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의 기적 / 요5:1-9

 베데스다의 기적(요5:1-9상)


인류의 조상이었던 아담이 하와를 처음 보았을 때 던진 첫 인사말이 무엇이었을까요?

“하와유”그랬답니다.

그때부터 외국 사람들은 사람을 만나면 하와유(How are you?)?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오늘도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예루살렘은 영광의 도시였습니다.

왕궁은 솔로몬의 영광을 이어받은 역사적 왕궁입니다.

성전은 헤롯이 40년동안 정성을 들여 지은 성전입니다.

예루살렘 도시는 온통 축제의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그 뒷골목에는 베데스다 연못이 있었습니다.

[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예루살렘의 동쪽 성문 중의 하나인 양문에서 성 내부 쪽으로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는 연못

이 연못은 기원전 2세기 시몬이 대제사장으로 있던 때에 세워진 길이 100 ~110m, 너비 62 ~ 80m, 그리고 깊이 7 ~ 8m의 두 개의 쌍둥이 연못으로서 성전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목적과 더불어 종교적, 의학적 치료를 목적으로 건설되었습니다.

두 저수지 사이의 분리벽 아래쪽에서 물이 흐를수 있도록 한 통로가 발견되었습니다. 높은 곳에 위치한 북쪽 저수지로부터 물이 남쪽 저수지로 흐르게 고안된 것입니다다. 신약학자 예레미아스(J. Jeremias)는 이 장치를 가끔 천사가 물을 움직이게 하는 현상으로 보았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북쪽 저수지에 일정한 양의 물이 찰때마다 병자들이 대기하고 있던 남쪽의 목욕장으로 흘려 보냈다는 것입니다. 왜 베데스다에는 많은 환자들이 모여 있었는가요? 서기 1세기에는 저수지와는 별도로 깨끗한 물을 받아서 마실 수 있는 급수대도 설치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렇다면 이 저수 시설은 단순히 성전 제사를 위한 도살에 필요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리스-로마 시대 도시들에 널리 퍼져 있었던 종합병원 아스클레페이온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전설 때문에 병자가 몰려있습니다.

[3]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문제는 아주 오래된 병자가 있었습니다.

[5] 거기 삼십팔 년 된 병자가 있더라

그곳에는 38년된 최고참 병자가 있었습니다. -군대 내무반에도 왕 고참은 누워있습니다.


거짓된 소망입니다. -세상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이런 베데스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바로 이런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에서는 이 곳 저 곳을 베데스다처럼 그럴듯하게 꾸며놓고 사람들을 손짓합니다. 그곳에 인생을 투자하면 대박이 터져 그 인생이 역전될 수 있다고 유혹합니다.

어떤 여고는 급훈을 ‘대학가서 미팅할래 공장가서 미싱할래’로 정하기도 하였답니다


희망은 있습니다. - 예수님은 찾아가신다는 것입니다.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범죄한 아담과 하와에게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찾아온것입니다.


1.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 - 성경적입니까?

성경에는 두가지 법칙이 있습니다.

1) 자연의 법칙입니다. - 수고하는자가 열매를 얻는것입니다.

(갈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2) 은혜의 법칙입니다. - 수고도 안했어도 열매를 얻는 것입니다.

(요 4:37)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시33:16)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커도 스스로 구하지 못하는도다

(시 127: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예수님은 오심의 목적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1) 예루살렘에서 병자를 고시셨습니다. - 역설적 모습입니다.

가난한 자를 위한 복음, 약한자를 위한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 철저히 가난자의 복음, 눌린자의 자유입니다.

부자입니까? - 심령을 가난하게 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십시오. 하나님의 복음을 누릴 것입니다.


2) 안식일에 병자를 고쳤습니다. - 안식일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주일성수 개념이 무엇입니까? - 나의 쾌락과 즐거움만을 일삼는 다면 주일성수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하여, 성도의 교재를 위하여, 다른 사람을 위하는 일이라면 주일성수 것입니다.


3) 성전에서 거룩한 종교가를 추종하지 않고 병자를 찾아가고, 안식일에 종교행위가 아닌 가난한 자들과 어울릴 때 예수님은 배척받기 시작하셨다.


신앙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면 하는 것입니다. 힘들더라도 하는 것입니다.

(갈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2. 다시 베데스다 상황을 그림으로 그려봅시다.

어둡고 칙칙합니다. 뒤편 예루살렘의 화려함과 시끄러운 축제소리는 도리어 암울합니다.

병자들의 신음소리가 가득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실상입니다.

무능한 인간입니다. 불가능입니다.

(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결심해 봤습니까? - 결심으로 안 됩니다.


