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하여도

그러하여도

시편31:9-16

 

 

어떤 왕이 두 신하를 불러서 한 가지씩 임무를 맡겼습니다.

한 신하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것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신하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선한 것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두 신하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닌 후에 상자 하나씩을 들고 돌아왔습니다.

먼저 가장 악한 것을 가져온 신하의 상자를 열었습니다.

그랬더니 거기에는 사람의 혀가 들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헐뜯는 일에 쓰이게 될 때 이보다 악한 것이 없다는 겁니다.

다음에는 가장 선한 것을 가져온 신하의 상자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거기에도 사람의 혀가 들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며, 사람을 사랑하고 칭찬하며 격려하는 일을 위해 쓸 때

세상에 이보다 더 선하고 아름다운 없었다는 겁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사람의 혀야말로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일도 할 수 있고, 가장 악한 일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혀를 가지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혀로 어떤 말을 하며 살고 계십니까?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일을 위해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형제와 자매를 격려하고, 위로하고, 칭찬하는 일을 위해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사실 혀를 다스리는 것은 마음입니다.

아무리 감사하는 말을 하고 싶어도 마음에 감사가 없다면

감사하는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진정한 감사의 말은 감사하는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마음에서부터 나오지 않는 감사는 가식일 뿐입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는 사람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오직 감사하는 사람만이 행복할 수 있습니다.

행복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하며 살기에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원리를 잘 알아야 하겠습니다.

 

어느 부잣집에 황소 한 마리와 노새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답니다.

먹는 것도 같이 먹고, 쉬는 것도 같이 쉬며 늘 함께 일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황소의 마음속에 불평하는 마음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주인이 노새보다는 나에게 더 힘든 일을 시키는 것 같아.

왜 똑같이 먹고 쉬는데 왜 나만 일을 더 많이 해야 한단 말야.󰡓

황소는 앞으로 일을 안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주인이 일을 하라고 끌어내도 외양간에서 꼼짝도 안하고 누워만 있었습니다.

주인은 도무지 힘으로 황소를 끌어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습니다.

놀고먹던 황소에게 슬슬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일을 하고 돌아온 노새에게 물었습니다.

 

󰡒노새야, 내가 일하지 않고 놀고 있는 것에 대해 주인이 아무 말도 안 하니?󰡓

󰡒아니, 아무 말도 없었어.󰡓

󰡒정말 아무 말도 없었어?󰡓

󰡒응, 그런데 오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주인이 소 잡는 백정하고 오랫동안 얘기하더라.󰡓ㅎㅎ

 

불평에 가득 차서 일하지 않는 소는 도살장밖에는 갈 곳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소는 사랑을 받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다윗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4절에 보면, 다윗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몰래 쳐 놓은 그물이 있다고 말합니다.

6절에 보면, 허탄한 거짓을 숭상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온갖 거짓말로 다윗을 모함하고 공격했습니다.

다윗은 지금 이러한 고통 중에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근심이 컸는지, 눈과 영혼과 몸이 쇠하게 될 지경이었습니다.

 

저는 실제로 이런 눈물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저의 외할머니입니다.

외할머니는 일곱 명의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6.25 때 둘째 아들이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당신 앞에서 총살을 당하여 순교하는 것을 목격해야 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과 슬픔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세 딸이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어느 날, 딸이 하나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모두 엄마 품에 돌아와서는 얼마 살지 못하고 죽어갔습니다.

하나가 죽고 나면 또 한 딸이 돌아오고 돌아와서는 얼마 있다가 죽었습니다.

자식을 앞세우는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고 무거웠겠습니까?

날마다 눈물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래도 맏아들 하나 의지하며 살아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있었기에 그 믿음으로 슬픔을 극복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의지하던 맏아들마저 회갑을 미처 넘기지 못한 채

파상풍으로 세상을 떠나고 나자 외할머니는 날마다 눈물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피눈물을 많이 쏟았는지 결국 나중에는 시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아무 것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외할머니는 저를 많이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제가 결혼하기 바로 전날 88세를 일기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제 결혼식 사진에는 저의 어머니 얼굴이 눈은 퉁퉁 불어 있는데,

입가에는 미소를 짓고 있는 어색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이 다윗이 당하는 고통은 그의 시력을 잃을 정도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몸도 마음도 활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10절에서 다윗은 일생을 슬픔으로 보내며, 연수를 탄식으로 보낸다고 고백합니다.

