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듣는 태도
여호수아1:10-18
하나님은 모세가 죽고 난 다음에 두려워하고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셔서
‘두려워하지 말라, 강하고 담대하라’고 용기를 주셨습니다.
모세와 함께 했던 것처럼 여호수아와도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다만 여호수아에게는 율법책을 주야로 묵상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다 지켜 행하라고 하십니다.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할 것이며, 네가 하는 일이 형통하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오늘은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여호수아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말씀을 듣는 태도는 다 같지 않습니다.
씨 뿌리는 비유에 보면, 네 종류의 태도에 대해서 나옵니다.
첫째는 길가와 같은 마음입니다.
이 사람은 말씀을 들어도 전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관심도 없습니다.
결국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말씀의 씨앗을 빼앗아버립니다.
둘째는 돌밭과 같은 마음입니다.
이 사람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을 받습니다.
그러나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넘어지는 사람입니다.
셋째는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입니다.
이 사람은 말씀을 듣지만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 때문에 넘어지는 사람입니다.
넷째는 옥토와 같은 마음입니다.
말씀을 듣고 깨달을 뿐만 아니라 그 말씀대로 순종하므로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데 100배, 혹은 60배, 혹은 30배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여러분은 말씀을 들을 때, 어떤 태도를 취하고 계신가요?
특히 자기의 형편과 사정이 힘들고 어려울 때, 여호수아처럼 두렵고 떨릴 때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
그냥 좋은 말씀이긴 한데, 그 말씀을 들어도 여전히 근심하고 걱정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그 말씀을 들을 때, 새 힘을 얻고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까?
여호수아는 어떻게 했습니까? 10절과 1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에 여호수아가 그 백성의 관리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진중에 두루 다니며 그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양식을 준비하라.
사흘 안에 너희가 이 요단을 건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사
차지하게 하시는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들어갈 것임이니라 하라”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믿고,
백성들에게 가나안 점령을 위해 나아갈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얼핏 보면, 별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니 그 말씀대로 순종하고 전진해 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그 위대한 지도자 모세도 처음에는 이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이집트 궁중에서 40년을 보내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하여 40년을 보낸 모세에게
하나님은 나타나셔서 이집트의 바로 황제에게 가서 말하고
히브리 백성들을 데리고 나오라고 하십니다.
그때 모세가 어떻게 했습니까?
“예, 알았습니다. 누구의 말씀인데 제가 거역을 하겠습니까?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렇게 했습니까?
아닙니다. 모세는 “제가 어떻게 바로에게 갈 수 있습니까? 저는 못갑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반드시 함께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시며,
앞으로 되어 질 일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못가겠다고 합니다.
바로가 자기의 말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고,
뿐만 아니라 히브리 백성들이 자기의 말을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제 지팡이가 뱀이 되게 하는 일과
손에 문둥병이 발하였다가 낫게 하는 표징을 보여주시면서
이와 같이 함께 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모세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하다는 핑계를 댑니다.
하나님은 ‘누가 입을 지었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고 하시면서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고 하십니다.
그런데도 “오,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제 노하시면서 “말 잘하는 형 아론이 있지 않느냐?”고 책망하십니다.
우리도 때때로 모세처럼 현실의 어려움을 보면서 핑계를 대고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여호수아의 믿음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여호수아에게 있어서 현실은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갑자기 모세가 다시 살아난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함께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받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그 말씀으로 용기를 얻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한 분이시며,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는 능력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난 주간 강남1속을 심방했습니다.
박성선 권사님이 인도하시는 속회인데, 윤계옥 권사님이 속장님입니다.
그런데 윤계옥 권사님은 허리 때문에 수술을 받고
여러 달을 꼼짝도 못하고 누워 있어야 했습니다.
게다가 바이러스가 침투되어 거의 죽을 뻔한 위기를 겪기도 했습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때에 제가 병원에 심방을 갔었는데,
그 때 제가 전한 말씀이 이사야41:10입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심방을 갔더니 그 말씀에 형광펜으로 줄을 그어 놓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그 말씀을 읽고 묵상했다고 합니다.
그 말씀으로 위로와 힘을 얻었습니다.
또 환상 중에 주님께서 아픈 곳을 손으로 만지시며 치료하시는 것을 보았답니다.
아직도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아서 일어나고 앉기도 힘들지만,
그래도 많이 호전이 되어 집안에서 움직이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아직도 현실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도 말씀을 붙드는 신앙이 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믿지 못하고 망설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목양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다음은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가 전하는 말씀을 듣고
반응하고 있는 백성들의 태도를 살펴봅시다.
