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우리를 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롬8:31-39)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한마디로 말하면 인간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편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여러분과 함께 읽은 로마서 8장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우리에게 뜨겁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롬8:31)을 보니까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감격적인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는 말은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사람은 누가 자기를 위해주느냐에 따라서 그의 일생이 바뀌어지게 마련입니다. 사실 우리가 결혼을 하는 것도 남편이 아내를 위해주고, 아내가 남편을 위해주는데에 매우 중대한 의미가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그래서 결혼을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부모가 자녀를 낳는 것도 부모가 자녀를 위해주고, 자녀가 부모를 위해주는 서로가 서로를 위해주는 관계는 매우 아름답고 또 그것을 통해서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가 성립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친구라는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를 위해줄 때 참다운 친구관계가 되고 이웃의 관계가 되고 참다운 교인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인간이 인간을 위한다고 하는 것은 사실은 불완전하고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원토록 사랑하자고 언약을 맺었던 부부간의 관계가 서로 싸우기도 하면서 불편한 관계를 맺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가정이 파탄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낳아서 키우지만, 그리고 그 자녀를 위하여 온갖 것을 다 희생하고 투자하지만 그 자식들이 부모를 위하지 못하고 부모의 속을 썩이는 경우를 우리 주위에서 얼마든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얼마나 위하시는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어떻게 되는가?
여러분, 우리 부모의 사랑은 본능적인 사랑이고 다른 데에 비할 것이 없는 사랑입니다. 그 중에서도 어머니의 사랑은 사랑의 대명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따를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인간이 인간을 위한다는 것은 불완전하고 거기에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완전한 사랑입니다. 이 \'위한다\'는 말은 사랑한다는 말이고 도와준다는 말이고 내 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능하신 하나님,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주시고 우리를 사랑해주시는데 그 사랑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독생자까지 이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해주신 사랑입니다. 독생자의 생명까지 버리신 큰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롬8:31)을 보면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 너무나 감격스럽고 너무나 심령이 뜨거워져서 더이상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너무나 완벽하기 때문에, 그 사랑이 너무나 절대적이기 때문에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는 우리가 할 말이 없을 정도로 하나님께서는 완벽한 사랑으로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1. 대적자가 없다.(31절)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시는 내용을 보면 (롬8:31)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실 때 우리를 대적할 자가 아무도 없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27:1)은 다윗이 많은 고난을 당하면서도 무엇이라고 고백합니까?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사울왕은 다윗이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10년동안을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녔습니다. 다윗을 없애버려야만 자기의 자손이 대대손손 왕권이 유지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다윗을 죽이려고 수천의 군사를 이끌고 쫓아다녔지만 결국 사울왕은 전쟁에서 비참하게 죽고 맙니다. 그리고 다윗은 이스라엘 왕으로 가장 존경받는 성군이 되지 않았습니까? 능력이 무한하신 하나님의 한이 없는 사랑을 받고 있는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위해주시는 여러분들은 두려울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아무리 대적이 쫓아와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시편91:7) 마르틴 루터는 이 말을 바꾸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대적하시면 누가 우리를 위하리요\'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적하시면 우리를  위해줄 자가 아무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인간은 전적으로 무능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줄 때 우리를 대적할 자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부모의 빽이 있거나 상관의 빽이 있으면 아무나 그를 건드리지 못합니다. 하물며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아버지인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해주시니 두려울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를 대적하는 세력은?(35절)
여기의 우리를 대적할 자가 없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를 대적하는 원수가 존재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나타난 그 원수는 누구입니까?

1)환난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 일곱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대적이요 우리의 원수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원수나 대적도 결코 우리를 넘어뜨리거나 망하게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환난의 언어의 뜻을 보면 \'두들긴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곡식이 익었습니다. 이 곡식을 두들겨서 껍질을 벗겨내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두들겨맞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때로는 질병으로 두들겨 맞기도 합니다. 빚쟁이에게 두들겨 맞을 때도 있습니다. 또한 이웃 사람들의 날카로운 비난과 공격의 입술로 두들겨 맞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두들기는 환난 시련이 다가와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주시기 때문입니다.

2)곤고
그 다음 우리의 원수는 \'곤고\'라고 했습니다. \'곤고\'는 여러가지의 어려움을 말하지만 특별히 정신적인 면에서의 고통이나 스트레스를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받는 고통이나 스트레스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기 때문입니다.

