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교회
마태복음28:18-20
네덜란드의 유명한 철학자 Kierkegaard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유명한 책을 썼습니다.
그가 갈파한 죽음에 이르는 병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절망입니다.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힘은 희망에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희망을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살 힘을 잃어버리고, 죽음에 이르고 마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를 죽이지 않더라도, 희망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단테의 신곡(神曲)이란 작품에 보면,
지옥으로 들어가는 문에는 이런 팻말이 붙어 있다고 합니다.
“이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모든 희망을 버려라.”
지옥은 다름 아닌, 희망이 없는 곳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뭔가 미래에 희망을 꿈꾸며 도전하는 사람은
현실의 고난을 능히 극복하고 이겨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2008년을 넘어 이제 2009년을 시작하는 우리에게
희망은 별로 보여 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객관적인 현실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절망만 할 수는 없습니다.
아니, 절망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곧 우리에게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셨습니까?
건강하게 살던 어떤 사람이 졸지에 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것도 6개월밖에는 살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너무나 갑작스런 이런 진단에 이 사람은 너무나 절망이 되어
두문불출하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었습니다.
얼마가 지나 너무 답답해서, 간신히 기운을 차리고 집 밖을 나왔습니다.
이곳저곳을 거닐다가 생기발랄한 재래시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시장에 가면 살기위해 거칠게 움직이는 모습들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한쪽 구석에서 소꿉장난을 하고 있는 어린아이들을 발견하고
너무나 재미있게 아기자기하게 노는 모습이 예뻐서 그들에게 다가가
물끄러미 쳐다보니 ‘아저씨도 같이 놀래요?’ 제안을 합니다.
정말 오랜만에 동심으로 돌아가 쭈그리고 앉아서 같이 놀다가
이 아저씨가 한 숨을 내 쉬며 말했습니다.
“얘들아, 아저씨는 이제 6개월밖에는 못산단다.”
그러니까 어린 소녀가 “그럼 6개월은 살 수 있는 거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상황도 잘 모르고 내뱉은 어린이의 말이지만 이 말이 충격이 되었습니다.
“아, 그렇구나, 6개월밖에 못산다는 생각보다는 6개월은 살 수 있는 거구나
그렇다면 이 6개월을 어떻게 살까?” 이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평소에 남에게 좋은 일도 못하고 살았는데,
이제부터라도 봉사하는 일을 하며 살다가 가야 하겠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고는, 힘든 몸이지만 그 몸을 이끌고 고아원도 찾아가고,
장애인 시설도 찾아가서,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부지런히 그 사람들을 돌보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 새 6개월은 지나가 버렸는데
자기는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있더라는 것입니다.
죽을 줄만 알고 한탄하며 지냈더라면 허송세월을 보냈을 텐데,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위해 살다보니 오히려 건강해졌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의 경험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현실이 어려울수록 상황보다는 비전과 사명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겁니다.
그것이 상황을 극복하는 비결입니다.
저는 여러분들도 현실이 어렵다고 여러분의 상황에만 집중하지 마시고
여러분에게 주신 사명과 비전이 무엇인지 거기에 초점을 맞추시길 바랍니다.
교회를 세우신 주님의 목적은 예배(Leiturgia), 전도(Kerygma), 훈련(Didache), 교제(Koinonia), 봉사(Diakonia)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목적에 집중하는 것이 현실을 극복하는 최대의 비결입니다.
그 중 2009년도 우리교회의 초점은 ‘전도’(Kerygma)에 맞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표어를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교회’로 정했습니다.
요절은 예수님의 지상명령인 마28:19-20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마지막 명령이며, 우리에게 주신 가장 엄숙한 명령입니다.
저는 지난 2005년 미국 Maui라는 곳에 Haggai Institute라는 곳에 가서
한 달 동안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그곳은 제3세계의 기독교지도자들을 모아서 교육을 하고
그들을 다시 자국의 선교사로 파송하여 세계선교를 이루고자 하는 목적으로
세워진 기관입니다.
그 기관의 비전은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 기관의 현관에 들어서면 아주 인상 깊은 표어가 눈에 들어옵니다.
바로 “His Last Command, Our First Concern”이라는 말입니다.