모세가 살아 있을 때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 동편의 땅을 달라고 요구하였고 하나님은 그렇게 해 줄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여호수아는 그 약속을 상기시키면서 그렇게 해 주겠지만,
용사들은 무장하고 형제들보다 앞서 건너가서 가나안을 점령하기까지 함께 하고
그 다음에 요단 동편의 땅으로 돌아오라고 명령합니다.(12절-15절)
어찌 보면, 이 두 지파 반이 요단 동편의 땅을 요구한 것은
가나안을 점령하는 전쟁에 참여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요단 동편의 땅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그 땅을 달라고 한 것은
잔꾀를 부려서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자 하는 술수를 부린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전쟁에 함께 참여하고 난 다음에 그 땅을 차지하라 합니다.
그럴 때 “왜 우리가 그 전쟁에 참여해야 합니까? 우리는 못합니다.”라고
항변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나오면 지도자인 여호수아는 참으로 입장이 곤란해집니다.
민족공동체는 사분오열될 수가 있습니다.
저마다 자기 편한 것만 내세우고, 자기끼리 싸우고 다툽니다.
이렇게 되면 여호수아는 히브리 민족 공동체를 가나안으로 이끌고 갈 수 없습니다.
어떤 공동체든지 제 이익만 챙기고,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협력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언제든지 자기주장은 강합니다. 들어보면 나름대로 일리도 있습니다.
그런데 공동체를 위한 희생이 없습니다. 다 자기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이런 얌체 같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매사에 지도자의 말에 순종하지 않고 불평하며 원망하고
전체의 분위기를 흐려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언제나 보는 시각이 부정적입니다.
그 내용이 논리적이고 타당할지는 모르지만,
태도가 부정적인 사람은 공동체 전체에는 아주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자기 입장만 생각하지, 공동체 전체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도대체 교회가 혹은 국가가 어떻게 되자고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는 이러한 상황에서
뭐라고 말하는지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16절-18절입니다.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
우리는 범사에 모세에게 순종한 것 같이 당신에게 순종하려니와
오직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와 함께 계시던 것 같이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나이다.
누구든지 당신의 명령을 거역하며 당신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니 오직 강하고 담대하소서.”
저는 이 말을 들은 여호수아의 얼굴이 어떠했을까를 상상해 봅니다.
너무나 감동이 되어 그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았을까?
그 백성들의 이 말은 여호수아에게 너무나 큰 용기가 되고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여호수아의 절대적인 지지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정치에서는 반드시 견제와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삼권을 분립시킵니다.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로 나누어 놓습니다.
또 여당만 아니라 야당이 있어서 견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야당의 역할은 견제하는데 있는 것이지,
정부가 아무 것도 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때로는 반대를 위한 반대에 치닫는 경우도 많이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나라가 어떻게 되기를 바라고 그러는 것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야당적 기질을 가지고 교회에까지 들어와서
영적 지도자를 위한다는 미명 아래, 매사에 까다롭게 하고,
교회 일에 부정적이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목양교회에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해 없이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말하는 백성들의 소리를 듣게 됩니다.
지도자의 말에 순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 여호수아의 지도력은 백성들에게서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범사에 모세에게 순종한 것 같이 순종하겠다고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 계시던 것 같이 함께 계시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지도자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힘을 북돋아주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누구든지 그의 명령을 거역하며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충성을 맹세하고 있습니다.
이 말에 여호수아는 더욱 용기백배했을 것입니다.
이제 여호수아는 강하고 담대하게 그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을 향해 가게 됩니다.
정치 권력을 가진 자에게 그렇듯이, 목회자에게도 견제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모두가 견제자가 되려고 하지 마십시오.
사명감을 가지고 목회자를 힘들게 하는 자가 되려고 결심하지 마십시오.
해 보지도 않고 무조건 반대하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어떤 면에서 견제자는 몇 명이면 족합니다.
그리고 목회자의 아내는 가장 강력한 견제자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절대적인 지지자가 되어야 합니다.
새들백교회의 Rick Warren 목사님은 성공의 비결이
‘실수하고도 안심할 수 있는 분위기’라고 했습니다.
그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고 합니다. 잘해보려고 했는데 실패도 많이 했답니다.
그러나 모두가 믿어주고, 기다려 주었다고 하는 겁니다.
우리 목양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에도 순종할 뿐 아니라
영적 지도자의 지도력에도 순종하는 태도를 지닌 성숙한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하면 목양교회의 미래에 큰 승리가 있을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