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줄에 감추어진 더깊은 의미

붉은 줄에 감추어진 더 깊은 의미

여호수아6:22-25

 

난공불락의 여리고성은 일순간에 무너져 내렸고,

이 성에 살고 있었던 모든 사람들은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이 세상에 있는 것은 그 어느 것도 영원하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아무리 견고하고 든든하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의지하지 아니하고

자기들이 세운 성을 의지합니다.

마치 그것이 자기를 언제까지나 지켜줄 수 있는 것처럼 의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재물을 쌓아 놓았다 할지라도 그것은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학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명문대학을 나오고,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자기를 지켜주는 것은 아닙니다.

지위도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높은 지위에 올랐어도 자기가 기대하는 만큼 오래도록 그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마치 이런 것들이 자기를 언제까지나 지켜 줄 것처럼

그런 것들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여리고성처럼 결국 무너지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리고성의 붕괴를 통해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라합의 한 가족이 구원을 받았다는 점입니다.

비록 성은 무너질지라도 하나님은 라합의 가족을 구원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견고한 여리고성과 라합의 가족을 비교할 때 무엇이 더 가치 있는 것일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세속적인 가치관으로는 여리고성이 더 가치 있다고 할지 모릅니다.

값으로 따지면 그게 얼마이겠습니까?

그러나 영적인 의미에서는 한 영혼이 더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비록 여리고성은 포기할지라도

거기 구원받아야 할 한 영혼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에게 이 눈이 열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 여러분의 주변에 구원받아야 할 한 영혼이 있다면

그를 구원하는 일을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그 영혼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 그 하나님의 눈으로 보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라합은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까?

여호수아2:9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수2:11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이 말씀에 의하면 라합은 이스라엘 민족이 믿고 있는 그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그 믿음이 있었기에 목숨을 걸고 정탐꾼들을 숨겨주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잘못 들통이 나면 라합은 죽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라합은 자기의 믿음대로 모험을 걸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두 정탐꾼은 여호수아2:18에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 내린 창문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버지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붉은 줄은 정탐꾼들과 라합의 가족과의 암호였습니다.

창문에 매달은 붉은 줄은 그 가족에게

마치 피로 물든 주님의 십자가처럼 구원의 줄이 되었습니다.

붉은 줄은 유월절 문설주에 바른 어린양의 피와 같은 것이었으며,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앞세우고 나아갈 때, 멸망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모두가 다 멸망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붉은 줄이 매달린 집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라합의 집은 구원의 집, 교회를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목양교회가 바로 이런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목양교회 안에 들어오기만 하면 모두 구원을 받는 역사가 일어나길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이보다 더 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이제 본문22절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수아가 그 땅을 정탐한 두 사람에게 이르되 그 기생의 집에 들어가서

너희가 그 여인에게 맹세한 대로 그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 내라 하매”

그래서 라합과 그 부모와 그 형제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먼저 이끌어 냈습니다.

23절에 보면 그 친족들까지 다 이끌어 내었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불로 그 성을 사르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저는 큰 은혜를 받게 됩니다.

라합 한 사람의 믿음의 행위 때문에 그 온 가족과 친족들까지 구원을 받았습니다.

한 사람의 믿음이 이렇게 귀한 것입니다.

한 사람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을 당할 때 구원을 받았던 롯과

본문에 나오는 라합을 비교해 보게 됩니다.

롯은 그 성이 멸망을 당한다고 도망갈 것을 사위들에게 권면했으나

농담으로 들을 뿐 따라 나서지 않아 결국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라합은 그 온 가족을 모으고 그 모든 친족을 구원해 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지도력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라합과 같은 영적인 영향력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한 사람 때문에 여러분의 모든 가족이 구원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 한 사람의 구원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온 가족이 함께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한 마디 말이 영향력이 있어서 모두가 순종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보다 더 깊은 의미는 없을까요?

구원받은 라합의 생애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 점에 더 큰 의미가 숨겨 있습니다.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구원받은 라합에게는 기생이라는 말이 붙어 다닙니다.

천한 여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태생은 천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졌기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여인은 모두가 멸망당할 때 구원을 받았다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물론 죽음의 위기에서 살아났다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멸망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그 자체로 엄청난 축복이요 위대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히 생존하기 위해서 사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그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위대한 목적을 이루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Rick Warren을 통해서 배우게 된 인생의 다섯 가지 목적은 무엇입니까?

예배, 주님을 닮아가는 훈련, 성도들 간의 교제, 은사에 따른 봉사, 전도입니다.

이런 목적을 제대로 잘 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목적을 이루어드려야 합니다.