즉 주님의 마지막 명령이 바로 우리의 첫 번째 관심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주님이라고 고백한다면
그분의 명령은 우리의 관심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그분의 마지막 명령이라면
그것이 바로 우리의 첫 번째 관심이 되어야 합니다.
이 명령을 하는 분은 누구이며, 그분은 어떤 분입니까?
본문 18절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즉 이 명령을 하는 분은 예수님이시며
그분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분은 바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그냥 2천 년 전에 유대 땅에 태어나서 살다가 죽은
평범한 어떤 사람이 아닙니다.
그분은 바로 하늘의 권세와 이 땅의 모든 권세를 다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명령은 복종할 가치가 있으며,
그분의 약속은 믿을 수 있습니다.
이 엄청난 분의 명령을 우리가 어찌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이 명령은 누구에게 하신 것입니까?
1차적으로는 제자들에게 주신 것이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여러분과 저에게 주시는 명령입니다.
주님을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를 위해 희생을 치르시면서 명령하십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께 사랑의 빚진 자이기에 이 명령에 복종해야 합니다.
명령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19-20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명령의 내용은 모든 민족에게 가서, 제자를 삼으라는 것이고,
세례를 베풀며, 주님이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것입니다.
한 번 이 주님의 말씀을 생각해 봅시다.
제자들이 이 명령을 처음 들었을 때 얼마나 당황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예수님의 제자들은 몇 명 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평생을 이스라엘을 벗어나 본 적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요,
시골 출신의 별 볼일 없는 사람들입니다.
직업들도 시원치 않고 아마 외국어도 배운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지금 주님은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정말 제 정신으로 하시는 말씀인가?”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직 모든 민족에게 가지 못했으니까요.
세계에는 지금 24,000여개의 족속이 있다고 합니다.
통계 숫자의 정확성에는 언제나 문제가 많이 있지만,
아직도 미전도 종족으로 분류되고 있는 족속이 6천개가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제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모든 민족에게 가라’고 하시다니요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분명 모든 민족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속에는 전 세계 모든 민족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 속에 저와 여러분도 포함되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한 영혼도 멸망받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딤전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예수님은 모든 민족을 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모든 민족을 품어야 합니다.
이 명령에 복종하기 위하여 먼저 누구에게 갈 것인지를 정하기 바랍니다. 사실, 대상은 모든 민족이지만
우선 내 영향이 미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점차 그 영역을 넓혀 모든 민족까지 가야 합니다.
우리가 직접 갈 수 없다면 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시간 여러분 마음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여러분의 전도대상자로 주신 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한 영혼을 구하는 일은 세상의 그 어떤 일보다도 더 중요한 일입니다.
해 마다 여름이면 노스 캐롤라이나주의 체로키 시(Cherokee, N.C.)에는 “이 언덕으로” (UNTO THESE HILLS”)라는
유명한 야외 연극 공연이 펼쳐진다고 합니다.
이 연극은 체로키 인디언 살리(Tsali)를 추모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드라마다.
그러니까 1838년, 미군의 Winfield Scott장군은
숲이 우거져 아름답고 살기 좋은 노스 캐롤라이나주의 서부에 살고 있던
체로키 인디언 부족 17,000명에게 황막한 땅
오클라호마주로 이주하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눈물의 길”(Trail of Tears)이라고 불려지는 이 강제이주의 행렬은
열악하고 고생스럽기가 그지없었으므로
이 “눈물의 길”에서 4,000명 이상의 체로키 인디언들이 죽어갔습니다.
그런데 약 1,000명의 인디언들은 강제 이주를 거부하고, 그들의 고향 땅인
스모키 마운틴 산맥에 숨어 버렸습니다.
살리(Tsali)는 그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루는 술에 취한 미군병사가 살리의 아내를 살해했습니다.
이에 격분한 살리와 아들들, 처남이 합세하여 이 미군병사를 죽이고는
스모키 마운틴의 깊은 산속으로 잠적해 버렸습니다.
Scott 장군은 살리의 친구를 통해 타협안을 살리에게 보내었습니다.
