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주신 기업
여호수아14:1-5
우리는 지금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지도력 아래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탈출하여, 광야 40년을 보내고
이제 여호수아라는 새로운 지도자를 통하여
가나안 땅을 점령해 들어가는 과정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 과정 속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많은 전쟁을 치렀습니다.
그 중에는 감격적인 승리의 순간도 있었지만, 쓰라린 패배의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을 통해 결국 그들은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11:23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온 땅을 점령하여
이스라엘 지파의 구분에 따라 기업으로 주매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가나안 땅은 이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그치고 안식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이 순간을 기다려 왔겠습니까?
그들이 이제까지 고생했던 목적은 바로 가나안에서 누리는 안식이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치르는 모든 영적 전쟁의 궁극적인 목적도
우리 주님 안에서 누리를 안식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안식을 누리고 있습니까?
우리 목양교회에서의 신앙생활을 통하여 주님의 안식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의 말씀은 여호수아11장-13장까지의 내용의 요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내용은 주로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점령하고
그 땅을 분배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얼핏 보면 별로 중요하지 않은 내용처럼 보여집니다.
그러나 주의 깊게 읽어보면 귀한 교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분배된 땅을 자세히 살펴보면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14:2-3
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들의 기업을 제비 뽑아 아홉 지파와 반 지파에게 주었으니
3. 이는 두 지파와 반 지파의 기업은 모세가 요단 저쪽에서 주었음이요
레위 자손에게는 그들 가운데에서 기업을 주지 아니하였으니”
첫째로, 요단 동편의 땅을 분배받은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입니다.
그들의 요청에 의해 그 땅을 분배받았으나
엄밀하게 말하면 그 땅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기업은 아니었습니다. 이스마엘처럼.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은 요단 서편의 가나안 땅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자기들이 보기에 좋은 땅을 달라고 해서 얻은 땅입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이스라엘 민족의 생활에 참여하지 않다가
자기들이 정복했던 민족들에게 오히려 흡수되고 말았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요르단이라는 국가의 땅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영적인 교훈을 얻게 됩니다.
가장 깊은 영적 생활의 축복은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영역 안에서만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이 약속하지도 않은 것을 달라고 떼를 쓸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주시기는 하지만 결국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민수기 11장에 보면, 광야에서 하나님의 역사로 만나를 먹던 백성들이
고기를 먹지 못한다고 불평하면서, 장막 문에서 통곡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자 모세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어떻게 이 백성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냐고
이 책임이 너무 중하여 감당할 수 없으니 차라리 나를 죽여 달라고 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람을 일으켜서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쌓이게 하셨습니다.
얼마나 많이 쌓였는지 두 규빗이나 쌓였다고 했는데, 그 높이는 91cm쯤 됩니다.
사람들마다 이것을 거두어 들였는데, 적게 모은 자가 열 호멜이라고 했습니다.
일 호멜이 220 리터니까 2200리터나 모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결국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렇게 엄청난 양의 메추라기를 모았지만
민11:33에 보면,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결국 아무 것도 누리지 못하고 죽은 사람이 많이 있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 9지파와 반 지파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분배받았습니다.
가나안 땅을 분배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13:1-7을 보면, 하나님이 기업으로 주신 땅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정복하지 못함으로 누리지 못한 땅들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업은 그들이 정복하여 누려야 했는데
그들이 점령해 들어가지 못함으로 결국 차지하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점령하지 못하여 차지하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유업은
벧전1:4에 보면,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은 모두 하나님이 우리들을 위해 예비하신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것을 차지하고 누려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로 취할 수 있는 분량은 우리들이 믿음으로 청구하는 만큼입니다.
우리들이 믿음으로 나아가면 결국은 이길 수 있고 차지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레 겁을 집어 먹고, 싸우려고 하기 보다는 피하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이런 내용을 잘 표현하고 있는 찬송이 있다고 봅니다. 302장입니다.
♬1.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저 큰 바다 보다 깊다.
너 곧 닻줄을 끌러 깊은 데로 저 한 가운데 가 보라
(후렴) 언덕을 떠나서 창파에 배 띄워 내 주 예수 은혜의 바다로 네 맘껏 저어가라
3. 많은 사람이 얕은 물가에서 저 큰 바다 가려다가
찰싹 거리는 작은 파도보고 마음 약하여 못가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바다는 너무나 넓고 깊은데
우리는 얕은 물가에서 만족하고 있고, 더 깊은 영적 세계를 향해 나가지 않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큰 은혜를 주시려고 준비하고 계십니다.
사모하는 마음으로 나아가면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놀라운 은혜를 주십니다.
이 은혜를 받아 누리시길 바랍니다.
세 번째는 레위 지파입니다.
여호수아13:33
“오직 레위 지파에게는 모세가 기업을 주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들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심이었더라.”
그들에게는 아무런 땅도 분배해주지 않았습니다.
다만 거주할 성읍과 가축과 재산을 위한 목초지만 주었습니다. (수14:4)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의 기업이 되신다고 하십니다.
그들은 성소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백성들을 섬기고, 축복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을 깊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기업은 무엇인가?
분명히 그것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각기 다른 사역을 주셨으며, 다른 기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남과 비교하면서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나에게는 다른 사람과 같은 것을 주시지 않았느냐고 불평합니다.
또 내게 주시지도 않은 것을 얻으려고 몸부림을 치는 사람도 있습니다.(두지파 반)
또는 내게 주신 것도 다 챙기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합니다.
아무런 기업도 받지 못한 레위 지파와 같은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한 남자가 가이드 포스트지의 창시자인 ‘노만 빈센트 필’박사를 방문하였습니다.
그는 극도의 절망감에 사로잡혀서 말했습니다.
“이제는 끝장이 났습니다. 사업에 실패하여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렸습니다.”
그때에 필 박사는 종리를 한 꺼내 들고
‘당신은 지금 모든 것을 잃었다고 했는데 그래도 조금 남은 것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을 여기다가 한 번 적어 보도록 합시다.’
그러자 그 남자는 “내게 남은 게 뭐가 있겠습니까? 난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필 박사가 물었습니다.
‘부인이 있습니까?’ “네 제 아내를 참 착하고 좋은 사람입니다.”
‘자녀가 있습니까?’ “셋이 있습니다. 아주 예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친구가 있습니까?’ “예, 제 뜻을 잘 알아주는 친구가 몇 있습니다.”
‘건강은 어떻습니까?’ “아직까지 건강은 괜찮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하다가 이 남자 스스로 하는 말이
“어쩌면 내 사정이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의 불행은 자기가 가진 것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없는 것만 계산하면서 자신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잃은 것보다는 얻은 것이 더 많고 소중함을 알아야 합니다.
건강을 잃었지만 믿음을 얻게 되었다면, 그것으로 감사하기 바랍니다.
재산을 잃었지만 겸손을 얻게 되었다면, 이것으로도 감사하기 바랍니다.
시16:6 “내게 줄로 재어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고 한 것처럼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아름다운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분명히 한계도 있습니다. 범위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내게 최상으로 여기고 감사하기 바랍니다.
거기에 행복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