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근을 제거하라
여호수아7:1-15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의 앞길에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이 많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그 백성들은 그 시련들을 잘 극복해 왔습니다.
물이 불어나서 도무지 건널 수 없는 깊은 강, 요단도
물이 멈추어 서면서 육지처럼 건널 수가 있었고요,
난공불락의 여리고성도 말씀에 순종할 때 무너져 내리게 되었습니다.
승승장구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아무 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앞길에 제동이 걸렸습니다.
조그마한 성 ‘아이’에서 패배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여리고성에 비하면 아이성은 정말로 보잘 것 없는 작은 성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리고성을 무너뜨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를 하다니
이것은 도무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약36명의 전사자가 발생하였으며, 백성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5절 끝에 보면,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 같이 된지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에 여호수아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6-9절을 읽습니다.
6“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저물도록 있다가
7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넘겨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 우리가 요단 저쪽을 만족하게 여겨 거주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나이다.
8 주여 이스라엘이 그의 원수들 앞에서 돌아섰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9 가나안 사람과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듣고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 이름을
세상에서 끊으리니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여기 나오는 여호수아의 모습을 보십시오.
옷을 찢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있습니다.
기가 막혀서 할 말을 잊은 채 저물도록 넋을 놓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 전체를 점령해 들어가야 하는데
지금 이렇게 작은 성에서 패배를 하다니,
이제 무슨 용기로 가나안을 점령할 수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보통 적신호가 아닌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작은 성에서 오히려 패배하고 말았을까요?
또 어떻게 하면 이런 위기를 극복할 수가 있을까요?
이스라엘의 패배는 원인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승리가 군사력에 있는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그들의 패배의 원인도 군사력에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거기에는 분명한 화근 즉 화의 뿌리가 있었습니다.
이 원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그들은 한발자국도 더 앞으로 나갈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 속에서도 같은 원리가 적용이 됩니다.
우리의 실패와 곤경에는 때로 분명한 화근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먼저 그 화근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병을 치유하는데 있어서도 먼저 병의 원인을 찾아서 그것을 제거해야 합니다.
암이 발병되었다고 하면 그것이 어디에서 시작이 되었는지 그 원인을 찾아
먼저 그것을 제거해야 몸의 건강을 되찾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삶에도 어떤 문제가 발생되었다면 먼저 그 원인부터 찾아봐야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패배의 원인은 무엇이었습니까?
첫째는 교만이었습니다.
무너진 여리고성에 비하면 아이는 아주 작은 성에 불과했습니다.
그 성을 정탐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들어봅시다. 3절입니다.
“여호수아에게로 돌아와 그에게 이르되 백성을 다 올라가게 하지 말고
이삼 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이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하지 마소서”
그러나 여기에는 엄청난 함정이 있습니다.
마치 여리고성이 자기들의 힘에 의해 무너진 것 같은 착각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이 한 일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 밖에는 없습니다.
그 성을 무너뜨린 것은 모두 하나님이 하신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마치 자기들의 힘으로 한 것처럼
교만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이 교만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벧전5:5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우리는 여기서 잘 익혀 두어야 할 영적인 교훈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승리의 순간처럼 위험이 많은 때는 없다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가 위험한 것이 아니고,
일이 잘 될 때, 아무런 어려움이 없이 너무나 평안할 때
그 때가 사실은 가장 위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을 보세요.
사울에게서 미움을 받고, 죽음의 위기를 넘기며 쫓겨 다닐 때
그 때가 힘들고 어려울 때였지만
다윗의 시편을 보면, 그 때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의지하며 바라보았는지요?
그러나 다윗이 왕이 되고 난 다음에, 나라를 평정하고
블레셋을 쳐서 항복시키고, 모압과 암몬을 쳐서 굴복시키고 난 다음에
어디를 가든지 승전의 소식만을 듣고 있었던 그 때에
다윗은 그만 밧세바를 범하는 죄를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사무엘하 11장)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난도, 질병도, 인간관계의 어려움도 우리에게 고통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런 것보다도 우리를 더 위험에 빠뜨리게 만드는 것은 바로 자기과신입니다.
마치 모든 것을 내 자신이 이룬 것처럼 교만해 질 때처럼 위험한 때는 없습니다.
이만하면 됐다 싶을 때, 그 때가 바로 가장 위험한 때입니다.
잘 될 때, 더 겸손히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차라리 자기의 약함을 자랑한다고 했습니다.(고후12:9)
약할 때가 오히려 강한 때라고 고백합니다.
잘 된다고 교만하면 결국 패배의 늪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기독교인의 첫 번째 덕은 바로 겸손입니다.
