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리아인 에게서 배우는 전도의 비결

사마리아인에게서 배우는 전도비결

누가복음10:30-37

 

 

   119 새 생명 큰잔치가 3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VIP 카드를 적어 내라고 하지, 전도에 나오라고 하지, 기도하라고 하지,

이런 캠페인 자체가 점잖게 신앙생활하고자 하는 분들에게는

때로는 귀찮고, 때로는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다 전도에 대한 부담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전도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막상 전도를 하려고 하면 어려움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선 교회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두려움입니다.

교회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찬만 들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한 게 많이 있거든요.

이것은 정말로 전도에 있어서 너무나 큰 장애물입니다.

그래서 ‘괜히 전도해 봤자, 사람들에게 좋은 소리 못 듣고 욕만 먹을 텐데’하는

생각에 아예 예수 믿으라고, 교회에 나가자고 권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직접 나가서 전도하지 못해도

교회가 좋은 일을 하도록 돕고, 그런 일에 동참하는 일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이것도 간접적인 의미에서 전도죠. (기도로 후원, 후원헌금, 사회봉사팀)

교회가 칭찬받을 일이라는 것을 찾아내어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전도하는데 있어 또 어떤 어려움이 있나요?

복음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 만큼 훈련되거나 준비되지 않은 경우가 있죠.

분명히 내가 믿고 있는 바는 있는데 막상 설명하려고 하면 말문이 막힙니다.

해보지 않아서 그런 경우가 있고, 자기의 신앙내용을 잘 정리해 볼 필요가 있어요.

내게 아직 구원의 확신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막상 전하려고 하니까 나도 믿지 않고 있는 것이죠.

확신반을 아직 안 하신 분들은 이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겁니다.

확신반 교육을 하다보면, 구원간증문을 쓰는 일이 있는데

이것을 잘 정리하면 전도하는데 아주 유용하게 쓰여 질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전도를 잘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해 봤습니다.

“또 어떤 사람이 전도를 잘 하고 있나?”를 생각해 봤습니다.

전도를, 예수 믿고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할 때,

구원의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누가 복음을 잘 전하나? 생각해 봤습니다.

복음에 대해서 잘 안다고 전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학자가 제일 전도 잘하나? 목사나 장로가 전도 잘하나? 전도 잘 할 수 있죠.

그러나 실제는 전도를 열심히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 고민을 하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주님 전도에 대한 좋은 말씀을 주세요.”

기도하는 중에 갑자기 오늘 본문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전도의 비결을 배우기를 원합니다.

 

 

본문의 말씀은 이웃이 누구냐고 하는 질문에 대한 주님의 대답으로 주어진

‘선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말씀입니다.

30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강도들은 돈을 빼앗을 뿐만 아니라 옷을 벗기고 때려서 거반 죽게 만들었습니다.

이 사람은 지금 죽어가고 있습니다. 얼마나 불쌍합니까?

이 사람의 형편과 사정이 우리가 전도해야 할 대상자의 영적인 상황입니다.

 

지금 우리의 주변에는 다양한 강도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난’이라는 강도, 또 어떤 사람은 ‘실직’이라는 강도, “부도”

어떤 사람은 ‘질병’이라는 강도, 어떤 사람은 ‘이혼’이라는 강도를 만났습니다.

어떤 사람은 ‘무신론’, ‘유물론’, ‘진화론’이라는 사상의 강도를 만났습니다.

이런 것 때문에 그들의 영혼은 지금 거반 죽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없이 사는 인생은 영적으로 죽은 것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생명이 붙어 있어 살고 있는 거지, 영생의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강도만난 자를 보고, 제사장과 레위인은 어떻게 했습니까?

31-32절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자나가되”

그냥 지나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마치 못 본체 했죠. 나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혹시 그를 돌보다가 나마져 강도들을 만날까봐 겁이 났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그를 돌보다가 죽으면 부정하게 되어 성전의 일을 할 수 없다는 율법이

좋은 핑계거리가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우리가 우리의 전도대상자를 보면서, 그냥 지나쳐 버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보고도 전도하지 않습니다. 가족들인데도.

하고 싶지 않은 일에는 얼마든지 그럴듯한 핑계거리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은 어떻게 했습니까?

33절에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전도대상자를 볼 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일어나야 합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을 볼 때, 무신론자들, 불신자들,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

하나님에 대해서 불평하고 원망하는 사람들을 볼 때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예수님은 찾아온 사람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는 말씀이 여러 곳에 나옵니다.

마14: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시니라.”

막6: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눅7:13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 나인성 과부

 

34절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자에게 ‘가까이’갔습니다.

