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야(Messiah)\"의 작곡가 조지 프레드릭 헨델에게 위기가 다가왔습니다. 중풍에 걸려서 반신불수가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빚에 쪼들리게 되었고, 빚을 갚지 않으면 감옥에 가두겠다고 협박을 하는 급박한 상황 가운데 처하게 되었습니다. 낙심한 헨델은 지금까지 작곡했던 것들을 모두 포기하고 죽음을 생각했지만, 절망과 어려움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조그마한 방에서 열심히 작곡해서 오늘날 인류 역사에서 둘도 없는 장엄하고 위대한 \"메시야\"를 탄생시켰습니다. 금은 불로 시험을 하지만 용기는 역경을 통해서 시험을 합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용기가 있는지 없는지는 우리에게 닥친 역경을 통해서 테스트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두려운 것은 고난과 죽음이 아니라 고난과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강재구소령을 여러분들은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강소령은 부하들을 살리기 위해서 떨어진 수류탄 위로 몸을 던져서 자신은 죽고 부하들을 살려냈습니다. 그것은 용기입니다. 진정한 용기입니다. 또한 우리들이 잘 아는 이준 열사나 많은 순국열사들을 보면 이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 일본의 압제 속에 있었던 이 민족을 독립시키기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버렸습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생명은 소중한 것입니다. 그 생명을 버린다는 것은 용기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사도행전 3장과 4장을 보면 초대교회 교인들의 신앙의 용기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오늘 베드로와 요한의 용기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들의 용기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용기요 신앙의 용기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시간이 되어서 성전에 올라갑니다. 성전 미문에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된 자가 구걸을 하면서 앉아있었습니다.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구걸하려고 손을 내밀 때 베드로가 담대하게 말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그러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앉은뱅이가 발과 발목에 힘을 얻어서 벌떡 일어나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너무 좋아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성전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구름떼처럼 많은 사람들이 베드로와 요한에게 몰려들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고 하루에 3,000명 5,000명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이 모습을 보고 큰 근심에 쌓인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대제사장과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었습니다. 큰일났습니다. 예수만 없애면 모든 일이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예수를 죽이고 나니 오히려 그의 제자들이 큰 기적을 일으키자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날마다 더 많아져 갔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을 산헤드린 공회로 체포해갔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에게는 큰 걱정거리였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을 함부로 핍박하고 옥에 가둘 수는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는 예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경고하고 풀어줍니다. 이것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위협입니다. 산헤드린 공회는 이들을 살릴 권한도 있고 죽일 권한도 있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네가 만일 우리말을 듣지 아니하면 너희는 사형을 받게 되리라\"라는 무서운 경고가 될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행4:19-20)을 보니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하고 담대하게 선포를 했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용기입니다.
어떤 용기인가?
1.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이다. 베드로와 요한의 용기는 어떤 용기입니까? 이것은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다시 말하면 강하고 담대한 용기였습니다. 성경을 보거나 또한 기독교의 2000년사를 보면 이런 용기의 사람들을 수도 없이 많이 보게 됩니다. (히11:35-37)을 보면 용기를 가졌던 순교자들의 현장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악형과 조롱과 멸시와 채찍 또는 옥에 갇히는 것, 결박당하는 것, 칼로 찔리는 것, 또는 톱으로 켜는 것, 돌로 치는 것, 이런 어려운 일을 당하면서도 순교를 향하여 나아가는 용기, 이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용기입니다. 그들은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방황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들도 살아야 하기 때문에 농사를 지어 먹어야 했습니다. 걸어다니면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당장 체포되는 것은 시간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양과 염소처럼 기어다니면서 농사를 지어 먹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들이 거주했던 곳은 (히11:38)에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서 유리하였다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예수를 믿으면 세상에서의 부귀영화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무서운 핍박을 당하는 상황인 줄 알면서도 그들은 용기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주를 위해서 살 때 고난당할 것을 알면서도 갖는 용기, 신앙절개를 지키기 위해서는 세상 부귀영화를 포기할 것을 알면서도 갖는 용기, 그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용기가 아니겠습니까? 무릇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험한 세상에서 경건하게 살아가고자 할 때 그리스도인으로써, 아니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받아야 하는 불신, 사회로부터의 불이익과 손해들을 뻔히 알면서도 당해야 하는 그 용기, 그것이 바로 아름다운 용기입니다. 로마의 유명한 순교자 인나디우스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서신을 보면 자기 자신은 십자가상의 형벌이나 혹은 짐승의 입이나 또는 칼로 찌르는 것이나 뿐만아니라 톱으로 켜는 것도 두렵지 않다고 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이라고 고백을 합니다. 이런 용기, 이러한 용기가 바로 거룩한 용기입니다.