 

라합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그녀는 죽음의 위기에서 구원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위대한 믿음의 가문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라합은 비록 기생 출신이었으나 구원을 받고 난 다음에

살몬과 결혼하여 자녀를 낳았으며

결국 이스라엘 역사에 가장 존경받는 다윗왕의 고조할머니가 되었습니다.

다윗왕의 족보를 보면,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왕을 나으니라.”

 

오늘 본문의 말씀 자체에서는 찾을 수 없지만

그 뒤에 숨겨져 있는 보다 더 큰 엄청난 의미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렇게 구원함을 얻은 라합이 결국에는

메시아의 족보에 오르는 위대한 인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구원 자체보다 더 깊은 의미요, 가치가 될 것입니다.

 

라합이 여리고성의 멸망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출발점에 불과합니다.

그 여인은 기생의 자리에서 이제는 위대한 가문의 아내가 되었으며

나중에 그의 후손 중에 역사에 길이 남는 위대한 다윗 왕이 탄생하였으며,

보다 더 궁극적으로는 인류의 구세주의 족보에 오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여리고성이 무너질 때 한 여인 라합이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얼마나 중요한 사건인가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됩니다. 할렐루야!

 

전라남도 신안군 암태면 수곡리 한 작은 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아가씨가 시집을 와서, 시집살이도 잘하고 남편도 잘 받들어 섬겼는데

아기를 낳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목포에 소실을 두고 애까지 낳고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결국 10년이 지나도 아기가 없어 소박을 맞게 되었답니다.

떠나가는 여인의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운지 천근만근을 지고 가는 것 같았답니다.

부잣집이라 한양 소식을 간간히 들었고 한강다리 얘기도 들었습니다.

‘차라리 한강 다리에 가서 죽어버리자. 그러면 아무도 모르겠지’

이렇게 결심을 하고 서울로 올라와서

낮에는 이목이 있어 피하고 밤에 죽기 위해 거리를 배회하던 중

수많은 사람들이 어느 큰 집으로 몰려가는 보게 되었습니다.

궁금해서 가 보았더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창문너머로 보니까

앞에 있는 한 아저씨가 외치는 소리

“시집살이 하다가 쫓겨난 사람은 다 내게로 오시오.

삶의 의욕을 잃고 죽기로 작정한 사람도 다 내게로 오시오”

당시 유명한 부흥강사였던 이성봉 목사님의 부흥집회였습니다.

그 말이 꼭 자기에게 하는 말씀이었기에 큰 은혜를 받고,

그 자리에 거꾸러져 흐느껴 울고 있었습니다.

집회가 끝나고 사람들이 다 갔는데도 우는 소리가 있어,

목사님이 불러 자초지종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는 예수 안에서 완전히 새로운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길로 목사님의 특별한 배려로 신학공부를 하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됐습니다.

소박맞은 여인이 한양에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부두에 나왔는데

떠날 때와는 판이하게 그 모습이 달랐습니다.

훨훨 날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시집의 제일 어른에게 찾아가 복음을 전하고 그 온 가족이 믿게 되었습니다.

그 섬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어린이들이 졸졸 따라 다녔는데 그렇게 따라 다니면서 예수를 믿어서

지금까지 그 섬에서만 68명의 목사가 배출되었다고 합니다.

그 중에는 ccc 총재이신 김준곤 목사님을 비롯하여,

성결교 총회장을 지내신 이만신 목사님,

한신대학교의 정태기 교수님을 비롯한 위대한 목사님들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작은 섬에서 70명이 넘는 판검사가 그 섬에서 배출되었다고 합니다.

한 사람의 변화가 이처럼 엄청난 역사를 이루어 낸 것입니다.

 

그 여인이 바로 문준경이라는 전도사님이십니다.

이 여인은 자칫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그냥 한강에서 죽었을 여인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을 예수님을 만나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걸로 끝나지 않고 위대한 인물을 길러내는 영적인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시골의 평범한 한 여인도 이렇게 엄청난 영향력을 미칠 수가 있습니다.

 

우리 목양의 성도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묻은 복음으로 구원을 받을 뿐 아니라,

역사에 길이 남는 위대한 믿음의 가문을 세워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민족의 역사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인물을 길러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학교 교사들을 위해 기도 많이 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들의 수고에 격려와 위로를 아끼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목양교회 학교에서 얼마나 위대한 인물이 나올 지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원 받은 것만으로 만족하지 마시고,

구원시켜주신 주님의 목적을 위해 살아가길 바랍니다.

역사를 위해 위대한 발자취를 남기시기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