초청을 한다. 사람들이 가겠다고 말한다. 그러면 주인은 그 청함에 응답한 사 람들만을 위해서 식사를 준비한다. 그리고 잔치 때가 되었을 때 그 청함에 응 답한 사람들에게만 종들을 다시 보낸다.
2. 그런데 이들은 구체적인 두번째 초청에 거부한다. (18-20)
1) 밭을 샀다. -사기 전에 이미 꼼곰히 다 알아봄. 계약도 끝남. 내일가 보아도
2) 결혼했으니 - 색시가 도망갑니까?
3) 소를 다섯 겨리를 샀으니 - 이미 사기 전에... 내일 할 수 있는 것
4) 잔치는 그 날을 놓치면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5) 순전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예수님은 25-27절에 말씀하고 있다.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자기 목숨을 미워하라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성경은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보이는 부모를 공경하지도 못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은 하나님을 어떻게 공경할 수 있느냐고 말씀하신다.
성경은 부부가 서로 사랑하라고 수차례 말씀하고 있다.
자녀를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문학적인 표현으로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영적인 것이 우 리의 삶에 우선순위에 있어야 함을 말씀하고 있다.
B. 적 용
1. 오늘 성경은 이런 모습을 노아의 때 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모습을 롯의 때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성경은 노아의 때와 같이 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1) 노아의 때는 어떤 때인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성경은 먹고 마시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금욕적인 삶이 영적이라고 보기 힘 들다. 전도서 5:18-20절을 읽어보자.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2) 노아의 때의 문제가 무엇인가? 돈 벌고, 먹고 마시고, 꿈을 갖고 바쁘게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적인 것에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3) 노아 시대 때의 배우자 선택을 보라. 6:1절을 보면 사람이 땅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 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2. 오늘 우리의 모습을 ‘끈’이라는 만화로 그려놓은 것이 있다.
주님의 은혜를 받고 십자가를 지고 살기로 결정한다. 그러다 보니까 하나님이 너무나 기뻐서 선물을 하나 하나 주신다. 이제 시간이 흐르면서 이 사람에게는 십자가는 이제 별 관심이 없고 하나님이 주신 선물에만 관심을 갖고 있게 된다. 후에는 십가가는 없어지고 온통 물질세계만이 가득한 것을 볼 수 있다.
3. 하나님은 하나님이 선물을 주시면서도 믿음을 바르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아브라함을 보라. 100세에 난 아들을 모리아산에서 바치라고 한다. 100세에 난 아들이 아니라 우선순위가 하나님을 사랑함에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자녀보다 우선순위에 있을 때 하나님은 자녀의 복을 허락하심.
하나님이 물질보다 우선수위에 있을 때 하나님은 물질의 복을 누릴 수 있게 함.
4. 배우자를 찾는 젊은이들은 ‘영적인 배우자’를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
잠언 31장 현숙한 여인 ;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 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교회 다니는 자매를 만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매를 만나 라.
5. 자녀를 바라보면서도 영적인 야망을 갖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미스 유니버스에서 4위를 한 이하늬 어머니는 영적인 야망이 있다. 그 딸을 향 해 말할 때 성령충만한 딸, 하나님의 딸이라고 말하였다.
웨슬리의 어머니는 19명의 자녀를 낳았다. 주시는데로 다 낳겠습니다. 선교사로.
조지 윗필드의 어머니는 ‘기도를 가장 많이 먹고 자라게 하겠다’.
어떤 미국의 유명한 대학을 유학시킨 어머니는 방학 때 성경과외공부를 시킴
6. 교회를 향한 뜨거움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피로 값주신 교회. 66권의 서론을 창세기라고 한다면 결론은 계시록이 다. 계시록에 보면 7교회가 나온다. 부족함이 있는 교회다. 중요한 것은 사도요 한이 본 것은 7별과 7촛대의 비밀이다. 하나님은 교회 사이에 다니시면서 교회 의 지도자들을 붙잡고 일하신다.
바울은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 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말하고 있다.(골1:24)
Ⅱ. 순전한 그리스도인은 구체적 부르심에 응답하는 신앙인이다.
A. 본 문
1. 18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이제 잔치할 날이 되어 청함에 응한 사람들의 식사를 다 준비해 놓고 종들을 보냈다. 먼저 청함에는 막연하게 대답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구체적인 행동의 제약이 가해집니다. 갈 것인지 안 갈 것인지 결정해 야 한다.
2. 영적인 것 같은 사람들이 구체적인 결정에서는 한결같이 자기의 이익을 결정함.
3. 그러나 순전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부르실 때 자신의 의지와
생각과 계획을 포기하고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한다.
4. 주님의 부르심에 구체적으로 반응하는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것은 2가지 수반
1) 기꺼이 대가를 지불할 각오 : 28-30절
2) 예수를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포기 : 31-33절
B. 적 용
1. 신앙은 결정적인 순간에 그 사람의 선택을 보면 그 사람의 신앙이 보인다.
2. 순전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구체적인 부르심에 자기의 의지를 포기한다.
새로 산 밭에 나가보고 싶을 것이다.
새로 산 소를 시험해보고 싶을 것이다.
새신랑이 새 신부 곁에 있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체적인 부르심에 자신의 유익을 언제나 표기할 수 있다.
3. 학생 때는 나름대로 열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격적인 하나님과의 만남 없는 막연한 신앙을 가지고 신앙생활해 보세요. 대학에 들어가면 많은 일들이 벌어집니다. MT도 가야지요. 레포트도 많지요. 시험도 있지요. 어떻게 될까요?
4 이제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해 보세요. 어떤 면에서 돈과 직접 관련된 요구들이 쏟아질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한결같이 사양하며 MT를 가야 하니 가지 못하겠노라. 레포트를 해야 하니 가지 못하겠노라. 시험이 있으니 가지 못하겠노라. 돈을 벌어야 하니 가지 못하겠노 라. 상사에게 찍히면 승진이 안 되니 가지 못하겠노라.
5. 오늘 하나님은 나에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부르시고 있는가?
6. 나는 오늘 우리 사랑의 교회 성도들의 삶에서 바울의 고백이 나왔으면 한다.
1) 내가 사람을 기쁘게 하랴 하나님을 기쁘게 하랴. 내가 사람을 기쁘게 하였다 고 한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다.
2) 사나 죽으나 나는 주의 것이다.
7. 간증
결론
무늬만이 아닌 순전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자
1) 우리의 궁극적 관심이 일상생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에 있어야 한다.
2) 하나님의 구체적인 부르심에 응답하며 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