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실하신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

여호수아5:10-15

 

 

오늘은 우리교회가 맥추감사절로 지키는 날입니다.

본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3대 절기를 지켰습니다.

그것은 유월절과 맥추절과 수장절입니다.(출23:14-17)

모든 남자는 이 세 절기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 제물을 바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임의대로 정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맥추절은 첫 번 추수를 하고 지키는 절기로서

주로 유월절 후에 7주간이 지난 다음에 지켰기에 칠칠절이라고도 불렀습니다.

그 다음날은 오순절이 되는 것이지요.

이것은 기독교적인 절기로 보면,

유월절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절기와 연관성을 가지게 되고,

오순절은 성령강림과 관련이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계절적으로 보면 맥추절은 오순절과 더 깊은 관련이 있지만,

우리는 첫 번 추수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전통적으로 7월 첫 주를 맥추절로 지켜오고 있습니다.

6개월을 보내고 상반기를 돌아보며

그 동안 베풀어 주신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절기로 지켜온 것입니다.

 

감사는 환경과 조건에 좌우된다기보다는

깨달음과 더 깊은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환경 속에 산다고 할지라도 불평하며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말 힘들고 어려운 형편에 처해 있으면서도

기쁨과 감사로 그 어려움을 잘 극복해 가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첫 목회를 했던 교회에는 김순봉이라는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교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는데

땅 한 평 없이,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고, 도지를 내며 사는, 소작농이었습니다.

참으로 가난하기 짝이 없는 가정이었습니다.

건장한 아들이 셋이 있었는데, 모두가 제 역할을 잘 하지 못해서

가정의 살림살이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그 집사님 자신은 천식이 심해서,

숨을 쉴 때마다 쇠 소리를 내면서 숨을 헐떡거리며 고생을 했습니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정도가 되면, 담임전도사인 저를 불러 기도를 받았는데

연락을 받고 가보면,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결국 병원에 실려 가서, 산소호흡기 신세를 져야 하는 경우가

일 년에도 몇 차례씩이나 되었습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다들 안 됐다고 걱정을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집사님의 입에서는

“주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런 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말합니다.

“도대체 저 사람이 감사할 일이 뭐가 있느냐?

어떻게 저런 지경이 되었는데도 저렇게 감사할 수가 있느냐?

내가 저 사람 같으면 난 못살아. 예수 믿는 게 좋기는 좋은 가보다.”

 

세월이 벌써 많이 지났지만, 지금도 제 눈에는 그 집사님의 얼굴이 선합니다.

저는 그 때 깨달았습니다.

“아, 감사는 선택이구나.

감사하기로 작정하고 어떠한 경우에도 감사하면, 감사할 수가 있는 것이구나.”

 

 

감사의 눈으로 보면, 매사에 감사할 수 있지만,

불평의 눈으로 보면, 만사가 불평거리일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감사하는 사람입니까? 불평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감사할 일이 있으면 감사하고, 불평할 일이 생기면 불평하는 사람입니까?

감사가 습관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감사하기로 작정하기 바랍니다.

 

 

여러분 아시죠? 사랑의 원자탄의 주인공 손양원 목사님이요.

그 목사님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자기의 두 아들을 죽인 그 원수를

당신의 양 아들로 삼았습니다.

인간으로서는 도무지 불가능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한 영성의 대가입니다.

그 목사님이 하나님 앞에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도대체 이런 상황에서 무슨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두 아들이 억울하게 죽었는데 말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이럴 때, 감사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손 목사님의 감사의 기도를 보면, 이런 내용이 담겨져 있는 것을 기억합니다.

주님을 위하여 순교하는 것이 성도의 최고의 영광인데

제 아들을 순교자로 받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한 집안에 순교자가 한 사람만 나와도 가문의 영광인데

우리 집에서 두 아들이나 순교자가 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제 아들을 죽인 원수를 제 아들로 삼을 수 있는 마음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정말 위대한 깨달음입니다.

영적인 관점이 아니면 도무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눈이 열리니까 이런 상황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처해 있는 상황이 어떠하든지 감사를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눈이 열리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가 있는데,

전반부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가서

첫 번째 유월절을 지킨 사건과 유월절 이튿날에 그 땅의 소산물을 먹게 되자

그 다음 날에 만나가 그친 일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광야생활 가운데

날마다 하나님이 먹이신 것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매일같이, 마치 눈을 내리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의 진영에

만나를 내려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그마치 40년 동안이나 만나로 양식을 삼을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단 말입니까?

광야에서의 하루하루는 기적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렇게 먹이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이런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가 날마다 먹고, 입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입니다.

깊이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건강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오, 일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오,

일할 수 있는 직장도, 일하고자 하는 의욕도 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내가 노력해서 돈을 번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다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오늘도 여러분이 결단하고 선택해서 교회에 온 것 같지만,

더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을 불러 주신 것입니다.

남들에게 없는 관심과 열정을 여러분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 교회에 나올 수 있도록 누군가의 안내를 받게 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분명 여러분에게 주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입니다.

그 은혜를 감사하기 바랍니다.

 

이제 가나안에 들어가 그 땅의 소산물을 먹기 시작하자

더 이상 만나는 필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 마지막 순간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식량을 책임져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가나안의 소산물을 통해서 양식을 삼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빈틈이 없고 정확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처럼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마태복음6장에서 말씀하십니다.

하늘에 나는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를 보라.

이 모든 것들을 내가 먹이고 입히지 않느냐?

너희들은 이것들보다 더 귀하지 아니하냐?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염려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차라리 하나님이 우리를 먹이실 것을 믿으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기까지 우리가 먹고 입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우리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를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앞으로도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실 것을 또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후반부에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의 군대장관이 나타나서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고 말씀하시는 일이 나옵니다.

이는 마치 호렙산에서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의 모습을 상기시킵니다.

하나님은 모세와 함께 했던 것처럼 여호수아와도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게 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여호수아로 하여금 요단강을 육지처럼 건너게 하시더니

이제는 모세에게 나타나신 것처럼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셔서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바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지키시는 신실함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모세를 구별하신 것처럼 여호수아를 구별하시는 하나님의 보살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약속하신대로 행하시는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를 드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