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울의 회상(삼상18:1-9) 서 론 세계 평화를 위한 공연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공연을 준비하는 한 그룹이 내분이 일어나서 해체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반전 촛불 시위를 하면서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처럼 말합니다. 그런데 가까운 우리 안에는 시위와 폭력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다른 선진국의 인종차별에 대해서 말하면서 우리 안에 있는 외국 근로자들에 대한 그 보다 더한 학대를 보게 됩니다. 저는 지금까지 성경에 나오는 사울에 대해서 늘 비판적인 시각으로 그를 평가해 왔습니다. 어떤 면에서 저는 심판자의 위치에서 사울을 정죄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바로 그 사울이 저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오늘 제 안에 있는 사울과 함께 여행을 떠나고자 합니다. ********* 강대상 앞으로 나간다******************** 저는 사울입니다. 저는 억울합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제 이름을 들먹거리며 욕하기 때문입니다. 목사님들이 설교 때만 되면 제 이름을 말하면서 이 세상에 나지 말아야 할 사람처럼 말합니다. 구역에 모임을 가면 구역인도자들이 역시 동일하게 저에 대해서 나쁘게 말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얼마나 저에 대해서 악하게 말하였는지 세계의 많은 어린아이들까지도 제 이름을 모르는 아이들이 없습니다. 그렇게 제가 나쁜 놈입니까? 저는 명예회손 죄로 목사님들과 구역인도자들, 어린이들, 모든 예수쟁이들을 하나님께 고소하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듭니다. 저는 저의 좋지 못한 마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제 잘못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제가 억울해 하는 것은 저를 비난하고 저를 조롱하는 그 사람들은 나보나 얼마나 나으냐는 것입니다. 저도 나름대로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들은 제가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을 때의 일을 기억할 것입니다. 제가 처음에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을 때 다 저를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저를 향해 ‘당신이 무슨 왕이 될 수 있느냐?’며 자격을 놓고 얼마나 입방아를 쪘습니까. 그래도 저는 그 사람들의 비난을 품어주었던 사람입니다. 저의 이 상황은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무엘 상 1장 27절을 보면 ‘어떤 비류는 가로되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하고 멸시하며 예물을 드리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사울은 잠잠하였더라’. 여러분들은 저보다 얼마나 낫 길래 그렇게 저를 비난하고 있습니까? 저를 들먹이면서 비난할 때 저는 너무나 억울한 마음이 듭니다. 여러분들이 만약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때 ‘네가 무슨 왕이냐? 나는 너를 왕으로 인정할 수 없다’하며 멸시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마음이 생기겠습니까? 아마 어떤 분들은 마음이 꽁하여 ‘그래 두고 보자’ 하며 힘이 생기면 복수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래도 그들을 품어주었던 마음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왕이 되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고요? 제가 여러분의 세계에 대해서 듣자 하니까 얼마 전 경로당에서 회장 선거에서 떨어지자 자기를 비난했던 사람들을 죽였다고 하더군요. 그런 분들에 비하면 저는 나름대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지 않습니까? 저에 대한 또 한 가지의 일을 말하고 싶습니다. 제가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고 얼마 있지 않아서 있었던 일입니다. 제가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고 얼마 있지 않아서 있었던 일입니다. 암몬 사람 나하스가 우리 동족 길르앗 야베스를 쳐 들어온 때의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암몬 사람 나하스가 와서는 한 말이 무엇입니까? 길르앗 사람들이 나하스에게 항복하고 섬기겠다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암몬 사람 나하스는 ‘내가 너희 오른 눈을 다 빼어야 너희와 언약하리라’하면서 모욕을 했습니다. 우리는 아무 힘이 없어 울기만 하였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해결방안을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반상회를 얼마나 자주 하였습니까? 그때 아주머니들은 어떡하냐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도 못했던 그 날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저도 그 때 한숨도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이 나라의 왕으로 기름부음 받은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책감에 시달려 여러 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때 결심하고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왕으로 세우셨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분명히 도와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백성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는 나갔을 때 극적인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우리가 승리하였습니다. 제가 나름대로 백성을 사랑하는 괜찮은 지도자였다라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사람들은 저를 말할 때 다윗을 비교하면서 저를 나쁘게 말합니다. 저도 처음부터 다윗을 미워한 사람이 아닙니다. 다윗은 참으로 좋은 친구였습니다. 용기 있는 친구였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친구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도 그를 신뢰하였고 그를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한 것입니다. 만약 제가 다윗을 미워했거나 시기하였다고 한다면 나라의 힘의 상징이 되는 국방부 장관의 직을 그에게 맡겼겠습니까? 갈등의 시작 (자리를 왼쪽으로 옮긴다) 그랬던 저에게 주체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이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다윗이 불레셋을 무찌르고 돌아올 때 였습니다. 저는 이때까지만 해도 다윗에게 늘 감사했습니다. 참으로 다윗이 있었기에 나의 왕위가 더욱 견고하였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그를 맞으러 성밖까지 나갔습니다. 그가 돌아오면 내가 어떻게 보상해 줄까? 하고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주변을 거닐었습니다. 다윗이 돌아오면 내가 어떤 말을 하며 격려할까. ‘다윗 수고했네’하고 군인처럼 짧은 말로 할까?, 아니면 ‘다윗 나는 자네로 인해 편안한 왕위를 누릴 수 있네’하면서 그를 높여줄까? 다윗이 돌아오면 어떤 자세로 맞을까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가 와서 경례를 하면 가서 그를 껴안으며 말할까? 아니면 그가 경례를 하기 전에 그에게 다가가 포옹을 할까? 성 안에다가는 이미 만찬의 준비를 다 해 놓았습니다. 