1) 인간의 무능은 영적인 불능입니다.

(고전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베드로의 지적(벧후 2:10)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이들은 담대하고 고집하여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를 훼방하거니와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짐승 같아서 훼방하고 불의하며 연락하며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쉬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는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저희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기는 멸망의 종들이니]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


2) 요한은 예루살렘의 실상을 베데스다와 중첩하고 있다.

라오디게아교회(계 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많은 병자들이 누워있습니다.

특히 소경 - 영적으로 어두움에 사로잡혀있습니다.

절름발이 - 신앙입니다.

혈기 마른자 - 영적 무능력자, 메말라있습니다. 이것이 실상입니다.

문제를 닥치니 내 형편을 압니다. 아! 내가 병들었었구나, 형편없었구나, 상당히 괜찮은 줄 알았는데 볼품없구나....

시험에 떨어져 보았습니까? 내가 이런 인간이구나...


38년된 병자의 탄식 -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영광의 예루살렘에 어디에 있습니까?

어떤 형편입니까?

무엇을 하실 수 있습니까?


3. 그림을 다시 그립시다.

밀래의 만종 - 그림을 보면 하루 일을 마치고 농부 부부가 교회종소리를 들으며 기도하는 평화로운 그림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이 그림에는 슬픈 이야기가 숨어있다고 합니다.

농부 부부가 바구니를 밭밑에 놓고 기도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 바구니가 감자씨와 밭일도구를 담은 바구니로 알고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 바구니에는 씨감자가 들어있던 게 아니라 그들의 사랑하는 아기의 시체가 들어있었다는 것입니다. 배고픔을 참고 씨감자를 심으며 겨울을 지내면서 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아기는 배고픔을 참지못해 죽은 것입니다. 죽은 아기를 위해 마지막으로 부부가 기도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 \'만종\'이라는 것입니다. 섬득하죠? 왜 그림 속의 아기가 사라졌을까?

이 그림을 보게 된 밀레의 친구가 큰 충격과 우려를 보이며 아기를 넣지 말자고 부탁을 했답니다. 그래서 밀레는 고심 끝에 아기 대신 감자를 넣어 그려 출품했습니다.

그 이후 이 사실이 알려지지 않은 채 농촌의 평화로움을 담고 있는 그림으로 유명해졌습니다. 그림을 다시 그리십시다. 우리의 인생에 무엇을 덧칠해야 행복합니까?


희망은 있습니다. - 예수님은 찾아가신다는 것입니다.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가장 희망이 없어 보이는 사람을 치유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십니다.

(롬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예수님의 “네가 낫고자 하느냐” 질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싫으면말고가 아닙니다.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눅 19: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이 시간에 주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일어나서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괜히 부모탓, 동역자탓, 양탓, 시대탓, 능력탓 하지 말고, 네 인생은 네가 일어나서, 네 자리는 네가 들고, 네 앞길은 네가 개척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우리도 얼마든지 일어나서 걷고 뛰는 새 인생을 살 수가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많은 실패를 경험했기 때문에 마음 깊은 곳 속에 부정적인 생각이 있습니다. 이전에도 안 되었는데 라는 체험을 통해서 형성된 뿌리 깊은 패배주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 생명의 주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일어나라! 그리고 네 자리를 들어라! 그리고 힘차게 네 두 다리를 앞으로 내딛고 걸어 보아라!” 우리가 이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하면 어떤 슬픈 운명도, 어떤 패배도 딛고 일어나서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며, 새 역사를 창조할 수 있음을 믿습니다.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 재활의학과 전문의인 Robert Lee, 한국명으로는 이승복씨는 지난해 말 “기적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라는 간증집을 냈습니다. 그는 여덟 살 어린 나이에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부모님 두 분 다 공장노동을 하느라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자신이 금메달을 따면 다시 전처럼 행복해질 것이라 생각하고 체조선수가 되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미국 올림픽 상비군 선수로 발탁되었는데, 연습 도중 불의의 사고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공중에서 540도 회전을 하던 중 거꾸로 처박히게 되었습니다. 그 사고로 금메달리스트의 꿈은 산산 조각이 났습니다. 그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손가락 하나 맘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사지마비 장애인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런 그가 그 슬픈 운명의 자리에서 일어나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병원에 재활의학과 수석 전문의가 됩니다.


“기적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 지금 내 안에 찾아오신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한계에 도전하면 얼마든지 내 안에서 기적을 이루시는 성도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두나미스 [admin]
2009/07/08 20:02
[은혜] [ccm무료듣기]목마른 사슴 / 악보 찬양
  • 글쓴이: 두나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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