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의 자기의 개혁

이사야의 자기개혁(사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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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곳저곳에서 개혁이 일어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선 기독교에서 개혁이 일어나야 되고 사회에서 개혁이 일어나야 되고 종교가, 정치가 개혁이 일어나야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개혁은 나 자신에게 있습니다. 내가 개혁될 때에 가정도 교회도 사회도 민족도 개혁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사야는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을 만남으로 말미암아 자기 자신이 개혁되고 주님의 선지자로서 큰일을 감당하는 위대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4대에 걸친 왕들을 섬기면서 무려 90년 동안 복음을 증거하는 선지자의 사역을 감당하게 됩니다. \"개혁(改革)\"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만날 때에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자기가 얼마나 더럽고 추한 인간인 것을 생각하고 그것을 하나님께 꺼내어 놓고 회개하고 변하여 새로워지게 될 때에 자기 개혁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열 한 달 동안 어떻게 살아 왔는가를 살펴보면서 오늘 우리도 남은 한 달 동안 새해를 앞에 놓고 우리 자신을 개혁하는 귀한 시간이 되어야 될 것입니다.


충격적인 사건은 바로 현주소를 말해줍니다.(1절)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본문 1절을 보면, 개혁의 때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라고 했습니다. 웃시야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제를 성장 발전시켜서 이스라엘에 대 부흥을 가져왔던 왕이었습니다. 웃시야 왕은 황무한 땅들을 개간하여서 농사를 짓게 하고, 또 이스라엘 민족을 괴롭히는 동쪽의 블레셋, 서쪽의 암몬, 남쪽의 아라비아 등을 쳐서 정복하고 그들로부터 조공을 받았던 국력을 강화했던 왕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을 준수하고 그곳에 37,500명의 상비군을 주둔하게 하고 국방을 강화해서 그 나라 뿐 아니라 그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명성이 널리 알려졌던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위대한 왕이 자기의 명성이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과 높임을 받다보니 교만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 드릴 때 사용하는 분향을 자기가 하겠다고 월권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습니다. 온몸에 문둥병이 들어 외딴 성에서 불행하게 살다가 세상을 마칩니다. 이것이 웃시야 왕의 대략입니다. 그런데 이사야가 변화되던 시기가 언제입니까? 바로 웃시야 왕이 죽던 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웃시야 왕의 죽은 것은 이스라엘 민족뿐만 아니라 이사야에게는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왕의 조카이고 평소에 친분이 두텁고 웃시야 왕을 의지하고 살았던 이사야였기 때문입니다. 이사야가 이와같은 충격적인 사건을 당할 때 변화된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들에게 충격적인 사건을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자신을 반성하게 하고 충격적인 사건을 통해서 회개하게 하고 자복하게 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이 충격적인 사건이라고 하는 것은 오늘 우리의 현주소를 알려주게 됩니다. 아담 하와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 물어보신 하나님처럼 오늘 충격적인 사건과 환난 시련을 통해서 내가 지금 어떤 위치에 있는가를 하나님께 묻고 계시는 것입니다. 잘못된 위치에 있다면 다시 돌아서서 바로 서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떠난 자리에 있었다면 다시 그곳을 떠나서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하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2) \"내가 본 즉\"
①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인생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이사야는 변하여 새로워졌습니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 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아계셨다\'고 그랬습니다. 즉, 이사야 선지자가 이렇게 변하게 된 근거는 바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의 인생이 결정되어집니다. 아담과 하와는 바라보지 말아야 할 선악과를 바라보다가 범죄하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합니다. 음란한 영화를 계속 보고, 음란 비디오를 즐겨보는 사람은 결국 음란한 것을 생각하고 음란한 것을 말하고, 음란한 행동으로 옮기게 됩니다. 살인하고 싸우고 죽이는 것을 즐겨보는 결국 범죄의 자리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날마다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생각이 거룩하고 말이 거룩하고 행동이 거룩하게 되고 점점 주님을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3)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①인생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제 높이 들린 보좌에 우리 주님이 앉으신 것을 이사야가 바라보게 됩니다. 그 보좌에 하나님께서 앉아 계셨다는 말은 하나님이 우리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한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온 우주와 온 세계를 통치하고 다스린다는 절대자 하나님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인생을 주장하고 계십니다. 생사화복을 주장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삶은 하나님 능력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②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높이 들린 보좌에 앉아 계신 주님을 보여주셨다고 하는 것은 무슨 말인가 하면 웃시야 왕은 죽었지만 \"내가 너희를 다스릴 것이다\" \"내가 너희를 인도할 것이다\" \"내가 너희를 지켜줄 것이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시11:3-4) \"터가 무너지면 우리가 무엇을 할꼬 여호와께서 성전에 계시고 하늘의 보좌가 있으니 그의 눈이 인생을 감찰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보살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의 삶의 터가 무너질 때에 그때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막막할 때 아무도 의지할 수 없는 절망의 상황에 그때 우리 하나님께서는 보좌에 앉으셔서 보살펴주시고 감찰하시고 통찰해주시고 더불어 함께 해주신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스랍\"의 의미는 무엇입니까?(2-3절)

