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승리를 위하여
여호수아10:1-15
이상한 역설 같지만 충만한 축복의 땅(가나안복지)은 치열한 전쟁터입니다.
왜 축복의 땅이 평화롭지 못하고 피비린내 나는 전쟁으로 계속되는 것일까요?
진정한 축복은 저절로 가만히 있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쟁취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축복을 누리기 위해 치러야 하는 값이 있는 것입니다.
올림픽의 금메달은 그것을 따기 위해서 흘린 눈물과 땀의 결과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밭에 감춰져 있는 보화”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보화의 가치를 발견한 사람은 집을 팔아서라도 그 밭을 산다는 것입니다.
보화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미쳤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밭을 사는 사람은 그만한 가치를 알기에 과감하게 투자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알고, 그 나라의 축복을 얻기 위하여
전력을 다해 싸우는 자에게 그 나라는 주어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기쁨과 축복도 이를 얻기 위해 시간을 내고
정성을 다하여 헌신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안 하는 사람에게는 얻을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사단과의 치열한 전투를 회피하지 말고 온 힘을 다해 싸우기를 결단하기 바랍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저는 평화주의자인데요? 저는 싸움이 싫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진정한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폭력을 막아야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 폭행을 당하고 있는데도, 싸움이 싫어 구경만 하고 있다면,
이런 사람은 평화주의자가 아니라 비겁한 사람입니다.
‘난 아무 일도 안했는데요. 한 대로 안 때렸습니다.’하고 변명을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그것이 바로 죄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을 사랑한다면, 악과 맞서 치열한 싸움을 벌여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사단과 맞서 싸우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결국 악의 편에 서게 될 것입니다.
선과 악의 중간지대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무엇을 선택할 것입니까?
이런 말씀을 전제로 하고, 이제 본문의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가나안의 중심부를 강타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남부전선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여호수아10:1-2
1. “그 때에 여호수아가 아이를 빼앗아 진멸하되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 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한 것과 또 기브온 주민이 이스라엘과 화친하여
그 중에 있다 함을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듣고
2.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기브온은 왕도와 같은 큰 성임이요
아이보다 크고 그 사람들은 다 강함이라.”
2절에 있는 대로, 이스라엘의 존재는 가나안 족속에게 큰 두려움이었습니다.
21절 후반부에도 보면, “혀를 놀려 이스라엘 자손을 대적하는 자가 없었더라.”
이제 이스라엘 민족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저는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두려운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세상 사람들과는 뭔가 구별된 삶을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히11장에 있는 말씀대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예배에는 세상에서 맛볼 수 없는 하나님의 임재에 의한 거룩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랑을 실천하며,
희생과 헌신과 봉사의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언제나 떳떳하고 당당한 사람들입니다. 두려울 것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서도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들입니다.
이와 같은 경건함과 거룩함 때문에 세상 사람들로부터 구별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런 두려운 존재가 되길 바랍니다.
가나안의 다섯 왕들은 여호수아가 기브온과 함께 맺은 동맹을 두려워하면서
기브온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연합전선을 폈습니다.
그러자 기브온은 즉각 여호수아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었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싸워 주심으로 승리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승리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이를 통해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1. 길갈이 승리의 열쇠입니다.
여호수아10장에는 길갈이란 말이 다섯 번이나 나옵니다.
길갈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대단히 의미 있는 장소였습니다.
길갈이 어떤 장소입니까?
1. 길갈은 기억의 장소였습니다.
요단강을 육지처럼 건너고 난 다음에 그곳에 기념돌을 세웠던 곳입니다.
그래서 세월이 많이 흘러 후대에 누군가 이 돌의 의미를 물어오면,
하나님께서 요단강을 건너게 해 주신 이 놀라운 일을 기억하고 전해주기 위해서
세웠던 곳입니다.
2. 길갈은 그들의 죽음과 부활의 장소였습니다.
요단강을 건널 때 그들의 옛 삶은 죽고, 건넌 후 새 삶으로 다시 산 것입니다.
이제는 예전의 이스라엘과는 다른 민족이 된 것입니다.
3. 길갈은 회복의 장소였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할례를 받고 주님과의 교제를 다시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길갈은 이스라엘의 본부가 되었습니다.
