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넘어서 ‘우리’(전도서 4장)
1. 지난번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미국 버지니아 공대의 총기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을 일으킨 사람이 바로 우리 한국 사람이기에 우리 국민들도 마음이 더 욱 아팠다.
4월 21일 버지니아 공대에는 이들의 추모석이 교정에 세워졌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32명의 희생자가 나왔는데 33개의 추모석이 세워졌다는 것이다. 32개와 함께 총기사건의 주범인 조승희 학생의 추모석도 동일하게 세워졌다는 것이다.
왼쪽에서 4번째인 그의 추모석에는 성조기와 교기, 장미 카네이션 안개꽃과 함 께 버지니아텍 이니셜 모양의 카드에 ‘2007년 4월 16일 조승희’라고 메모가 붙 었다. 그를 희생자의 한 사람으로 본 것이다.
그의 추모석에도 다른 희생자들처럼 추모의 글들이 헌정됐는데 그를 평소 알고 지내 보이는 어떤 사람은 그의 추모석에 이렇게 썼다. ‘나는 너를 증오하지 않는 다. 네가 도움과 위로를 얻지 못한 것이 오히려 미안하다’며 ‘네 친구가 되어주 지 못해 미안해’라고 썼다.
2. 사람들은 축복의 삶을 소유라고 생각을 한다. 물질을 많이 소유하고, 좋은 대학 에 들어가고, 높은 자리에 앉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러나 성경은 축복의 삶은 소유가 아니라 ‘관계’이다.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관계, 부부와 아름 다운 관계, 부모와 자녀간의 아름다운 관계, 이웃과의 아름다운 관계...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고 공부를 잘 한다고 하여도 왕따가 되어보라.
아무리 가난해도 부부의 관계가,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아름다운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다.
3. 이 사건으로 인해 그의 가족들이 사과문을 내 놓았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가 사과문을 내 놓아야 할 문제이다.
이 사건은 우리 교회가 사과문을 내 놓고 회개해야 할 문제이다.
4. 오늘 요즘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정작 사과문을 내 놓아야 할 곳은 우리 교회다. 그리스도인들이 사과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가 교인이었기 때 문이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회개해야 할 것은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관계, 성도들 과의 아름다운 관계, 이웃과의 아름다운 관계’보다 소유에 초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5.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가 병들어있다는 것이다.
교회의 소중 : 예수님이 이 땅에 남기고 가신 것이 교회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이 핏 값으로 사신 것이 교회라고 말하고 있다.
개인주의 신앙으로 흐름-공동체를 떠나서 신앙을 말할 수 없다.
모이기를 폐하는 자들과 함께 하지 말라.
교회의 모습 :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교회는 주님의 모습이 가득해야 한다.
연약함을 품어주는 모습/ 용납하는 모습/ 중간에 막힌 담이 허물어지고 연합된 모습(유대인과 이방인, 열심당원과 세리, )
6. 사람들은 함께 어우러져서 하나 되는 삶을 살 때
1) 함께 어우러짐을 통해 사람들은 소속감을 느낀다.
2) 자존감을 느낀다. - 자신이 받아들여짐을 느낀다.
7. 예수님의 마지막 제자들을 위한 기도가 무엇인가?
저들이 우리와 같이 하나가 되게 하소서.
Ⅰ. 축복의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나’를 넘어서 ‘우리를’ 향해 나가야 한다.
성경은 ‘서로 서로 사랑하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를 말하고 있다. 주님의 기도를 보라. 우리에게(나에게가 아님)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1. 우리의 삶을 파괴시키는 것이 무엇인가?
1) 낮은 자리에서 섬기려는 모습보다는 남을 지배하는 자리를 추구함으로 행복을 찾을려고 하고 있다. 그러기에 이 땅에 위로가 없고,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 다고 하는 사회로 바뀌는 것이다(1-3).
2) 4-6절 사람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사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우리가 열심히 사는 목적 자체가 많은 경우에 서로 간의 시기와 경쟁심에서 유발된 것이라는 것이다.
4절을 보면 그리고 나는 일에 있어서의 수고와 공교한 기술, 또한 그로인한 성취들을 보았는데 그것은 많은 경우 서로 간의 시기와 경쟁심에서 유발된 것 이다.
