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를 벗어 버리라

수치를 벗어버리라

여호수아5:2-9

 

우리는 지금 여호수아서를 통해서

광야 40년을 마치고 가나안 땅을 점령해 들어가는 과정을 함께 순례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요?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도 요단강을 육지처럼 건너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완전히 축제 분위기에 휩싸여 있습니다.

얼마나 고대하며 기다렸던 날입니까?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분위기와는 완전히 대조적으로

가나안에 살고 있는 족속들은 이러한 이스라엘의 소식을 듣고서

마음이 녹았고, 정신을 잃었다고 여호수아5:1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완전히 겁에 질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이들에게 하나님은 이제 할례를 행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본문 2-3절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할례를 행하라는 하나님의 요구는 어찌 보면 아주 엉뚱해 보입니다.

또 이것은 전술적으로는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그들이 할례를 받고 고통 중에 있을 때 가나안에 살고 있는 족속들이 쳐들어온다면

그들이 패배하는 것은 너무나 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은 할례를 행하도록 한 것일까요?

할례가 도대체 뭐길래 말입니다.

 

   할례는 오늘날로 말하면 포경수술입니다.

이스라엘 남자들은 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도록 율법에 제정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건강상의 이유나 청결의 문제만 아니라, 계약의 상징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할례를 받음으로써

그들이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상징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이러한 선민의식은 아주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들은 무할례자라고 해서 완전히 무시하고

할례받은 이스라엘 백성들만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은 백성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할례 받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그들에게 아주 수치스럽고 불명예스러운 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는 모두 할례를 받았지만

광야에서 태어난 새로운 세대들은 아무도 할례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애굽에서 나온 군사들은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모두 광야에서 죽었고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들은 모두 애굽에서 나올 때 20세가 되지 않은 자들이었으며

광야에서 새로 태어난 신세대들이기 때문입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되었습니까?

우리는 그 이유를 6-7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음성을 청종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맹세하사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하리라 하시매

애굽에서 나온 족속 곧 군사들이 다 멸절하기까지

사십 년 동안을 광야에서 헤매었더니

 

그들의 대를 잇게 하신 이 자손에게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하였으니

길에서는 그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못하였으므로 할례없는 자가 되었음이었더라”

 

이 말씀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죽기까지 40년을 광야에서 헤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할례를 받지 못한 것은

바로 그들의 불순종에 대한 일종의 하나님의 잠정적인 심판이었던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순종했더라면 40년 동안이나 광야에서 헤맬 필요가 없었을 것이며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오래도록 무할례자로 살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하십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8-9절을 함께 읽어볼까요?

 

“또 그 모든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마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머물며 낫기를 기다릴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할례는 그들의 불순종의 수치를 벗는

대단히 중요한 영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길갈”이란 말은 ‘굴러 간다’는 뜻인데, 바로 수치가 굴러가

결국 그 수치를 벗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런 중요한 뜻이 있기에 하나님은 전술적으로는 아주 불리하기 짝이 없는 할례를

가나안 땅 안에 들어가서 행하도록 명령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들이 이러한 수치를 온전히 씻기 전에는

가나안 정복의 역사를 시작하기에 아직 준비되지 못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이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는 일보다도

먼저 하나님 앞에서 수치를 벗어버리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기서 이제 우리의 삶을 돌아봅시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 벗어버려야 할 수치는 무엇입니까?

이 수치를 벗어버리는 것이 무엇보다도 우선되는 일입니다.

 

여러분이 크게 성공하는 일보다도 더 우선하여 벗어야 할 수치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가정이 풍요로워지는 것보다 더 우선하여 벗어야 할 불명예는 무엇이죠?

우리교회가 크게 부흥하는 일보다도 먼저 해결해야 할 수치는 무엇입니까?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믿지 않는 사람과 아무런 다를 바 없이 살아가고 있다면

이는 성도의 수치입니다.

성도란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성도가 세상 사람과 아무런 구별이 없이 전혀 거룩함이 없다면 수치입니다.

또 세상 사람들에게 아무런 매력을 던져주지 못한다면 이것은 성도의 수치입니다.

혹시 성도들의 삶은 세상 사람들에게

냄새나는 구닥다리처럼 취급받고 있지는 않습니까?

세련되지 못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고리타분한 사람들처럼 비쳐지지는 않습니까?

 

본래 성도들의 삶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성도들의 삶은 여러 가지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결코 굴하지 아니하고 꿋꿋하게 믿음을 지키며 불의와 싸워 이긴 승리의 삶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히11:38)

성도들은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비록 세상의 학문을 많이 연마하지 못한 사람일지라도

세상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할 정도의 지혜로 그들을 굴복시키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매력을 주기는커녕,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받는 삶을 살고 있다면

이것은 정말로 성도의 불명예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수치를 벗어버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가나안을 향한 진군을 계속해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나안 정복에 앞서 할례를 행하도록 명령하신 것입니다.

이런 모든 수치를 벗어버리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 우리에게 할례는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마음의 할례입니다.

성경에 육체의 할례만 아니라 마음의 할례에 대해 말씀하는 구절들이 많습니다.

 

신10:16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신30: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렘4:4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

 

렘9:26 “무릇 모든 민족은 할례를 받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

 

롬2: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이스라엘은 육체에 할례를 베풀었으나 우리는 마음에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마음의 할례란 무엇일까요?

존 웨슬리는 마음의 할례를 4가지로 설명했습니다.

 

첫째는 겸손입니다.

겸손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곧 우리는 온갖 죄에 빠져 있으며,

하나님의 영의 도움이 없으면

죄를 더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을 원한다든지, 선을 행하게 한다든지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겸손입니다.

마음에 할례를 받은 사람은 겸손합니다.

 

둘째로 믿음입니다.

마음에 할례를 받은 사람은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어떠한 행위로도 온전해 질수 없으며

오직 믿음만이 우리를 건전하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고칠 수 있는 유일한 약은 믿음입니다.

특히 그리스도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자기 몸을 내어주셨고,

하나님과 화해시켜 주셨으며,

그의 피로 속죄함을 받아 죄 용서함을 받는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바로 마음의 할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셋째는 희망입니다.

마음의 할례를 받은 사람은 희망을 갖습니다.

무슨 희망입니까?

이제는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므로 하나님을 향해 바로 서 있으며

생명 길을 끝까지 걸어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것입니다.

또 현실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하늘에 영광의 면류관이 예비돼 있다는 희망 속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겁니다.

 

네째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겸손과 확고한 신앙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우리의 마음이 더러움에서 깨끗하게 됩니다.

그러나 완전하게 되려면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해야 합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요 계명의 종결입니다.

마음에 할례를 받은 사람은 더 깊은 사랑을 실천하게 됩니다.

 

이러한 마음의 할례를 받을 때 수치는 벗어지고 명예를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겸손과 믿음, 소망, 사랑 곧 마음에 할례 받은 자의 삶을 산다면

우리는 수치를 벗어버리고 다시 참 그리스도인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겸손의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만 구원받을 수 있음을 믿으십시오.

우리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천국의 영광에 이르게 될 희망을 또한 가지십시오.

그리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수치는 벗겨지고 그리스도인의 명예를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그제야 우리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그 후에야 여러분 개인과 가정과 교회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큰 부흥의 역사는 바로 이러한 마음의 할례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마음에 할례를 받고 모든 수치를 벗어버리고 앞을 향해 전진하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