살찐 소를 잡게 했고요. 각 호텔의 최고의 요리사들로 하여금 최고의 요리를 부탁해 놓았습니다. 군악대들은 성문에서부터 만찬장까지 다윗을 환영하도록 준비해 놓았습니다. 백성들로 하여금 태극기를 휘날리며 환영하게 하였습니다. 국내의 장관들과 시장들을 다 초청하였습니다. 그를 위해서는 포상금으로 대 저택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멀리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다윗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 감격을 억제할 수 없어 그를 맞이하러 그에게로 갔습니다. 그를 껴안고는 ‘고맙네’하고는 그와 함께 걸어왔습니다. 사람들은 두 줄로 늘어서서는 꽹과를 치고, 태극기를 휘날리고, 꽃가루를 뿌리며 환호를 해 주었습니다. 최고의 인파가 모인 것입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저의 마음은 그저 다윗에게 감사하는 마음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변에서 여인들의 말이 들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이런 소리를 여러분들이 들었다고 한다면 어떠했겠습니까? 저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누군가가 찬물을 제 마음에 껴 얹는 느낌을 갖게 되었습니다. 다윗을 향한 감사의 마음이 한 순간에 달아나면서 불쾌한 감정이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9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마음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제 얼굴이 굳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이러면 안되는데, 그저 여인들이 말할 수도 있는 말인데’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하였지만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주변에 다윗의 승리를 칭찬하는 모든 사람들이 미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제가 그날 연회가 끝나고 소화제를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아십니까? 나의 주치의는 내가 급체하였다고 하면서 내 속은 알지도 못하고 ‘폐하 아무리 기뻐도 식사는 천천히 하셔야 합니다’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제 인생은 파멸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떻게든 다윗의 단점을 들어내어 흠집을 내고 싶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윗을 인정하기에 그를 높이면서도 우연하게 죽게 하기 위하여 감당할 수 없는 전쟁에 나가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더 잘해 내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도와주시는 것이 눈 앞에 보였습니다. 저는 점점 더 불안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그가 내 앞에 있을 때 저는 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그를 향해 창을 던졌습니다. 앞에 차려있는 상을 뒤집어 버렸습니다. 제 입에서는 담지 못할 욕설과 괴성을 질러댔습니다. 저는 결국에는 정신 파멸의 증세를 보이고 말았습니다. 저는 파멸의 삶을 살다가 길보아산에서 불레셋 병사가 쏜 화살에 맞았 쓰러졌습니다. 이제 저는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지난날을 회상하였습니다.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고 있습니다. 내 인생이 왜 증오로 가득찼는가? 어디서부터 내 인생이 이처럼 비참하게 꼬이기 시작하였나? 왕으로 기름받던 날이 떠 올랐습니다. 저에 대해서 사무엘상 9장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기스가 아들이 있으니 그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는 더하더라’. 저의 젊은 날의 모습은 당시의 젊은이들 보다는 좀 낳았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사무엘 선지자가 저에게 왕으로 기름부으려고 할 때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치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요며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나이가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하면서 저의 자격 없음을 고백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가난한 심령으로 나갔을 때 하나님께서 저를 높이셨고 민족의 지도자로 세우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이었던 것을 저 자신이 고백합니다. 그런데 제 인생은 왕이 되고 나서 무엇인가 잘못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지나가는 것이 왕이 된지 2년에 불레셋 군대가 처들어 왔을 때의 생각이었습니다. 불레셋 군대는 미친듯이 함성을 치며 쳐들어오고 있고 백성들은 두려워서 흩어지고 있었습니다. 영적 지도자인 사무엘은 오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상황에 저는 너무나 두려운 마음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제사장이 해야 할 번제를 제가 드리고 말았습니다. 두 번째 아말렉과의 전쟁 때의 일이 스쳐지나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말렉을 완전히 진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은 우리 민족이 출애굽 할 때 우리 민족을 치려했던 민족입니다. 하나님의 돕는 은혜로 아말렉 백성들을 진멸했습니다. 그런데 살진 짐승들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백성들의 여론이 살진 것은 가지고 가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모든 것을 진멸하라고 하셨지만 그들의 여론이 너무나 컸습니다.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이때 백성들은 또한 살진 짐승을 가지고 가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면 되지 않겠느냐고 타협하게 하였습니다. 저는 아닌 것을 알면서도 그들의 살진 짐승과 아말렉 왕을 사로잡아 왔습니다. 세 번째 스쳐가는 일이 있었습니다. 다윗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왕으로 세우시고 참으로 좋은 선물로 다윗을 주셨는데 나를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이 아니라 다윗을 바라보기 시작했을 때 제 마음에는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파멸의 인생을 걷게 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두려움’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두려움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환경을 바라보고 사람을 바라볼 때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회자의 자리로 돌아온다************* 오늘 사울은 저와 여러분에게 귀한 메시지를 삶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이 아니라 환경과 사람을 바라볼 때는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연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환경이 아니라 환경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 때 비로소 승리하는 인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의 힘이 되시 여호와여(찬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