3)박해
그 다음은 핍박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박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핍박을 받아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과거에 복음을 전하다가 때로는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를 맞기도 하는 핍박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리고 순교자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러나 그들이 박해를 받고 핍박을 받고 순교를 당할 때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 당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큰 기쁨이 그들 속에 넘쳐서 오히려 찬양하며 박해를 당하고 순교의 자리에 나아갔다는 것을 우리는 기독교의 역사를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 부활의 소식을 증거하다가 붙들려서 매를 맞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의 제자들은 무엇이라고 고백합니까? 우리가 이렇게 예수님을 위해서 매까지 맞을 수 있고, 핍박을 받고 박해까지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가지게 되었으니 너무나 기쁘다고 했습니다. 이런 기쁨은 세상이 주는 기쁨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입니다. 여러분, 박해와 시련과 핍박도 하나님이 위해주시기 때문에 이길 수가 있습니다.

4)기근
뿐만 아닙니다. \'기근이나\' 그랬습니다. 기근은 배고픔을 말합니다.

5)적신
또 \'적신이나\' 그랬습니다. 적신이라는 것은 헐벗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바울은 사도행전을 보면 복음을 전하면서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실 가난처럼 사람을 힘들게 하고 아프게 하는 것도 없습니다.

6)위험
여러분, \'위험이나 칼이나\' 그랬습니다. 위험이라고 하는 것은 생명의 위험을 말합니다. 사도바울은 전도하면서 여러 번이나 생명의 위협을 받았는데, 루스드라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사도바울을 둘러싸고 돌을 던졌습니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보니까 많은 돌을 맞았기 때문에 죽은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버려두고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다시 살려주시고 일으켜주셨습니다.

7)칼
칼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사람을 죽입니다. 생명을 죽이는 도구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기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했습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의 넉넉히 이긴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하면 이기고도 남는다는 완전한 승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100프로다, 완전히 정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니, 150프로입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인가 하니, 넉넉히 이긴다는 말은 완전히 정복할 뿐 아니라 더 큰 은혜와 복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이런 말씀은 우리가 이론적으로만 알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100프로 믿는다면 우리는 현실 속에서 담대한 믿음으로 날마다 승리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그런 예를 얼마든지 발견합니다. 사도바울은 실라와 더불어 자신들이 복음을 전하려던 곳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마게도냐지방에 가서 기도하는 곳으로 가다가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을 만나게 됩니다. 그 여종은 점으로 그 주인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였습니다. 그가 바울과 실라를 따라다니며 큰소리로 괴롭히자, 바울은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여종에게서 쫓아냅니다. 여종의 주인은 자기의 수입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관리들에게 끌고가서 고소를 합니다. 그리고 옷을 벗기고 매로 많이 친 후에 깊은 감옥에 가두고 발을 착고에 단단히 채웁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낙심하지 않고 감사하며 밤새 기도했더니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땅이 진동합니다. 옥문이 열렸습니다. 간수가 자다가 깨어서 옥문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간 줄로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고 할 때, 바울이 크게 소리질러 말합니다.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행16:28) 그리고 복음을 전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간수는 온 가족을 초청하고 잔치를 베풀고 바울과 실라는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게 되고, 그의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고 주님을 영접하게 되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바울과 실라를 억울하게 감옥에 가두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주셨습니다. 오히려 복음 전파의 길이 환하게 열렸습니다. 여러분, 잘 들으십시오. 우리가 생각할 때 억울합니다. 원망스럽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며 믿음으로 살아가려고 애를 쓰는데 왜 우리 가정에, 내 사업에, 내 자녀손들에게 이런 어려운 일이 생기는가? 그러나 낙심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낙심하지 않고 원망하지 아니하며 계속 찬송하며 믿음으로 나아가게 될 때 기적이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이 나타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할 줄 믿습니다. 우리를 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대적을 승리하게 하십니다.

2. 정죄할 자가 없다.(34절)
다음, 우리를 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아무도 우리를 정죄할 수 없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니 (롬8:33-34)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우리를 정죄하리요\' 이 말이 무슨 말인가 하면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여러분이 지은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를 완전히 용서함을 받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죄인이지만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인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신학적 용어로 \'칭의\'라고 합니다. 의롭다고 칭함을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 죽어도 천국에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기업이 여러분의 것입니다. (벧전2:24)을 보면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오늘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모든 죄를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우리 죄는 모두 씻어졌습니다. 우리는 모두 의롭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라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정죄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주셨기 때문입니다.

3. 끊을 자가 없다.(35절)
더 나아가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주시는 사랑은 끊을래야 끊을 수가 없는 사랑입니다.(롬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리고 (롬8:38-39)로 보면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참 놀라운 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완전성, 하나님의 사랑의 절대성, 하나님의 사랑의 계속성, 하나님의 사랑의 영원성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토록 끊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토록 여러분을 위하는 사랑입니다. 어떠한 세력도 여러분을 넘어뜨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여러분을 정죄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것도 여러분을 정죄하지 못하도록 여러분을 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여러분은 정죄함을 받지 않습니다. 이 사랑은 영원한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반드시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험한 세파에 낙심하고 절망하고 넘어질 때가 있지만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고 승리한다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오늘도 내일도 승리자의 삶을 살아가시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