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의미 / 마가복음16:1-8

부활의 의미

마가복음16:1-8

 

 

어떤 독실한 기독교인이 거리를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문득 상점 진열장 안에 전시되어 있는 그림 한 폭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그림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북받쳐 오르는 감격 속에 그림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웬 거지 소년이 나타나서

그 그림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동냥해 주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분이 예수님이시고

십자가 밑에서 슬픈 얼굴을 하고 바라보는 분은 예수님의 어머니십니다.

사람들은 아무 죄도 없는 분을 저렇게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시신을 저기 건너편에 있는 무덤에 묻었답니다.”

 

그 기독교인은 감동을 억제할 길이 없어서 얼른 한 푼을 쥐어 주고는

가던 발걸음을 계속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가다보니까 누군가 뒤에서 옷자락을 당기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라서 뒤돌아보았더니 거지 소년이었습니다.

소년은 헐떡거리면서 말했습니다.

 

“아저씨! 제가 한 가지 잊고서 말씀드리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예수님에 대해서 다른 것을 다 안다고 할지라도

그의 부활을 알지 못한다면

가장 중요한 것을 알지 못하는 것임을 일깨워 줍니다.

마치 중요한 공문서에 반드시 있어야 할

직인이 빠져버린 것과 같은 일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가 바로 나 자신의 죄를 위한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또한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님이 사흘 만에 살아나셨다는

부활의 이야기는 잘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부활은 아무리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 놀라운 사건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상식과 경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5절과 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5절“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8절“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부활에 대한 경험은 기쁨이기 이전에 놀라움이요,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지경이 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소식을 전해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11절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13절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어쩌면 이것이 너무나 자연스런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사람이 죽었는데 다시 살아났다는 말을 믿으라는 것입니까?

말도 안 되는 일이죠.

왜 그렇습니까? 인간의 한계 안에서 생각하니까 불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14절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예수님은 그들이 믿지 않은 것에 대해서 꾸짖으셨다고 했습니다.

그게 어찌 꾸중을 들을 일입니까? 이해해 주셔야 하는 일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꾸중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답답함이 있습니다.

우리는 안 믿어지는데, 그것을 안 믿는다고 꾸중을 하시니 어쩌란 말입니까?

어디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아서 안 믿는 것입니까?

부활할 수 없다고 믿기에 안 믿는 것입니까?

우리는 우리 생각에 너무나 매어 있는 것입니다.

내 생각에 안 된다면 안 되어야 한다고 단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의 하나님은 초월적인 분이십니다.

인간의 이성의 한계 안에 갇혀 계신 분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성의 한계 안에서만 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불가능하다고 단정하고 안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부활을 믿는 것은

초월적인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천지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을 증명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부활의 소식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믿든지, 안 믿든지 그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그것을 증언하고 있고,

제자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셨으니 일단 믿음으로 받아들이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큰 소리로 우겨댄다고 해서 부활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안 믿어진다고 해서 부활을 부인한다고 부활을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부활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의 능력입니다.(엡1:20)

 

천지를 창조하신 초월적인 하나님 안에서 불가능은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입니다.

그 능력이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엡1: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하나님의 능력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승리하신 주님의 능력을 찬양합니다.

고전4: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고전2:4-5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예수님은 말씀만 잘 하신 분이 아니고 말씀하신대로 사신 분이십니다.

이것이 주님의 능력입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지혜의 말로만 아니라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길 원했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능력은 먼저 십자가에서 나타났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고통을 감당하신 것 자체가 주님의 능력입니다.

바울은 고전1:18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이제는 우리가 말이 아니라 능력을 나타내는 신앙생활이 되어야겠습니다.

그 가장 위대한 능력은 바로 부활의 능력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고난 후에 영광이 온다는 것입니다. (빌2:9-11)

 

부활이란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부활하기 위해서는 먼저 죽음이 있어야 합니다.

죽지 않으면 부활도 없습니다.

부활이란 까무러쳤다가 깨어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으셨다가 부활하셨으며,

그가 고난을 당하셨기에 영광에도 이르게 된 것입니다.

 

빌2:9-11 “이러므로(십자가에 달려 죽었으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낮아지시고 복종하셨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여 주신 것입니다.

 

이런 원리는 자연 현상 속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약4: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내 자신을 겸손하게 낮출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여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높이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공개적으로 낮추는 것입니다.

 

요12:24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죽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죽음보다 더 큰 고난은 없습니다. 죽음보다 더 큰 두려움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 고난 후에 부활의 영광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 가운데서도 부활의 영광을 보는 것입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과 같습니다.

 

고후4:17-18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앞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해 놓으신 영광이 영원한 것에 비하면

지금 우리가 받는 환난은 가벼운 것이고, 잠깐 있다가 없어질 것입니다.

 

롬8:18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현재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 아무리 극심하다고 할지라도

두려워하거나 원망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장차 받을 영광이 훨씬 더 크고 영원하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도 벧전1:3-7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습니다.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 도다.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우리가 진정으로 주님과 함께 영광을 받기를 원한다면

그와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할 것입니다.(롬8:17)

 

 

3. 역전의 드라마입니다. (행3:14-15, 4:18-20)

 

예수님이 부활하시기 전에는 제자들은 죄인이었고, 겁쟁이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거의 모든 제자들은 도망을 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겁에 질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었습니다.

예수 부활의 소식이 퍼지기 시작하자

예수를 잡아 죽인 자들은 이제 두려워하며 당황하게 되었습니다.

 

마28:12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13 이르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 - 왜 이런 거짓말을 시킵니까?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문을 감당할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와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담대하게 부활의 주님을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행3:14-15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행4:18-20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무엇이 이 겁쟁이들을 이렇게 용감한 사람들로 바꾸어 놓았습니까?

바로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하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령의 강림 사건을 경험하였기 때문입니다.

만일 대제사장들의 주장대로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도둑질해 놓고

거짓말로 예수님의 부활을 전했다면,

과연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자작극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부활을 전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놀라운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때때로 의로운 자가 고난을 당하지만 결국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37:1-2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시37:7-9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결국 정의가 불의를 이긴다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4. 우리도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고전15:20-22)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 한 분만의 것이 아니라는 데

우리를 흥분하게 하는 놀라운 진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고전15:20-22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이시며

결국 우리들도 나중에 부활한다는 소망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들도 부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으로 보여지는 현실은 전혀 부활과는 거리가 멉니다.

사람이 죽을 때의 모습을 보면, 그 몸이 다시 살아날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른 뼈도 살릴 수 있으시며 군대로 만드시기도 하십니다.

 

고전15:51-52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주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들도 순식간에

신령한 몸을 입고 변화하게 될 것이라는 비전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영원한 소망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소망이 있기에 결코 흔들리지 말아야 하며,

더욱 주님의 일에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부활 신앙에 근거해 있습니다.

이 신앙 위에 굳게 서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