1)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2절)
본문 2절에 스랍들이 모여 섰습니다. 스랍들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천사\"를 가리킵니다. 스랍이라고 하는 원어 의미는 바로 \"불타다\"라고 하는 것인데, 이것은 \"거룩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 곁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보좌하는 천사들은 거룩해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 교우들도 거룩하게 깨끗하게 살아가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2)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웠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웠고 그 둘로는 날며(2절)
스랍은 여섯 날개가 있습니다.
각기 여섯 날개가 있습니다. 두 날개는 얼굴을 가리고 있습니다. 두 날개는 발을 가리고 있습니다. 두 날개는 날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서로 청아한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왕이시다\' 라고 온 땅에 충만하게 찬양을 했습니다.

1) 두 날개는 얼굴을 가리고 있습니다.
두 날개가 얼굴을 가렸다는 말은 얼굴을 가리는 겸손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할 때에, 하나님께 봉사하고 헌신할 때에 얼굴을 가리는 겸손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가리고 우리 하나님만이 나타내야 합니다. 나는 낮아지고 주님만이 높아져야 합니다. 나는 숨기우고 주님만을 자랑해야 합니다.

2) 두 날개는 발을 가리었다고 합니다.
발을 가렸다는 의미는 낮아지는 겸손을 말합니다. 발은 천한 것이요, 비천한 것입니다. 천대멸시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낮아지고 낮아질 때 하나님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내가 높아지면 하나님이 낮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겸손한 자들이 큰 복을 받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겸손한 자가 복을 받습니다.
①마리아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어드렸던 어느 무명의 여인, 혹은 마리아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냄새나는 발을 머리카락으로 닦아주는 겸손, 그런 겸손이 있을 때 주님이 무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 어느 곳이든지 이 여자가 행한 것을 말하여 저를 기념하라\" 최고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향유 부은 이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②백부장
백부장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멸시하는 이방인입니다. 백부장이 자기 종이 병들었을 때에 예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네 집에 가겠다.\" \"아닙니다. 예수님 오지 마십시오. 말씀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종이 낫겠습니다.\" 그 겸손을 보시고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이스라엘에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했다\" 우리 주님이 이 백부장에게 가장 큰 칭찬을 하셨습니다.

③가나안 여인
가나안 여인의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귀신 들린 어린 딸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고침을 받으려고 할 때에 예수님께서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 많은 무리 앞에서 소리 지르고 부르짖어 딸을 고쳐달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간구합니다. 나는 이스라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보냄을 받지 않았다, 너는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니까 못 고쳐주겠다고 예수님께서 여인에게 말했습니다. 그래도 계속 간구했습니다. 개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가나안 여인이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떡 부스러기를 먹지 않습니까?\" 개처럼 많은 사람 앞에서 천대멸시해도 겸손하고 낮아졌던 이 여인이 계속해서 주님께 간구할 때에 \"네 믿음이 크도다. 소원대로 되리라\" 그 믿음을 칭찬하시면서 소원을 들어주셨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복은 겸손한 자에게 주어진다는 사실, 하나님의 모든 축복은 겸손을 뿌리에 두고 있을 때에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됩니다.

