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의 삶으로 도약하라

제자의 삶으로 도약하라!

누가복음 5장 1-11절

매일경제 이코노미 1383호에서 “한국의 임원들”(김소연,김병수,정광재 기자)이라는 주제로 대한민국의 기업에서 임원의 자리에 오르는 사람들의 조건 10가지를 제시했다.

‘대졸 신입사원이 임원이 되는데 평균 22.4년이 소요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부장까지 승진하는 사람은 신입사원 100명 중 5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현직 대기업 임원 200명이 들려주는 ‘임원되기 10계명’은 다음과 같다.

1계명: 리더십, / 2계명: 업무에 대한 열정, / 3계명: 추진력, / 4계명: 뛰어난 전문지식, / 5계명: 원만한 대인관계, / 6계명: 성실함, / 7계명: 폭넓은 네트워트(학연,지연,각종 사회활동), / 8계명: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평판, / 9계명: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언변, / 10계명: 뛰어난 외국어 실력.

세상은 우리에게 세상 살아가기, 아니 살아남기 위한 끊임없는 조건들을 요구하고 있다. ‘임원되기 10계명’을 다 갖춘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나 그것이 기준이기에 너도나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력한다.

세상은 이처럼 죽기 살기로 성공의 계단을 한 계단씩 올라가기 위해 부단한 노력과 희생을 치르고 있다.

그렇다면 영적인 삶에는 어떤가?

세상은 구경꾼이 요구되지 않는다. 누구나 인생의 선수가 되어 뛰어야지만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과연 영적 삶에서 우리는 구경꾼인가? 아니면 선수인가?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영적인 구경꾼이 아니라 영적인 선수가 되기를 원하신다.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전 9:23-25).

세상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위해서도 이처럼 열심히 살아가는데, 썩지 아니할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우리는 어떤 믿음의 경주를 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주님은 오늘도 복음의 경주를 함께 달릴 자를 부르시고 계신다. 당신도 복음의 경주에 주님과 함께 달리는 자가 되지 않겠는가?

주님은 어떤 자를 복음의 경주자로, 제자로 부르시는가?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복음 전파를 위해, 바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함께 사역할 제자들을 부르시고 있다. 세상을 위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삶을 사는 자들을 부르신다.

예수님은 과연 어떤 자를 제자로 부르시는가? ‘임원되기 10계명’에 맞는 사람들이었는가?

첫째, 말씀에 의지하는 자를 제자로 부르신다.

많은 무리가 예수의 말씀을 듣고자 몰려오게 되었다. 너무 많은 무리가 와서 예수님은 어쩔 수 없이 배를 띄워서 무리와 좀 떨어진 곳에서 가르쳐야 했다. 그런데 마침 고기잡이를 마치고 그물을 씻고 있는 어부들을 보았다. 예수님은 시몬의 배를 빌려 타셨다.

예수님은 말씀을 가르치신 후에 시몬을 보시고 시몬에게 뜻하지 않은 주문을 하신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눅 5:4)

뜻하지 않은 예수님의 말씀에 시몬이 어떻게 대답하는가?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만”

베드로는 밤이 새도록 힘을 다하여 고기를 잡으려 했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다. 베드로는 하루의 삶에서 실패를 경험하게 되었다.

우리는 종종 베드로와 같은 실패의 경험을 하게 된다. 열심히 살았지만, 최선을 다했지만, 빈틈없이 계획했지만, 아무런 수확도 거두지 못한 실패를 경험하며 살아간다.

사업의 실패, 결혼의 실패, 건강의 실패, 관계의 실패 등을 겪게 된다. 이런 실패의 경험으로 인해 우리는 자신의 삶에 대해 비관하며 미래는 없는 것처럼 절망한다. 자신의 인생은 다시 재기할 수 없다고 자포자기하며 단정짓는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실패가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베드로는 밤새도록 수고했지만 물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실패했다. 그러나 베드로는 실패로부터 다시 일어서는 기회를 갖게 된다.

