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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부대를 준비하라
마가복음2:18-22
지난 4일 미국 국민은 새로운 선택을 하였습니다.
역사상 최초로 흑인 대통령이 탄생한 것입니다.
미국 흑인의 역사는 억압과 차별, 저항과 투쟁으로 얼룩졌습니다.
버락 오바마가 미국의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는
389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이 걸렸습니다.
1619년 8월, 네덜란드 해적선 한 척이
북아메리카 동부 대서양 연안 버지니아에 흑인 20여명을 떨어 뜨렸습니다.
영국 최초의 아메리카 식민지인 제임스타운이 사들인 계약제 하인들이었습니다.
40여년 뒤 본격화될 미국 흑인노예사의 서막이 오른 것입니다.
그러나 1862년 9월 링컨 대통령은,
버지니아 정부가 노예제 법령들을 공표한지 꼭 200년 만에
‘군사적 이유’로 노예 해방 선언을 했습니다.
1866~68년 사이 흑인의 시민권과 참정권도 보장됐습니다.
비천한 ‘노예’에서 어엿한 ‘시민’으로 승격했지만,
끔찍한 테러와 노골적인 인종차별의 장벽까지 걷힌 것은 아니었습니다.
1865년 재향군인 친목모임으로 창설된 케이케이케이(KKK)단은
극우 백인우월주의집단으로 탈바꿈하면서 흑인들에게 무차별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흑인들은 헌법이 보장한 투표권을 실제로 행사하고
백인과 결혼할 수 있게 되기까지 100여년을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1960년대는 유럽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혁명의 시대’였습니다.
인종 문제에서도 ‘평등’과 ‘차별’, ‘진보’와 ‘반동’이 격렬하게 부딪혔습니다.
적어도 제도적 차원에서 인종차별 장벽은 대부분 철폐됐습니다.
1965년에는 투표권보장법이 통과돼
흑인들의 투표를 가로막는 장벽이 무너졌고,
1967년엔 흑인이 백인과 결혼할 수 있다는 연방대법원의 결정이 나왔습니다.
뒤집어보면, 흑인들에게 그럴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지
이제 겨우 40여년 밖에 안 된다는 뜻입니다.
반면, 흑인 민권운동 지도자들에 대한 암살도 잇따랐습니다.
에드가 에버스(63년), 존 F 케네디(63년), 맬컴 엑스(65년), 마틴 루터 킹(68년) 등
흑인 민권운동지도자들이 총탄에 쓰러졌습니다.
그러나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나에겐 꿈이 있다’고 외친 지 45년 만에
흑인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는 놀라운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저는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된 다른 어떤 가치 평가를 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세상은 이처럼 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옛날에는 상상도할 수 없었던 일들이 지금은 상식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의 기준으로는 미래를 잴 수 없습니다.
그런 구태의연한 자세로는 급변하는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방법이 필요한 법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저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자 합니다.
먼저 본문 18절을 통해서 오늘의 논쟁점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18절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유대인들의 전통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1년에 한 번, 즉 속죄일에만 금식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좀 더 경건하다고 하는 유대인들은 더 자주 금식을 하곤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일주일에 두 번씩, 즉 월요일과 목요일에 금식했습니다.
일반적으로 해 뜨는 시각부터 해지는 시각까지 12시간의 금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금식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림으로
자신들이 얼마나 경건한 삶을 살고 있는지를 알리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이 와서
‘왜 예수님의 제자들은 금식을 하지 않는지’ 물었습니다.
보다 더 경건한 삶을 살고, 또 보다 더 영향력 있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면
더 많이 금식을 해야 하지 않느냐 하는 마음이 담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19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느니라.
20절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예수님께서는 당시에 잘 알려진 혼인집 풍습을 가지고 답변을 하셨습니다.
그 당시 결혼식은 성대한 잔치와 기쁨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윌리엄 바클레이(William Barclay)같은 성경 주석학자는
“전반적으로 생활이 어려웠던 때인 만큼
결혼 잔치를 하는 주간은 한 사람에게 있어서 인생의 가장 기쁜 시간이었다.
…이러한 랍비들의 규정이 있다.
‘신랑을 수종 드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을 감소시킬 수 있을 만한 종교적 의무가 있을 경우에는 그것들을 준수할 필요가 없다’”라고 설명합니다.
즉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는 금식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당신을 신랑으로 소개하면서 메시아임을 나타냅니다.
주님과 함께 있는 제자들은 지금 기쁨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를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주님께서 곧 세상을 떠날 것에 대해서 예언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곧 주님께 주어진 사명에 대해 분명하게 인식하고 계신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일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곧 구원이죠.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 번
당시의 유대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말씀하십니다.
21절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 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에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22절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새 것은 낡은 것을 잡아당기는 힘이 더 세기 때문에 옷감이 해어집니다.
새 포도주는 발효가 되면서 부피가 늘어나기 때문에,
신축성이 좋은 새 부대에 넣어야 터지는 일이 없습니다.
