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동안 험하고 높은 인생길에서 우리들을 지켜주시고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시고 우리 교회도 은혜 가운데 평화롭게 성장하고 또 여유 있는 풍성한 삶을 살도록 해주신 하나님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성경 창세기에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가 특별히 잘하고 순종하고 하나님말씀대로 살 때에만 찾아오시는 것이 아니라 연약하고 부족해서 하나님을 떠나 범죄할 때에도 사랑의 하나님은 변함 없이 우리를 먼저 찾아오시고 용서해주시길 원하시며 품어주시고 축복해주신다는 것이 바로 성경의 교훈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잘해도 사랑하고 못해도 사랑하고 순종할 때도 사랑하고 불순종할 때도 사랑합니다.
8절)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본문 말씀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먹고 동산나무 사이에 숨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찾아가셨습니다. 사랑으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창3:9) 하고 불렀습니다. 유명한 설교가 스펄전은 하나님의 사랑을 섬세하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아담 하와를 찾아가셨을 때에 이른 아침도 아니요 뜨거운 태양이 비치는 낮도 아닌, 대화하기 좋은 서늘한 저녁에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동산을 거니시다가 찾아가셨다고 말합니다. 범죄한 아담 하와가 괘씸해서 빨리 심판하려는 성급한 걸음으로 거니신 것이 아니라 천천히 거니시는 걸음으로 찾아가셨다는 것입니다.
9절)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네가 어디 있느냐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고 찾으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찾고 있습니다. \'네가 너를 위하여 에덴 동산을 만들고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준비해놓았는데 지금 네가 어디 있느냐? 왜 선악과를 먹었느냐? 네게 부족한 것이 무엇이냐?\' 에덴 동산을 최고의 행복한 동산이요 기쁨과 평강이 넘치는 동산인데 \'너는 그것이 부족해서 왜 선악과를 먹었느냐?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하는 것은 신앙의 현주소를 물어보는 것입니다. 지난 1년 동안 신앙생활하면서 어떻게 생활했는가 자신을 살펴보고 지금 현재 내 신앙의 현주소가 어디에 있는가를, 어느 곳에 머물러 있는지 1년을 돌이켜보는 것은 오늘 금년 마지막 주일을 보내면서 진정한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아담과 하와는 동산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라고 합니다. 범죄했지만 동산나무 사이에 숨어 피해 있으면 문제가 해결되는지 알고 있습니다. 착각입니다. \'아담아 어디 있느냐?\' 라고 하나님이 물어보시는 것은 아담과 하와가 어디 있는지를 몰라서 묻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아담아 지금 네 신앙의 위치가 어디 있느냐?\' 아담으로 하여금 죄의 회개를 촉구하는 하나님 사랑의 음성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지난 1년 동안 남모르게 알게 범죄한 것들, 하나님께 불순종한 것들을 이 시간 하나님 앞에 토설하며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책망하고 벌하는 것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모든 고백을 들어주시고 죄를 용서해주시길 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에 오늘 이 자리에 찾아오셨습니다.
10절)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 숨었나이다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해서 숨었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두려워하여 숨었다고 했습니다. 아담 하와가 어제 오늘 벗고 산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벗고 살았는데 갑자기 벗었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 아니라 바로 범죄했기 때문에 범죄의 결과인 불안과 두려움을 갖게 된 것입니다. 범죄하면 언제라도 불안과 두려움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괴테는 \'인간의 가장 밑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것은 독사와 같은 불안이라\'고 말했습니다. 덴마크 실존주의 종교철학자인 키에르케고르는 \'인생은 불안의 열차를 타고 공포의 터널을 지나서 죽음의 종착역에 이른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범죄한 이상 인간의 마음 속에는 불안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에덴동산은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있었습니다.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불안합니까?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할 때 불안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 불안하고 고통스럽고 많은 아픔이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했을 때 찾아오는 것이 바로 불안입니다. 하나님 말씀가운데 살고 말씀대로 순종하고 말씀을 따라가면 마음의 불안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기쁨과 평강이 충만하리라고 확신합니다. 언제라도 하나님을 떠나살면 불안합니다. 하나님께 돌아오게 되고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게 될 때에 참된 의미와 참된 기쁨과 평강과 감사가 있습니다.
아담은 왜 선악과를 먹었나?
