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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위하여 로마서14:7-9
“뿌리”라는 책과 영화를 기억하시나요? ‘쿤타킨테’라는 17살의 의식 있는 흑인 노예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노예들의 삶이 얼마나 비인격적이고 비참한 삶이었는지, 그리고 그러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인간으로서의 당당함을 지켜가는 쿤타킨테의 삶을 통해서 인종에 상관없이, 왜 모든 인간은 인격적으로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하게 하는 그런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통해서 ‘노예가 무엇인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노예는 자유가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했습니다. 마치 물건처럼 취급을 받았고, 사고팔거나, 심지어 살리고 죽이는 것도 주인 마음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노예’나 ‘종’이라는 말은 결코 우리에게 유쾌한 말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예가 무엇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 시대에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며, 자신을 기꺼이 종으로 고백했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 고백했습니다.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나 바울은” 이렇게 자신을 소개하고 있는 것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의 신앙전통이 그 신앙고백을 이어받았다고 할 때, 우리도 똑같은 고백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한 신앙고백 위에 우리의 신앙이 서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이 점을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나에게 누구이신가?” “나는 예수님과 어떤 관계인가?”
물론 자신을 종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닙니다. 누가 종이 되기를 원하겠습니까? 하지만 누구의 종이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기꺼이 종이 되고자 합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하여 그와 결혼하게 되면, 우리는 그에게 매이게 됩니다. 총각과 처녀로 있을 때에는, 다른 사람을 마음대로 만날 수 있었지만, 일단 결혼을 하게 되면, 그 자유는 포기해야 합니다. 오직 한 사람에게 매이게 됩니다. 그의 종이 되는 것이죠. 하지만 그럴 줄 알면서도 우리는 결혼을 합니다. 그런데 그 제한된 자유가 전혀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기쁨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출21장에 보면, 종에 관한 법이 나옵니다. 종은 6년 동안 섬긴 다음에, 7년째가 되면 자유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단신으로 왔으면 단신으로 나가야 하고, 장가들었으면 그의 아내도 함께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주인이 그에게 아내를 주어 아들이나 딸을 낳았으면, 그의 아내와 자식들은 주인에게 속하고, 그는 단신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 종이 주인과 처자를 사랑하니 자유인이 되지 않겠노라 하면, 주인은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가서 송곳으로 귀를 뚫어 종신토록 주인을 섬기는 종이 되게 하는 법이 있습니다. 귀 뚫린 종은 자유인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종이 되기를 선택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처자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하는 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시고 우리는 그의 종이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적용하는 것에 대해서 그것은 너무나 과격한 말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원리에 있어서 참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사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목숨을 값으로 치르시고 우리를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고 주님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주님이시고, 우리는 그의 종입니다. 이 점을 정확하게 깨달은 바울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롬14:7-9) 우리가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살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는 종이기 때문입니다. 종은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주님을 위하여 죽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중심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그분이 대신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우리 편에서 하는 말입니다. 이 말을 주님 편에서 하는 말로 바꾸면, 그분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유는 노예된 우리 모두의 주가 되시려고,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고후5:15에서 너무나 절묘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값으로 산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주인은 예수님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종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우리의 주인 되신 예수님을 위해 살고 예수님을 위해 죽겠다고 결단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의 의미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구원이란 자유롭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롬6:18) 죄에서 해방되는 것은 옳습니다. 그 다음에는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의에게 종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보다 적극적으로 의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껏 우리 좋은 대로만 살고, 우리 뜻대로 행하였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어둠의 나라는 마치 좌초된 배와 같이 빠른 속도로 가라앉고 있습니다. 배가 가라앉을 것을 아는 선장은 승객들에게 선심 쓰듯 말합니다.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드십시오. 모든 것은 공짜입니다. 여러분이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됩니다.” 그러면 승객들은 선장을 칭찬할 것입니다. ‘멋진 선장이야’ 그러나 얼마 후에 그들은 그 배와 함께 가라앉고 죽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고 우리에게 좋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팔린 자입니다. 우리는 왕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 마음대로 살면 안 됩니다. 우리는 주인이 아니고 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대로 살면 결국 죽게 될 것입니다.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구원이란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워지는”(골1:13) 것입니다. 구원은, 사단의 권세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지배 아래로 옮겨지는 것을 말합니다. 새 나라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고 해서 무엇이든 다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일원일 뿐, 왕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그분이 다스리시고, 우리는 그분의 계획과 소원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구별되는 특징은 고작 담배 안 피우고, 술 안 마시는 정도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위험한 생각입니다. 그보다는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 나라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구원받은 성도들의 간증을 들어보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분을 만난 이후부터는 그분이 다스리십니다. 제 인생은 이제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간증이 되길 바랍니다.
바울 사도는 갈2:20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고 있습니다. 내 맘대로 살던 나의 옛 사람은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내 맘대로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을 위하여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우리는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해 살고 자기 자신의 뜻을 행하는 흑암과 이기심의 나라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살고, 그분의 뜻을 행하며,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야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있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하여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들이 자기가 노예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자기 뜻대로만 살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런 노력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목숨을 구원하기 위해, 목숨을 잃어야 한다는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구원하고자 교회에 나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한다면 먼저 내 놓아야 합니다.
마태복음1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하신 천국에 대한 비유가 나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춰진 보화와 같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 값비싼 보화입니다. 그런데 감춰 있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합니다. 옛날에는 재산을 간직하기 위해서 땅 속에 보화를 감춰두었다고 합니다. 아무도 모르게 숨겨 두었는데, 난리가 나거나 불의의 사고로 죽기라도 하면 그 보화는 주인 없는 보화가 되는 것이죠. 그러다가 누군가 밭에 감춰진 보화를 발견하면, 자기의 온 재산을 다 팔아서라도 그 밭을 사게 될 것입니다. 그 밭을 사기 위해 집도 팔고, 가재도구까지 팔게 되면 내용을 모르는 사람은 미쳤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그만큼 모험을 걸기에 충분한 보화가 있음을 알기에 무슨 소리를 들어도 그 밭을 사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주인으로 삼기 위해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대가로 치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은 먼저 그분 안에 모든 행복, 기쁨, 평강, 치유, 안정, 영생이 있다는 것을 발견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셨습니까? 그렇다면 제가 여러분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보겠습니다.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대답해 보기 바랍니다. 정말 예수님을 주님으로 섬기기로 작정하셨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대가도 치를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기로 각오하셨습니까? 내가 살고 죽는 것보다도, 주님의 영광이 더 우선되는 일입니까?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 자신 있게 ‘아멘’하기 어려운 분들이 있을 겁니다. 사실 아무도 자신의 의지로, 결단으로 그렇게 할 사람은 없습니다. 오직 성령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충만하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히 알고 진정 주님으로 섬길 수 있도록 성령께서 역사해 주시길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