더 겸손해지기 바랍니다.
두 번째 화근은 기도를 무시한 일입니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린 승리에 도취되어 그만 하나님의 지시를 기다리지 않고
그 다음 영토의 정복에 나선 것입니다.
만일 여호수아가 먼저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면 죄를 발견했을 것이고
그러면 아이성에서의 패배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기도는 승리의 순간에 더욱 필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승리하기 위해서도 기도가 필요하지만,
그 승리를 지속하기 위해서도 기도가 필요합니다.
계속적인 승리의 비결은 계속적인 기도에 있는 것입니다.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자신감이 넘치고, 의욕이 넘칠 때
기도는 더욱 필요한 것입니다.
왜 여호수아가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기도하지 않은 원인이 바로 교만이었습니다.
기도하지 않고서도 이 정도 쯤이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이 겸손입니다.
여러분이 죄로부터 구원을 받아 구원의 기쁨과 감격으로 충만하십니까?
지금 성령으로 충만하여 세상에 부러울 것이 아무 것도 없을 정도이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더욱 예수님께 밀착되어 있어야 합니다.
더 많이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사단의 시기와 공격의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화근은 불순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때 명령하신 것이 있습니다.
수6:18-19절을 함께 읽습니다.
18 “너희는 온전히 바치고 그 바친 것 중에서 어떤 것이든지 취하여
너희가 이스라엘 진영으로 바치는 것이 되게 하여
고통을 당하게 되지 아니하도록 오직 너희는 그 바친 물건에 손대지 말라.
19 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니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지니라.”
그것은 이방의 문화와 종교의 영향으로부터 이스라엘을 지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배려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발생이 되었습니까? 수7:11-12을 읽습니다.
11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나의 언약을 어겼으며
또한 그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져가고 도둑질하며 속이고
그것을 그들의 물건들 가운데에 두었느니라.
12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들의 원수 앞에 능히 맞서지 못하고
그 앞에서 돌아섰나니 이는 그들도 온전히 바친 것이 됨이라
그 온전히 바친 물건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그런데 아간 장군이 하나님께 바쳐진 물건을 몰래 훔치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순종했는데, 단 한 사람 아간이 불순종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11절에 보면, 하나님은 ‘아간이 범죄하였다.’고 말씀하지 않고
‘이스라엘이 범죄하였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간 장군 한 사람의 죄악 때문에 이스라엘 전체가 패배를 당하게 된 겁니다.
이처럼 한 사람의 죄악은 모든 사람에게 악영향을 미치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특히 지도자 한 사람의 죄악의 영향은 너무나 큰 것입니다.
누가 죄를 범하면 이것은 한 사람의 죄로 끝나지 않습니다.
주님은 자기 백성이 다 죄를 지은 것으로 보십니다.
한 개인이 영적생활이 식어지면 주위 사람들에게도 영향이 가게 마련입니다.
교회 전체의 승리는 각 교인들의 승리의 삶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이 패배를 하면, 교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한 사람을 붙들어주고 함께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공동체인 것입니다.
군대에서 연대책임이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어느 한 병사의 잘못을 모든 소대나 중대원이 함께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런 죄를 범했을 때, 어떻게 이를 극복할 수 있습니까?
20-21절을 읽습니다.
20 “아간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참으로 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게 범죄하여 이러이러하게 행하였나이다.
21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그 무게가 오십 세겔 되는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가졌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을 내 장막 가운데 땅 속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나이다 하더라.”
먼저 아간은 자신의 범죄를 시인하였습니다.
죄를 지었을 때, 그 죄를 시인하고 고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죄를 자꾸 감추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감추는 것은 해결의 방법이 아닙니다. 고백하고 들추어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죄는 범한 장본인이 들추어내야지 다른 사람이 고발하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 또 다른 상처만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아간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가 욕심을 내어 훔쳤던 것을 가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온 가족이 아골 골짜기에서 죽임을 당하였으며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은 불태워지게 되었습니다.
물질에 대해 욕심을 낸다고 해서 다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지도 않은 것을 훔친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허락해 주지 않으신 것은 그 어느 것 하나도 내가 소유할 수 없습니다.
이를 알아야 합니다.
아간 장군과 그 가족의 멸망은
라합과 그의 가족의 구원과 너무나 대조가 됩니다.
아간은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이었으나 말씀에 불순종하므로 말미암아 멸망하고
라합은 비록 이방여인이었으나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므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는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엎드려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고 하십니다.
이럴 때 하나님의 백성의 승리는 보장될 것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