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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과 진리로 예배하라
요한복음4:23-24
어느 교회의 목사님은 부모님을 보시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예배 때마다 맨 앞에 앉아서 꾸벅꾸벅 조는 겁니다.
보기에도 안 좋고 교인들에게도 민망하여 고민이 되었습니다.
고민 끝에 드디어 묘안을 생각해 냈습니다.
목사님은 자기의 어린 아들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얘야 너는 예배드릴 때 꼭 할아버지 옆에 안거라.
예배 중에 할아버지께서 조시면 쿡쿡 찔러서 깨워드려라.
그러면 아빠가 천원을 주마.”
드디어 주일이 되었습니다.
천원의 위력을 경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목사님의 아들은 할아버지가 졸 때마다 열심히 깨워드렸습니다.
예배가 끝나자 목사님은 기특해서 아들에게 ‘잘했다’며 천원을 주었습니다.
다음 주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졸고 있는데도, 손자가 깨우지 않는 겁니다.
예배가 끝나자 목사님은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얘, 너 왜 할아버지를 깨우지 않았니?”
“아빠, 사실은요. 할아버지가 ‘안 깨우면 이천 원 준다.’고 하셨어요!”
여러분도 예배시간에 졸아본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군대에 입대를 했을 때, 육군제삼사관학교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일주일 내내 훈련을 받고 주일날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데
정말 얼마나 졸음이 몰려오는지, 넓적다리를 꼬집고 눈을 부릅뜨고
온갖 노력을 다하는데도 도무지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릴 힘이 없었어요.
너무나 야속했지만 어쩔 수 없이 졸아버렸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으신가요?
육신적으로 피곤해서 졸음이 오는 것은 생리적인 현상인지라 막기 어렵죠.
하지만 특별히 일을 많이 해서 피곤한 것도 아닌데,
예배시간마다 조는 분들이 있다면 이건 참으로 큰 문제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요?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예배가 아무런 재미가 없고, 따분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예배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나리라고 하는 아무런 기대가 없는 것이죠.
매일, 그날이 그날이에요. 그냥 예배에 참석하는 겁니다.
매너리즘에 빠진 것입니다. 예배 형식만 있을 뿐입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과연 예배가 이런 것일까요?
여러분에게 예배는 어떤 것입니까?
재미없고, 지겹고, 따분한 것입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말을 만들어 냈습니다. “기도 견디기, 설교 견디기”
예배는 과연 이런 것입니까?
지난 해 여름 은빛대학에서 청와대에 방문한 일이 있었습니다.
안내하는 사람의 인도를 따라서 코스를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안내하는 사람이 ‘어제 좋은 꿈 꾸셨습니까?’ 하고 물어요.
그래서 우리가 “왜요?”하고 되물으니까 지금 대통령이 지나가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한쪽 옆으로 피해 있었습니다.
잠시 후에 대통령 마크가 달린 벤츠 승용차가 내려오더군요.
차가 잠시 저희 앞에 멈추어 창문을 내리는데 대통령의 얼굴이 보였어요.
다들 너무나 반가워서 인사를 하니 ‘어디서 오셨어요?’ 그래요.
그래서 “목양교회 은빛대학에서 왔어요.” 하니까 차에서 내리시더군요.
그러더니 모든 사람들을 일일이 악수를 해 주셨습니다.
잠시 그런 시간을 가진 다음에 대통령은 떠나시고
안내하는 분이 ‘이런 경우는 아주 드물다’며 ‘좋은 일이 있으려나 봐요’
그 때 함께 있던 분들은 모두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날 손도 안 씻겠대요.
대통령을 만나 악수하는 것이 이렇게 좋은 일이라면
예배는 무엇입니까?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일인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던 우리의 삶의 속도를 잠시 멈추고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을 향하여 그분의 임재 앞에 머무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너무 빠르게 달리기만 합니다.
그러나 이제 잠시 멈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하여 그분의 임재 속에 머물러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분의 영광을 보며, 그분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분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의 본질은 감격과 기쁨이요, 흥분과 감동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마18: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우리가 지금 주님의 이름으로 모였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자리에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찾아와 계십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 하나님 앞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이 예배야말로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첫 번째 목적입니다.
사43:7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엡1:5-6에도 보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이유는
우리가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첫 번째 목적은
바로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예배는 어떠해야 합니까?
본문의 말씀을 같이 읽습니다.
요4: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1. 영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예배에 있어서 가장 우선되는 것은 대상입니다.
어떻게 예배를 드리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구를 예배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 역사의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그 하나님이 중심이 되고, 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는 우리의 영이 하나님의 영을 만나는 신령한 것입니다.
몸만 예배의 장소에 와 있다고 해서 예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영이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분께 올려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至高의 분이시므로 우리는 그분께 최고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은
계4장에서 사도 요한에게 보여주신 하늘의 예배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하늘 보좌에 하나님이 앉아 계시는데,
그 보좌에 둘려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금관을 쓰고 앉아 있습니다.
