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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의 언어 시편8:1-9
하이데거라는 철학자는 말하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를 보면, 그 존재가 어떤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겉모양만 가지고 판단할 수 없습니다. 언젠가 길을 걸어가는데, 아주 우아하게 생긴 귀부인 같은 분이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50대 후반은 되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제 옆을 지나가면서 그분이 하는 말은 정말 저를 실망시켰습니다.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분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수가 있을까!’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겉으로 보면 아주 우아한 사람도, 막상 말을 걸어보면 전혀 아닌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 보면 아주 볼품이 없는 사람인데도, 말을 걸어보면 아주 실력이 있고 인격에서 풍기는 품위가 느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언어는 그만큼 그 사람의 인격과 삶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말 한 마디에 천 냥 빚을 갚기도 하지만 한 치 혀에서 나는 말이 사람의 마음에 비수를 꽂기도 합니다. 일평생 지울 수 없는 그 한 마디 말 때문에 가슴앓이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 사과니라”(잠25:11) 복음의 말은 한 생명을 죽음에서 생명으로 인도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산소가 사랑이라면, 하나님 나라의 언어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찬양과 감사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사용하는 언어가 다른 것입니다. 즉 찬양을 하고 감사의 말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입술이 하나님 나라의 언어를 담은 입술이 되길 바랍니다. 찬양은 무엇입니까? 사전을 찾아보면 ‘훌륭함을 기리어 드러냄’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백성들은 하나님의 훌륭하심과 그분의 행하신 위대한 일들을 높이며 찬양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올해 목양실MT를 홍천에 있는 비발디 파크로 갔습니다. 그날부터 겨울이 시작되었다고 할 정도로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습니다. 그러자 스키장을 관리하는 분들은 그날부터 눈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밤새도록 기계를 돌려 인공눈을 만들어 뿌리고 있었습니다. 기계를 돌리는 일로 소리가 시끄러워 잠자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하나님의 솜씨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밤새도록 수고해서 만드는 눈보다 하나님은 아주 짧은 시간에도 많은 눈을 내릴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솜씨는 놀랍습니다. 그 능력은 정말 대단하십니다. 인간은 흉내 낼 수 없는 위대한 주님의 능력을 찬양합니다.” 하지만 흑암의 나라의 사람들은 불평하며 원망합니다. ‘날씨 한번 더럽게 춥네.’ 누가 날씨를 주관합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한 사람이 몇 분 지나지 않아서 이런 말을 쏟아 놓는다면 그것을 진정한 찬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었다면 이제 우리의 언어가 달라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의 언어를 사용하고 계십니까? 자신의 언어습관을 되돌아보기 바랍니다. 나는 찬양하는 말이 많은가? 불평하는 말이 많은가? 혹시 찬양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너무 형식에 치우친 것은 아닌가요? 예를 들어서 어떤 독창회에 갔다고 합시다. 연주가 끝나고 난 다음에 그에게 가서 “당신을 칭찬합니다. 칭찬합니다. 정말로 칭찬합니다.”라고 말했다고 하자. 이것이 칭찬입니까? 칭찬이란 말을 한다고 해서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어떠한 점을 직접 거론해서 칭찬해야 합니다. “당신은 정말 훌륭한 성악가입니다. 당신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제 마음은 온통 당신의 노래 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얼굴도 쳐다보았는데 그들도 온통 당신의 노래에 취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것이 칭찬입니다. 한 미술가에게 가서 “당신을 존경합니다. 할렐루야!” 한다면 달아날 겁니다. “여기 선생님의 그림을 쭉 감상했습니다. 컵을 든 손을 묘사한 기법이 무척 훌륭합니다. 마치 액자 밖으로 손이 나와서, 이리 앉아서 이 컵을 받으라고 권하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찬양에는 이유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냥 ‘찬양합니다. 할렐루야!’를 외친다고 찬양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찬양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진정한 찬양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찬양의 이유와 내용을 담지 않았다면 그 찬양은 마치 빈 상자처럼 공허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알맹이가 빠진 찬양을 드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목청을 높이고 화음과 박자는 잘 맞아 아름다운 노래는 되었지만 믿음의 고백을 담지 않은, 아무런 감동도 없는 그런 노래는 아닙니까? 여러분의 찬양에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때로는 기쁨이 충만한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때로는 눈물의 고백이 담긴 영혼의 노래로 주님을 높여 드리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주님의 능력과 위엄과 은혜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 여호와 우리 주여(찬양집 32번) 주님이 행하신 일이 너무나 위대함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2절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우리 하나님은 어린 아이들에게 권능을 주셔서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다윗은 체험한 겁니다. 그래서 그러한 권능의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3절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주님이 지으신 세계가 너무나 아름답고 놀라워서 그 주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주님의 솜씨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찬양할 수 없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행하신 창조의 아름다움만 아니라 사람으로 하여금 그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신 것이 너무나 고마워 그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5.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6.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7.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8.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9.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한 번 눈을 떠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의 아름다움을 보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위대한 역사를 보고 찬양을 드리기 바랍니다. 오늘 예배 중에 부른 찬양은 여러분의 마음을 담은 고백이었나요? 아니면, 그냥 순서를 따라 아무 생각 없이 불렀나요? 일어서서 부른 의미는 무엇인가요? 혹시 ‘다리 아픈데 왜 이렇게 오래 서 있게 하는가’ 하는 불평스런 마음으로 서 계시지는 않았나요? 한 번 깊이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찬양은 누구에게 드리는 것인가? 내가 편한 방식이 아니라, 찬양 받으시는 하나님께 합당한 자세로 드려야죠. 앉아 있다가도 어른이 들어오시면 그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예절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할 때 앉아 있을 수가 없는 것이죠. 그분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주님께 돌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찬양이 판에 박은 찬양이 아니라 오늘 우리 안에서 일어난 일들, 주위에서 본 것들, 그분의 권능과 영광을 나타내는 어떤 것들에 대하여 찬양하기 바랍니다. 꽃이 피어 있는 것으로 인하여 찬양하고, 아름다운 단풍과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서도 찬양해 보기 바랍니다. 이글거리는 태양의 뜨거움 때문에도 찬양하고,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도 찬양해 보기 바랍니다. 살아 있음이 감사하고, 예배드릴 수 있음이 감사하고 사랑하는 가족들로 인해 감사하고, 직장이 있음으로 인해 감사하세요. 퇴직하게 되었다면, 이제까지 일할 수 있게 해 주심을 감사하세요. 수도꼭지만 틀면 더운 물, 찬 물이 콸콸 쏟아지니 감사하고, 멀리 있는 사람에게도 전화하면, 연결될 수 있으니 감사하고 전기불이 들어오고, 가스불이 들어오는 것으로 인해 감사하기 바랍니다. 우리 주변에서 경험하게 되는 많은 것들이 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편리함들입니다. 이 모든 것들로 인하여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런 찬양을 기뻐하십니다. 다윗은 시98:1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양하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엡5:19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라”고 했습니다. 찬양과 감사는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언어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면 이제 그 나라에 합당한 언어로 언어 습관을 바꾸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