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의 / 롬4:1- 25

아브라함의 의(롬 4:1-25)

예배가 회복되면 모든 것이 회복됩니다. 교회에도 이 공동예배시간을 최우선순위에 두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공동예배시간에는 교회의 어떤 사역도 다 중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인 이 자리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있습니다. 이것이 영상으로 예배드리는 것과의 진정한 차이점입니다. 

예배가 회복되고, 예배가운데 빠지게 되면 우리의 육의 문제 역시 저절로 치료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질병의 문제가 떠나고, 가정의 많은 문제들이 떠나고, 나의 굳은 심령이 녹아지고, 할렐루야. 우리 성도들 속에서도 이런 간증은 수없이 할 수 있습니다. 

비전
로마서를 통해 먼저 왜 우리에게 ‘예수님이 필요한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서야만 했고, 왜 예수님이 우리에게 기쁜 소식인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복음의 가치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또한 이 복음이 얼마나 값진 것이었으면 바울은 이 복음을 받은 것에 대해 ‘복음에 빚진 자’라고 했겠습니까. 또한 이 복음을 자기 혼자만 가지고 있는 것이 죄스러워서 ‘이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 않고 자기 혼자만 가지고 있으면 화가 미칠 것 같은’ 마음까지 들었겠습니까.

그런데 이 귀한 복음을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을 볼 때 안타까운 심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행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특히 자기 동족, 자기 친족이 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로마서 9장에서는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원하는 바로다’고 그의 심정을 토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람들이 이 귀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자기가 죄인임을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환자가 자기가 환자임을 알 때에 의사를 찾는 것이지 환자가 자기가 병들었음을 모르면 아무리 주변에서 애기해도 안 듣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 복음의 가치를 말하고는 로마서 3장 21절 “이제는”이라는 일대 놀라운 전환의 상태를 말하기 전에 먼저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에 하나님을 안 믿고 우상숭배와 성적 타락, 도덕적 부패에 빠진 이방인들을 향해  당신들은 죄인이라고 선언을 합니다. 2장에서는 남보다 조금 선하다고 느끼며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남을 정죄하고 비판하는 영적으로 교만한 종교인들을 향해서도 여러 가지 증거를 들어 ‘당신들도 죄인이다’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3장에 가서는 제 삼자를 향해 말하다가 갑자기 바울 목사님은 “우리는 어떠하뇨”하면서 자신과 독자들을 향해, 오늘 저와 여러분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결코 아니라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선언합니다. 

이 귀한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이 복음이 너무 비싸서 그 무엇으로 살 수 없기에 하나님이 거저주시니까 믿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악한 심령의 모습입니다. 좀 싸게 해주면 우습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많은 교회들이 성경공부를 하는데 돈을 받고 합니다. 그 이유 중에 하나가 돈을 안 받고 하면 별로 안 모인다고 합니다. 그런데 돈을 받으면 거기에 귀한 것이 있는 줄 알고 사람들이 더 많이 모인다는 것입니다. 이상한 심리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행을 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하면 사람들이 자기가 고행을 함으로 뭔가 하나님 앞에 내세울 것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여 몰려든다고 합니다. 훈련프로그램에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는 이유 중의 하나도 뭔가 자기가 노력을 한 것으로 하나님 앞에 구원받는데 좀 미안한 마음이 덜해지기 위해 참석한다는 것입니다. 뭔가 선한 일을 하면 하나님 앞에 가는데 좀 덜 미안하지 않겠나 해서 열심히 선행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거저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자유하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데 만약 100점 만점에 60점 이상 통과라고 생각해 봅시다. 자기의 선행 하나에 1점입니다. 한번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일들을 계산해 보십시오. 그래도 제 자신을 점수 매겨보면 하나님 앞에서 몇 점 나올까요? 제가 좀 착하죠 1점, 제가 아내에게 잘하지요 그러니까 2점. 그런데 제가 볼 때 아내에게 다 잘하는 것 같은데 보면 아내들은 불만이 좀 있는 것 같은 것을 봅니다. 그래도 2점입니다. 열심히 성경공부를 가르치지요 3점, 새벽기도도 하니까 4점,... 저는 피상적으로는 착한 일을 많이 하고 하나님 앞에 갈 뭔가가 좀 있을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후한 점수를 주더라도 낙제에 낙제점수 밖에 안 됩니다. 그런데다 반대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욕망이 있지요, 때로는 미움도 있지요. 제 행위로는 천국 근처에도 못가고 오히려 지옥 맨 밑바닥에 떨어질 점수입니다. 