거기서부터 출발을 하여 전쟁을 치렀고,(7, 9)
전쟁이 끝나고 난 다음에는 다시 길갈로 돌아왔던 것입니다.(15, 43)
여러분의 길갈은 무엇입니까?
그곳은 바로 갈보리의 골고다 언덕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거기서 주님과 함께 죽었고, 또 함께 다시 살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고, 그 안에서 새 힘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십자가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이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언제나 다시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다시 그곳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곳이 바로 우리의 영적인 본부이기 때문입니다.
조금 다른 의미에서 보면, 길갈은 바로 목양교회입니다.
성도들은 목양교회로부터 파송을 받아 세상에 나가서 영적인 싸움을 합니다.
그리고 다시 목양교회로 돌아와야 합니다.
여기서 치료도 받고, 쉬기도 하고, 영적인 에너지도 공급받아야 합니다.
목양교회가 여러분의 삶의 본부임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세상에서 승리하고도 돌아와야 하고, 패배해도 돌아와야 합니다.
목양교회는 여러분 삶의 본부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승리의 비결입니다.
2. 온전한 승리를 위해서는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언제나 진정한 승리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나갈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다고 했습니다.
여호수아10:10-11
10.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게 하시므로
여호수아가 그들을 기브온에서 크게 살육하고
벧호론에 올라가는 비탈에서 추격하여 아세가와 막게다까지 이르니라.
11.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여 벧호론의 비탈에서 내려갈 때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우박 덩이를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시매
그들이 죽었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 많았더라.”
이 말씀을 잘 읽어보면,
이스라엘이 이긴 것은 하나님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 많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대신 싸워주시니 이스라엘은 큰 승리를 거두게 된 것이었습니다.
14절 후반부에도 보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
그런데 여기 참으로 놀라운 사건이 나옵니다.
여호수아10:12-13
12.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넘겨 주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아뢰어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이르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하매
13. 태양이 머물고 달이 멈추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기까지 하였느니라
야살의 책에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고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도무지 이성적으로는 믿을 수 없는 놀라운 일이 여기 벌어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여호수아는 이런 명령을 할 수가 있었는지요?
태양에게 머무르라고 명령을 하고, 달에게 머무르라고 명령을 했다는 것입니다.
한 번 생각을 해 보십시오.
누군가 태양에게 이런 명령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제 정신이겠습니까?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태양이 머물고 달이 멈추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일은 분명 우리에게서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기적입니다.
그러나 때로 믿음으로 선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이런 기적을 이루어 주십니다.
여러분! 신앙이란 상식적인 것만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 것이요, 그분의 전지전능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불가능은 없다는 것을 또한 믿는 것입니다.
또 그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는 겁니다.
또한 그 하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싸워주고 계심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악과 싸울 때 실상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싸워주고 계십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면 이 싸움은 반드시 이기는 싸움입니다.
이미 이겨 놓은 싸움을 싸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사단과 싸워 승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이미 승리한 것입니다.
주님 안에 거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워주십니다.
물론 우리의 힘으로는 결코 사단을 이길 수 없습니다.
내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교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이 이기게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은혜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하는 생활입니다.
기도하는 자가 승리합니다. 하나님이 대신 싸워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자가 무서운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함으로 온전한 승리를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3. 최후의 순간까지 전면전을 펼쳐야 합니다.
연합전선을 펼쳤던 다섯 왕들은 모두 포로가 되어 붙들려 왔습니다.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수치를 당하게 되었고 결국 나무에 달려 죽게 되었습니다.
성경에는 왜 이렇게 잔인하게 죽이는 내용들이 들어 있을까요?
이것은 바로 우리가 죄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 죄를 제압한 것으로 만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완전히 멸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죄에 대해서는 우리가 가차 없이 제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서 방해가 되는 것이 있다면 과감하게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았으나
아직도 죄악에 이끌리는 성품은 남아 있습니다.
이것을 그냥 내버려 두어서는 온전한 승리를 이룰 수 없습니다.
죄는 용서받았으나 여전히 불평불만으로 가득하고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데 젖어 있다면 이를 과감하게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직도 이기심과 교만이 내 속에서 타오르고 있다면 근본을 잘라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죄악에 대해서 끝까지 전면전을 펼쳐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승리의 비결입니다.
온전한 승리의 순간까지 공격적인 믿음을 가지고 전진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