이제 근력은 고통 속에서 말라 버렸고, 뼈마저 녹아 버렸습니다.

얼마나 고통을 많이 당했으면 이렇게 고백을 했겠습니까?

11절 \"내가 모든 대적들 때문에 욕을 당하고, 내 이웃에게서는 심히 당하니

내 친구가 놀라고 길에서 보는 자가 나를 피하였나이다.\"

다윗은 지금 자기를 죽이려는 대적들 때문에 욕을 당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내편이 되어 주어야 할 이웃들에게서는 더욱 심히 당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고통입니다.

또한 친구들마저도 피하고,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피해서 지나갑니다.

이런 일을 당하면 거의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12절에서 다윗은 마치 자신이 죽은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어지고 있으며, 깨진 그릇과 같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죽음이 우리에게 두려움인 것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점 사라져가기 때문입니다.

가장 불행한 여인이 누군 줄 아십니까? 잊어진 여인이라고 합니다.

누군가 나를 알아주고 반갑게 맞이해 주는 것은

아직도 자기가 존재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기에 기쁨이 됩니다.

하지만 더 이상 아무도 나를 기억해주지 않는 잊어진 사람이 되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아픔입니다.

다윗은 지금 자기가 사람들에게서 잊어지고 있으며,

마치 깨진 그릇과 같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깨진 그릇은 아깝기는 한데 더 이상 쓸모가 없는 그릇입니다.

결국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제 다윗은 많은 사람들이 비난하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사방에서 협박하는 소리도 들립니다.

심지어는 다윗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자기를 죽이려는 사람들이 주변에 깔려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상황에 처해 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할 것 같습니까?

혹시나 우리 교우들 가운데 이런 상황에 처해 있는 분이 있습니까?

아니면, 이 정도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이런 다윗의 말이 공감이 될 수 있는 그런 상황에 놓여 있습니까?

 

이제 우리는 이러한 상황 속에 있는 다윗이 뭐라고 고백하는지 들어봐야 합니다.

14절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

“아무리 나에게 많은 고통과 괴로움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래도 나는 주님만 의지하겠습니다.”하는 고백인 것입니다.

표준새번역으로 읽어보면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주님만 의지하며,

주님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다윗은 지금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에 이런 고백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도 여전히 문제 속에 있고, 심각한 고난이 계속되고 있지만

그러하여도 나는 주님만 의지하겠다는 믿음의 고백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다니엘의 세 친구가 이러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바빌론의 느부갓네살은 금 신상을 만들어 놓고 절하도록 했습니다.

만일 절하지 않는 자는 불타는 화덕 속에 던져 넣을 것이라고 경고했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의 세 친구 즉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절하지 않았습니다.

화덕이 두렵다고 하나님을 배반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느부갓네살은 다니엘의 세 친구를 불렀습니다.

이제라도 신상 앞에 엎드리어 절을 한다면 괜찮다. 그러나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불타는 용광로 속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 낼 신이 어디 있겠느냐?

이때에 다니엘의 세 친구는 대답합니다.

“임금님! 불 속에 던져져도, 우리를 지키시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활활 타는 화덕 속에서 구해 주시고, 임금님의 손에서도 구해 주실 것입니다.

비록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임금님의 신들은 섬기지도 않고,

임금님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을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굽어 살펴 주십시오.”

하나님이 구해주실 줄 믿지만 혹시나 구해주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하는 굳은 믿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요?

‘하나님이 내가 원하는 대로 해 주시면 믿지만, 그렇지 않다면 다 소용 없습니다.’

혹시 이런 태도는 아닌가요?

비록 우리가 원하지 않는 상황에 처한다고 할지라도

‘그러하여도’의 믿음을 갖게 되길 바랍니다.

15절에 보면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들과 나를 핍박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다윗은 자신의 삶이 전적으로 주님의 손에 달려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자신이 어쩔 수가 없고 오직 주님의 처분만을 기다릴 뿐입니다.