2.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는 용기이다. 이 용기는 또한 어떤 용기인가 하면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는 용기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이후로는 다시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 말라\"는 무서운 위협 앞에도 견고해서 흔들리지 않는 용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전15:58)을 보면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이러한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게 될 때에 오늘 우리는 헛되지 않은 보람된 사람으로 살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마틴루터는 로마 교황청에 대항하는 95개 조항을 천주교 앞에 걸어놓았습니다. 로마 교황청은 그를 소환했습니다. 그의 신앙을 한 번 점검을 하고 종교재판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여차하면 루터를 죽이려는 것입니다. 가까운 친구들은 만류합니다. \"가지마라 거기에는 너보다 더 똑똑한 대학자들이, 석학들이, 대신학자들이 수두룩해. 그들과 신앙토론을 하면 망신만 당해. 너는 보잘 것 없는 조그마한 신부에 지나지 않아.\" 그때 루터는 무엇이라고 대답합니까? \"마귀가 교황청의 기왓장보다 많아도 나는 가겠다.\" 용기입니다. 다른 친구들도 옆에서 가지 못하게 합니다. \"가지마라. 그곳에 가면 조지 공이 너를 죽일거야.\" 그러나 루터는 \"조지 공의 공격이 빗발치듯 해도 나는 그곳에 가겠다.\" 이것이 바로 거룩한 용기입니다. 거룩한 용기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용기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신뢰하는 용기입니다.
3. 적극적인 용기다. 베드로와 요한의 용기는 바로 적극적인 용기입니다. \"네가 예수의 이름으로 한 번 더 말하고 가르치면 너희는 사형당할 줄 알아라.\" 이것은 무시무시한 협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적극적인 용기입니다. 자기를 위협하는 무리에게 위협을 당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정복하는 용기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이야기가 다니엘서에 나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금으로 큰 신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낙성식을 행하며 모든 악기를 동원하여 연주할 때 신상 앞에 절하게 했는데,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절하지 않았습니다. 화가 난 왕이 그들을 불렀습니다.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그래도 그들은 금 신상 앞에 절하지 않았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노하고 분하여 풀무의 불을 평소보다 7배나 뜨겁게 하라고 명령하고 그들을 풀무불에 던져 넣게 하였습니다. 그 풀무불이 얼마나 뜨거웠던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붙든 군사들이 타 죽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흔들리지 않는 용기를 가졌습니다. 적극적인 용기를 가졌습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서도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이것이 적극적인 용기입니다. 내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다가 저 풀무불에 들어가 타 죽어도 좋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이런 용기, 이런 용기가 무서운 용기입니다.
어떻게 이런 용기를 가질 수 있을까?
1. 기도할 때 용기가 생긴다.(행3:1) 원래 베드로와 요한은 보잘 것 없는 비겁한 어부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고문을 받을 때 어린 여종 앞에서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나약하고 비겁했던 베드로가 어떻게 이렇게 대단한 용기의 사람이 되었습니까? 기도의 사람이 될 때 성령 충만함을 받고, 성령에 사로잡히게 되면 용기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276명을 태운 배가 망망대해에서 \"유라굴로\"라는 태풍을 만나게 됩니다. 이제 일주일동안 해도 별도 달도 비치지 않는 깜깜한 암흙 속을 지나게 됩니다. 모두 다 죽음을 앞에 놓고 배에 있는 기구와 먹을 식량까지 다 바다에 던져버리고 살기 위하여 아비규환이 됐을 그 때에 오직 한 사람, 죄수의 몸으로 선박에 함께 승선한 사도바울 한 사람만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담대했습니다. 사도바울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의 사자가 사도바울에게 나타났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무사히 저 로마에까지 도착하리라\"라고 말을 했던 것입니다.
2. 성전에 올라갈 때 용기가 생긴다.(행3:1) 본문을 보니까 9시 기도시간에 성전으로 올라갔다고 했습니다. 성전으로 올라가는 사람이 용기를 가질 수 있습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찬송하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들은 용기의 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다. 예배를 소중히 여기고,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은혜받고 하나님의 능력의 손에 사로잡히는 그 사람이 용기의 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다. 거룩한 용기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 가질 수 있습니다. 믿음 없이는 용기를 가질 수 없습니다. 믿음과 용기는 하나입니다.
3. 믿음을 가질 때 용기가 생긴다. 그런데 이런 큰 용기, 거룩한 용기, 위대한 용기는 기도를 통해서만이 믿음이 생기고, 기도를 통한 믿음이 이런 거룩한 용기를 갖게 하는 것입니다. 골리앗 장군이 나타났을 때 사울 왕을 비롯한 온 이스라엘 민족과 군사들은 벌벌 떨면서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전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소년 목동 다윗은 골리앗을 향하여 담대히 나아갑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17:45) 그리고 드디어 골리앗 장군을 죽이고 전쟁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다윗의 속에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믿음은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믿음은 반드시 승리를 가져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 중요한 것은 세상 것들이 아니라 바로 믿음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거룩한 용기를 가진 사람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사람을 죽일 힘도 있고 살릴 권세도 있는 산헤드린 공회였지만 베드로와 요한을 죽이지는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거룩한 용기를 가질 때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능력의 사람이 되고,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행4:21) 보니까 베드로와 요한을 풀어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들을 계속 가두어둔다면 백성들에게 공격을 받게 생겼습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된 사람을 고쳐주었는데 왜 가두었냐고 공격을 받게 생겼습니다. 곤욕을 당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하지 못하고 놓아주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다윗이 믿음이 없었다면 어떻게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을까요? 아마 싸움에도 나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나아가게 될 때, 그리고 용기를 가지고 나아가게 될 때 어떤 시련도 환난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했습니다. 거룩한 용기를 가질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오늘 많은 불신자들이 우리에게 손가락질하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멸시하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에게 거룩한 용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불신 이웃들이 우리들을 비난하고 공격해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하나님께서 반드시 나와 함께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오늘도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는 거룩한 용기를 가지고 승리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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