그런데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들 보니까 복잡하게 계산할 것 없이 찬송가 한 장만 부르면 통과 합니다. 그 찬송가가 뭘까 했더니 338장입니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로마서 4장에서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 어떻게 우리가 의롭게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삶을 보면 우리와 뭔가 다른 사람이라 하나님이 그를 의롭다고 하셨을까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보면 우상을 섬기는 땅에 살 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찾은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그를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기드온을 하나님이 부르실 때 그 집이 경건해서 부르셨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집은 우상을 모시는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를 부르셨습니다. 바울을 보세요. 바울은 하나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는 편에 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를 하나님이 부르셨습니다. 그는 자신에 대해 ‘나는 죄인중의 괴수다’라고 말하잖아요. 바울이 입만 벌리면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죄의 피를 갖고 태어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자녀가 될 자격이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요 복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5절 말씀을 보십시오. 일을 아니할찌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거저 주시는 은혜를 믿지 못하겠다고 그럽니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으니까 믿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만일 성도님들이 어떤 사람에게 선물을 하고 싶어서 준비 했습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삐뚤어진 마음을 가지고 저 ‘왜 내게 선물을 하는데’ 하고 안 받는다고 하면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또 하나는 귀한 선물을 준비해 왔는데 자기는 받을 자격이 없다고 사양하고 거절하면 어떻겠습니까? 건강한 사람은 선물을 줄 때 ‘감사합니다’ 하고 받을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주 좋은 선물들을 들고 오셨습니다. 창세기 12장에 ‘너는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멘 하고 떠났습니다. 그를 하나님이 기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100세요 그의 아내 사라가 99세일 때 그것도 지금까지 아기를 낳지 못한 불임여성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자식을 선물로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19절에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기뻐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할 때 광야에서 하나님이 그렇게 은혜를 베푸심에도 불구하고 좀 어려움만 생기면 원망과 불평을 합니다. 그동안에 불뱀과 전갈의 위험으로 가득한 곳에서 하나님이 안전하게 지켜주셨는데도 감사가 없습니다. 그랬더니 이제 불뱀이 나와서 물기 시작합니다. 사막의 불뱀에 한 번 물리면 죽습니다. 모세가 백성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시려고 놋뱀을 만들어 장대 높은 곳에 매달게 합니다. 그리고 그 놋뱀을 보는 자는 살 수 있게 은혜를 내려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처다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낳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야 그 놋뱀을 처다본다고 낫냐? 돌머리들야’하고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치료약을 구하러 다닌 사람들을 다 죽었습니다. 
가장 기분 나뿐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믿어주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제가 처음 사랑의 교회에 왔을 때 무슨 일만 하면 복선을 깔고 사람을 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아주 기분이 나빴습니다. 이 사람들이 왜 이렇게 파괴되어 있는가? 하나 하나 다 참견하려고 합니다. 그래도 15년 이상은 나름대로 흠 없이 목회를 했다고 한다면 그 경력을 인정해야 하는데 다른 분야에 박사라고 하여 병원에 가서 간호사에게 이래라 저래라 참견하는 것처럼 위임하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을 믿지 못하는 것은 인격의 파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위임하지 못하는 인격은 성숙하지 못한 인격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희 교회에 두 분의 전도사님이 계십니다. 제가 그 분들을 믿지 않고, 하나 하나 참견하면 전도사님들이 사역을 하면서 기쁠까요? 전도사님들도 담임목사가 믿어주고 위임하면 오히려 그저 믿어주는 것으로 인해 기뻐서 자발적으로 일을 기쁨으로 더 하는 것입니다. 

제가 서울 와서 제 말을 믿어주고 따라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 사람들을 생각하면 제 마음에는 감사가 나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사람들을 향하여 나의 위로자라고 말합니다. 그 사람들을 보면 힘이 솟고 기쁨이 생깁니다. 

하나님도 우리에게 그저 은혜의 말씀, 축복의 말씀을 주시는데 믿지 못하고 따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속이 상하시겠습니까? 하나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 좋은 목적을 가지고 말씀하시는데도 믿지 않고 따르지 않을 때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속상하시겠습니까? 

3절 말씀을 보십시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 아브라함의 모습을 보면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으로서 연약한 모습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를 기뻐하시고 의롭다고 여겨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3절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 9절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하노라. 10절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라. 21절 22절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성경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 없이 행하는 모든 것이 악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믿음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들을 믿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20절에 보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 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21절에 보면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약속의 선물이 가득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행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여호와의 율법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고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형통하리라. 평탄하리라.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귀한 선물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23절에서 25절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여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하나님의 약속은 간단히 말해서 이것입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진노가운데 죽게 된 자들에게 큰 장대에 놋뱀을 달아 쳐다보는 자 마다 산다고 말씀하셨을 때 말씀에 순종하고 쳐다본 자마다 산 것처럼 오늘 우리의 모든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로 사단의 쇠사슬에 매여 끌려다니다가 지옥에 갈 우리를 향하여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자마다 다 산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믿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만 바라보셔서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천국의 복을 누리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브라함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성경에 첫 장 창세기 1장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느니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전능자이심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자이시기에 그 분의 말씀은 능력이요 현실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니까 빛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니까 그대로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까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나이 많고 그의 아내는 불임 여성이요 나이 많아 도저히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아들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니까 ‘그대로 되니라’할렐루야. 믿음은 우리의 이성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동일하게 약속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잘난체 하면서 ‘어떻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너희 죄가 용서받느냐?’고 말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무신론자들의 강의를 듣고 눈물 흘리며 인생을 엉망으로 살 던 사람이 새 사람이 된 간증은 못 들어 보았어도 이 복음을 듣고 인생이 완전히 바뀐 사람들의 간증은 수 없이 많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2000년 전에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는 그 십자가는 수치의 십자가요 고통의 십자가요 죽음의 십자가였지만 예수님이 지신 후로는 영광의 십자가요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는 십자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회복지가 잘 된 나라의 국기에는 십자가가 있고요, 희생하며 선을 행하는 기관의 상징에도 십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전능하신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약속하십니다. 이 땅을 누구나 한 번 떠나지만 마지막 날에 우리를 부활시키셔서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