낡은 부대에 넣으면 신축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결국 터지고 마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단순히 옷이나
포도주와 부대에 대한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질서와 낡은 질서가 서로 양립할 수 없음을 강조하고 계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행하실 새로운 질서는
바리새인들이나 세례 요한에 의해 대변될 수 있는 낡은 질서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사실에 근거하여
회개의 필요성을 가르쳤던 세례 요한의 사역과도 양립할 수 없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을 주장하고 계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에 대하여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예수님은 세례 요한마저도 구시대적인 인물로 말씀하시면서
그의 가르침에 매이지 말고,
새로운 시대의 구원의 메시지를 들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유대주의를 개혁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혁명적인 변화를 위해 오신 분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는 변형된 유대교가 아니고 전혀 새로운 것입니다.
유대주의의 연장선상에서는 도무지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제 이런 원리를 우리의 신앙생활에 적용해야 합니다.
새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그것을 담을 수 있는 새 부대를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 목양교회는 모든 성도들이 교회가 새로워지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습니다.
특히 부흥을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아마 여기에 예외가 되는 분은 단 한 분도 없을 줄 압니다. 아멘?
그래서 올해 우리교회의 표어도 “훈련받고 새로워지는 교회”로 잡았습니다.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수동적으로 기다려서는 안 되고 능동적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새로워지기 위하여 얼마나 훈련을 받고 있습니까?
또한 새로워지기 위하여 여러분은 얼마만큼의 대가를 지불하고 있습니까?
옛 것의 좋은 전통은 잘 지켜가야 하겠지만,
새 시대에 대한 열린 마음을 가지고 수용하는 자세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이 변화의 주도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렘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나님은 크고 은밀한 새 역사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일을 사람을 통해 행하십니다.
그러므로 먼저 사람이 변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그 마음이 변해야 합니다.
에스겔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게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단순히 고치시는 것이 아닙니다.
전혀 새로운 마음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성품을 주시며,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새 피조물을 낡은 율법주의적인 틀에 집어넣게 되면
새 생명은 망가지고 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바랍니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무엇을 창조하는 소수의 사람이요,
둘째는 무엇이 창조되는지를 구경하는 수많은 사람이요,
셋째는 무엇이 창조되는지를 모르는 대다수의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은 여러분 모두가 변화를 주도하는 주인공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이 아닌 율법을 설교한다면 모르지만, 그것이 복음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담는 형식은 얼마든지 새로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본질이 아닌 형식의 변화는 여러분의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시길 바랍니다.
예배순서가 조금 달라지거나, 주보의 폰트가 달라지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미국 새들백교회의 릭 워렌 목사는 성공의 비결을 아주 간단하게 말했습니다.
“실수하고도 안심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자신은 많은 실수를 했답니다.
그러나 교인들이 자신을 믿고 따라주었기 때문에 수많은 새로운 시도를 했답니다.
어떤 것은 성공하고, 어떤 것은 실패를 했지만 그 모든 것이 합하여
결국 오늘의 새들백교회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실패하기로 작정하고 일을 시작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잘 해 보려고 했지만 실패하게 되는 경우는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본적인 자세가, 잘 해 보려고 했다면 밀어주어야 합니다.
실패는 오히려 성공의 어머니가 되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큰 꿈을 꾸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꿈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호텔 왕이라고 불려지는 콘라드 힐튼이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의 미래는 그의 재능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가 마음속으로 생생하게 그리는 꿈에 의하여 결정된다.”
그는 전 세계에 250개가 넘는 호텔을 세운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는 호텔 ‘벨 보이’로 시작을 했습니다.
호텔에 오는 사람들의 가방을 들어주고, 방을 청소하고, 뒷치닥거리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른 벨 보이들과는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당시의 가장 큰 호텔의 사진을 구하여 책 상 위에 붙여두고,
그 호텔의 주인이 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곤 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5년 뒤인 1949년 콘라드 힐튼은 가장 큰 호텔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훗날 호텔 왕이 된 후로 사람들이 성공의 비결을 물어올 때마다 이렇게 답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재능과 노력이 성공을 가져다 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성공을 불러들이는 것은 생생하게 꿈꾸는 능력입니다.
내가 보이 생활을 할 때에 나의 주위에는 똑같은 처지의 벨 보이들이 많았습니다.
호텔을 경영하는 능력이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나보다 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역시 많았습니다.
하지만 온 힘을 다하여 성공한 자신의 모습을 그렸던 사람은
오직 나 하나뿐이었습니다.
성공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꿈꾸는 능력’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 모두가 위대한 꿈을 꾸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 목양교회의 미래는 여러분이 꾸는 꿈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용하실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아무 것도 안하고 뒷짐을 지고 있다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크신 역사에 동참하도록 새 부대, 큰 부대를 준비해야 합니다.
이러한 새 역사에 함께 동참하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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