미군을 살해한 살리 일당이 투항하여 총살형을 받으면,
스모키 마운틴 산맥에 숨어 사는 나머지 천명의 체로키 인디언들이
아름다운 고향 땅에 합법적으로 살도록 허용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타협안을 전해 들은 살리와 아들들 그리고 처남은 깊은 고민 끝에,
제 발로 걸어서 인근 마을에 나타나 자수를 했습니다.
자수를 하지 않았다면 백인군인들이
스모키 마운틴의 “매달린 사람의 언덕”(Cling man’s Dome) 어딘가의
숲속에 있는 동굴에 있던 그들을 찾아낼 재간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죽을 줄을 뻔히 알면서도 자수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도 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그의 부족 사람들 천명을 살리기 위해
자신들은 죽음의 길로 스스로 걸어 나갔던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희생 덕분에 나머지 천명의 체로키 인디언들은
살기 좋은 고향 땅 스모키 마운틴산맥에서 합법적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요15:13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더 나은 사랑은 없느니라.”
이처럼 누군가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은 그리 낭만적인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의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입니다.
여러분에게는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열정이 있으십니까?
그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여러분 인생의 중요한 목적 중에 하나입니까?
그렇다면 그 일에 열정을 불태우시기 바랍니다.
먼저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그 사람에게 찾아 가십시오.
하나님은 그러한 여러분의 삶을 가치 있고 소중하게 보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통해 그 한 영혼을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그 다음에 주님은 그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들라고 하십니다.
제자는 배우는 자이며,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으로 되는 것입니다.
제자는 결코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야 하고, 특히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3년 동안의 공생애 가운데 가장 힘들여 하신 사역이
바로 제자훈련입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먹고, 자면서
말씀으로 가르쳤고, 삶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한 영혼에게 찾아가는 이유는
단순히 그를 구원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으려고 하는 더 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란 결국 예수님을 닮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 우리는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가르쳐야 합니다.
결국 주님의 말씀을 지키게 해야 합니다.
아무리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비전과 꿈을 가지고 가르치고 훈련시키면 위대한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Helen Keller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귀로 듣지도 못하며, 입으로 말하지도 못했습니다.
그 중에 하나만 못해도 너무나 불행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사람은 그 세 가지가 겹쳤으니 얼마나 불행한 삶을 살았겠습니까?
그러나 53년 동안이나 그의 스승이었던 Sullivan 선생은 헬렌 켈러의 손에
다음과 같은 말을 한자 한자 손으로 적어 주었다고 합니다.
“The best and the most beautiful things in the world cannot be seen or even touched, but just felt in the heart.”
(“세상에서 가장 좋고, 가장 아름다운 것은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져지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자란 헬렌 켈러는 삼중고의 신체적인 장애를 극복하고,
교육가, 저술가, 인권 운동가,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한번은 기자가 헬렌 켈러에게,
“눈을 못 보는 장님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있을까요?” 하고 묻자,
헬렌 켈러는 “Yes, being able to see and have no vision.”
“그럼요. 육신의 눈은 보면서도,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는 사람이 더 불행한 사람” 이라고 했습니다.
육신의 눈은 멀었어도, 마음의 눈으로 미래의 가능성을 보고,
역경을 극복하고, 위대한 삶을 개척한 뒤,
기도와 명상으로 말년을 보내며 88세를 일기로 돌아가신 헬렌 켈러는,
“인생은 과감한 모험 여행이라”고 갈파했습니다.
아무리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는 사람이라도
꿈과 비전을 잃지 않고 가르침을 받고 훈련을 받는다면
모두 다 주님의 위대한 제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학식이 부족하다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힘들고 어렵다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헬렌 켈러에 비하면 모든 것을 갖춘 사람들입니다.
그녀가 할 수 있었다면 우리도 모두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먼저 배우고 훈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잘 가르쳐서 지킬 수 있게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의 마지막에는 약속이 나옵니다.
세상 끝 날까지 주님께서 우리와 항상 함께 있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결코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십니다.
우리 혼자서 이 위대한 일을 하라고 내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을 믿고 전진해 가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현실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과 비전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간다면
여러분은 오히려 더욱 위대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모든 민족에게 가서 제자를 삼아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라.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