3) 8절의 말씀을 보자. 나눔이 없이 물질만 쌓기 위해 수고하는 인생.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고, 아무도 없이 홀로 있으나...
9-12절이 뒤 이어 나오는 것을 볼 때 형제가 없는 것이 아니라, 아들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거부하는 것이다.
4) 천한 사람이 남의 도움을 받아 왕위에까지 오른 사람이 이제는 교만하여서
자기를 도운 사람의 무시하는 교만이다(13-16).
5) 한마디로 말하면 자기중심적인 삶을 말하고 있다.
2. 축복의 삶을 살기 위해 먼저 자신이 축복의 삶을 누리는 것은 중요하다.
1) 그래서 3장에 오늘을 누리며 살라고 말하고 있다.
2) 자신이 복되면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신 오늘을 누리면서 살고 싶지 않습니까?)
Ⅰ. 영원한 것을 사모하며 살아야 합니다.
Ⅱ. 하나님의 시간에 순응하며 살아야 합니다.
Ⅲ. 억울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야 한다.
3. 그러나 나에서 우리로 관계를 발전시킬 때 놀라운 기쁨이 있다.
1) 오늘 본문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2) 9-12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보자.
3) 함께 할 때 서로에게 힘이 되고 좋은 결과를 준다.
(1) 예수님도 제자들을 전도 보내실 때 두 사람씩 짝 지워 보내셨다.
(2) 하나가 넘어지면 - 일으켜 준다. 만약 일으켜 줄 사람이 없다면...
(3)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듯하다. 만약 한 사람이면....
(4) 강도가 들어왔을 때도 두 사람이면 제압할 수 있어도, 한 사람이면
4) 미국 에모리대학교 정신의학?행동과학 연구팀은 의학전문지 뉴런(Neuron)에 게재한사회적 협력을 위한 신경계의 기초란 제목의 논문을 통해 사람이 서로 이타적 행동을 보이는 것은 선한 행동이 즐거운 느낌을 주기 때문이라 고 전제하면서 협력적인 태도를 보일 때 사람의 뇌에서 즐거움을 유발시키 는 신경조직이 최고조로 활성화 된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이 논문에서 뇌신경의 활성화 체계가 사람의 이타주의를 강화시 키는 반면 이기적 행동을 억제하고 있다고 설명한 뒤 사람은 서로 협력하 도록 신경계가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확증해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5)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유명한 성자 아시시 성프란시스는 이런 고백을 한다.
무엇인가를 소유하고, 그래서 힘을 행사하고 다른 사람들을 부리고 누려 보 는 삶을 살아 본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말하기를 그러한 삶에는 약간의 기쁨이 있었다. 그런데 나를 희생하고 이웃의 발을 씻기고 섬길 때 이 삶은 나에게 숭고한 기쁨을 가져다 주었다.
그의 기도문을 보라.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6) 우리의 관계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이루어질 때 최고의 축복이 된다.
1) 우리와의 관계가 주는 축복이 많이 있다. 그러나 우리와의 관계가 하나님 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질 때 끊어지지 않는다.
2) 12절을 읽어보자. 삼겹줄이면 쉽게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3) 3장은 행복한 그리스도인 개인의 삶을
4장은 함께 하는 삶을
5장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삶을 말하고 있다.
4) 동물학자의 실험
한 동물학자가 쥐를 실험하였다.
한 곳은 쥐 한 마리만 놓고 사람이 가지도 않았다.
또 한 곳은 쥐를 다섯 마리를 함께 놓았다.
또 한 곳은 쥐를 다섯 마리를 함께 놓고 사람이 가끔씩 가서 놀아주었다.
어느 것이 오래 살았을까? 어는 쥐들이 지능이 더 발달했을까?
하나님과 함께 ‘내가’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갈 때 축복의 인생이 있다.
찬양 : 우리 함께 걷네
Ⅱ.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가 먼저 우리를 향해 나가야 한다.
펌푸의 원리를 보라. 먼저 물을 부을 때 그곳에서 수없이 많은 물을 얻을 수 있 는 것이다.
A. 남을 지배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위로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1. 1-3절을 함께 읽어보자.