강도 만나 죽어가는 사람을 그냥 지나쳐 버리면 안 됩니다. 가까이 가야 합니다.

우리도 전도대상자에게 가까이 가야합니다. 시간을 내어 그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그 사람이 내게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그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사랑을 가지고, 말씀을 가지고 가까이 가야 합니다.

강도만난 사람은 도와 달라고, 가까이 와 달라고 울부짖고 있습니다.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 가난하여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

외롭고 두려워서 벌벌 떨고 있는 사람들,

그들이 겉으로는 거부하는 것 같아도 그 영혼은 도와 달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큰소리를 치고 자신만만해 하는 것 같아도

그 내면에서는 울부짖고 있습니다.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사랑받고 싶어 하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이 아니고는 채워질 수 없는 영적인 빈 공간이 있습니다.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야 합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가까이 가서 어떻게 했습니까?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34절)

그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입니다.

지금 강도만난 사람은 치료가 필요합니다. 돌봄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기름과 포도주로 그 상처를 치료해 주었고 그를 돌보아 주었습니다.

배고픈 사람에게는 먹을 것을 주어야 하고, 목마른 사람에게는 물을 주어야 하며,

벗은 사람에게는 옷을 주어야 하고, 외로운 사람에게는 친구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필요중심의 전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35절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사마리아 사람은 자기의 시간과 물질을 내어 주었습니다.

이 사람은 할 일이 없이 빈둥거리던 사람이 아닙니다.

뭔가 일이 있어서 바쁜 길을 가던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가던 길을 멈추고 이 사람을 돌보아 준 것입니다.

내 할 일 다 하고, 시간이 남으면 그 때 전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쓸 일 다 쓰고, 돈이 남으면 그 때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위해서도 우리는 기꺼이 시간과 물질을 투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나눔과 실천을 통해 그 사람을 감동시켜 주어야 합니다. 감동

 

 

이렇게 하여 강도만난 자가 살아났다면

그 사람은 얼마나 감동을 받고 감사하겠습니까?

그 사람이 복음을 전하면 그 사마리아인의 초대에 응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보니까 전도는 방법이 아닙니다.

그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요, 그를 구원해 내야겠다는 열정입니다.

구령 열에 불타는 마음입니다.

이제야 왜 복음에 대해 설명을 잘 할 줄 안다고 해서

전도를 잘 하는 것이 아닌 이유를 알겠습니다.

전도의 핵심 코드는 사랑입니다. 감동입니다.

복음의 내용이나 전도의 방법은 그 다음의 일입니다.

 

 

이렇게 놓고 보니, 전도하지 못하는 것이 제게는 너무나 큰 부끄러움입니다.

그것은 방법을 모르는 것이 아니고, 사랑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수 없이 스쳐 지나가는 강도만난 자를 그냥 지나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부족했습니다.

노력도 수고도 하지 않고, 열매를 따 먹으려고만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전도는 잘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전도의 방법을 잘 알지 못한다는 식으로 핑계를 대었습니다.

너무나 부끄럽고 죄스럽습니다.

 

아직도 길가와 같이 딱딱한 마음, 돌밭과 같이 환난과 핍박을 두려워하는 마음

가시떨기와 같이 염려와 걱정이 많은 마음 그런 마음을 일구는 것이 우선입니다.

전도가 그냥 아무런 노력도 없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복음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옥토와 같은 마음으로 바꾸지 않는 한

복음의 씨앗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의 마음 밭을 옥토로 가꾸어야 합니다.

 

 

옥토로 일구는 비결은 곧 사랑으로 돌보는 일입니다.

주리는 사람을 보면 먹을 것을 주어야 합니다.

목말라하는 사람을 보면 마실 물을 주어야 합니다.

나그네된 사람을 보면 영접해 주어야 합니다.

벗은 사람이 있으면 입을 것을 주어야 합니다.

병든 사람을 보면 돌아보아 주어야 합니다.

옥에 갇힌 사람이 있으면 찾아가 주어야 합니다.

외로운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친구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결론입니다. 36-37절입니다.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질문하시고 대답하십니다.

누가 강도만난 자의 이웃의 되겠느냐?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

 

사랑하는 목양의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좋은 이웃이 되기를 원치 않으십니까?

죽어가는 친구를 위해, 이웃을 위해 교회로 초대하는 일이

그렇게 부담스럽고 어려운 일이십니까?

사실 여러분은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이 일을 멋지게 해 보고 싶은 욕구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도 있습니다.

이번이 기회입니다. 한 번 시도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