실패한 베드로에게 누가 말을 건냈는가? 예수님이다. 예수님이 누구인가? 고기잡이인 어부인가? 아니다.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단지 어부와는 상관없는 말씀을 전하는 선생에 불과했다. 어부도 아닌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말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누가 고기잡이에 있어서 베테랑인가? 베드로다. 물고기를 잡는 데 있어서 베드로는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하루 중 어느 때에, 어디에 그물을 던져야 하는지 누구보다 베드로는 잘 아는 어부였다.

우리 같으면 예수님의 말에 어떻게 반응했을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 밤이 새도록 수고했음에도 한 마리도 잡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고기잡을 때가 아닌 대낮에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다시 내리라고 하는 말은 베드로에게 있어 말이 안 될 뿐만 아니라, 고기잡이 매뉴얼에도 없는 것이었다.

믿음의 도약을 하기 위해 넘어서야 할 장벽이 무엇인가?

바로 우리의 지성과 경험과 능력이다. 믿음이 도약해야 할 시점에서 주춤거리고 제자리에 머무르는 신앙의 특징은, 자신의 지성과 경험과 능력의 테두리에서만 말씀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것에 있다.

주님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자신을 의지하고는 주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없다. 자신의 이성, 학식, 경험, 지위에 의지하는 삶은 주님이 건네시는 말씀에 자신의 삶을 맡기지 못한다.

무리의 신앙에서 제자의 신앙으로 도약하기를 원한다면, ‘말씀에 의지하는’ 신앙이 되어야 한다.

실패의 삶에서 다시 일어서기를 원한다면, (실패했다 할지라도)자신의 것을 의지하는 삶에서 말씀을 의지하는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어떻게 하였는가?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눅 5:5)

베드로가 그물을 다시 내린다고 한다. 무엇에 의지해서?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린다고 한다. 삶의 변화, 믿음의 도약은 인간적인 상황과 조건에 의지할 때가 아니라, 말씀에 의지할 때 일어나는 것이다.

베드로가 ‘말씀에 의지하여’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렸더니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이 잡게 되었다.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을 부를 정도, 그것도 두 배에 가득 채웠는데 배가 잠기게 될 정도였다.

베드로의 어부 생활에서 경험하지 못한 대수확을 한 것이었다. 자신의 생각과 경험에는 불가능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럼에도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더니 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직접 경험하게 된 것이다.

말씀을 의지하여 사는 것이 제자의 삶이며, 그리고 말씀에 의지하여 살 때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는 것이다. 말씀에 당신의 삶의 맡길 때, 말씀에 당신이 순종할 때, 그 때 말씀이 불가능할 것 같은 당신을 변화시킬 것이다. 내가 말씀을 붙드는 것이 아니다. 말씀이 나를 붙들 때, 말씀이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런 놀라운 변화, 기적의 사건을 경험한 자는 다음과 같이 고백하게 된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영적 변화, 삶의 변화가 일어난 자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게 된다.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했을 때, 예수님이 주님 되심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주님 앞에 내가 보잘 것 없는 죄인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나의 구주와 주님이 될 때, 바로 제자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말씀에 의지하는’ 삶이 되라. 그것이 제자의 삶이다.

둘째, 자신의 삶을 예수께 맡긴 자를 제자로 부르신다.

모든 자들이 놀랐다. 말씀에 의지 한 삶이 어떤 것인지를 경험한 자들이 놀랐다.

예수님은 두 번째 주문을 하신다.

“무서워 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눅 5:10).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 4:19)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제 이후의 삶은 사람을 취하는 자가 되리라고 하신다. 다시 말해, 베드로의 삶을 주님께서 주관하시겠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이 만드시는 것이다. 내가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마태복음에서 보듯이, ‘내가 너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사람을 낚는 어부, 제자로 만드시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사실은, 주님께서 나를 부르실 때, ‘내가 너를 성공하게 하리라’, ‘너를 부자가 되게 하리라’, ‘너를 출세하게 하리라’고 말씀하지 않았음을 알아야 한다.

‘내가 너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셨다. ‘내가 너를 영혼을 살리는 자, 건지는 자, 세우는 자가 되게 하겠다’고 하셨다.

