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위에 은혜

혜 위의 은혜(요1: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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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하와는 타락하기 전과 타락한 후에 여러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만, 그 중에 가장 큰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타락하기 전에는 은혜를 알았었는데 타락한 후에는 은혜를 잊었다는 것입니다. 이 죄라고 하는 것은 우리 속에서 은혜를 잊어버리게 하고 오히려 미움과 증오와 원한을 갖게 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영 죽었던 우리를 위해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머리에 가시관, 손발에는 못, 옆구리에는 창으로 찔려 피와 땀과 물과 진액을 다 쏟으시고 생명 버려 죽어주셨고, 그래서 우리를 영 죽었던 자리에서 구원하시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주셨고, 지옥에서 천국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이렇게 구속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영원한 천국에 이르는 시간까지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시작이 되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진행이 되고, 은혜 속에서 마무리가 되는 인생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우리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무능하고 연약한 존재들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이렇게 새로운 날을 맞이해서 하루를 사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는 말하기를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하나님의 은혜로라\" 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죽어가고 있지만, 어젯밤에 잠이 들고 일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지만, 그러나 우리를 깨워 주시고 하루를 시작하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를 말씀입니다.

여러분!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잠시 잠깐이라도 존재할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생존해 있다는 사실, 이렇게 숨을 쉬고 있다는 것도 역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매 시간 죽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총체적으로 묶어서 \'은혜 위의 은혜\'라고 16절에서는 표현하고 있습니다. \'은혜 위의 은혜\'라는 말이 무슨 말인가? 먼저 은혜라는 말에서부터 해석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은혜라는 말은 신약의 \'카리스\'라는 말로 사용이 되는데, 이것은 구약의 \'헬\'이라고 하는 히브리어에서 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보통 \'은혜를 입었다\' \'호의를 얻었다\'라고 할 때 쓰이는 의미로, 보통 총체적이고 포괄적인 의미입니다. 이 \'카리스\'라는 말이 \'카리스마이\'라는 말로 바뀌게 될 때에는 이것이 바로 구속의 은혜를 가르칩니다. 죄로 죽었던 우리들이 예수님의 보혈로 씻음을 받고, 의롭다 인정함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 이렇게 천국의 삶을 누리고 산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다음은 \'엘레오스\'라고 하는 헬라어가 있습니다. 이것도 은혜라는 말인데 이것은 \'호의\'라든지 \'친절\'이라든지 \'자비\'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신학적으로 바로 영 죽었던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은혜 위의 은혜는 어떤 뜻인가?

1)은혜가 계속 된다는 것이다.
여러분! 그렇다면 이 \'은혜 위의 은혜\'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이 말 속에 깊은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말을 깊이 해석해보면 \'은혜 대신 은혜\'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 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 본다면 쉼 없이, 그침 없이 계속해서 솟아나는 샘물처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일생이 다 가도록 계속해서 계속해서 흘러 넘치고 흘러 넘치고 또 흘러 넘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날마다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온 세상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여러분, 이 은혜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2)경악의 연속이다.
또 이 은혜는 경이와 경악을 연속해서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금강산에 가보면 이곳저곳의 아름다운 경치에 놀라움과 그만 감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야~\" 입을 벌리면서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구경을 합니다. 어느 곳 하나 허술한 곳이 없습니다. 중국의 \'구치보\'라는 산을 가보면 그 높은 산을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물이 흘러내리는데 골짜기에서만 흐르는 것이 아닙니다. 꼭대기에 이르러도 여기저기에서 물이 흘러내리는데 놀라지 않을 수가 없을 정도로 물이 많은 산이 있습니다. 여러분! 여기의 \'은혜 위의 은혜\'라는 말은 바로 그것을 가르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구속함을 받은 그 은혜는 말할 수 없는 놀라운 은혜요, 큰 은혜요, 갚을 수 없는 은혜입니다. 왜 그런가하면 우리의 어떤 공로나 힘이나 능력이 아니라, 우리가 구원받을 만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죄 가운데서 건져주시고, 이제 영원한 기업을 주시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경륜이 오래 되면 오래 될수록, 주님께 나아와 봉사를 많이 하면 할수록 하나님이 주시는 그 은혜와 사랑이 너무 크고 놀라워서 시간이 갈수록 더 경악하게 되고, 시간이 갈수록 더 놀랍게 되고 글자 그대로 \'원더풀(Wonderful)\'을 외칠 정도로, 이것이 바로 은혜 중의 은혜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믿을수록 시시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으면 믿을수록 더 놀랍고, 더 온유하고, 더 깊이 은혜를 체험하고, 더 깊은 은혜를 맛보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은혜 위의 은혜\'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알면 알수록 주님께 더 가까이 나가게 되고, 주님을 위해서 더 뜨겁게 봉사하게 되고, 헌신하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은혜 중의 은혜\'입니다.