보좌 앞에는 일곱 등불이 있고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펼쳐져 있습니다.
상상만 해도 신비한 광경입니다.
그리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각각 여섯 날개를 가지고 날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보좌에서는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있습니다.
네 생물들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릴 때에,
이십사 장로들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하고
자기가 쓰고 있는 면류관을 벗어 보좌 앞에 드리면서 찬양을 하고 있습니다.
계5:11에 보면, 수만의 천사들이 보좌에 둘러서서 찬양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들의 찬양의 내용은 주로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죽임 당하신 어린 양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경배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그 예배의 모습을 닮아서
우리도 우리의 영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보좌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분 앞에 엎드려 절하고, 감사와 찬양과 경배를 드리며
그 하나님을 높이는 겁니다.
그리고 그분 앞에서 우리의 초라함과 보잘 것 없음을 발견하고
우리의 허물과 죄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때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용서해 주시는 주님의 은총을 입고
감사하며, 기뻐 뛰고, 춤을 추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올바른 삶을 살겠노라고 결단하는 겁니다.
감사와 헌신의 표시로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을 드리는 마음으로 예물을 봉헌하고
세상을 향해 파송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예배는 이렇게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를 대충 아무렇게나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주님께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찬양을 불러도 목소리를 높여 힘차게 찬양해야 합니다.
기쁨이 충만한 예배가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가 되길 바랍니다.
이 시간 이 자리에 여기에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경배하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어떤 형식으로 드리느냐보다는
어떤 마음의 태도로, 어떤 영으로 드리느냐가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예배가 은혜와 감격이 있는 예배가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2. 진리로 예배해야 합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1장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셨는데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요1: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러니까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분이십니다.
요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요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4:9“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시며, 그분이 말씀이시고 진리이십니다.
신학적으로는 예수님을 계시된 말씀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진리로 예배하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선포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또한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높이며 경배하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드려지는 예배에서도 죽임 당하신 어린 양되신 예수를 높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 중에 말씀으로 임하십니다.
말씀으로 우리를 만나주시고, 말씀으로 우리에게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 심령에 변화가 일어나며, 치유와 회복의 사건이 일어납니다.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말씀에 깨달음이 있다는 것이요,
그 말씀을 통해 감동을 받았다는 것이요,
그 말씀이 나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객관적으로 주어져 있는 이 수많은 말씀들 가운데
특별히 나에게 주시는 레마의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을 찾아오시고, 만나주십니다.
여러분은 어떤 말씀이 레마의 말씀입니까?
제가 광림교회에 부목사로 있을 때
‘호렙산기도회’라고 해서 40일 특별새벽기도회를 했습니다.
이른 새벽에 예배당을 가득 메운 5,000여명의 성도들을 보고 있노라니까
제게 질문이 생겼다. “도대체 이 사람들이 왜 이 새벽에 이 난리인가?”
문제 있는 사람만 나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남부럽지 않게 경제적으로도 잘 살고,
반듯하게 직장생활 잘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 새벽에 이곳에 이렇게 밀려왔는가?’
그야말로 이곳에 온다고 해서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밥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런데 제 마음 속에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 영혼 속에 나를 만나고 싶은 간절한 영적 열망과 욕구가 있어.”
그 음성을 들었을 때 저는 너무나 깜짝 놀랐습니다.
‘아 그렇구나.’
“밤잠을 설치면서도, 먼 거리도 마다 않고 찾아오는 이분들의 심령 속에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간절함이 있구나.”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오늘도 마찬가지. 여러분의 심령 속에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하나님을 제대로 예배하고 싶은 간절함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 빈 공간은 예수님 이외에는 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질 수 없는 공간이다.
하나님으로 채워지지 않고는 만족할 수 없는 공간입니다.
시42:1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그래서 시51: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나아오는 예배를 하나님이 원하십니다.
마음을 드리지 않는 형식적인 예배를 하나님이 원치 않으십니다.
그런 점에서 여러분들은 온전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예배하기를 바랍니다.
몸은 이 자리에 와 있지만, 마음을 다른 곳에 빼앗기고 있다면
참된 예배가 아닙니다.
진정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우리는 기도로 준비해야 하며,
매순간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간절한 마음의 소원과 기대 속에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반드시 여러분을 만나주시고,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특별히 예배하는 자들을 찾고 있다.
나의 관심은 예배자들에게 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 말이다.
너는 내게 영으로 예배하여라. 진리로 예배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결코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네가 영으로, 진리로 예배하면 내가 너를 만나주마.
그러면 내가 너를 행복하게 해 주마.
나는 너를 통하여 영광 받기를 원한단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예배의 자리로 나아오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