무리의 삶이 아니라 제자의 삶이란, 전적으로 자신의 삶을 주님께 맡긴 자인 것이다. 나의 삶의 주인이 주님임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자가 제자이다. 나의 감정, 생각, 능력에 이끌리는 자가 아니라, 주님께 이끌림을 받는 자가 제자이다.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라 주님을 위한 삶을 사는 자가 제자이다. 주님께 자신을 드린 자가 제자인 것이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후 5:15).

예수님이 나의 구주와 주님이 되심을 고백하고 고백대로 사는 자가 제자인 것이다.

자신의 삶을 구주이신 주님께 맡기라. 주님께서 변화의 손길을 내미실 때 붙잡는 자가 되라. 붙잡을 때 주님께서 당신의 삶을 만지시고 책임지실 것이다.

셋째, 제자의 삶을 위해 육적인 것을 버리는 자를 제자로 부르신다.

예수께서 제자로 부르셨을 때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은 어떻게 하였는가?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눅 5:11).

제자의 삶이 무엇인가? 제자의 길을 위해 육신적인 것을 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힘들어 하는 부분이 무엇일까?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랐다’는 말씀이다.

‘버려야만 따를 수 있는가?’라고 의문을 갖는다. ‘그냥 따르면 되지 않나?’ 라고 생각한다.

버려야 취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육적인 것을 버려야 영적인 것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롬 8:6).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7).

주님은 우리가 육신의 것을 버리기를 원하신다.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영적인 것을 소유하는 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영적인 것과 육신적인 것은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이 주는 안락과 평안, 위안을 버릴 때, 영적인 평강과 권세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안락과 평안은 고난은 원치 않는다. 세상은 고난보다 평안을 원한다. 그것이 바로 죽음의 한계에 매여 있는 육신의 요구이다.

그러나 우리가 영적인 세계인 믿음의 세계에 들어가려면 육신의 요구를 버려야 하는 것이다. 육체의 소욕과 성령은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왜 은혜를 주셨는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빌 1:29).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5).

세상의 힘, 육신의 힘이 아니라 영적인 능력을 지녀야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으며, 그리스도를 따름으로 인해 당하는 고난을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은 예수를 믿고 따름으로 인해 당하는 고난을 이겨낼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는 것이며, 또한 성령을 주신 것이다.

고난을 통해서 우리는 영적인 권세와 능력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주님께서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지금 이 시간 주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제자의 삶으로 부르신다.

머뭇거리며 믿음의 주변에 있는 자가 아니라 믿음의 중심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복음의 용사로, 그리스도의 제자로 힘차게 믿음의 발을 내딛기를 원하신다.

제자의 삶으로 나아가지 않겠습니까? 당신의 삶을 영적 역사를 위해 헌신하지 않겠는가?

슈바이쳐 박사는 1952년 노벨평화상을 받기 위해 아프리카를 떠나 유럽으로 향했다. 파리까지 비행기를 타고 와서 다시 덴마크까지 기차를 타고 갔다. 슈바이쳐 박사가 온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기자들이 그를 취재하기 위해 함께 기차에 탔다.

기차 안에서 기자들은 슈바이쳐 박사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하려고 특등실을 찾았지만 슈바이쳐 박사는 그곳에 없었다. 1등실에도 2등실에도 없었다. 기자들은 3등실에서 가난한 사람들 틈에서 그들을 진찰해 주고 있는 박사를 찾을 수 있었다.

한 기자가 물었다.

“박사님! 어떻게 이렇게 누추한 3등실에서 고생하며 가십니까?”

이 말을 들은 슈바이쳐 박사는 태연하게 대답을 했다.

“나는 즐길 곳을 찾아서 살아온 것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다니며 살아왔습니다. 지금도 나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이 필요로 하는 삶을 살지 않겠는가?

말씀에 의지하여 나아가라. 주님께 나의 삶을 의탁하라. 그리고 영적 세계를 위해 육신의 세계를 내려놓으라. 주께서 당신을 세상을 변화시킬 제자로 세우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