그러니 그분만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주께서 그 얼굴을 비춰주시고, 주의 사랑으로 구원해 주시기만을 기도합니다.

 

여류작가 박완서가 쓴 책에 이런 간증의 글이 있습니다.

젊어서 혼자가 된 작가는 외아들 한 명에게 희망을 가지고 살아왔고,

그 아들은 어머니의 기대대로 명문대학 의과대학을 졸업을 했습니다.

레지던트 과정을 다 마치고 며칠 뒤 결혼을 준비하던 중이었습니다.

결혼 준비를 위해서 아침에 잘 다녀오겠다고 인사를 하고 나간 아들은

저녁에 교통사고로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그 때 박완서 작가는 방벽에 걸려있던 십자가를 방바닥에 내어 던지고

그것도 모자라 발로 밟으면서 “하나님 어떻게 나에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라고

분노에 차서 오열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 뒤 시간이 많이 지나고, 결국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아들을 여윈 상처에서 회복되었을 때, 그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나는 미쳐 버렸거나 죽음을 선택했을 것입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분노와 원망을 하나님이 다 받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은 우리가 드리는 감사와 찬양도 받으시지만

때로는 우리의 원망도, 분노도 다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십니다.

죽은 아들이 살아서 돌아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슬픔과 아픔 속에 있을 때,

함부로 내 뱉었던 원망과 분노까지도 다 받아주신 은혜가 감사한 것입니다.

 

다윗은 19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지 그리 큰지요.”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세계 순회 복음전도대회”가 열렸습니다.

세계에서 몰려 온 4,000 여명의 대표가 모여

“성경이 말씀되게 하자”라는 주제를 가지고 집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틀째 저녁, 가수 한 사람이 무대 중앙에 올라서서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 가수는 6.25 전쟁 때 두 눈을 잃은 시각장애인입니다.

그는 선교사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음악 공부를 한 한국인 스윜 킴이었습니다.

그 가수가 부른 찬송은 이것입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다 형용 못하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 위에

죄 범한 영혼 구하려 그 아들 보내사 화목제로 삼으시고 죄 용서하셨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 그 어찌 다 쓸까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하리.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도 다 못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비록 앞을 보지 못하면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말로 다 형용 못한다고 찬양할 때

4,000여 청중의 눈에는 감격의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목양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의 믿음은 ‘그러하여도’의 믿음이어야 하겠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하박국 3:17-18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그런 것들은 사실 모두 다 있어야만 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없어도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숙한 믿음인 것입니다.

 

미국의 흑백갈등이 깊었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기차에서 백인과 흑인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백인이 칼을 던져 흑인을 죽이려 할 때

옆에 있던 백인 목사가 손을 들어 칼을 막아주었습니다.

칼은 목사의 손에 꼽혔고 피가 낭자하게 흘렀습니다.

싸움은 멈추어졌고 흑인은 목사의 희생으로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고마움을 느낀 흑인은 일생 그 목사의 곁에서 자질구레한 일을 돕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인지라 종종 일에 싫증이 나면 그는 불평과 원망을 하곤 하였습니다.

그때마다 목사는 아무 말 없이 칼에 맞은 자신의 손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면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빌었는데

그 손은 바로 자신의 생명을 구원한 손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도 십자가를 생각할 때마다 불평과 원망을 그치고 감사하게 됩니다.

그 십자가는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한 예수님의 희생이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감사의 조건은

우리를 죄에서 대속해 주기 위해서 흘려주신 주님의 보혈의 공로입니다.

이것을 늘 기억하고 또 기억한다면 우리는 언제나 감사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환경과 형편이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 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하여도, 우리는 우리를 위해 피 흘려주시며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신

주님을 바라봄으로 불평보다는 감사가 흘러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자꾸만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길 바랍니다.

 

다윗은 당장에는 고난과 고통 속에 있었지만 결국 이렇게 고백합니다.

22절 “내가 놀라서 말하기를 주의 목전에서 끊어졌다 하였사오나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셨나이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때에,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결국 우리의 간구를 들어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할렐루야!

 

오늘 여러분의 현실이 여러분의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러하여도 주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진정한 은혜와 축복이 있음을 믿으시는 목양의 성도들이 되기 바랍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