아담과 하와는 왜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했습니까? 그 이유는 현재 생활에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해놓으셨는데 그 생활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사탄은 우리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도구로 사용하여 우리를 공격해들어오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 다 있었지만 아담과 하와는 만족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높아지려는 욕심과 교만의 마음이었습니다. 사단은 그 악한 마음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욥의 아내도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2:9)\'라고 했습니다. 사단이 욥의 아내를 통해 역사한 것처럼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통해 역사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낙심하고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이때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기 쉽다는 것입니다. 만족할 수 있는 신앙, 어떠한 상황에서도 만족할 수 있는 신앙, 그리고 감사할 수 있는 신앙이 사단의 공격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사단의 시험을 받더라도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하려면 어떤 경우에도 만족하며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신앙과 만족할 줄 모르는 신앙은 병든 신앙입니다. 사람에게는 세상 모든 것 다 소유해도 만족이 없습니다. 죄성과 욕심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모든 것 다 소유했지만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아담은 동산나무 사이에 피해있었습니다. 피하면 다 해결될 줄 알았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어떤 불만을 가졌는가?
아담과 하와가 왜, 무엇에 불만족했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같이 높아지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을 알고 뱀이 찾아와서 \'하나님이 정말로 동산 안의 어떤 나무의 열매도 먹지 말라고 하시더냐? 너희가 결코 죽지 않아.(창3:4) 하나님은 너희가 그 나무열매를 먹고 너희 눈이 밝아지면 선과 악을 알게 되어 너희가 하나님과 같이 될까봐 그렇게 말씀하신거야.\' 라고 말합니다. 아담 하와가 모든 것이 다 있고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오직 한 가지,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많이 넘어지는가 하면 명예심에 넘어지는 것입니다. 서로 높아지려고 합니다. 높아지는 것은 두 가지 방법을 통해서 높아지고 명예를 얻습니다. 하나는 내가 노력하고 수고하고 돈을 쓰고 술수를 부려 높아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높여주시는 것입니다. \'높이는 일이 동쪽에서나 서쪽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남쪽에서도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시75:6-7)\' 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높여주실 때 그가 존경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높인 사람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내가 높아지려고 하는 것에 넘어졌습니다. 사단을 그것을 통해서 공격해들어왔습니다. 범죄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부부사이에 심한 갈등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의 부부처럼 행복한 부부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 지구상에 많은 부부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행복한 부부였습니다. 이상적인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범죄함으로 부부사이가 파탄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11절) 그 나무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네가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먹었느냐\'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줌으로 내가 먹었나이다(12절)\' 범죄는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변명하여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습니다. 하와는 \'뱀이 나를 꾐으로 내가 먹었나이다\' 책임을 전가합니다. 참된 평화와 화합과 일치는 어디서 오는가 하면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지 않을 때 찾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먹었느냐\' 라고 물어보셨을 때 \'하나님 제가 죄인입니다. 잘못했습니다\' 라고 회개했으면 회복의 기회가 주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은 회개하지 않고 하와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하와 역시 회개하지 않고 뱀에게 책임을 전가합니다. 그들은 결국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했습니다. 우리는 모든 책임을 내가 질 줄 아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여 더러운 죄에 빠져 있을 때 나단 선지자가 책망했습니다. 그때 그 자리에서 자복하고 통회하며 회개했습니다. 요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갔지만 회개했을 때에 니느웨 성의 백성을 구원하는 전도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베드로도 보십시오. 예수님 말씀에 자기의 죄를 통회하며 회개했더니 위대한 사도로 크게 쓰임받았습니다. 지난 1년동안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해주셨습니다. 은혜로 가득 채워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자리에 있었는가를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범죄한 결과는 무엇인가?
범죄는 언제나 불안을 가져오며 화합을 깨뜨립니다. 죄는 자신을 감추게 되고 숨기게 되는 것입니다. 인도의 한 마술사가 쥐를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쥐는 불안과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왜 그런가 살펴보니 고양이 때문이었습니다. \'이 쥐를 고양이로 만들면 두려움과 불안이 없어지겠지\' 마술사는 쥐를 고양이로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런데 고양이로 변하자 개를 두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술사는 다시 그 고양이를 개가 되게 했습니다. 그래도 두려워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번에는 호랑이가 겁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호랑이로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냥꾼의 총을 두려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마술사는 \'너의 불안과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구나. 너는 별 수없는 쥐다\' 하며 다시 쥐의 모습으로 되돌리고 말았다는 설화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지난 1년동안 우리는 어떠한 자리에 있었는가, 현주소가 어디였었는가를 깊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뿐만아니라 하나님 말씀 대로 순종하였는가, 하나님이 기쁘시게 생활했는가, 주님을 위해 봉사하고 충성했는가, 적극적인 신앙생활을 했는가를 이 시간 나 자신을 돌이켜보며 회개할 것을 철저히 회개하여 새해를 새롭게, 희망을 가지고 전진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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