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의 산소(O₂)
요13:34-35
우리는 지난 몇 주간 변화에 대한 내용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변화를 담을 수 있는 새로운 부대를 준비해야 할 것과
자기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중심이 이동해야 할 것
그리고 우리의 주님을 위하여 살아야 할 것 등을 나누었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님을 위하여 살라는 이유는 선물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 선물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주님이 주신 메시지의 핵심도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막1:15)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나라’를 뜻하는 희랍어는 ‘바실레이아’입니다.
이 말은 단지 ‘정치적이거나 지리적인 영토’라는 의미의 ‘나라’뿐 아니라,
‘지배하고 다스리는 활동’의 개념까지도 포함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지배와 다스리심’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겠고,
지금 여기에서 발견되고 경험될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미래에 이루어질 것과 이미 이루어진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와 ‘아직’의 중간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 것은 아니지만
이미 여기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생활입니다.
우리가 그 나라를 경험하도록 하기 위해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주 기철 목사님의 일화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는 것을 기억합니다.
주 목사님은 신사참배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투옥을 당하고
수많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신앙의 지조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 목사님을 고문하는 일본 순사마저도
거룩한 경외심을 가질 정도로 주 목사님의 믿음은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일본 순사의 입장에서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저렇게 지독한 고문을 견디는 목사님이 안쓰러웠는지
“아니 도대체 하나님의 나라가 어디 있다고 이런 고문을 견디고 계시오?
괜히 고집부리지 말고 포기하시오.
어디, 하나님의 나라가 있으면 내게 보여주시오. 그럼 내가 믿으리다.”
그 때 주 기철 목사님은 엷은 미소를 띠면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는 저 하늘에 있고,
그 지점이 내 마음에 있다오.”
주 기철 목사님은 그 고문의 현장 속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고 계십니까?
교회는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케 하는 지점입니다.
우리 목양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게 되길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의 산소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산소가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숨을 쉬는 이유는 산소를 공급받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게 하는 산소는 무엇입니까?
요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주님은 ‘사랑’을 말씀하십니다.
사랑은 바로 하나님 나라의 새 계명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증거는 바로 사랑입니다.
요일3:14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 사랑하지 않고 미워한다면
무엇으로 구원을 증언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걸 볼 때,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게 되는 겁니다.
여기서 우리가 좀 더 주목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이 좋다고 권면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새 계명이라는 겁니다.
즉 주님은 사랑하라고 명령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사랑하게 되면 사랑하고,
미워하게 되면 미워해도 되는 게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새 계명인데 그것은 바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사랑해야 할 자유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미움은 성도들의 삶이 아닌 것입니다.
롬13:10 ‘사랑은 모든 율법의 완성’입니다.
아무리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킨다고 할지라도
그 속에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율법의 핵심을 잃은 것입니다.
안식일 법을 지키고, 정결음식법을 지키고, 제사법을 지켰다고 할지라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율법을 제대로 지킨 게 아닙니다.
사랑할 때 율법은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냥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고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고,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수준이
예수님의 수준으로 끌어 올릴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옆에 있는 사람이 기준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기준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보다 조금 더 사랑한다고 해서 만족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십니다.
어떻게 우리가 예수님의 수준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까?
성령 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곧 성령의 열매(갈5:22)이기 때문입니다.
성령 받았다고 하면서 사랑하지 않는다면
진짜 성령의 역사인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성령을 받으면 자연스럽게 사랑이 풍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니 성령을 받아야만 진정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성령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35절의 말씀을 보면,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주님의 제자임을 알 것이라고 하십니다.
무엇으로 우리가 주님의 제자 됨을 알릴 수가 있겠습니까?
서로 사랑할 때, 예수님의 제자임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중국의 어느 그리스도인의 이야기입니다.
계단식 논에서 농사를 짓는 그리스도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해에 매우 가물어서 논이 말라가기 시작했습니다.
하는 수없이 양수기를 이용하여 멀리 논 아래에 있는 계곡에서부터
자기 논에 물을 가득 대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논에 가보니, 아래 논의 임자가 둑을 타 놓았습니다.
물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자기 논의 물이 모두, 아래 논으로 흘러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너무나 화가 났지만, ‘사랑하라’는 주님의 계명이 생각나서 참았답니다.
그리고 다시 자기 논에 물을 댔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논에 나가 보니 또 둑을 타서 물을 다 빼 가버린 것입니다.
도무지 참을 수가 없어서 노발대발 화를 내려고 하다가
목사님께 찾아갔답니다.
‘언제까지 얼마나 사랑해야 합니까?’
그 때 목사님이 아주 난감해 하시더니 이렇게 제안을 했습니다.
“한 번 더 당했다고 생각하고, 이번에는 먼저 아래 논에 물을 대 주고
그 다음에 형제님의 논에 물을 대 보시면 어떻겠습니까?”
이것은 정말 간도, 쓸개도 다 빼 준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내가 왜 그런 놈을 위해 물을 대 주어야 하는가?’하는 의문도 있었지만
‘나 죽었오’ 하는 마음으로 그 제안대로 물을 대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아래 논의 임자가 찾아와서 잘못했노라고 빌면서
‘당신이 도끼 자루라도 들고 와서, 죽여 버리겠다고 난리를 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내 논에 물을 대 주다니 예수 믿으면 그렇게 할 수 있는 겁니까?’
그러면서 자기도 예수 믿겠다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착한 행실을 통해서 이웃에게 빛을 발하는 것이요,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임을 알게 하는 방법인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화도 안 나고, 감정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자기감정에 충실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죽고 이제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주님과 함께 죽은 자이므로
자기중심적인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자기중심주의의 두터운 담을 무너뜨리지 않으면
우리교회는 절대로 변화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랑을 할 것입니까?
첫째, 작은 것부터 시작하십시오.
처음부터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리라 작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면 못한다고 뒤로 물러서고 말 것입니다.
한 사람, 한 가정을 사랑하기로 정하십시오.
마더 테레사 수녀는 ‘한 번에 한 사람씩’ 이라는 시를 썼습니다.
우리는 한꺼번에 여러 사람을 돌볼 수 없습니다.
한 번에 한 사람씩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돌볼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 가정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의 영적, 물질적, 정신적인 문제들과
모든 종류의 곤경을 살피는 일을 시작하십시오.
둘째, 사랑하기 위해 시간을 내십시오.
우선 자주 만나십시오.
시간을 내어 만나다 보면, 그 사람과의 사랑이 싹트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냉대하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마음을 열고 사랑을 받게 됩니다.
사랑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원리가 하나 있습니다.
롬12: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하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먼저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아직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내가 먼저 사랑을 베푸는 겁니다.
그래서 결국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게끔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적극성인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것은 누구나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내가 먼저 사랑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일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이 시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사랑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가?”
또한 전도를 위해서 내가 먼저 사랑을 베푼 경우는 언제였는가?
나는 지금 사랑을 실천함으로 하나님 나라의 산소를 호흡하고 있는가?
주님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사랑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성도들이 지켜야 할 계명입니다.
여러분의 사랑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사랑할 때 여러분은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 나라의 산소를 호흡하며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