3) 두 날개는 날았다고 합니다.
두 날개는 날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지게 될 때 순종하려는 자세를 가리킵니다. 오늘 교회에서 주님의 거룩한 사역을 위하여 행하는 모든 일들, 모든 프로그램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내 뜻과 다르다고 해서, 내 감정에 허락하지 않는다고 해서 거부하지 말아야 합니다. 언제나 말씀대로 순종할 준비를 가지고 언제라도 말씀에 순종해야 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들이 가져야 될 자세입니다.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3절)

1) 스랍들이 찬송합니다.
찬송은 힘이 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이제 이 스랍들이 하나님을 모시고 보좌에 서서 찬송을 부릅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찬송을 부릅니다. 찬송을 부를 때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문지방의 터가 요동을 합니다. 큰 소리가 났습니다. 성전에 연기가 가득하다고 했습니다. 찬송은 무서운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4절)
①(민10:9) \"대적이 쳐들어 왔을 때 그들을 공격하면 그 때에 나팔을 불어라 그렇게 되면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너희를 적들의 손에서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참 놀라운 말씀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낙심하고 절망할 때 탄식만 하고 있지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님을 찬양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고,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찬송은 이렇게 무서운 힘이 있습니다. \"성전에 연기가 충만했다\"라는 말은 바로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 임재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②(행16) 바울과 실라 이야기가 나옵니다. 복음을 증거하다가 실컷 두들겨 맞고 깊은 감옥에 갇혔을 때에 그는 충분히 하나님께 원망할 만한 환경에 있었지만 원망하지 아니하고 밤새 찬송하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땅이 진동하고 옥문이 열렸습니다. 깜짝 놀란 간수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행16:30)라고 물었습니다. 복음을 증거하게 되고 다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바울과 실라를 극진히 대접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는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5절) 

자복통회하며 회개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계속 본문을 내려가 보면, 이 모습을 본 이사야가 그만 깜짝 놀라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스랍 중 하나가 성전 제단에서 활활 불붙고 있는 숯불을 가져다가 이사야의 입에 댑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이사야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주소서\" 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그 숯불을 입에 댑니다. 그는 그때 그 자리에서 회개하게 되고 사명자로서의 고백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무엇이라고 회개합니까? \"나는 입술이 부정한 자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6:5)\" 하나님을 만나면 나 자신이 얼마나 부정하고 더러운 죄인인지 깨닫고 회개운동이 일어납니다. 그때에 복음증거 사명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욥을 보십시오. 욥이 큰 환난을 당하지 않습니까? 욥의 친구들이 와서 욥을 계속 공격합니다. 욥이 계속 변명합니다. \"나는 그렇게 벌받을 만한 죄를 범치 않았어!\" 그런데 (욥42:5) 보면 욥이 무엇이라고 고백합니까? \"내가 지금까지 여호와께서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하나님을 만나게 될 때에 그렇게 경건하게 산다고 생각했던 욥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됩니다. 그때에 비로소 갑절의 복을 받습니다. 내 생각에는 경건하게 깨끗하게 바르게 살아온 것 같아도 우리는 욥첯럼 하나님께 회개할 수밖에 없는 더러운 죄인이라고 하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7절)

하나님을 만날 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스랍 중에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타는 숯을 가져다가 입에 대줍니다. 왜냐하면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망하게 되었다는 말은 나는 죽게 됐어! 나는 벌을 받아! 나는 끝장이야! 이런 뜻입니다. 이사야가 회개하는 것처럼 오늘 우리가 통회하고 자복해야 새해를 새롭게 맞이할 수가 있습니다. 적어도 그리스도인이라면 한 두 번은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는 경험이 있어야 됩니다. 지난 열 한 달 동안 범한 죄를 하나님께 내어놓읍시다. 그리고 회개하고 자복합시다. 그리고 이 신년을 바로 준비해서 새해를 새롭게 맞이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8절)

사명을 발견하고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사명자로 부를 때에 이사야는 당연히 나섭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무슨 말입니까? 이제 복음증거하러 가겠다는 말입니다. 정녕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내 죄를 통회하고 자복하면 반드시 오는 결론이 무엇입니까? 나아가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지난 열 한 달 동안 여러분 몇 번이나 전도했습니까? 아직까지도 여러분의 가족 중에 불신자가 있지 않습니까? 오늘 가정교회들이 복음 증거하는 일을 위하여 얼마나 노력하고 경주하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목적,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시고 오늘까지 우리를 인도해주신 이유가 바로 복음증거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됩니다. 우리 모두 이사야처럼 하나님을 만나고 이제부터 사명을 받아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주소서\" 복음을 증거하시는 복음의 증거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