3)꼭 필요하고 때에 맞는 은혜다.
여러분, \'은혜 위에 은혜\'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하면 무슨 뜻인가 하면 그 상황과 그 경우에 꼭 필요한 것, 그 경우와 상황에 없어서는 안 될 것을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내가 외로울 때 위로해주는 은혜입니다. 내가 피곤해졌을 때에는 힘을 주는 은혜입니다. 내가 약해졌을 때에는 강하게 해주는 은혜입니다. 내가 넘어졌을 때에는 붙들어 일으켜 주는 은혜입니다. 내가 절망에 빠졌을 때에는 소망을 주는 은혜입니다. 낙심이 될 때에는 소망을 주는 은혜입니다. 병이 들었을 때에는 치료해 주시는 은혜입니다. 내가 죄가운데 빠져서 헤맬 때에는 성령께서 내 마음에 감동해주어서 스스로 죄를 끊어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때로는 부족하고 연약해서 하나님을 떠나서 방황할 때도 있지만, 그러나 그때그때마다 성령님께서 마음에 감동을 주시고, 말씀을 통해서, 환경을 통해서, 상황을 통해서, 사람을 통해서 전보다 더 주님께 가까이 갈수록 이끄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인간의 노력과, 인간이 힘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우리는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환난, 시련, 곤고와 괴로운 날이 수 없이 많이 있었지만, 지난날을, 하루하루 살아온 것을 고백하자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여러분! 비단 과거뿐이 아닙니다. 현재에도 그렇습니다. 이렇게 살기 힘들고, 괴롭고, 고통스럽지만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잘나고 똑똑하고 훌륭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환난에서 우리를 구원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인도해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으면 믿을수록 놀라운 은혜, 더 깊은 은혜, 더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게 되고 우리의 생활에 기쁨과 감격이 계속해서 이어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 위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은혜의 원천은 무엇인가?

예수그리스도이다.
그러면 여러분, 은혜의 원천은 무엇입니까? 은혜는 어디서부터 솟아나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은혜가 솟아나는 것입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율법의 하나님입니다. 우리에게는 무서운 하나님이요, 심판의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사랑의 하나님으로, 은혜의 하나님으로 우리에게 나타납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율법적인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신약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해주는 자비의 하나님으로 나타납니다. 구약시대에는 율법을 지킬 때 마음에 들든지 들지 않든지 싫든지 좋든지 지키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노예의 입장에서 율법을 지키기 때문에 부담감으로 인해 마지못해서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신약에 와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은 마지못해서 말씀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한 우리가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가 기뻐하면서 감사하면서 능동적으로 말씀을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은혜인가?

1.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있다.(12절)

1) 영접하는 것이다.
①보장된 권세
여러분, 은혜 위의 은혜에서 은혜는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게 되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 중에 가장 큰 은혜, 은혜 중의 은혜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 바로 은혜 위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진정한 의미의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②배경이 있는 권세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결정되는가. 그 조건을 보면 물질에 의해서건, 그가 가진 지위에 의해서건, 혹은 그가 가진 재주나 외모나 여러 가지에 의해서 좌우되지만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부모의 능력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 가장 많습니다. 부모가 훌륭하고 유능하면 그 자식들도 따라서 잘 살게 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갈수록 더 그렇게 되는 것이 요즘의 사회상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늘 여러분은 혹시라도 육신의 부모에게는 부족한 것이 있더라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이 여러분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 이상의 큰 은혜가 어디 있느냔 말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만 세 전부터 택하시고 택하신 여러분을 불러모아서 중생시켜주시고 믿음을 주시고 비록 죄인이지만 의롭다고 칭하셔서 의인이 되게 하시고 점점 더 성화의 단계를 거쳐 예수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시고 이제 광야 같은 세상을 떠나는 그 날 영원한 천국에서 영원한 기업을 누리게 하시는 것,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다는 말씀입니다.

③행동하는 권세
여러분, 그리고 권세를 주셨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하면 이 권세는 바로 자녀의 권세입니다. 아들의 권세입니다. 이 권세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바로 법적인 권세를 말합니다. 그것은 우리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 갖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법적으로 보장이 되는 권세를 말합니다. 이 권세는 필요에 의해서 있어졌다 없어졌다, 빼앗았다가 다시 주는 권세가 아니라 이 권세는 영원한 권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어떻게 모실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한 번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여러분은 영원토록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로서의 권세를 가지게 됩니다. 영원토록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는 사단을 이기는 권세입니다. 죄를 끊어버리는 권세입니다. 사단을 물리치는 권세일 뿐 아니라 또한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사는 권세입니다. 여러분, 이런 하나님의 자녀에 대한 권세를 우리가 가졌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는 기도할 때 응답받는 권세입니다. 환난에서 구원받는 권세입니다. 이 놀라운 권세를 우리가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권세가 바로 행동하는 권세입니다.