이 세상에는 불공평과 불의와 학대가 있다. 대학 ; 신고식... 지성인들이.(1-3)
2.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억울함과 고통이 너무나 많다.
3. 고통이 문제가 아니라 ‘위로자’가 없기 때문이다.
4. 살 소망이 끊어진 곳에도 감사와 찬양을 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1) 하나님의 위로가 있다.(하나님의 위로와 이웃의 위로가 필요하다)
2) 하나님의 위로를 받은 우리에게 하나님은 위로하며 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 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후1:4)
3) 위로받은 자로서 위로하며 사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이 옥에 갇혔을 때 바울을 위해 함께 갇힌자들이 있었다. 바울은 이들의 이름을 열거하며 나의 위로자라고 하였다. 골로새서 4:10,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 바의 생질 마가와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저희는 할례당이라 이들만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4) 위로란 무엇인가? 위로란 그 고난에 함께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본되신 분은 예수님이시다. 그 분이 위를 어떻게 위로하셨는가를 생각해 보 십시오. 성경에 위로자란 뜻을 가진 바나바가 있다. 그는 자기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을 위해 내 놓았다. 그는 곤경에 처한 바울을 사도들에게 소개한 사람이다.
B. 시기와 경쟁이 아니라 축복하며 살아야 한다,
1) 4-6절 사람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사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우리가 열심히 사는 목적 자체가 많은 경우에 서로 간의 시기와 경쟁심에서 유발된 것이라는 것이다.
4절을 보면 그리고 나는 일에 있어서의 수고와 공교한 기술, 또한 그로인한 성취들을 보았는데 그것은 많은 경우 서로 간의 시기와 경쟁심에서 유발된 것 에 다름 아니다. 이것도 참 헛되어 마치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
2) 우리가 함께 할 수 없는 이유는 시기와 경쟁 때문이다.
시기와 경쟁은 사이를 갈라놓는다. / 고동학교에서 노트도 안 빌려준다.
시기와 경쟁은 가장 가까운 사이를 갈라놓는다.
목회자. 장경동 목사, 주변에 교회? 나와 가까운 사람이...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이동원 목사; 축복하고 건축헌금을 보냄.
C. 형제를 돌아보는 삶을 살아야 한다.
1) 8절의 말씀을 보자. 나눔이 없이 물질만 쌓기 위해 수고하는 인생.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고, 아무도 없이 홀로 있으나...
9-12절이 뒤 이어 나오는 것을 볼 때 형제가 없는 것이 아니라, 아들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거부하는 것이다.
2) 공동체의 하나됨을 위해 빌리보서에 주신 말씀을 보라.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 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 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3) 오늘 우리 학생들은 남에게 나눠주기 위해 공부하기 바란다.
내가 가진 것이 없으면 나누어줄 수 없다. 지식을, 지혜를, 물질을...
D.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
1. 13-16절을 읽어보자.
2. 천한 사람이 남의 도움을 받아 왕위에까지 오른 사람이 이제는 교만하여서
자기를 도운 사람의 무시하는 교만이다(13-16).
아무리 나이 많아도 남의 말을 받아 들일 줄 모르는 왕은 어리석다.
그보다는 가난할지라도 슬기로운 젊은이가 낫다.
3. 교회는 선생이 많아지면 안 된다.
결론
함께 사는 것이 내가 사는 길이다.
인도에 복음을 전하는 선다싱이란 사람이 있다.
히말리아 산맥을 넘어 네팔 전도에 나섰다. 그 추운 날에 친구와 동행하여 가다가 길에 추위에 떨고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게 되었다. 친구에게 그 사람을 함께 데리고 가자고 했다. 그 때 친구는 혹독한 추위에 자신들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니까 그냥 가자고 했다. 그러나 선다싱은 너 먼저 가라고 하고 그 쓰러진 행인을 들러 엎고 갔다. 한 참 가다가 보니까 멀리 또 한 사람이 쓰러져 있는 것이다. 가서 보니까 앞서 가던 그 친구였다. 그러나 선다싱은 한 사람을 들쳐 업은 사람 때문에 땀이나서 두 사람의 체온이 얼어붙은 추위를 녹일 수 있었기 때문에 산을 넘었다는 감동적인 전도여행 행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