2) 믿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권세, 여기 믿는 사람은 그랬습니다. (요1:12) 여기 믿음은 현재분사형입니다. 계속해서 믿는 것을 말합니다. 믿었다가 안 믿었다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계속적으로 믿을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을리라(계3:20)\' 오늘 마음을 열고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이 책임져주는 하나님의 소유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 속에서 날마다 승리의 개선가를 부를 수가 있습니다. 어떤 예수님을 믿습니까? 마태복음 1:22 에 보니까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그리스도 구주를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마1:23)\'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가 여러분들 하나님께서는 영원토록 여러분과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2.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14절)

1)말씀으로 오셨다.(요1:1)
은혜 중의 은혜는 1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거하시매(요1:14)\' 그랬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거하셨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임카네이션\" 예수님이 이 땅 위에 내려오시고 여인의 몸을 입어 태어나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다는 사실은 은혜 위의 은혜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오시지 않았다면 우리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예수님이 인간의 몸으로 오신 것이 바로 은혜 위의 은혜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을 말씀이라고 기록된 곳이 많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1:1-3)\'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 예수님은 말씀이시고 이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시고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이 예수님이 만물을 창조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 예수님이 말씀으로 오셨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이 말은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 있는 희노애락, 여러 가지 감정들과 여러 가지 생각들을 표현하는 방법들은 바로 여러분의 말입니다. 여러분의 말이 아니면 어떻게 여러분의 생각들을 표현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기쁨, 하나님의 인내, 하나님의 의, 이런 모든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와 성품들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2)은혜와 진리가 충만했다.
여러분, 뿐만 아니라 (빌립보서2:6)을 보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라고 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과 똑같은 분이십니다. 하나님 자체입니다. 그러나 권리를 포기하고 스스로 동등됨을 포기하고 이 땅위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여인의 몸을 빌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거하였다\'라는 말을 원어로 보면 \'장막을 치고 이 땅에 거하였다\'라고 합니다. 우리 주님이 승천하시면서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속에 임재하셔서 영원히 여러분의 마음속에 장막을 치고 머물러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이주의 세 가지 특징
①장소의 이주다.
우리 주님이 이 땅위에 오신 천국에서의 이주는 세 가지의 특징을 말합니다. 그 첫번째 바로 장소의 이주입니다. 높은 하늘나라에서 이 미천한 땅으로 오셨습니다. 거룩한 곳에서 죄가 많은 곳으로 오셨습니다.

②신분(명예)의 이주다.
명예의 이전입니다. 존귀하고 높으신 하나님이, 우주만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이 이제 비천한 인간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③방법의 이주다.
또한 방법의 이주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제한을 받지 않으시는 무제한의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태어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 위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어주시고 우리를 영 죽었던 자리에서 구원해주셨다는 것, 이것이 바로 \'은혜 위의 은혜\'입니다. 여러분, 그런고로 우리는 늘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에 감격, 또 감격, 날마다 감사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인간 세상에 오실 수가 있고, 어떻게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약하고 더러운 인간의 몸속에 탄생할 수가 있습니까? 이것이야말로 영원히 잊을 수가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요, 신비 중의 신비요, 기적 중의 최고의 기적입니다.

3. 그의 충만한 데서 받는다(16절)
뿐만 아닙니다. 여러분은 \'은혜 위의 은혜\'는 무엇입니까? 오늘 요한복음 1:16을 보니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의 은혜러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우리 예수님은 충만한 분입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지고 계시는 분입니다. (골로새서1:19)을 보니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그 충만함 속에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 전능, 은혜, 사랑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무엇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무엇이든지 다 소유하고 있는 하나님께 무릎 꿇어 기도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나 다 응답해 주십니다. 그런고로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7:7)\"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너희에게 응답하겠고 너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기를 원하시고,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 기도를 응답해주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이게 바로 은혜 중에 은혜라는 말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두세 번, 혹은 서너 번 이야기하면 그 이상 잘 들어주지 않습니다. 아무리 성품 좋은 사람이라도 우리가 자주 찾아가서 힘들게 하고 요구하면 고개를 돌리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나 야고보사도는 (약1:5)에서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그리고 구하면 다 주시는데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신다 그랬습니다. 자주 요구한다고 야단치지 아니하십니다. 지나친 것을 구한다고 나무라지도 않습니다. 또 열을 구하면 다섯만큼 주시는 분이 아니라 후히 주신다고 했습니다. 넘치도록 채워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 위의 은ㅇ혜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도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와 마음껏 기도하고 간구하고 찬양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은혜 위의 은혜\'가 무엇입니까? 무진장한 은혜, 계속 해서 흘러넘치는 은혜, 경악하고 경악할 수밖에 없는 은혜, 믿으면 믿을수록, 가면 갈수록 찬양할 수밖에 없는 은혜, 뿐만 아니라 때와 상황에 맞게 공급해주는 은혜, 이 은혜가 우리들을 인도하고 있습니다. 이 은혜가 영원한 천성 문에 이르는 그 시간까지 여러분들을 도와주시고,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시고, 여러분을 곤궁한 가운데에서 구원해주시고, 여러분의 가는 기을 도와주시고, 축복해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이와 같은 놀라운 큰 은혜, 신비한 은혜, 경이로운 은혜, 은혜 위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오늘도 내일도 기뻐하며 감사하면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